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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니체의 철학과 사상이 고비를 넘기게 되었을 때 키에르케고르의 저서들이 번역되어 널리 읽히기 시작했다. 독일철학계는 이 새로운 사상에 접하면서 새로운 활력소를 열기에 이르렀다.철학계는 물론 신학계에서도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독일의 대표적인 신학자 카를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의 영향을 받아 그의 유명한 저작 "로마서"를 저술했다. 그 책이 신학계에 그렇게 큰 파문을 일으킬 줄은 저자 자신도 미처 몰랐을 정도였다 . 새벽에 나가 종각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줄을 잡아당긴 것뿐인데, 그 종소리에 온 신학계가 놀라 깨어날 줄은 자신도 몰랐다는 그의 표현은 참으로 적절한 것이라 하겠다. 바르트와 그의 신학이 얼마나 큰 영향을 남겼냐는 우리모두가 잘 알고 있다 .우리 신학계에서도 바르트의 후계자들이 지나치게 많을 정도로 배출되었다.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신학의 주류를 형성해준 셈이다. 그 당시에는 세 신학자가 포진하고 있었다. K. 바르트, P. 틸리히, R. 니부어 등을 말한다. 불트만까지 합치면 네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바르트와 불트만은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었으며, 틸리히와 니부어는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바르트를 전통적인 신학자로 본다면 틸리히는 철학적 신학자로 구별해 좋을 것이며, 미부어는 실천적인 사회신학자로 분류될 수도 있을 것이다. 틸리히도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독일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신학자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당시, 즉 20세기 중반기에는 철학계보다도 신학자들의 역할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고 말할 수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영향력 탓이었다.
그러나 다시 철학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야 하겠다.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이 유럽과 세계에 남겨준 영향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와 사상가들을 비참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삶의 가치가 무엇이며, 역사에는 과연 희망이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질문은 철학계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제 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제 2차 세계대전 후까지 서구철학계에 큰 파문이 일게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실존주의 철학 또는 실존사상과 문학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한 때는 그 여파가 서구사회는 물론 우리주변에까지 적지 않은 관심을 끌었다. 필자가 54년부터 연세대학교 철학과 강의를 시작할 무렵에는 실존철학이 마치 철학의 주류이거나 전부인 것같이 여겨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 처음 제창자를 니체와 키에르케고르라고 불렀다. 그들은 인간의 문제를 최대의 과제로 삼았고 자아의 세계내에서의 운명을 숨김없이 물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 해결을 운명에와 영구회귀의 그리스 정신에서 얻으려 했고, 키에르케고르는 기독교 신앙에서 해결지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으로 그치고 말았다면 우리는 실존철학자들이라는 명칭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있었고, 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이 동조해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의 시대적 조류를 만들게 된 것이다. 오히려 철학자들보다는 작가들의 활약이 더 보편적 경향을 띠고 나타났다고 하겠다. 아마 그 처음 철학자는 "존재와 시간"의 저자인 M. 하이데거라고 보아서 좋을 것이다. 1927년 그의 저서가 발표되면서 그 영향력은 대단한 것임이 드러났다. 필자도 젊어서 그 책을 대하면서 어느 정도는 흥분에 가까운 기대를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친구 한 사람은 "바로 이런 철학이 필요했었다"고 말했다. 거기에는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었던 철학이라는 뜻도 있었으나, 이것이 우리 시대가 갈망하는 철학이었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래 전에 한 서울대학 교수는 "아마 우리 졸업생들 중에 하이데거에 관한 학위논문을 쓴 사람이 전체의 3분의 1 또는 그 이상을 될 것이다."라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하이데거가 유행했다는 뜻도 되나, 그만큼 어려운 전문성도 갖추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서울대학의 박종홍교수는 유럽여행의 가장 큰 목적중의 하나는 하이데거 방문에 있다고 얘기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대단히 난해한 내용이다. 충분히 이해하기에는 유럽의 철학사를 알아야 하고, 또 그 핵심적인 과제에 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이데거를 앍으면 마치 신의 존재를 빼놓은 키에르케고르를 읽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한다. 최근 작고한 서울대학의 김석목 교수도 하이데거는 신이 없는 신학 책을 읽는 것같은 인상을 풍긴다고 얘기하곤 했다. 아마 그의 철학은 그리스의 존재론에서 시작해서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20세기에 사는 인간들이 안고 있는 가장 근원적인 과제를 해명해준 철학이었다고 보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처음 그를 대할 때 느낀 인상이 일단은 그러했었다.
