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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시험을 통과는 지혜로운 건축자 (고린도전서 3장 10-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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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에는 공짜가 없고, 거저 얻어지는 쉬운 일은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정조 임금은 궁궐과 왕릉을 비롯해 나라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식목사업을 펼쳤습니다. 『정조, 나무를 심다』(김은경, 북촌)라는 책을 보면, 정조 임금은 1789년부터 7년간 자신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인 ‘현륭원’에만 무려 천 이백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심었다고 합니다.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이지만, 그가 재위 기간에 전국에 심은 나무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책에서는 정조를 조선 최대의 ‘식목왕’으로 부릅니다. 심은 나무의 종류도 다양해서, 조선 백성들의 평안과 치세와 번영을 기리면서 버드나무를 심었고, 농민들에게 양잠업((養蚕業, Sericulture)을 권장하기 위해 뽕나무를 심었고, 유실수( 有實樹, fruit trees)를 많이 심어 소득이 증대되게 했습니다.
나무 심는데 동원된 인력도 무보수로 징집 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 품삯을 주어서 백성들의 칭찬을 받았고, 나무 벌레 해충들을 잡아오면 그 무게를 달아 적정하게 보상을 해 주기도 했습니다. 정조는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며 선정을 베푼 지혜로운 왕이라 평가 받는 것 같습니다. 아쉽게도 정조가 심은 나무들은 일제강점기와 6.25 남·북 전쟁을 통해 많이 훼손 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곳곳의 조국강토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습니다. 지금 땀 흘려 심는 나무 한 그루가 30~40년 후에 우리 후손들의 휴식장소가 되고, 열매는 좋은 먹거리가 됩니다. 단번에 큰 성과를 거두는 것은 요행이나 다름없는 복권당첨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생활하고 있는 가정, 직장, 교회, 사회 곳곳을 들여다보면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건축물이나, 편의시설, 혹은 각종 제도와 규정아래 살고 있음을 공감합니다. 그만큼 누군가가 앞서서 땀 흘리고 수고한 대가 위에 우리는 편안하게 무임승차해서 달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예배하고 있는 이 예배당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예수님의 수고와 희생이 없었다면 예배당 중앙에 매달린 상징적인 나무 십자가와 제 앞에 놓인 성경, 찬송가등이 이 공간에 놓이는 것이 어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벽돌, 조명, 음향시설, 의자, 성물 등 많은 시설물들은 누군가가 정성으로 드린 예물들이 사용되었을 것이고, 몸으로도 열심히 봉사한 것들이 곳곳에 흔적이 베여 있습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 공간 안에 넘치는 평안함과 사랑의 온기는 누군가의 눈물과 정성어린 기도가 응답되어서 지금까지도 성령이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앞선 믿음의 선배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정말 수고하셨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교회는 반드시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위에 세워지는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았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수십 년간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수많은 교회를 세워 나간 것은 자신의 노력과 헌신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서 행 한 일”이라고 겸손하게 말합니다. 실제로 바울은 교회를 설립하면서 부정한 마음이나 욕심을 전혀 부리지 않았으며, 어떤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목적이었지, 사도의 권위를 내세워서 특혜를 누리거나 높은 자리에 앉지도 않았습니다. 은혜를 감사함으로 갚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영광만을 앞세우고, 은혜를 개인의 영달로 변질시키는 사람은 막판에 가서는 “다 내가 했다”라고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서 버립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죽는 순간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아래 살았던 위대한 영적 거인이었습니다.
바울은, 10절에서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았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23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는 말씀에서 보듯이, 바울이 말한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바울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건축자가 되기는커녕, 세워진 교회들을 허무는데 열심을 내는 박해자요 폭행자의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은혜를 받지 못했다면,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시골 어촌의 고기잡이 어부로 묻혔을 겁니다. 마태도 세리의 직업을 바꾸지 못하고 평생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는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을 겁니다. 은혜가 사람을 새롭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가 감추어진 능력을 발휘하게 만듭니다.
