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옛 사람의 글을 읽을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그것을 지금의 잣대로 읽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을 기준으로 지금에 맞는것만이 옳은것이고 그렇지 않은것은 틀리다는 전제를 가지고 읽는 것이기에 옛 사람의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하게 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가 철인왕을 주장한다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학』에서 노예제를 옹호했다고 반인륜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우스운 지적이다. 그것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조금도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그들 사회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책을 썼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의 책을 읽을때는 그들이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결책을 모색하는지를 읽어야지 지금에 맞고 그렇지 않고를 읽는 것은 옛사람의 글을 읽는 올바른 태도가 아닌 것이다.
2. 문제는 그렇게 읽기가 쉬운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가 다르면 생각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18세기 프랑스 사고 방식을 연구한 책이다. 이 책은 "마더 구스 이야기"에서 시작하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는 동화의 원형들이다. 그 속엔 「빨간 모자 소녀」이야기도 있고 「장화 신은 고양이」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 형태가 오늘과는 사뭇 다르다. 잔인하기 이를데 없는 것이다. 이를 아이들에게 자기전에 들려준다는 것은 상상하는것도 끔찍하다. 그런데 정신분석가인 에리히 프롬이 그의 방식으로 「빨간 모자 소녀」이야기를 분석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분석이었다. 왜냐하면 프롬이 분석한 이야기는 오늘날 전해 오는 이야기였지 18세기 당시의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롬에게 18세기 이야기가 주어졌다면 제대로 분석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부정적이다. 당시의 이야기 체계를 보면 오늘의 체계와 상당히 다른데, 그것은 상징체계가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다르다는 것은 생활 방식이 다른 것이고 생활 방식이 다르면 사고 방식도 다르다.
3. 다시 이야기를 처음으로 돌려서 옛사람의 글을 읽을때 오늘을 기준으로 맞고 틀리고를 따져서는 안된다는데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 글에서 내가 추천하려는 책은 경제 사상사서이다. 그런데 경제 사상사서는 시중에 참 많다. 그중에 많이 팔리는 책중 하나는 토드 부크홀츠가 쓴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이다. 이 책에 대한 홍기빈의 평을 잠깐 보자.
이 책은 오늘날 쓰이는 '경제 원론'이라는 과학적 명제의 묶음이 이 사상가들의 손을 거치며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초점을 두고 씌어졌다. 즉 애덤 스미스에서 케인스에 이르는 거장들의 경제사상을 그 자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경제 원론에 채택된 아이디어들만 다루고 나머지는 난센스라고 간단히 무시해버리는 식이다. 이 책이 하버드 대학에서 경제사상사를 담당하는 교수의 저작이며 무슨 상까지 받았다는 사실은 현대 미국 경제학의 지적인 위기를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과연 저자는 대중이 "심오한 경제학을 쉽게 이해하도록" '오프라 윈프리 쇼'의 나라의 국민답게 경제사상가들의 사생활과 가십을 짜증이 날 정도로 많이 다루고 있다. 결국 이 책의 적합한 제목은 '가십으로 엮은 경제원론'정도가 될 것이다. -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中
홍기빈의 평에 동의하지만 한가지 동의하지 않는것이 있다면 난 짜증이 나진 않았다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내가 가장 여러번 읽은 경제 사상사서는 위의 책인데, 읽기에 재미 있고 대학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는데 도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것이 위의 책을 옹호하는 이유가 될수는 없다. 가십과 함께 쉽게 읽고 싶다면 차라리 유시민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읽어보라고 하겠는데 그것은 유시민의 경우 경제학자들이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고민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옛사람의 글을 원전으로 읽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같은 경우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있는 책이 두종인데 두종 모두 (상),(하)로 나와있는데 1,3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다. 물리적으로도 적지 않은 양을 읽는것도 쉽지 않지만 300년 전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쉽지 않다.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반인이 읽기는 무리다. 그렇기에 해설서가 필요하고 사상사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기에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원전을 직접 읽지 않았지만 다른 것을 통해 들어서 알게된 것들의 경우 오해는 흔히 발생하게 된다.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있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다음 영상을 보라.
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아담 스미스는 그가 가장 경계 했던 신흥 자본가 계급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다. 이것은 영향력 있는 사상가를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따라서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5. 그런점에서 지금 소개할 로버트 L. 하일브로너의『세속의 철학자들』은 참 좋은 책이다. 초판이 1953년에 나왔는데 50년이 넘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 책을 찾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책이 좋기 때문이다. 하일브로너는 이 책을 계속 개정하여 세상에 내놨는데 지금 나와있는것은 1998년 판이다. 그는 2005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책은 위대한 경제사상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아이디어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즉, 경제 사상가들이 마주했던 현실과 그들이 고민했던바를 정확히 짚어내고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토드 부크홀츠의 "경제원론"을 기준으로 취사선택하는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와 분명 다른 점이다. 특히 하일브로너의『세속의 철학자들』"chapter2 경제혁명 : 새로운 비전의 탄생"은 경제사상사를 공부하기 전에 반드시 읽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가지 더, 우리 카페에서도 베블런이 화제가 된적이 있는데, 하일브로너의 책은 베블런에 관한 설명 역시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하일브로너 그 자신도 베블런에게 심대한 영향을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 소개된 베블런의 책들을 보면 정작 그의 주저들은 나오지 않은채 『유한계급론』만 나왔을 뿐이라고 한다. 『유한계급론』이 그의 중요 저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베블런의 생각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점에서 하일브로너의 『세속의 철학자들』은 베블런을 이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