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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누나는 내가 과거의 남자로서의 인연일 뿐이지? 그 사람이 선진이를 남기고
떠났다고 생각하면 안 돼? 우리가 여기서 더 길어지면, 우리 둘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불행해져요. 난 누나가 불행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아, 누나 선진이도 있으니 이제
그 사람은 기억에서 지워버려. 새로운 사람을 찾아요, 그래야 누나도 선진이도 행복을
누릴 수 있어. 누나 한 사람만 생각을 바꾸면 누나와 동생들을 비롯해, 내 주변의
사람들까지 편안해 지는 거야, 누나만 생각하지 말고 동생들도 생각해야지.”
“선진이를 낳고나서, 한 번도 그 오빠를 생각 한 적이 없어, 정말이야. 이런 내가
나도 신기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정길씨 모습 뿐, 그 오빠의 모습은 어디도 없어.
하지만 지금 나는 나일뿐 남의 생각을 해 줄 여유가 없어요. 그 오빠에 대한 건 이미
잊었어, 내 지금 생각은 오직 정길씨에게 안기고 싶은, 간절한 욕구로 가득해요.
안아주지 않을래? 나를 책임지라는 말은 않는다잖아!”
안겨오는 흥자를 떼어 놓으며, 이러면 앞으로 절대 만나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미
자신의 처도 아기를 낳았다는 말을 하자. 좀 진정이 되는지 떨어져 앉는다. 정길이
곧 군대에 갈 것이라는 말을 전하고, 만나는 것은 제대 후에나 가능할 것이다,
그 전에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기를 바란다고 하자, 흥자가 체념한 얼굴로
미안하다고 하며, 앞으로는 연락을 안 해도 된다고 한다. 아기나 키우면서 돈이나
벌어, 크게 사업이나 할 것이라며 이제는 되었으니 가라고 한다.
‘빠져 나온 것이 꿈만 같군. 그 누나가, 아기 아빠로서의 애착 때문에 그러는
거 같다. 어서 좋은 남자가 그 곁에 있어 줘야 하는데, 일간신문에 공고를 내볼까?
미모의 미혼모, 애기가 하나 달려 있지만, 처녀와 다름없음, 사랑하는 남자와 단
하룻밤의 사랑이 결실을 했고, 그 후에 남자가 별세, 혼자서 사업에 몰두하고 있는
미모의 여인임. 옆에서 보기가 안타까워서 비밀리에 공고함. 이 여인을 배필로 맞이
하기 원하는 남자들은 접수바람, 후보자 선착순 10명, 면접 후 통보함, 면접 장소는
그 여인의 옆집 과부 댁 안방, 단 총각이 아니면 사절, 30세 미만 만 접수, 흐흐흐
한 번해봐? 으 휴! 어렵다. 나중에 이 일을 누나와 더 상의해야 할 것 같다.
그 누나를 이해 해줄 좋은 남자가 나타나야 하는데, 누나가 애만 낳았다 뿐이지 사실,
처녀나 다름없잖아? 그런데 정말 이상하네? 내가 종마인가? 왜? 임신들이 그렇게
잘되는 거지? 지연누나와, 흥자 누나, 은숙이까지, 세 사람이 다 임신 했잖아?
휴! 내가 벌써 애가 둘이라니.’
실없는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골재현장에 와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앞으로
흥자가 자신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어떻게 되려는지
누가 알겠는가!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별을 통보하기는 했지만, 전에도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으면서, 아이 때문에 만나게 되지 않았는가?
그 아이 선진이로 인해 인연의 끈이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예감에 정길이 한숨을
내쉰다.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자신부터 그 아이 선진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한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정길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든다. 에이! 나중 일은
나중에 하자며, 정길이 심호흡을 하고 발걸음을 떼어 놓는다.
“형은? 수금하러 갔어? 아니 선 결제한 곳만 주기로 했던 거 아닌가? 개인 사업자들?
단가 때문이라는 거야? 가격이 세서? 문제가 될 구석은 없고? 정래야 잘 해야 해.
누구든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하지만, 이것은 모두가 먼지투성이야.
잘 나가다 한 번만 삐끗하면 그대로 종치는 거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비상대책은
세워 놓은 거지? 비밀장부 말고도 또 다른 장부가 있다고?”
