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考 / 박동조
언젠가부터 폰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잦아졌다. 눈이 좋지 않아 스마트 기기 화면을 멀리하라는 의사의 금지령을 듣고도 시간만 나면 손바닥보다 작은 액정 화면에다 눈을 맞추고 있다.
스마트폰이 처음 나왔을 때 느낀 감정은 신의 영역을 넘보는 불가사의한 기계가 출현한 것 같은 놀라움이었다. 능력과 편리함이 어디까지 진화할지 모르는 기계가 두렵기도 했다. 전화, 컴퓨터, 시계, 카메라, 내비게이션, 카드, 그리고 우편 역할에서 때로는 교통편이나 문화공연의 예약까지 상상할 수 없는 기능들이 속속 장착되는 작은 기계 때문에 관련된 많은 제조회사가 문을 닫았다. 회사가 줄어든 만큼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런 현상에 나까지 일조하고 싶지 않아 주위의 핀잔을 들어가면서도 오랫동안 2G폰을 들고 다녔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아들이 신형 스마트폰을 사서 우편으로 보내왔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까지 얹어 잘 쓰겠다는 말로 마음에 이는 갈등을 가무렸다. 폰을 들고 어정쩡한 기분에 휩싸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 곳에서나 통화는 물론이고, 어디서든 열차표를 예매할 수 있으며, 산 위에서도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편리함에 나름 확고하다 믿었던 나의 의지는 불 위에 달군 젓가락처럼 휘어지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책 읽는 시간보다 폰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다. 가족이나 친구들 전화번호는 보지 않고도 줄줄 외던 내가 남편과 아들의 전화번호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외려고 노력해도 믿는 구석이 있어선지 도무지 입력이 되지 않는다. 모르는 길을 잘도 찾아다니던 내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내비게이션 목소리가 없으면 낯선 길은 감히 운전할 엄두를 못 낸다.
옛날에는 길을 가다 혼자 중얼거리거나 히죽거리면 실성을 했거나 조금 모자란 사람으로 알았다. 요즘은 소리 내어 웃으며 길을 걸어도 손에 전화기만 들고 있으면 아무도 이상스레 보지 않는다. 불과 수십 년 전과 후가 이리 다르다.
얼마 전에 북유럽 관광을 다녀왔다. 관광길에 오르면서 전화기를 가져가지 않는다는 내 말에 온 가족이 물설고 말선 이국땅에서 길을 잃기라도 하면 어쩌느냐고 걱정했다. 나는 세계가 한 나라 같은 세상에서 '코리안'이라는 낱말만 알고 있으면 대한민국 찾아오는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출발은 호기로웠다. 고속열차에 몸을 싣고 나서도 마냥 홀가분했다. 공중도덕 지킨다고 전화기를 무음으로 변환할 필요도 없고 동영상을 확인하느라 데이터가 남았는지 모자라는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휴대폰을 지니지 않아 몸과 마음이 가벼운 건 딱 거기까지였다.
고속열차에서 내려 공항 열차로 갈아타는 과정에서 일행을 놓치는 소동이 벌어졌다. 여행길에 같이 나선 동생들은 나이 든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난리가 났다. 나는 나대로 여차하면 공항까지 혼자 갈 각오로 표시판을 따라 열차가 서는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나를 발견한 동생들은 휴대전화기를 갖고 오지 않은 것에 한바탕 원망을 쏟아냈다.
여행지에서는 더욱 휴대폰이 아쉬웠다. 길가에 돋은 풀잎 하나도 카메라가 아닌 가슴에 담아 오리라던 애초의 생각은 내가 가진 기억력의 한계를 몰라서 한 결심이었다. 본 것을 그대로 기억 속에 저장하던 기능은 젊음이 떠나면서 데리고 가버렸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하루치의 관광을 끝내고 호텔로 돌아온 사람들은 그곳의 와이파이 번호를 입력하기 바빴다. 와이파이가 작동하면 낮에 찍은 사진을 톡으로 보내거나 가족들과 목소리를 주고받았다. 없어봐야 귀천을 안다고 했던가. 먼 이국땅에서 곁에 있는 듯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들을 부러워하면서 휴대전화기 가져오지 않은 것을 속으로 후회했다.
불의 발견이나 산업혁명이 인류 문명의 역사를 변혁시킨 것처럼 스마트폰 역시 인류사의 혁명이다.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인간은 시대의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존재라는 것을 미처 자각하지 못했다. 조사했더니 스마트폰을 가진 사람의 오십 프로가 자신을 폰 중독자라고 여긴다는 통곗값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스마트폰 중독자라고 굳이 구분 지어 자괴감 느낄 까닭이 없지 않은가.
출처 : 울산경제신문(http://www.ulkyung.kr)
첫댓글 아고고
저는 이번에 나오면서 39000원 주고 로밍 했습니다. 우리 말 발음이 시원찮은 가이드 설명 듣고 인터넷에 물어보고 금방 찍은 사진 가족들에게 보내곤 하니 지나간 세월 이리살지 않은게 후회가 되더군요
먼나라에서 줌 토론 접속하고 호텔가지 않아도 얼마던 그 나라 국기 인구수도 알아보고 카페 글도 읽고 하니 너무 좋으네요
단지 글을 쓰는 경우가 많았는데 로밍하니 남의 글 읽는게 쉽네요
지난 번 여행 때 소주며 안주 꺼리를 한 가방 챙겨왔지만 모두들 거들떠보지도 않은 저 체력이어서 이번에 빈손으로 왔답니다. 친구도 없이 왔는데 휴대폰이 열 친구 역할을 합디다. 휴대폰 예찬론자
그러게요.
아날로그 세대의 공통점이 변화를 싫어하는 거라지요..
태선작가님은 참 잘하셨습니다.
일일이 댓글까지.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