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이 있다. 내가 경영하는 점포에 자주 이들 여호와의 증인들이 찾아온다.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이 먼저 이곳에 정착 했는지 내가 먼저 이곳에 정착했는지 알아보지 않았지만 내가 이곳에 처음 정착한 이래에 20년 이상을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 같다. 그들은 대부분의 천주교인들이 성서를 잘 읽지 않아서 성서의 구절을 잘 모르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내가 천주교인이란 것을 알고 성서의 성구를 여기 저기에서 익숙하게 찾아서 내게 들이대며 들어보라고 접근한다. 그리고 천주교는 이단이고 여호와의 증인이 정통 기독교회라 하며 내게 천주교를 다니지 말고 여호와 증인의 왕국회관으로 나오라고 한다. 그런 때는 내가 고린도전서 13장을 인용하여 바울 사도께서는 "네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통달하고 또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가 아무 것도 아니오"라 하셨으니 당신들은 성서와 성구에 집착하여 말싸움이나 하러 다니지 말고 성서가 말하는 사랑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좀더 연구하라 했다. 그러자 저들은 즉시 내게 반문하기를 "여호와의 증인들이 사랑이 없다고요? 잘못 알고 계시네요.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선기관도 많이 만들고 자선사업도 얼마나 많이 하는데요"하였다. 그래서 나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자선사업 기관을 많이 만들고 자선사업을 많이 하여도 사도 바울 깨서 "여호와의 증인들이여! 네가 네게 있는 모든 것으로 남을 구제하고 또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네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하셨다고 반박했다. 이 말을 듣고 저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나를 떠났다. 그 후로도 저들은 나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찾아온다.
그런데 매우 묘하게도 나는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내가 여호와의 증인에 의해서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었는지 여기에 말해보자. 이것이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도 집요하게 성서해석에 매어 달리면서 열성을 바치는데도 왕국회관이 확장되지 않는 이유가 되고, 천주교인들이 여호와의 증인을 대응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 가 해서이다.
내가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있는 집으로 막 돌아 왔을 때 일이다. 바로 옆집에 기영이 엄마라는 여자가 살았다. 이 여자의 남편은 살아있다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별거 중이었고 혼자서 건강식품의 보따리 장사를 하면서 애들을 3 이나 키우고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을 다니며 살고있었다. 서울 사람들은 이웃에 살면서도 서로 오고가지를 않는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나의 형수와 또 우리 집에 세입자로 살고있는 유리엄마와도 친하여 우리 집을 오고가며 농담도 할 정도로 가깝게 살았다. 그래서 나도 이 여자와 자연히 인사를 주고받으며 살았다. 기영이 엄마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미군 기지촌에서 몸을 파는 매춘부를 사귀다가 제대 할 때에 포주를 따돌리고 몰래 도망가자고 꼬여 이 여자를 집으로 끌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집안사람들의 반대에 부닥쳐 이 여자를 돌려보낸 한심한 일을 잘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전기 수도 등이 고장이 나거나 형광등을 교체하는 일이나 전구 써키트 등에 고장이 나거나 두꺼비집의 휴즈를 교체하는 일 등 남자의 손이 필요한 때에는 자연히 공업고등하교 출신인 내가 불려갔고 나는 또 이를 마다하지 않고 해결해 주었다. 나는 그 집에 밥상이 벌어졌을 때에는 이 여자와 아이들과 함께 한 상에 들러 앉아 식사도 같이 했다. 어떤 때는 함께 극장구경도 다닐 정도로 친했다.
그래서 한 청년과 9살이나 연상인 한 독신녀 사이가 동네 사람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였고. 이것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가 드디어 이웃의 친한 여자들간에 말싸움이 됐다. 이 여자와 내가 함께 궁지에 몰렸을 때 내가 희생하더라도 이 여자를 구하는 기사도를 발휘하는 것이 남자의 도리였다. 그런데 그 궁지에서 나만 먼저 빠져 나오기 위해서 야비하게 여자를 궁지에 떠밀어 넣고 나 혼자서만 빠져 나오려고 변명에 급급했다. 싸움이 끝난 후에 내가 한 일을 생각해보니 비열하고 비신자적인 행동이었다.