“회사에 누가 안 가도록 수를 미리 써 놓고 하는 거 몰라? 같이 교육 받았잖아?
만약에 내가 걸렸다 하면, 술값으로 썼다하고서 나는 빠지고, 다른 사람이 다시 하는
거야. 나는 유치장에 있다 회사가 탄원서를 내면 바로 나올 거야.
나와서 다른 현장에서 일하면 되고.”
“정길이 왔냐? 자! 금액 맞춰봐라. 다 받았고 또 선불로 120 차 받았다. 이거, 마대
자루에 담아 차에 실어 놔라. 이 돈 어떻게 하냐고? 우리 회사하고 전혀 관계없이
보관하는 방법이 있다. 넌 나중에 제대 한 다음에 가르쳐 줄게, 사장님은 합계금액만
확인하셔, 우리를 믿으니까, 우리에게 별도로 주시는 돈도, 안 사람들에게 안 주고,
월급과는 달리 따로 보관하고 있다.”
“무슨 스파이 세계 같은데? 이 계통은 이것이 통용되는 법이라니까 할 수 없지 뭐.”
“골재 운반하는 운전수들 입은? 그 사람들도 생기는 것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
장비 움직이는 사람들도 그렇고, 회사에서 파견한 감독하는 사람들은 보고만 있어?”
“본사 감독관과 정부 측의 감독관은 미리 찔러 주기 때문에, 자기들 사무실에서 나오
지도 않고, 우리 회사 감독들은 직원들을 돌아가면서 시키는 거야. 우리 모두 한 통속
이고, 더구나 대부분 강릉의 한 동향이라서, 서로가 방패가 되어 주기 때문에, 회사
감독이나, 골재 운반 기사들로 인해서나, 장비기사들로 인해 잘못되는 일은 없다.”
입영
벌써 입영 이틀 전날이다. 정길의 친구들 중 제대한 친구들도 있지만, 아직 안 간 친구
들이 더 많다, 그러기에 한 밤을, 친구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느라 술이 떡이 되어
들어와 늦게나마 잠잔다고 했지만, 그 때까지 안자고 기다리던 은숙과 대화를 하다
보니, 뜬 눈으로 새우다시피하여 눈이 벌겋다. 머리도 흔들리고 입에서는 아직까지 술
냄새가 난다, 정옥이 전화가 왔다하여 받으니 일병이다.
“정길아 시간 거의 됐지? 영등포라고 했으니, 네가 출발할 때쯤 시간 전에 가겠다.
정옥이 못 본지도 꽤 오래다, 벌써 삼일이나 못 봤다. 아우! 보고 싶어 미칠 것 같다.
나는 정말 일하기 너무 싫다. 그저 정옥이하고 둘이 여행이나 다니면서, 맛있는 거나
사먹고 애나 서넛 낳아 키우며 살았으면 좋겠어. 애들한테 운동 가르쳐서 같이 하고,
하하하 그러면 환상적일 텐데 말이다. 정길아 너도 그렇지?”
“그래요, 꽤나 오래 못 봤다. 형! 아주 이 길로 미용을 배우시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정옥이와 같이 미용실 하면 되겠네.”
“요런 나쁜 매부 놈을 봤나! 임 마 진작 가르쳐줬으면 내가 정옥이 놓칠까 속 끌이지
않고 살았을 거 아니야.”
“형! 어째 증세가 점점 심상치 않은데, 정신 병원에 전화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말이 아무래도 예전의 형하고 틀려서 말이지, 하하하.”
어머니 정자가 정길의 얼굴을 보고 잔소리를 한다. 잘 먹지도 못하는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아직도 눈이 벌건 것이 보기에 안 좋다. 며느리 보기에도 미안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술에 취해 저러는 것이 영 마뜩치 않은 것이다.
“애기아빠가 돼 가지고 그게 뭐냐? 술은 안 먹는다고 하더니
고주망태가 돼서 들어오고.”
“송별회라고 녀석들이 아예 목을 잡고 들어붓는데 방법이 없었어요.
미안해요, 어머니.”
“나에게 하지 말고, 숙이에게 해라
원 며느리 보기가 부끄러워서, 토하고 주정하고.”
“이젠 다 끝났으니, 나도 살겠어요. 마지막이라고 나오라는데
안 나갈 수도 없고, 참.”