교회 역사상 어떤 일의 전기를 만드는 시초가 되었던 사람, 큰 족적을 남겼던 사람, 그리고 큰 물줄기, 패러다임 쉬프트(Paradigm Shift)를 확 바꾸어 버리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넘치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무장하여 누구보다도 담대하고 강력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해 나가지만, 분명 그 배후에는 예수님이 항상 서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도 자신의 지식이나 수고가 아닌 예수님의 은혜로 인해 교회의 건축자가 되었다고 고린도 교인들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합니다.
바울은 건축자였지만 완성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터만 닦았다고 합니다. 10절에서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라고 말합니다. 터를 닦은 바울은 이제 일선에서 물러날 것이고, 이를 받아 다음 건축자들이 바울이 세운 터 위에 교회를 세워 가야하는데, 어떻게 세울 것인지, ‘각각 조심하라’하라고 권면합니다. ‘각각’ 이라는 말은 남녀를 포함하는 ‘모든 사람(헤카스토스, every man)’를 말합니다. 누구든지 교회를 세워 가는데 참여하는 사람은 정말 진지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세운 교회들이 부실하게 세워져가는 것을 염려 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후임 지도자와 성도들이 교회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대충 대충 세워가는 모습을 하나님이 다 지켜보고 계시고, 그 행위들에 대해 반드시 물어 오실 때가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매우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후임 건축자들, 즉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과 성도들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00교회가 앞으로 할 일이 많습니다. 아름답게 가꾸고, 단장하고, 세워질 것도 많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00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지혜 있는 건축자의 한사람으로서 00교회를 세워 가는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가 그런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워지기를 기대하시고 계십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잘 들으시고 내 자신이 교회를 세워 가는데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지, 하나님이 주시는 건축자로서의 지혜를 마음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건축자들이 교회를 세워나가는데 왜 조심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심해야 되는 이유가 11절에 있습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이 닦아 놓은 터는 건물을 지을 땅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를 닦아 놓은 것입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렇게 말해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생성이 되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끝내고 밀레도라는 곳에서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 고별설교를 할 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은 자기 스스로를 잘 살피십시오. 또 여러분은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이 여러분을 양 떼 가운데서 감독으로 세우셔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로 사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행 20:28, 표준새번역) 설교 중에,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직접 대가를 치르고 교회를 사셨기 때문에, 교회의 주인이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터가 그리스도라는 말이, 바로 값 주고 사신 교회의 소유권이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입니다.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당연히 예수님이죠. 이런 교과서적인 답변이 다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건축자들이 자신들은 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가? 시간이 지나서 교만해진 마음으로 예수님을 점점 뒤로 몰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면서, 내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 된 교회라고 정말 인정한다면 항상 철두철미 하게 자신의 언행심사를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이미 건축자로서 자격미달입니다. 사무엘의 두 아들처럼, 장막 뒤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여서 그렇게 훌륭한 아버지의 이름을 먹칠하는 불행한 일은 벌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항상 제일 먼저 내세우고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건축자들이 할 일입니다. 이것만 제대로 지켜져도 교회는 분쟁과 다툼이 없이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습니다.
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과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는 교회로 세워가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7장 24절에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지혜로운 건축자’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도 지혜롭다고 평가 받는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집을 반석(예수그리스도)위에 세웠다고 합니다. 건축자들이 교회를 세워 가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적용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서 하면 됩니다. 더 나아가서 말씀 자체이신 ‘성경’이 기준이 되면 됩니다. 교회 내에서 이것저것 많은 것을 계획하고, 시도하고, 성과도 내지만, 그런 일들이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경에 준하여 이루어지고 있는지 분명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저거 도입 안 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면 포기해야 합니다. 해 보았자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결과가 나올 겁니다. 교회 건축자들은, 경쟁심리, 체면의식, 성과주의, 이런 기준으로 교회를 건축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야 합니다.
