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42, 1-7 / 시편 27,1. 2. 3. 13-14 / 요한 12,1-11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크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요한12,3)
오늘 전례 말씀에 나오는 베타니아에서의 도유는 복음서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서로 다른 목격 증인의 증언 때문일 뿐 아니라, 단순히 되풀이해 이야기할 수만은 없을 만큼 그 사건이 영적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어떤 여인이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후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26,13)
따라서 이 친밀한 순간의 힘은 그 감미로운 향기와 더불어 온 역사에 스며듭니다.
베타니아에서의 도유는 구원 역사에 있어 다른 여러 중요한 도유 사건의 맥락과는 대비됩니다.
성경 전체에 걸쳐 사제, 예언자, 임금들이 도유됩니다.
모세가 자기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도유합니다.(탈출 28,41 참조)
베들레헴에서 예언자 사무엘은 다윗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도유합니다.(1사무 16,13 참조)
하느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예언자이자 그의 후계자로 도유하라고 명령하십니다.(1열왕 19,16 참조)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예언자로서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받은이라는 표시로 그분께 향유를 부어드립니다.
그런데 이 도유는 다릅니다.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예언자에 의해 기름부음받으실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미 성령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마리아의 기름부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 그름부음은 당신이 사람들이 고대하던, 주님에 의해 기름부음받은 메시아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주님이시라는 표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죽어서 무덤에 묻히고 존경을 받는 보통의 인간 사제, 예언자, 임금을 도유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리아는 모든 예언자 중 예언자, 모든 왕 중의 왕, 모든 사제 중 가장 높은 사제를 도유한 것입니다.
마리아의 도유 행위는 예수님의 신성을 증명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예시합니다.
유다 이스카리옷이 값비싼 향유를 허투루 낭비한다고 마리아를 비난했을 때(요한 12,5), 예수님은 그 도유가 당신의 장례를 위한 것이라고 이르시면서 마리아를 변호하십니다.
그러나 신성을 지니신 예수님은 이미 당신의 시신은 도유되지 않을 것이을 아셨고, 이 도유가 당신이 부패 되실 수 없다는 상징으로 보이게 될 것임을 아셨습니다.
이전의 다른 모든 사제와 예언자, 임금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아드님께서는 죽어서가 아니라 살아계신 동안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들이 그분의 시신에 도유하러 무덤에 가기 전에 새 생명으로 부활하실 것입니다.
따라서 마리아는 죽은 몸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에, 죽음의 희생물이 되심으로써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에 도유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를 통해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을 통해, 육체적 죽음 곧 우리 육신과 영혼의 분리는 단지 일시적인 것이 됩니다.
날마다 우리는 삶의 마지막 순간, 우리가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는 그 순간을 상기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예수님이 그 마지막 순간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미로운 도유를 받아 죽음이 우리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성찰과 중재기도
1단계: 하느님의 현존을 인식하십시오.
눈을 감고, 셀를 통해 내 안에 머무시는 하느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나 자신을, 모든것을 아시는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바라보고 계시는 어린아이로 상상하십시오.
사랑이신 하느님의 눈길을 통해 진실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기중심적인 상태에서 벗어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삶에 대한 하느님의 관점만이 중요하기에, 이 단계는 성찰을 시작하는 아주 중요한 단계입니다.
2단계: 성령의 인도를 청하십시오.
하느님 은총의 빛 안에서 하루를 돌아볼 수 있도록, 성령께 도움을 청하는 짧은 기도를 바칩니다.
3단계: 하루를 되돌아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오늘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리고 "나는 하느님과 내 이웃을 어떻게 사랑했는가?"화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하루의 어떤 두드러진 순간이 떠오르면 거기에 잠시 머무십시오.
그러나 이 단게는 고해성사를 준비할 때의 양심 성찰 같은 것은 아닙니다.
부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 모두에 주목하며
그것들을 감사하는 마음과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내어드리십시오.
4단계: 당신의 죽음을 기억하십시오.
삶의 마지막 순간의 관점에서 하루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임종 장면을 마음속에 그려보고 영원한 삶과 관련하여 이전 단계에서 떠올랐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십시오.
이 단계에서는, 그날 하늘나라를 위해 나에게 준비된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십시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의 순간을 더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청하십시오.
"내가 내일 죽는다면,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5단계: 내일을 예비하십시오.
다음 날을 미리 바라보고 예비하는 것으로 마칩니다.
이 단계에서는, 또 다른 하루의 생명을 선물로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선물은 하느님 뜻에 따른 것입니다.
다음 날 일어날 일들, 특히 특별한 은총이 필요한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내일 맞닥뜨릴 시련이나 기쁨의 순간을 살아가면서 하느님의 은총을 믿고 그 은총 안에서 행동하는 자신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 단계를 충실히 하면, 삶 안에서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본당 신부, 주교, 교황, 그리고 내가 사는 지역의 평신도 지도자들과 수도자들을 생각하십시오.
교회의 모든 지도자가 주님의 성령 안에서 더욱 심오한 도유를 경험하도록 성모송을 바치십시오.
진실로 믿음이 깊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든,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에 귀한 향유를 부어드리십시오.
예수님의 발에 기름을 부으십시오. 선한 삶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십시오.
그대의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드리십시오.
[머리카락이 육신에는 여분의 것처럼 보이듯이] 그대가 필요 이상으로 가진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그대는 주님의 발을 닦아드린 것입니다. 그대의 풍요로움 중에서 나누어 줄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이 그대에게는 여분의 것이지만 주님의 발에는 필요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불의하게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 해를 가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주님의 이름이 그들 때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는다면, 착한 사람들로 인해 주님의 이름은 영광을 받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2,15)라고 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아가에도 "당신의 이름은 부어놓은 향유랍니다."(아가1,3)라고 나옵니다.
그 감미로운 향기가 어떤 이들에게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삶의 풍미이며, 어떤 이들에게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죽음의 냄새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는 여전히 감미로운 향기입니다. 이 감미로운 향기 안에서 생명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렇지만 그 감미로운 향기를 죽음의 사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있겠습니까?
- 성 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 강애]
묵상과 기도 기록하기
* 내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마리아라고 상상하고 그 장면에 머물면서, 예수님이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들어보십시오.
기도 중에 체험한 것을 적어보십시오.
* 내 삶에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드릴 만한 것들의 목록을 적어보십시오.
우주의 왕이신 분께 바치는 찬미의 감미로운 향기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