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에 타지마할 호텔 로비에서 아저씨를 만났다. 마린 드라이브에서 인도 남자와 단 둘이 앉아있던 나를 염려하여 차에 태웠던 한국인 아저씨.
뭄바이에 최고급 나이트 클럽이 어디냐는 내 물음에 아저씨는, "아트나"와 타지마할 호텔 안에 있는 "인썸니아"라고 대답해 주었다.
- 나이트 클럽 가게요?
- 네. 인도의 최상류층 젊은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보고 싶어요.
- 배낭여행하면서 봐왔던 인도를 상상하면 안될거예요. 유럽인들보다 더 잘 노니까요.
- 정말요?
- 그리고 맴버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아무나 못들어가요. 대신 외국인은 누구든 입장 가능하구요.
- 맴버쉽 그런것도 있어요?
- 네. 그리고 입장료 있어요.
- 얼만데요?
- 두 사람에 1000루삐.
- 1000루삐요? 세상에...
- 인도의 나이트 클럽은 밤 11시 반이 넘어야 피크 타임이예요. 그 전에 가면 썰렁해요.
- 그럼 너무 늦는데. 어쩌죠. 전 너무 가보고 싶은데.
- 같이 가줄게요.
- 와, 고맙습니다.
아저씨와 나는 밤 10시에 타지마할 호텔 로비에서 만나, 우선 타지마할 호텔 안에 있는 "인썸니아" 부터 가보았다. 입구 앞에는 데스크가 있고, 양복을 빼입은 인도인이 지키고 서서 우리를 맞이했다. 그는 인썸니아는 9시 반에 오픈을 했지만, 지금은 손님이 한 명도 없고, 밤 11시가 넘어야 분위기가 무르익는다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아저씨와 나는 "아트나"에도 가보기로 하고 택시를 타고 자리를 옮겼다.
아트나는 압구정의 칵테일바를 연상케 하는 실내 인테리어와 어둑어둑한 조명으로 정녕 이곳이 인도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하는 곳이었다. 웨이터들이 양복을 빼입은 인도인들이 아니라면, 한국이라고 해도 믿을 것만 같았다. 실내 인테리어에서는 전혀 인도적인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다. 아트나의 입장료는 두 사람에 1000루삐였다. 인도의 나이트 클럽은 보통 커플끼리 오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1000루삐의 입장료를 내면 카드를 하나 주는데, 그 카드를 이용해 술을 마실 수 있었다. 수입 맥주나 칵테일값이 200~300루삐 이상이었으므로, 맥주 네 병만 마셔도 돈은 초과되었다. 처음 1000루삐 만큼의 술은 주문할 때 카드에서 공제시키는 식이었고, 1000루삐가 초과되면 그때부터는 현금으로 계산을 했다.
10시 반쯤 되는 시간이라 아직 손님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11시가 넘어서면서부터 인도의 잘산다는 젊은이들이 아트나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힌디를 쓰지 말아요. 여기 웨이터들이 우습게 알아요. 영어만 쓰도록 해요. 라고 아저씨가 귀뜸해 주었다.
아트나에 오는 젊은 인도 여자들은 내가 인도의 거리에서 단 한 번도 마주쳐본 적이 없는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은 내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처럼 피부가 까맣지도 않았고, 화려하고 매우 잘 차려입고 세련되었다. 한국의 강남에 있는 나이트 클럽에서 보던 한국 여자애들과는 질적으로 틀려 보였다. 그녀들은 귀티가 흐르고, 정말로 세련되었으며, 스스럼없이 담배를 피우고, 컬을 넣은 머리를 하고 비싼 안경테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들에게서는 짙은 향수 냄새가 났다.
내가 거리에서 보았던 인도 여인들은 긴 머리를 기름을 발라 땋았었고, 사리를 입었었다. 그리고 팔에는 수많은 뱅글을 했었다. 그러나 아트나에서 본 인도 여인들은 인도인 같지 않았다. 나는 딴 세상에 온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거리에서 수없이 들었던 위치 껀뜨리? 마담. 이라는 질문들과 호기심에 차서 이방인인 나를 바라보던 눈빛들. 그러나 아트나엔 그런 눈빛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저들은 철저히 나를 무시했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한쪽에는 인도인 커플이 너무 다정한 모습으로 서로를 안고 있었다. 인도에서 저런 풍경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너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저렇게 다정해 보여도 저들은 결혼할 때는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해요." 라고 아저씨가 말해 주었다.
아저씨는 놀랐죠? 인도가 아닌 것 같죠? 라고 물으며 웃어보였다. 나는 정말 어안이 벙벙했다. 그렇게 그들을 지켜보다가, 무대로 나가 춤을 추기로 마음 먹었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홍대앞 바에 가서 춤추고 노는걸 참 좋아했으므로, 이곳에서도 신나게 긴 생머리를 흔들며 춤을 추었다.
