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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만이 전쟁의 끝을 본다(Only The Dead Have Seen The End of War)" - 플라톤.
'에어리언시리즈'와 '글래디에이터'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2002년작품 '블랙호크다운'도입부에 나오는 말이다.
얼마전 청해부대 소속 최영함이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납된 우리나라 선박과 선원들의 구출에
성공한 뉴스가 연일 화제를 모으면서 이영화가 떠올랐다. 나는 이 영화를 세번 봤다.
1993년 10월, 델타포스, 레인저등 미국의 최정예부대가 UN 평화유지작전의 일환으로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로 파견됐다.
그들의 임무는 소말리아의 민병대 대장인 모하메드 파라 에이디드의 두 최고 부관을 납치하는 일이다.
동 아프리카 전역에 걸친 기아는 UN에 의해 제공되는 구호 식량을 착취하는 에이디드와 같은
민병대 때문에 30만 명이라는 대량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작전은 그해 10월 3일 오후 3시 42분에 시작해 1시간 가량 소요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작전으로 민병대 간부를 납치하는데는 성공하지만
작전에 투입된 최신 전투 헬리콥터인 '블랙 호크' 슈퍼 61과 슈퍼 64가 차례로 격추돼
임무는 '요인납치'에서 '구출'과 '생존'으로 바뀌면서 영화는 전쟁영화사상 최고의 시가전으로 전개된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이 영화에서 천명의 소말리아인이 죽었고, 19명의 미군병사가 사망했지만 결과는 미군의 패배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민병대의 쉴새없이 날아드는 총알세례와 모가디슈 시민들의 비난과
돌세례를 받으면서 천신만고끝에 시가지를 빠져나와 기지로 돌아가는 미군 최정예 부대의
처량한 모습은 남의 나라 내정에 끼어든 미국을 야유하는것 같았다.
소말리아는 오랜 내전과 기아로 국가기능이 상실된 나라다.
영화속 모가디슈는 멀쩡한 건물이 거의 없을 만큼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황폐하고 삭막하게 묘사된다.
모가디슈 민병대의 무기라야 소총과 로켓포(RPG-7 로켓) 정도가 전부다.
반면 미군은 어떨까.
최신형 전투헬기인 블랙호크는 도시의 하늘을 완전히 장악하고
델타포스와 레인저의 무기와 휴대장비는 모두 최첨단을 달린다.
미군기지내 작전사령부의 대형스크린에서는 인공위성과 블랙호크가 보낸 화면으로 시가전 상황이 실시간으로 보인다.
미군과 모가디슈 민병대는 전쟁수행능력에서 다윗과 골리앗 싸움처럼 게임이 안될것 같다.
미군의 의지만 있으면 막강한 화력으로 소말리아 민병대는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이 그렇듯 첨단장비에 화력만 좋다고 승리하는것은 아니다.
민병대 뒤에는 모가디슈 시민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나이의 어린이들이 미군기지 근처 야산에 숨어서 블랙호크가 뜨기만 하면
곧바로 민병대장에게 무전기로 헬리콥터의 굉음을 둘려준다.
민병대는 무기와 화력의 열세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해전술로 극복한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죽어도 죽어도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민병대에게는
최신형무기도, 첨단전쟁장비도 소용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말리아 국민들의 삶은 곤궁하고 비참하다.
수도인 모가디슈 조차 기본적인 경제행위가 불가능할만큼 척박한 도시다.
도대체 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사는지 궁금할 정도다.
UN이 구호식량을 지원하고 있지만 주민들에게 제대로 배급되는지도 의문이다.
정부가 일부지역만 통치하고 나머지는 군벌들이 장악하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거의 무정부상태인것 같다.
그렇지않다면 '해적질'이 공식적인 사업이 될리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해적이 '최고의 신랑감'이 된것이 소말리아의 경제적 현실을 반영하는것 같다.
하지만 해적질은 리스크가 큰 사업이다.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른다.
우리 해군이 8명의 해적을 사살했듯이 목숨을 내놓고 해야 하는 직업이다.
지난번 청해부대의 해적소탕과 영화 블랙호크다운을 보면서 느낀것은
나라의 수준이 국민들의 '목숨값'을 좌우한다는 점이다.
우리정부가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먼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안까지 해군을 보낸것이나
미군이 모가디슈시내에 추락한 블랙호크 조종사를 구출하기 위해 최정예부대를 급파한것은
자국민의 생명이 그만큼 소중했기 때문이다.
품격있는 국가의 조건은 여러가지지만 위험에 빠진 국민을 위해 어떻게 대처하느냐도 중요한것 같다.
/ 네이버 블로그 <박상준인사이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