'삶은 죽음에 대한 선택과 결단':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1927년)
그때 세계에서는
1926년: 나석주,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던짐
1927년: 린드버그, 대서양무착륙비행에 성공

하이데거 [Heidegger, Martin]
1889. 9. 26 독일 슈바르츠발트 메스키르히~1976. 5. 26 메스키르히.
옛날부터 철학의 주체는 존재였다. 그리고 오랫동안 존재는 자연세계를 가리켜왔다. 중세기에 와서는 신이 존재의 중심과제로 떠올라왔다. 신과 무관한 존재는 논의될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근세가 되었고, 근세에 와서 자연은 자연과학의 대상으로 바뀌었고 신은 철학적 과제밖으로 밀려나갔다 자연히 최근에 와서는 존재는 삶의 세계로 환원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 삶의 세계의 중심과 열쇠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주제는 인간적 삶의 현실로 자리를 바꿀 수밖에 없어진 것이다. 그렇게 되어서 존재는 인간적 삶이 바탕이 되며 그것을 어떻게 밝혀주는가 함이 중요해진다. 하이데거가 문제삼은 존재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및 삶의 현실은 사회적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 및 역사적 차원도 불가피해진다. 그 삶의 역사성-그것이 곧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새로운 철학을 포함하는 하이데거의 주제는 "존재와 시간"으로 대표될 수밖에 없어진다. 이러한 철학을 전개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개념을 가지고서는 충분히 해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자신의 개념을 만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어졌다. 즉,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새로운 용어들이 등단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철학은 난해한 철학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철학과 실존철학 사이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자연은 알려지고 철학적 탐구의 대상은 되나 자체는 존재로서의 자각을 갖지 못한다. 식물이나 동물도 그렇다. 자기자신은 깨닫거나 자각하지는 못한다. 단,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면서 존재를 자각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인간 일반이 아닌 자아로서의 인간이 자기자각을 하는 존재이다. 각존이라는 개념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철학은 스스로의 존재를 밝히는 자아의 실존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자아는 어떤 존재인가? 주어진 세계속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목적이나 뜻이 있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존재하는 세계에 항상 어떤 관심을 갖지 않을수가 없다. 그 관심의 하나가 불안이다. 그리스에 널리 알려진 신화가 하나 있다.
