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의 <길>과 영화 <집으로 가는 길>
공지영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중 <길>과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을 대상으로 공통된 주제를 설정하고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해 본다.
공지영의 <길>과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 대한 공통테마를 ‘인생’과 ‘삶’과 ‘사랑’으로 정한다. 두 작품 모두 살아온 시간에 대한 추억과 잃어버린 것에 대해 아픔과 남아 있는 세월에 대한 바람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을 발견한다.
우선 공지영의 <길>의 경우 아들이 죽은 이후 메울 수 없는 감정의 틈이 벌어진 노부부가 결혼할 때 신혼여행 이후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삶과 사랑을 뒤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영화촬영 감독으로 일밖에 모르며 세월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신혼 삼 년간 어머니의 중풍 뒷바라지를 해냈고, 남편의 동생들을 줄줄이 결혼을 시켰으며, 불안정한 수입의 남편 대신에 수학 선생님으로서 가정을 돌보며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왔다.
학생운동을 하던 아들이 구속되었을 때도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에도 남편은 촬영현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들을 잃고 난 후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의 기억을 하며 남편과 이혼을 꿈꾸었던 것은 그녀의 나이 사십이 되었을 때였지만 ‘늦은 나이’에 이혼을 해서 무엇하느냐는 생각으로 오십이 되었고 육십이 된 지금 정작 나만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칠십 또는 팔십이 되었을 때 분명히 후회할 일이었기에.
남편은 비교적 자유분방한 사고로 직업 특성상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생활을 했지만, 그의 부인은 수학 선생님의 직분으로 가정과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인생을 모두 바쳐야 했다. 그녀는 정확하고 분명했으며 바른 생활의 모범답안 같은 삶을 살았지만, 그간 살아온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다른 각도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된 것이다. 동갑내기 부부가 삼십여 년의 결혼생활을 하며 단 한 번도 따뜻하고 포근한 대화나 선물, 몸동작 없이 살아온 세월에 대한 회한과 반성으로 깨달음을 얻는 모습이 아름답다.
순간이 영원하다고 믿었던 남편도 아내에게서 풍겨 나오는 진실한 향기를 이제야 맡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일에 빠져서 가정을 돌보지 않았고, 아내와 아들을 내팽개치며 달려왔던 지난날에서 무엇을 얻었던가? 직장에 충실하며 결근 한번 하지 않으며 가정과 자식을 위해 한평생을 바친 나머지 결과가 무엇이었더란 말인가? 노년 부부의 이별 여행이 될 뻔한 여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포용으로 고통과 아픔을 초월한 사랑으로 결실을 봄으로 가슴 잔잔한 감동이 밀려오는 좋은 작품이다.
장예모 감독의 <집으로 가는 길> 영화를 보면서 인생의 길에는 참으로 여러 갈래의 다양한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 ‘쟈오 디(장쯔이)’의 아름다운 미모가 아니었더라면 그 긴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눈을 열 번은 더 떼고도 남았을 것이다. 연애를 맘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에 절절하고 간절한 사랑으로 맨 처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는 점도 커다란 이슈로 주목받았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그가 걸어온 삶을 고귀하게 간직하며 기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아들의 가슴은 찡하기만 하다.
그녀가 왜 남편의 죽음 앞에서 그리도 슬프고 애절한지에 대한 것과 굳이 장례식을 도시에서 시골까지 직접 걸어오게 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까닭을 설명하면서 영화는 컬러로 변하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사는 시골 마을에 도시 선생님이 오면서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는데 그때부터 어머니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불길처럼 번진다.
선생님을 위해 공밥을 해 나르며 손수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기 바랐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면 늘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던 그 길. 그녀는 광활한 언덕에 숨어 기다리다 바라보며 연정을 키워나갔다. 빨간색 옷이 잘 어울렸던 그녀의 마음은 선생님에게로 다가가 서로가 통하였지만, 신분의 차이와 환경 때문에 이별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기다림이란 것이 그토록 애절하고 고통스러웠으랴. 계절은 네 번이나 지나고, 동짓달에 돌아온다는 약속 하나만을 가슴에 담고 기다려 온 시간 앞에서 상사병으로 앓아눕는가 하면 환상과 환청으로 넋을 잃기도 하는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절하다.
어머니는 오직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과 사랑으로 인생과 삶을 다 바쳤기에 아버지를 잃은 슬픔은 모두를 잃은 것과 같은 허무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숭고한 정신을 가진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자식이 그 일을 대신하기를 바라지만 아들의 신념은 굽혀지질 않는다. 어머니는 마을 사람들의 도움으로 장례식을 마치고 어머니가 모아 놓은 돈 꾸러미를 촌장에게 희사하며 새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그 새 학교에서 아들이 아버지 대신 아이들을 가르침으로 아버지에 대해 사랑을 보상받고 싶어 하는데,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와 아들이 가르치는 목소리에 한걸음으로 학교까지 달려가 보는 어머니의 심정은 가히 관객들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순간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아들이 단 하루만 봉사하겠다는 약속으로 학교 교단에 선 것이다.
아들은 도시로 떠날 것이다. 어머니의 소망은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리라.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추억과 사랑의 <길>을 바라보며 아버지에 대해 그리움을 키워나가지 않을까?
두 작품을 비교해 볼 때, 모두가 노년이 된 지금의 현실 앞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며 각자가 간직해 온 ‘삶’과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존재한다. 젊은 날 나를 희생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자신의 모습을 후회와 한탄으로 ‘이별’을 생각해 보지만 역시 그 내면엔 거부할 수 없는 <사랑>이 존재함으로 지난날의 잘못이나 슬픔 따위는 저 멀리 하늘 높이 던져버릴 수 있다. 살아온 인생 자체가 어쩌면 순간의 처절함과 애절함을 초월하여 따스함으로 포용하는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연륜으로 반추하는 노년의 모습에서 삶이란 어쩌면 사랑 하나로 모든 걸 덮어버릴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공지영의 <길>에서 나오는 노년 부부의 사랑과 장예모 감독의 영화 <집으로 가는 길>에서의 어머니와 나의 현실이 어쩌면 공통된 삶 속에서 어쩌지 못하는 바탕 ‘사랑’을 꿈꾸는 것은 아닐까?
아들의 부재와 남편의 부재 속에서 지금의 나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내면을 잘 그린 작품들이다. 두 작품 속에 들어 있는 ‘인생’과 ‘삶’과 ‘사랑’을 꼭꼭 감추어 두고 먼 훗날 나의 동반자와 함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밤이 새도록 뜬눈으로 지새우고 싶다.
작성일: 200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