그후 어느 초 여름날 저녁식사를 한 후에 땅거미가 내릴 때 즘 돼서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이 여자와 마주쳤다. 나는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떨 결에 이 여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반사적으로 한 셈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나를 보는 순간 지난날 내가 한 비열한 행위가 생각나서 당황하거나 성을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내게 까듯이 존대하여"네. 안녕하세요"라고 응답을 했다. 나는 이 여자의 뜻 밖에 태도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이런 감동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와 혼자 방에서 누워 천장을 보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왠지 눈에는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여자는 9 살이나 연하인 내게 깍듯이 존대를 하였고, 이 여자의 음성에는 노한 기색이라곤 전혀 없이 아주 부드러운 솜 같이 따스하고 포근한 음성으로 내가 이 여자를 궁지로 몰아 넣은 일을 전혀 잊어버리고 있었고, 그래 너 잘났다 하는 기색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였다. 내 눈에는 눈물이 몇 시간 식 계속되어 끝일 줄 몰랐다. 그리고 내가 받은 감동의 원천(源泉)은 내가 오랫동안 방황하며 찾아다니던 여자의 육체(肉體)의 관능(官能)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정신(精神)이 원천이고 사람의 영혼(靈魂)이 원천이란 것을 깨닫게됐다. 그때부터 이사를 올 때 묻어온 성경- 지난날 성서를 읽으려면 첫 장을 넘길 때 시작부터 아부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해서 도무지 읽기가 싫던 성서를 찾아 손에 들고 읽으며 밑줄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성서 가운데 "하늘"이란 어휘 "하늘에" "하느님" 이런 어휘들이 내게 특별히 다가왔다. 그리고 때마침 이웃에 사는 사촌형수가 교회에 가자는 권고를 하기에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부 2년 2 학기부터 학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군대에 가버렸는데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 저 완전히 포기한 학업을 다시 계속할 생각이 나서 등록금을 마련하여 복학을 했다.
나는 주간에는 학교를 다니고 주말에는 교회의 성가대로 주일하교 선생님으로 봉사했다. 그리고 교회에서 하는 모든 집회와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신앙생활은 주말엔 주일하교 교사로 성가대원으로 더욱 바뿐 데도 육체적으로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오히려 활기차고 기쁨에 찬 생활을 했다. 예배가 끝난 후엔 성가대에서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어두운 길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성단원을 집에까지 데려다 주는 때가 자주 있다. 그런 때 내가 여성들에게 사랑이나 결혼 등에는 관한 이야기는 한번도 하지 않고 신앙에 관한 이야기만 하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떤 의미로는 나는 그 여성들에겐 밥맛없는 남자였다. 그때 나는 천주교 신부로서의 요구되는 독신생활이 준비된 상태였다. 자동차도 빈번히 통행하지 않는 거리와 건널목에서 신호등을 지켰고 복잡하지 않은 길에서도 시키는 사람도 감독하는 사람도 없는데 좌측 통행을 하고 다녔다. 하교를 다니는데 등록금을 겨우 내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끼니를 자주 거르고 몸에 맞지도 않은 군복을 염색해서 입고 등교하는데도 마음엔 아무 거침이 없었고 큰 평화가 있었다. 하느님과 그리스도께 내가 묶이면 묶일수록 세상으로부터 더욱 자유로워지는 이상한 신앙체험을 하였다. 어느 날 교우의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망우리 공동묘지에 모시고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죽음과 인생의 무상을 생각해야 할 상황인데도 눈 아래 펼쳐진 온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하느님의 큰 솜씨를 느꼈고 마음엔 아주 큰 평온함을 느꼈다. 그 평온함은 아주 특수한 것이었다. 예수 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 하신 그 평화가 이것이 아닐 가 생각했다. 불교 스님들이 말하는 해탈(解脫)의 경지가 이와 같은 것이 아닐 가도 생각했다.
이런 이상한 체험 뒤에 도서관에서 신앙과 교양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그때 읽은 정경옥 이란 신학대학 교수가 쓴 "신비의비경(神秘의 秘景)"란 책과 "각 시대의 대 쟁투"란 책과 "성숙한상태(matured state)"등등을 읽었다. 특히 "성숙한상태"라는 책에서 정신의학자는 이와 같은 상태를 인간의 가장 성숙한 정신상태로 진단하고 있었다. 나는 날로 신앙생활에 깊이 빠졌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다시 신학대학을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신학대학교에 두 곳에 가서 입학원서를 사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그러나 생각을 하니 독립적으로 생활도 꾸리면서 학비를 조달할 길이 도저히 없다고 생각되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목사나 신부가 되어야 할 내가 평신도가 되었다.
예수 님께서는 "바람이 임의로 불매 그 바람이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하는 것과 같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도 이와 같다" 말씀 하셨다. 나도 내 인생 길의 언제부터 성령께서 오셨는지 내게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나는 잘 설명 할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의 왕국회관에 다니는 한 여자가 "네 안녕하세요"라고 한 평범한 ’말(word)"이 action을 일으켜 내 인생을 뒤집어엎은 그 시절부터 성령 님께서 내게 오셨다고 나는 믿고있다.
"네 안녕하세요"란 인사말은 하루에도 누구나 수 없이 들고 사는 너무도 흔한 말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인사말이 한 방탕한 청년의 인생을 반전시켜 버렸으니 "말"에 성령 님께서 action을 일으키도록 한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도 나는 성서를 읽는 중에 감동을 받을 때나 신부님의 강론에 감동을 받을 때, 성가를 부르다 감동할 때, 신자들의 진솔한 신앙고백을 들다가 감동을 받을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성령이 오신 것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