'근심, 불안'이라고 하는 신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들었다. 그 조각을 가지고 영혼을 취급하는 신에게 자기에게 생명의 기운을 좀 불어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생명의 영혼을 얻은 조각은 사람이 되었다.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된 것이다. 처음에 인간의 재료를 빌려준 신이 보니까 자기가 갖고 싶은 생각이 들어, 내가 재료를 주었으니까 그 인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그 얘기를 들은 영혼을 빌려준 신이 그럴바에는 내가 생명을 주었으니까 가질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근심, 불안이라는 신은 내가 노력해서 사람이 되었으니까 내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세 사람은 싸움을 하다가 제우스신에게 가 재판을 받기로 했다. 사정을 다 듣고 난 최고의 신은 이렇게 판결을 내렸다. "이 사람이 다음에 죽거든 재료를 빌려준 흙의 신은 그 신체를 도로 찾아 가져라. 또 영혼을 빌려준 신 너는 그 영혼을 도로 찾아 가져라. 그러나 이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근심,불안 신인 네가 데리고 살아라"는 판결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인간은 죽으면 육체와 영혼은 각기 나뉘어져 각기 제자리를 찾아가나,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은 불안이라고 하는 신과 살게 되었다는 얘기다. 바로 하이데가가 지적하는 인간적 삶의 실상은 이러한 존재론적 불안한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양심적 결단을 내리고 스스로의 존재를 영원한 것으로 만들고 싶으나 그것은 헛된 노력이다. 죽음이 앞으로 다가올 때는 모든 존재에의 노력은 허무해지고 만다. 이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선택과 결단, 이런 노력을 끝없이 계속해가는 것이 인간적 삶의 모습이다. 이런 선택과 결단은 누구도 회피하거나 무관할 수 없는 삶의 실상인 것이다. 그러한 물음과 선택에 임하면서 궁극적인 결단을 내리는 것이 곧 철학적 과제이며,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해결지어야 할 단독자의 책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노력은 존재하는 것들이 참존재로 돌아가려고 하는 존재에의 의지와 용기에 속하는 것이다. 이 밖의 모든 문제들은 부수적인 것이며, 인간적 존재의 본연적 실상을 외면한 문제들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어떤 해결을 주기보다도 문제를 제시해줌에 큰 뜻이 있으며, 그는 그 해명의 암시를 제공해주는 것이 철학의 과제라고 보았다. 이러한 존재에 대한 인간적 물음. 삶의 궁극적인 해명을 물려받은 후계자들이 제각기의 해석과 철학적 모색을 거듭하게 되면서 실존철학은 그 비중을 더하게 되었다.
실존철학의 두 거장 :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의 주변이야기
그때 세계에서는
1939년: 영국,프랑스,독일에 선전포고
1940년: 독일,파리에 무혈입성
야스퍼스 [Jaspers, Karl Theodor]
1883. 2. 23 독일 올덴부르크~1969. 2. 26 스위스 바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을 출간했을 때 가장 충격을 받은 동료 철학자가 한 사람 있었다. K.야스퍼스라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였다. 그는 본래 대학에서 정신병리학을 전공하면서 철학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출전했다가 애석하게 일찍 세상을 떠난 E.라스크 철학교수가 자리를 비우게 되자 대학에서는 마땅한 후임을 찾지 어려웠다. 그래서 야스퍼스에게 철학강의를 의뢰하게 된 것이 그로 하여금 세계적인 철학자로 남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야스퍼스는 전공분야와의 관련도 있어 삶의 철학과 인간이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의 니체연구는 대단히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키에르케고르로부터도 큰 철학적 암시를 받았다. 이런 철학 및 인간학적 배경을 갖고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철학을 집필하고 있었는데, 자기보다 먼저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진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나왔던 것이다. 앞자리를 빼앗긴 야스퍼스는 서둘러 저작을 완결시켰다. "존재와 시간"도 상하 두 권으로 된 큰 책이지만, 야스퍼스의 "철학"은 더 큰 저서로 나타나게 되었다. 