아트나의 음악은 인도음악이 20퍼센트 정도였고, 나머지는 모두 최신 유행하는 팝송이었다. 나는 땀이 비질비질 흐를 정도로 열심히 춤을 추었고,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었다. 아저씨는 춤은 싫다고 하시며, 묵묵히 앉아 맥주만 드셨다.
한 인도 남자가 와서 같이 춤을 추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거절했다. 조금 있자 또 다른 인도 남자가 와서 춤을 같이 추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또 거절했다. 세 번째 다른 인도 남자가 접근해 왔을 때는 그냥 그러라고 말했다. 아저씨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음 날은 아저씨와 도비 가트에 갔다. 도비 가트는 대형 빨래터를 말한다. "도비" 라는 별도의 빨래만 전담하는 카스트를 두었던 것에서 유래한 도비 가트. 손으로 비벼서 빨래를 하는게 아니라, 돌 위에 빨래를 힘껏 내리쳐서 빨래를 하는 식이었다. 어떤 사람은 계속 빨래를 내리쳤고, 어떤 사람은 계속 빨래를 헹구어냈다.
철교 위에서 그들의 빨래하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으니, 몇몇 여자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싸구려 뱅글을 내밀며 마담, 칩 프라이스. 라고 말했다. 또 어떤 여자는 코를 질질 흘리는 어린 아이를 안고 와서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녀의 시선을 외면하자, 나를 툭툭 치면서 계속 구걸을 했다. 그들은 불가촉천민 이리라. 접촉하는 것 조차 불결하게 생각되어지는 존재들. 어찌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부를 수가 있단 말인가. 접촉하는 것 조차 불결한 사람들이라 이름짓다니.
그들이 그렇게 구걸로 연명하면서도 왜그리 아이를 낳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는데, 아저씨가 말해 주었다. 그들에게 아이는 구걸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아이가 있어야 사람들이 연민을 느껴 돈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아이가 없으면 빌려오기도 한다고. 더 불쌍하게 보이도록 자신의 아이를 불구로 만들기도 한다고...
때때로 교차로에서 신호 때문에 차가 정차해 있으면 구걸하는 아이들이 차도로 달려와 자동차 유리에 얼굴을 바싹 붙이곤 한다. 맑아야할 눈망울은 혼탁하거나 아직 무엇인지도 모를 생의 무게에 눌려 꿈따윈 잊은 듯 보인다. 꿈이라는 단어 조차 저 아이들에겐 사치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이 얼굴을 너무 바싹 자동차 유리에 대는 바람에 그들의 코에서 나오는 가뿐 숨이 유리창에 뿌옇게 원을 새겼다가 사그라들곤 했다. 나는 차마 그런 아이들을 마주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입장료가 1000루삐인 나이트 클럽에서 아무렇지 않게 돈을 써대는 부유층 젊은이들과 거리에 몸을 의탁한 사람들. 괴리와 불평등이 난무하는 나라. 그러나 그들은 너무나 당연한듯 그러한 각자의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있다. 아저씨는 인도에 대한 환상과 심볼리즘은 영국인들이 200여년간 인도를 지배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인도인들의 삶은 그런 종교나 심볼리즘을 생각할 겨를도 없을 만큼 치열하다고도 말했다.
툭툭 치면서 구걸하던 아이들에게 짜증낸 그때 생각하면 지금 나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근데 뭄바이엔 인도에서 최고의 물가알아주죠. 덩달아 거리애들도 동전주는 외국인들 삐딱하게 쳐다보죠. 그래도 다음엔 정현씨처럼 진심으로 애정이 담긴 적선하리라 작심했읍니다.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서 무지 감사합니다.
첫댓글 정말로 인도는 상상 이상으로 빈부차가 심하죠. 특히 뭄바이는......
주루룩~~~~~ㅜ.ㅜ
구걸을 위한 수단이라니....불구로 만들기까지... 그 아이들은 미래가 없는거네여? 그렇게 할수 밖에 없는 그들은 어떠한 맘으로 사는건지?
툭툭 치면서 구걸하던 아이들에게 짜증낸 그때 생각하면 지금 나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근데 뭄바이엔 인도에서 최고의 물가알아주죠. 덩달아 거리애들도 동전주는 외국인들 삐딱하게 쳐다보죠. 그래도 다음엔 정현씨처럼 진심으로 애정이 담긴 적선하리라 작심했읍니다.마음을 따뜻하게 해줘서 무지 감사합니다.
대도시에 가면 그런 묘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 듯. 뭄바이는 못 가봤지만, 델리도....그렇더라는....싸이클 릭샤가 못 들어가는 거리...한 집에 가드랑 쿡이랑 드라이버랑 메이드가 몇이 있고....흐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