“이제 이틀 남았으니, 그저 집에서 푹 쉬고,
나오라 해도 아프다고 하고 나가지 말 아.”
“자기 이거나 드세요. 선지가 아빠 하는 거, 어젯밤에 다 봤으니 어쩔 거예요?
쭉 마셔요.우리 아빠 술주정뱅이야, 하고 놀리면 아빠체면 다
날아가는 거지, 호호 이것도 마셔요.”
“아으! 뭐든 이제 그만, 속이 느글거리고, 쓰리고, 울렁거리고,
아주 총천연색이야.”
“군대 가서 술 잡수지 마요. 자기하고 술은 체질이 안 맞아요.
내가 비는 것도 있지만.”
“어쩐지, 숙이가 비니까 그렇게 속에서 안 받는걸 모르고,
난 뱃속이 그런 줄 알았네.”
“목욕탕에 가서 푹 땀을 내고 오세요. 그러면 나아 질 거예요.
어서요, 눕지 말고.”
아이와 같이 있으며, 녀석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는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식구들이 번갈아 들어와 아이를 안아보고, 정길의 상태를 보고는 계속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갖다 주어 하루를 지내고 나니 속이 편해졌다. 마지막 날에는
은숙과 선지와 하루 종일을 같이 보냈다. 새벽같이 깨우는 은숙의 성화에 정길이
일어나니, 식구들은 벌써 준비를 마친 상태다. 진혁의 차와 일병의 차로 나뉘어,
집결장소로 가는 동안에도 정길은 끄덕거리며 졸고 있다.
‘영등포구는 어디야 아! 저기구나 어지간히 많은데, 공비 때문에 겁이 날 텐데,
이렇게 많이 나왔네, 역시 우리나라가 반공교육은 잘 되어 있어. 그런데, 서울
병력이라 아는 녀석도 없을 게고, 혹 어렸을 때, 국민 학교에 다니던 녀석들을
만나면 알아 볼 수 있으려나?’
“저긴가 보네, 어서들 가세요. 어린애 국민 학교
입학하는 것도 아니고, 애아버지 인데.”
선지 애비야! 건강하게 잘 다녀와라.”
“우리 오빠 파이팅! 힘내서 잘해.”
“정길아 잘 다녀와라.”
“임 마! 허리 펴고 배에 힘 줘 좋아, 충성, 잘 갔다 와라.”
“와 줘서 너무들 고마워요, 무사히 다녀올게요.”
“자기 잘 할 수 있지? 선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멋있는 군인이 돼서 휴가와요.
기다릴게.”
“장정 여러분, 지금부터 호명 합니다. 자기 이름을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하고,
깃발 앞으로 가서 순서대로 서기 바랍니다. 홍 영수 전 대희 강 수호 장 필구
이 정길 우 호성 ~~ 대답소리가 작습니다. 내 귀에 전달되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
큰소리로 대답합니다. 알았습니까? 정 윤호~”
“여러분은 지금부터 대한민국 국군 입영자로서, 군에 준한 군법을 적용합니다.
호명이나 묻는 말이나, 대답 시에 소리가 작거나, 늦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니,
알아서 하시기 바랍니다. 알았습니까? 소리가 이러면 안 됩니다. 시범케이스에 걸리지
말고 잘 하세요. 알았습니까? 좋습니다. 지금부터 자기 서류를 받아, 이상이 있거나,
잘못 기재 된 것이 있으면 속히 저쪽 책상 앞으로 가서 대조하도록하고, 이상이 없는
사람은 맨 뒤에 있는 사람이 서류를 걷을 테니, 손에 들고 위로 들어주세요.
알았습니까? 소리 좀 봐라. 다시, 그렇게 밖에 소리가 안 나옵니까? 다시 좋습니다.
뒤에 있는 장정은 서류를 걷어 앞으로 옵니다.”
정길이 제일 먼저 서류를 들고 책상 앞으로 갔다. 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한 것이 누락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행여나 해서 합격증 사본을 떼어
가져 온 것이 다행이었다. 서울 병력이라 학업이 최소가 고등학교 졸업인 것이다.
“작년에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패스 했는데, 누락 됐습니다. 여기 합격증 사본이
있습니다. 병무청에 가서 신체검사 재신청시에, 확인 했을 때는 분명히 기재가 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 주신 이 서류에는 빠져 있습니다. 확인해 주십시오.