00교회는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 갈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교회의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항상 확인하고 선포할 것이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일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길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지배하는 교회, 건축자들의 욕심이 잉태하는 교회는 불행한 교회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건축자로 말하였지만, 그를 옆에서 돕는 수많은 동역자들, 함께하는 건축자들이 있었습니다. 혼자 교회를 세워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합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터를 세워 갔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로 도와주시고, 몸으로 협력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혜를 모아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모든 성도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나아간다면 우리 00교회가 어디에다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자랑하고 싶은 아름다운 교회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하게 세워져가는 00교회가 되고, 모든 성도가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건축자들은 어떤 재료를 사용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12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이라고 했습니다. 터는 확보가 되어 있는데, 건축 재료로 무엇을 쓸 것인지 고민이 됩니다. 재료를 좋은 것을 쓰면 좋겠지만, 당장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너무 싼 재료만 고집하다보면 싸구려 취급당하기 쉽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보석, 나무, 풀의 재료는 여러 가지 말로 해석을 해 볼 수가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말씀과 연관 시켜 보면, 건축자들이 선택한 재료에 따라서 공력(업적, 정성과 힘)이 결과물로 나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건축자들이 유형으로, 무형으로 이룬 성과물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일일이 확인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시험 점수 들고 선생님 앞에 서는 것보다 더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자들은 어떤 재료를 쓸 것인지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재료라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에게 각각 주어지는 재료 선택의 메시지입니다. 먼저 교회가 선택해야 할 건축 재료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올바른 구원관과 믿음으로 행동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되도록 똑바로 가르치라는 뜻입니다. 교회를 다니기는 하지만 구원받았는지 조차 흔들리는 사람을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구원을 놓치면 다 허사가 됩니다. 개인의 신앙을 수시로 점검해주고 올바르게 세워주는 것은 교회의 가장 큰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교회의 신자가 되겠다고 교회에 발걸음을 하였으면, 그 사람이 확실하고 올바른 구원관을 가지도록 가르치고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될 때까지 여기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만 제대로 고백하고 살아간다면 성도로서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교회가 선택하야 될 건축 재료는, 성도가 구원의 확신을 바탕으로 믿음대로 실천하며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더욱 빛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믿음과 행동이 함께 공존하고 있음을 강조하여 말씀합니다. 영광과 고난, 봉사와 헌신, 연보와 사명, 제자와 증인....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실천하라고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줄 모릅니다. 특정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믿음에 기초한 행동들을 조금씩 해 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고, 칭찬해 주고, 뒤에서 밀어 주는 역할이 교회가 해야 할 중요한 임무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믿음만으로 안주하지 않고, 행동으로 믿음을 증명하며 살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주어야 정말 건강한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선택해야할 건축 재료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구원 받았다는 감격과 기쁨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만들어가는 것, 이 두 가지 재료만을 선택하여 교회를 세워간다면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칭찬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의 성도가 선택해야할 건축 재료를 알아봅니다. 먼저는 죄와 짝하여 사는 삶을 깨끗하게 청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에서 종종 말하기를,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라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당당하고 어찌 보면 교만한 말 같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만큼 철저하게 죄와 불의에 맞서 싸운 사람이었습니다. 과거의 자신이 쌓아 놓은 지식은 ‘배설물에 불과하다’고 했고, 자신이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에 매인자로 살았던 것을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했고, 자신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죄와는 처절하고도 끈질기게 싸우라고 일평생 외치며 돌아다녔습니다. 내가 교회에 들어와 있고, 예수님을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고백한 사람들은 죄와 싸워서 기필코 승리해야 합니다. 더 이상 죄가 나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날마다 전쟁을 벌어야 합니다. 죄에 무감각한 생활, 죄에게 나를 마음껏 내어주는 무책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좋은 재료를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내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죄가 묻어 있으면 결코 건축자로서 재료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성도가 선택해야 될 건축 재료는 ‘십자가’입니다. 