두사람은 어느 정도 라이벌 의식을 갖게 되었으나, 철학계는 이 두 사람을 함께 소유하게 되면서 실존적 철학의 영역을 크게 굳히게 된 셈이다. 물론 두 사람의 철학이 같은 방향과 비슷한 과제를 취급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남이 볼 때는 형제가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 같아도 집 안에서 보면 형제간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지 모른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비교해보면 대단한 차이가 잇다. 그러나 밖에서 보면 두 사람이 함께 새로운 철학의 영역을 개척한 공로자로 보고 싶은 것이다. 야스퍼스보다 6년 연소한 하이데거의 철학적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 인기와 세계적인 관심때문에 히틀러의 집권 당시 그는 대학의 총장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독일대학의 총장자리는 명예직에 불과하며 그렇게 대단한 것은 못된다. 그러나 히틀러정권자체가 독재권을 행사하던 때였기 때문에 하이데거는 자연히 독재정권의 옹호자나 대행자같은 비판을 면치 못하게되어 그의 일생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하이데거는 히틀러의 정권을 옹호하는 교육적 입장을 뒷받침하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그런 길을 택한 하이데거에 반해 야스퍼스는 부인이 유대 계통이었기 때문에 히틀러정권에 쫓겨나 스위스의 바젤대학에 머물면서 강의를 계속했다. 히틀러의 탄압정책에서 독일을 떠난 학자와 교수는 참으로 많았다. 그 많은 교수들이 자유로운 신대륙인 미국으로 망명했기 때문에 미국대학들은 뜻하지 않게 교수풍년을 맞게 되어 철학계에서도 큰 행운을 누리게 된 셈이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모두 미국에 정착해 있었다. 필자가 60년대 초에 미국에 머물때도 미국학생들이 영어발음이 서툰 교수들이 최고의 교수라면서 웃고 있었다. 일본에 와 있던 K.리비드 교수도 망명교수중의 한 사람이었다. 후에 바이델베르크에서 정년퇴직한 존경받는 유대인 철학자였다. 그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하이데거보다도 야스퍼스의 철학이 더 많은 독자를 갖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야스퍼스연구에 뜻을 모았던 철학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의 학문성이나 방법론들에 있어 지금은 하이데거의 업적이 더 높이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또 야스퍼스의 저서는 너무 많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독창적인 알찬 맛이 적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물론 실존철학의 대표자는 이 들로 끝나지는 않는다. 많은 유사한 철학자들이 있어 세계적인 영향을 남겼고, 그 여파는 2차대전을 계기로 프랑스에까지 미치게 된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가 1차대전을 계기로 태어난 철학자들이라면 프랑스의 G.마르셀과 J. P. 사르트르같은 이들은 2차대전을 겪은 뒤의 철학자들이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실존철학이라고 불리던 이 계통의 철학은 키에르케고르, 니체로부터 시작되어 하이데거와 야스퍼스를 거쳐 G. 마르셀과 J. P. 사르트르에게 이르러 형성된 긴 과정에 걸친 것이라고 보아 좋을 것이며, 그들에게 방법론적 영향을 준 사람은 딜타이의 해석학과 E. 후설의 현상학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보아야 하겠다. 특히 현상학의 의미는 큰 것이었다.
'인격...최고의 목적가치': 야스퍼스의 "철학"(1920년대 말)
그때 세계에서는
1928년: 파리에서 무전조약(켈로그, 브리앙 조약조인)
1929년: 예루살렘에서 아랍인의 대규모 유대인습격 일어남(통곡의 벽 사건)
야스퍼스 [Jaspers, Karl Theodor]
1883. 2. 23 독일 올덴부르크~1969. 2. 26 스위스 바젤.
하이데거에 비하면 야스퍼스의 철학은 이해하기 쉬우며 유럽철학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의 방대한 내용의 철학을 쉽게 표현한다면 다음의 두 가지 면에서는 어렵지 않게 공감이 갈 내용들이다. 우리 주변에서 열심히 뛰어다니고있는 사람들에게 무엇때문에 그렇게 사느냐고 물으면, 돈과 경제, 정치와 권력, 기계와 기술을 얻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절대다수의 삶의 목표는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것들이 소중하기는 해도 그 자체들은 수단으로서의 가치, 예비적인 가치는 될 수 있어도 그 자체가 목적가치는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 자체가 목적가치일때는 우리들의 삶과 사회는 전도된 가치관때문에 불안을 가져온다 그러면 목적이 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인가? 