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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장 대문 주변 광경입니다. 앞에서 세 번째 굴뚝있는 곳이 대문이 있는 위치입니다. 왼쪽 끝에 낮은 기와지붕을 단 곳이 사랑채인 열화당 앞마당에서 나오는 옆문인데 이 문을
나서면 이 댁의 곳간채인 커다란 기와집과 일제치하에서 인재를 육성하던 학교건물이 보입니다. -luckydodo- |
선교장의 정문인 큰 대문입니다. 대문 현판에는 "仙嶠幽居(선교유거)"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원래 선교장에 쓰이는 정식 한자는 "船橋莊"으로 지금처럼 길이 닦이기 전에는 이
집이 있는 마을을 가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배다리골이라고 했고 그런 연유로 집이름도 船橋莊이 되었는데 집 주인의 절친한 친구가 택명을 선교장과
같은 발음으로 한자만 바꾸어 仙嶠幽居라고 지어주었다고 하더군요. "仙嶠幽居(선교유거)"란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뜻이라고하네요. 멋지지 않나요? ^^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드는 택호입니다. 옛분들은 집에도 이렇게 운치있고 멋진 이름을 달아 주셨더군요. -luckydodo- |
집안의 남자주인이 주거하는 사랑채 건물인 "悅話堂(열화당)"입니다. 친척들이 모여 즐거이 담소하는 곳이라는 뜻이라는데 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중 "悅親戚之精話(열
친척지정화)"에서 따왔다고 하네요. 앞에 덧 대어진 차양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러시아식으로 지어 선물한 이라고 하네요. 사진에는 안보이지만 열화당 왼편으로는 아래 사진에
보이는 중사랑채가 있고 정면 앞으로는 담 역할을 겸하는 행랑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른편으로 창이 보이는 건물은 서고와 서재를 겸하던 서별당의 행랑채 뒷면입니다.
-luckydodo- |
사랑채 앞 마당에 있는 능소화라네요. 왼쪽으로 보이는 방들이 행랑채 인데 방들이 여러개 쭈욱 이어져 있고 손님들 중 조금 낮은 격의 손님들을 머물게 하던 방이랍니다. 우측에
보이는 문이 닫힌 건물은 중사랑채인데 옆으로 방이 몇칸 쭈욱 이어져 있고 이 방도 손님용이긴 하나 왼쪽 행랑채보다 격이 좀 높은 손님들을 머물게 하던 방이랍니다. 쥔장이
찾아 온 손님과 대화를 해보고서 손님의 품격을 결정하여 어느방에 머물게 하시라 하였다고 하는 것 같더군요. 우측에 방문이 닫힌 중사랑채는 왼쪽 행랑채보다 기단이 있어 건
물 자체가 조금 더 높아 방의 서열이 높음을 예측할 수가 있습니다. 사진상으로도 지붕으로 건물 높이가 다른것이 가늠 되실겁니다.^^
예전에 티비에서 드라마 "황진이"를 방영했는데 거기서 황진이가 머물던 기방으로 등장한 장소가 이 선교장입니다. 기녀들이 방방마다 들어 앉아서 화장하던 장면을 길게 잡아
주던 장소가 바로 저 아랫쪽 행랑채이고 벽계수 앞에서 연회를 하며 춤추던 장소가 이 능소화가 있는 사랑채 큰 마당이었더랬지요. 그리고 "궁"이라는 드라마에서 왕가의 여름
별장으로 나오기도 했었구요..얼마전에는 드라마 "일지매"를 보니 또 여기서 촬영을 했더라구요. 일지매를 쫏아 군졸들이 우르르 몰려 다니는 대갓집 앞마당으로 여기 사랑채
마당이 나왔고 연이어 일지매를쫏아 가던 골목길은 바로 요 아래 사진의 중문들에서 촬영했더라구요. ^^ 좀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쁜 여배우 원미경씨가 주연했던 조
선여인 잔혹사 "물레야 물레야"라는 한국영화도 이곳 선교장이 배경이라고 하더군요. 고전극에 비교적 자주 형체를 드러내는 건물 중에 하나인것 같습니다. 그냥 집일 뿐이지만
옛분들의 주거 환경이 어떠했는지, 그것도 왕실의 집안으로 부호였던 대가집이 어떤 규모였는지 한번 구경해 보실만 합니다. 처음 규모보다는 좀 줄었다고 하는데 원래는 120여
칸 되는 크기의 집이었다고 하더군요. - luckydodo - |
이 대문들은 각각의 건물들로 들어가는 중간문들이네요. 제일 처음 보이는 중문은 사랑채에서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고 두번째문이 안채로
직접 들어가는 문이고, 첫번째와 두번째 문 사이에 공간은 여자들이 안채로 직접 들어갈 수 있게 만든 대문이 오른쪽으로 따로 나 있는 작은
공간입니다. 첫번째 문을 나서기 전에 문의 왼쪽으로 사랑채와 서고가 있는 서별당이 있고, 두번째 문을 지나 왼쪽으로 들어가면 집안 대소
사가 있을 때 손님을 접대하는 동별당과 안주인이 주거하는 안채가 나옵니다. 맨 끝에 열린 문은 外별당으로 들어가는 문인데 이 별당은 선
교장 전체 구조에서 볼 때 제일 우측에 자리하고 있는 작은 규모의 건물로 장남이 혼인을 하면 머물거나 다른 자녀들이 분가전 까지 머무는
집 이라고 하네요. 현재 그 별당에서 선교장 종손이신 이강백씨가 종부이신 노모와 직접 거주하고 계시면서 선교장 문화원 원장을 맡아
선교장을 보존해 나가고 계시답니다. 3년전 처음 갔을 때는 외별당 안으로 해서 저 끝에 보이는 열린문으로 안채를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작년
여름에 가보니 外별당 입구를 막아서 관람객이 드나들지 못하게 해 놓았더군요. 아무래도 사람이 직접 거주하는 공간이라 사생활 보호차
원에서 그리한 것 같습니다. -luckydodo- |
선교장 들어가는 입구 우측편에 있는 연못과 연못 가장자리에 세워진 정자인데 이름은 "활래정"이라고 합니다. 지금 여름이라 연꽃이 한참
피어있을 것 같네요. 현판이 달려있는 전면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마루 형식이고 뒤로 물러난 부분은 온돌방으로 손님이 오셨을 때 차대접을
하는 茶房이라고되어 있더군요. - luckydodo - |
활래정을 가까이서 찍은 사진이네요. 우측으로 멀리 보이는 것이 선교장 본채입니다. - luckydodo -
설명은 제가 했고 사진 출처는(http://corea3000.com/tour/sunkyo.htm)입니다.
- luckydodo -
첫댓글 와

정말 멋집니다..고택의 멋도 좋지만 도도님의 글솜씨에 작품이 
히 살아 나는 것 같습니다....도도님 어디 잡지사에 한번 연락해 보세요





저런 곳에서 사주 공부를 하면 저절로 머리에 들어올 듯 합니다....
이선교장은 조선시대의 영동지역 대가의 전형으로 우리고장의 자랑거리지요 풍수공할때엔 현장학습의 장소로 초당의 허난설원 허균 의생가 와함께 찾아가는 필수코스지요 활래정의 연못은 풍수학적으로 설계된 조상님들의 지혜가묻어있는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