사도 바울이 회심 이후에 일관되게 주님 앞에 고백한 말들은 자신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나는 만삭되지 못한 자요 어리석은 자”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다”...많은 고백의 공통점은 철저한 자기 부정과 십자가를 내세웠다는 것입니다. 지혜 있는 건축자로서 최고의 재료는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선택하려면 내가 죽어야 합니다. 내 자아가 죽어야 내 안에서 성령이 마음대로 일하실 수도 있고, 내 자아가 죽어야 나는 온전히 부활할 수 있는 준비된 몸이 됩니다. 내 기가 펄펄 살아있는데 어떻게 사랑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내 몸이 죽지 않는데 어떻게 부활의 소망을 담고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죽어야 사는 역설적인 진리를 예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보여 주셨고, 사도 바울이 그대로 따라하며 가르침을 주었고, 이제는 우리 건축자들이 ‘십자가’의 재료를 선택할 차례입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죄와 싸워서 다 버려 버리고, 십자가만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건축자들의 공력(성과)은 불 앞에서 시험을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그 날에 공력이 밝혀진다고 했는데, 여기서 ‘그 날’은 성경 여러 곳에서 보면 ‘주의 날’ 곧, ‘심판의 날’을 의미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행한 모든 일들, 교회의 건축자로서 어떤 재료를 선택해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지 내 앞에 내놓아 보라고 물어보실 날이 반드시 옵니다. “너희 00교회는 내가 남긴 말과 가르침을 따라 내 터 위에 교회를 아름답게 세웠느냐?” “너희 00교회는 모든 성도들에게 구원의 확신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잘 가르쳤느냐?” 교회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너 00교회에 속한 000은 죄와 싸워 거룩한 생활을 하는 건축 재료를 선택하는데 힘썼느냐?” “너 00교회에 속한 000는, 너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만을 선택하여 나를 따라오라는 삶을 살았느냐? 우리 각자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예외 없이 서게 될 것이고, 주님의 물으심에 답을 해야 할 시간이 반드시 옵니다. 정말 두렵고 떨리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마지막 불 시험에서 각자의 공적은 타 버릴 수도 있고, 남을 수도 있습니다. 14, 15절에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타 버리면 해(손해)를 입게 된다고 합니다. 상이 무엇인지. 해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과연 내가 주님 앞에 섰을 때 불에 타서 남길만한 공적이 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상 받기 위해서 공적을 쌓는 것이 아니지만, 하나도 남김없이 순식간에 다 타버린다면 정말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시선을 도저히 마주보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 연출 될 것입니다. 전적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에서 무엇을 선택했느냐가 결국에는 상을 받고, 해를 얻는 엇갈린 상황으로 종결이 됩니다.
이 마지막 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면, 정말 심각한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15절에서, 이 불 시험은 구원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다만 불 가운데서 얻은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십자가의 은혜로 힘입어 구원을 받는 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불 시험이 구원과 상관없다는 말만 기억해서 여전히 변화 되지 않고 미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바울을 통해 말씀 하신 우리 주님의 뜻은,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 날을 항상 준비하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잔칫날에 기쁘고 즐겁고 당당한 걸음으로 입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 시험의 말씀은 우리가 더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하라는 주님의 기회 주심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교회를 더욱더 아름답게 세워 가는데 내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겠다는 결단과 행동을 보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말씀 두 구절을 읽어 드리면서 맺겠습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0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또 한 구절은 요한복음 8장 51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아멘. 이 말씀 두 구절에 의지하여 여러분들에게 부탁과 권면의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의 몸은 교회에 두기를 힘쓰시고, 우리의 마음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맞추시기를 바랍니다. 심판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지키며 살아가면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기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00교회 모든 성도 분들이 주님 앞에 서는 불 시험의 날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지혜로운 건축자들이 되어서 우리 교회와 우리 각자 자신들의 신앙을 아름답고 굳건한 믿음으로 세워 나가는데 기쁨으로 동참하여, 많은 열매들을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시기는 성도 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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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00교회가 세워지게 하시니 감사 합니다. 이제 우리 모든 성도들이 선포된 말씀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대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시고, 모든 죄와 싸워 승리하면서, 십자가만을 따라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불 시험의 그날에 우리 모두가 큰 상으로 칭찬 받는 00교회 모든 성도가 되도록 힘주시고 능력 주옵소서. 구원으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61016 주일설교. 불 시험을 통과하는 지혜로운 건축자들 (고린도전서 3장 10-15절).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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