오히려 학문과 참의 가치예술과 미의 가치도덕과 선의 가치들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고 또 되어서 좋은 것이다. 진리와 예술과 선은 그 자체가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들이며,또 그렇게 되어서 잘못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정신적 가치는 삶의 궁극적 가치가 될 수 있는가? 그 자체는 수단과 방편으로서의 가치는 될 수 없는가?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 자체는 수단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기에 문제가 있다. 어떤 예술가가 예술은 최고의 가치라고 말한다고 해도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 뜻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이다. 진리의 타당성과 가치는 중하지만 여전히 그것도 상대적이다. 상대적이라는 것은 목적가치일 수도 있으나 준비적 가치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언제 어디서나 목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수단과 예비적 가치는 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도 있는가? 있어야 하며 또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다름아닌 인간적 가치, 인격의 가치인 것이다. 그것은 결코 수단이나 방편으로서의 가치일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그 뜻과 가치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뜻은 야스퍼스의 개인적 주장이나 요청은 아니다. 기독교의 인간목적관이 바로 그것을 가리키며, 칸트가 인격은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전통적 가치체계를 따른 것이다. 지금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는 상대적인 것이며, 시대와 사회에 따라 변질, 변형될 수 있어도 휴머니즘은 영구한 목적이념일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주의, 사상에 있어서 목적가치인 때문이다. 그러면 현재의 비극과 모순은 어디 있는가? 이 가치체계가 거꾸로 되어 있는데 있다. 인간과 인격의 존엄성과 가치가 정치, 권력의 수단과 방편이 되어버린 실례를 너무 쉽게 발견하게 된다. 바로 20세기에서 그 사실을 너무 많이 보게 된다는 것은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선,후진국을 구별해보고 때마다 경제적인 평가에서 결정지어버린다. 그것이 개인적인 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재산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 수입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평가받고 있다. 기계와 기술은 현대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과학적 사고와 가치가 인정받아야 하며, 그 과학적 가치는 인간 및 사회에의 기여도에 평가되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훌륭한 과학자일수록 인간 목적가치에 순응하는 과학의 의미를 따른다. 그러나 오늘의 과학은 기계와 기술개발에 목적을 두기 때문에 과학이 상품적 가치의 시녀노릇을 하고 불행한 사회로 전락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현대철학이 당면하고 있는 책임과 의무는 무엇인가? 이 전도된 가치관을 바로잡는 일이다. 목적가치의 수단으로서의 가치를 명백히 가지며 삶의 의미와 내용을 정상적인 체계로 바로 잡지 못하면 오늘의 위기와 불행은 치유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과거와 같이 어떤 고정된 가치관을 고집함으로써 사회를 잘못 유도하고 있는 모든 관념과 사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 종교도 그렇다. 이러한 인간목적과 인간적 가치를 위하는 종교는 받아들여지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도 좋으나, 무조건 종교이기 때문에 옳다든지 도덕을 앞세우면 된다는 식의 사고 방식은 위험하다. 야스퍼스가 삶의 핵심되는 요소는 성선설에 있다고 보는 것은 이러한 가치체계를 구현하기 위해 꾸준한 자기혁신과 겸허한 정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성실과 사랑은 인간적 삶과 가치의 새로운 창조와 건설적인 기반이 되는 것이다.
실존적 초월로 나아가는 길: 실존철학의 후반기(1920년-40년대)
그때 세계에서는
1930년: 런던에서 해군군축회의 열림
1933년: 독일국회, 바이마르헌법폐기, 히틀러독재권 확립.