예, 감사합니다.”
“기피자들과 탈영병 자수기간이라, 바빠서 오류가 생겼나 보군, 그래서 확인하는 것
이다, 합격증사본 잘 가져왔네.”
‘서울 병력이라 최하가 고졸이고, 거의 대학 다니다가 온 녀석들이 많아서, 그나마
검정고시라도 합격한 것이 정말 다행이다. 괜히 무시당할 필요는 없지. 혹시나 해서
합격증 사본을 가져 온 것이 다행이야. 그런데 아까 중사가 선린 고등학교 졸업이라고
쓰던데, 그래도 되는 건가? 엉터리 서류가 되어 버린 거잖아, 에이, 참! 이거 나중에
걸려도 괜찮은 건지 모르겠네.’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 동작들 봐라. 앞으로 나란히, 바로, 우로
나란히 바로, 지금부터 영등포역으로 출발합니다. 이동시에 자리를 이탈하거나,
한눈을 팔거나 떠드는 사람은, 인솔 사병의 구타를 용납한다는 뜻으로 알고
그대로 시행 하겠습니다.”
“행군 간에 군가 한 다. 군가는 낙동강아 잘 있어라. 왼 발, 왼발, 하나 둘 셋 넷.”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어라 우리는 전진 한다~
“기차 안에서, 사회에서 하던 대로 자기만 편 하려고, 깡패 짓을 한다거나, 양아치
같이 욕설을 해서 공포를 조성하는 자는, 사람 취급을 안 받겠다는 뜻으로 알겠습니다.
우리 장정들의 목적지는 수용 연대입니다. 거기서 이틀에 걸쳐 신체검사를 받고,
훈련소에 입소하게 됩니다. 알았습니까?”
수용연대에 도착하니 눈치가 있거나, 이곳에 대해 사전에 교육을 받은바 있는 치들이
패거리를 모아 자기들을 위한 질서를 만든다. 뭐든지 자기들이 먼저다. 누구든지
자기 힘을 믿고 불응하면, 그들의 은근한 린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똘똘해
보이는 치 하나가 정길에게 다가와서 수작을 건다. 한 마디로 작당을 하자는 거다.
수인사가 끝나자, 녀석이 자기가 얻은 정보를 정길에게 말 하면서 대장을 맡으라고
한다. 겉으로 봐서도 당차게 생긴 정길을 제대로 알아보고, 한편으로 삼아 자신들도
유리하도록 패거리를 만들려고 하는 거다. 정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박 성진? 그런데? 자기가보니 내가 두목감이라고? 내가? 자기도 혼자 왔으니 내게
기대서 뭔가 얻으려고? 뭘 얻으려고? 나이는 비슷한 거 같은데 말이지, 후후후 좋아
그런데 이 녀석 꽤나 사근거리는 놈이군.’
“병력이 평소보다 20%가 더 입소하여 귀가조치도 많고, 신체검사도 늦어져서 하루나
이틀 더 걸린다고 하는데, 빨리 팔리는 애들하고 나중에 팔리는 게 군번차이가 나겠다.
동기에게 말 높여야하는 거지. 정길아 우리도 패거리를 만들자. 몰려다녀야 빨리
받을 수 있어. 저놈들도 우리보다 한 두 시간 늦게 입소했는데, 우리보다 진도가
빠르지? 그게 다 패로 몰려다니면서 새치기하고, 조교들에게 사바사바해서 그런 거야.
내가 나서서 모을 테니까, 대장은 네가 해야 해. 너무 많아도 움직이는 게 늦을 거야.
적당한 선으로 한 열 명 정도 모으면 충분하겠지?”
“좋아, 영등포에서 온 병력으로 우리 내무반에 있는 애들 중에서 골라봐라. 그래도
어느 정도 힘 쓸 만한 애들로 추려봐.”
“잘 알았지? 우리는 한 고향이나, 동창이나, 동네친구들이라고 하란 말! 그래야
다른 애들한테 꿀리지 않아. 잘 하면 같은 훈련소 내무반까지도 가능해. 자대에
팔리기까지는 패가 있어야 불이익을 안 당한다. 우리 형이 논산 훈련소 조교다.
사격담당이지, 그래서 나보고 작당해 몰려다니면 여기서 뿐 아니라, 훈련소에서
억울한 도둑도 안 맞는다고 가르쳐 줬다.”
“도둑? 뭐 돈이야, 팬티에 넣고 있어서 잃어버릴 염려 없고, 다른 거 뭐가 있는데?”
“훈련소의 내무반에서 생활하며, 지급받는 관물이나, 소총 부속품을 도둑맞아서
변상하는 애들이 많다 하더라. 또 식사 할 때라든가, 훈련 받는 중에도, 내무반
분위기 이끄는데도 필요하지. 그러니까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저녁에 내무반장을
뽑을 때, 정길이를 밀어서 내무반장으로 세우자. 그리고 모두들 다른 일을 볼 때도,
혼자 있는 시간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이고 같이 있어야 한다.”
“나는 무조건 좋다. 그런 말을 선배들에게 들었었거든, 잘하면 자대에까지 함께
갈 수 있다고 하더라, 줄 설 때, 눈치를 봐서 잘 서면 적어도 후반기 교육까지는
같이 있을 수 있다.”
“좋다. 만약을 생각해서 몇 명을 더 섭외해 봐라. 여기서 말고 내무반으로 각 자가
갈릴 때 헤어질 애들도 생길지 모르니까 말이야.”
조직한 열 두 명의 파 워로 인해, 그날 저녁에 정길이 내무반장이 됐다. 몰려다니는
덕에 신체검사와 적성검사를 빨리 받을 수 있었고, 며칠간이지만, 내무반생활에서
점호와 식사 등 여러 가지에 혜택이 많았다. 다른 조직도 있었으나, 정길의 조직에
감히 반기를 드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직 중에서 한 명만 빼고는,
전체가 현역 입영으로 판정을 받았다.
“서 종열만 귀가하고 나머지는 다 끝났다. 저녁에 인원 파악하고, 아침에 일찍
입소한다니까 행군하려고 줄설 때, 함께 몰려야 해. 만약 갈리는 경우에는 우리
줄에 있는 다른 놈하고 상의해서, 그 놈하고 자리를 바꾸고, 눈치 채지 않게 묻어
들어오도록 해라. 그래야 한 내무반으로 같이 들어갈 수 있어. 후반기 교육까지는
이 방법이 통한다고 하니까 잘 해보자.”
‘이 녀석 비서 노릇하려고 타고 난 놈이야. 그래, 내가 못하는 것을 이 녀석이 하네,
후후후 덕분에 똑똑한 이 놈 덕 많이 보네, 좋은 게 좋은 거지.’
“여기서부터 앉아 번호, 거기까지 너희는 12 내무반이다. 나머지 남은 사람은 장소를
이동한다. 각 내무반은 지금 즉시 그 자리에서 내무반장을 뽑아라. 내무반장은 여기에
있는 양식에 자기와 내무반원들의 이름과 군번을 재빨리 적어서 즉시 중대 사무실로
가지고 온다. 실시.”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길의 패거리들이 손을 들고 합창하듯이 소리를 질러 정길을
내무반장으로 민다. 다른 패들은 소수라, 몇 번 다른 사람을 천거했지만, 큰 소리로
이 정길을 연호하는 숫자에 밀려 결국 정길이가 내무반장이 됐다.
“44 명 중, 우리가 열 명이고, 정길이가 반장이니, 이 내무반은 우리 거다. 우리가
정길이의 말에 절대 복종해야만 우리들 권위도 서고 다른 애들에게 권위도 서니까
잘들 하자. 내무반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들이 확 잡아 버리자.”
20여일이 지나는 동안 정길의 리 더로서의 능력이 나타난다, 타 소대에 비해 분위기가
좋다, 훈련이 끝나고 잠시 쉬는데, 내무반 선임하사의 부름에 달려가 보니, 예상과
같이 훈련생들에게 뜯어낼 삥땅에 관한 말이다. 정길은 혀를 찼다. 또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다. 알고 당해야 하는 억울한 장비 도적질을 당해야 하는 거다. 들어주어야
한다, 20일도 안되어서 벌써 두 번째다, 그러나 소대원 모두 편하게 넘어가려면, 선임
하사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좋다. 작은 분란이라도 일어나면 서로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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