야스퍼스가 지적하는 삶의 내면적인 또 하나의 체계는 출발점이나 철학적 체계의 과정은 달라도 하이데거와 통하는 바가 있다. 인간들의 삶은 평범한 다수의 것으로 자리잡히게 된다. 그 평범한 다수는 그저 살고 있을 뿐이다. 일상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뿐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식으로 먹고 마시며 생명을 이어가는 생활을 산다. 여기에는 정신적 고뇌도 없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려는 노력도 없다. 주어진 삶을 습관적으로 계속해간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적 삶이나 삶의 가치와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의식 일반의 단계로 옮아간다. 삶이 먼저 있고 기초적인 행위가 뒤따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앞서고 사고의 뒤를 행위가 따르는 생활을 하게 된다. 우리들이 쉽게 표현하는 일반적인 의식구조와 사고방식을 갖고 사회생활을 영위해가는 것이다. 내던져진 존재가 아니라, 찾아서 살아가는 삶이다. 야스퍼스는 이 단계의 삶을 좌우하는 기초는 과학적인 삶에 해당한다고 본다. 과학적 사고는 일반성을 갖고 있으며, 일반적 사고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의식주를 위해서 사는 생활이 아니라. 의식주를 이끌어가는 의식적 삶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수의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나, 제 3의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정신의 위치로 올라가는 정신적 영역의 삶이 있다. 문화를 창조하고 가치를 추구하며, 삶의 영구한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삶이 이어진다. 사상, 진리, 예술등이 있으나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적 존재와 삶의 본질적 의의를 추구해가는 삶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신적 창조의 삶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삶은 반드시 어떤 관계, 난파, 좌절, 회의, 때로는 허무에 직면하게 된다. 하이데거는 불안의 본질적 근원은 죽음에 뿌리를 드리우고 있다고 본다.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삶은 충일하며 생명으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아도 바로 그 속에 죽음에 대한 예감, 다가올 죽음에의 소식을 얻는다. 죽음과 삶은 괴리관계에 있어 공간적 공통성은 있을 수 없으나, 삶의 한가운데 죽음이 둥지를 틀고 삶을 위협하며 죽음의 힘을 갖고 엄습해오는 것이다. 그것을 느끼는 것이 곧 불안인 것이다. 그 불안은 삶의 본질이기 때문에 회피할 수도 거부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유한과 무한, 생과 사, 시간적인 것과 영원한 것, 사라질 것과 영존할 것을 대립시키듯이, 정신적 단계에서는 이러한 단계의식과 삶의 난파를 겪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단계에 직면하는 단계, 제 4의 단계-그것을 야스퍼스는 실존의 단계라고 보는 것이다. 이 실존의 단계에서 자아를 좌초와 파국으로 이끄는가, 아니면 그 단계를 초극하는 가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실존적인 초월이 삶의 궁극적인 과제가 되는 것이다. 과거의 철학들은 이 전단계인 정신의 단계에 머물렀고 그것으로 자족해야 했으나, 하이데거나 야스퍼스는 이 실존적 단계에 도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현대사회가 원하는 철학적 과제에 대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해결의 길은 무엇인가? 해결의 길은 제각기 달랐다. 키에르케고르, 야스퍼스, 마르셀은 종교적인 신앙에서 그 암시를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방향을 유신론적인 실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렇다면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는 무신론적 실존철학을 제창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키에르케고르, 니체, 하이데거는 자아중심의 고독한 실존을 추구했으나, 야스퍼스, 마르셀 사르트르는 고독한 자아를 사회적 자아로 확대시킴으로써 참여의 방향으로 실존사상을 발전시켰다고도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앞선 세 철학자의 유신론이 다 같은 성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은 스스로를 초월할 수도 없으며 자신을 구원할 수는 없다. 오로지 전적으로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초월과 구원이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비하여 야스퍼스는 인간의 이성이 한계와 난파를 겪으면서 포섭자인 신의 포괄성에 안기는 자신의 선택과 결단이 필요하다. 자아의 초월적 노력과 자기부정에서 긍정의 길을 택하면 된다고 본다. 이에 비하면 마르셀은 카톨릭 철학자답게 인간의 선택과 신의 사랑의 결합에서 실존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키에르케고르를 아우구스티누스,루터의 뒤를 계승하는 신학적 사상가로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보면 야스퍼스는 전통적인 이성주의 철학자의 신학이라고 보아 좋을 것이다. 사회참여의 실존도 그렇다. 야스퍼스는 성실한 인간관계를 호소했고, 마르셀은 인격적인 사귐의 길을 열어주었으나, 사르트르는 사회행동주의자인 마르크스의 뒤를 계승하는 방향을 택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대표적인 여섯 사람쯤으로 실존철학은 일단 시대적 사명을 다했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