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백일장 산문부 대상>
유관순
장진실(목포정명여자고 1)
그날따라 하늘은 맑았다. 시리게도 선명한 구름은 유유자적히 도도하게 흘러갔다. 간만에 학원을 가지 않는 주말이니 느긋하게 쉴 수 있을 것이다. 시내 한복판을 걸었다.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 정장을 반듯하게 차려 입은 남성, 엄마의 손을 잡고 제 손가락을 오물거리며 걸어가는 어린아이, 중․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호호 웃는 아이들, 차갑고 무심한 그 도시 속에서 이상한 문양을 가진 물건을 발견했다. 녹이 슨 묵직한 부메랑 같은 물건이었다. 누가 잃어버린 물건일까, 생각하는 중 나의 몸은 어지러이 빛에 휘감겼다. 그 밝은 빛에 나는 눈을 감았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5분? 10분? 눈을 떴을 때 보이는 광경은 실로 낯설었다. 가끔 사극에서나 볼 수 있던 장터와 낡은 집들, 하얀 저고리에 검은 치마, 누덕누덕 기운 빛 바랜 옷들,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과거로 돌아오다니,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일단 돌아갈 방법을 찾아 보기로 했다.
“저기 꼬마야, 잠시만…….”
꼬마의 몸이 나를 관통했다. 몇 번 더 시도해 보았으나 결과는 같았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단단한 흙이 깔린 거리를 걸었다. 돌부리가 발에 채였다.
“잠깐, 어딜 가는 거지? 허튼 수작 부리지 마라.”
“허튼 수작이라니요? 저희 빨래터에 빨래를 하러 가는 것이어요.”
거대한 쇠 몽둥이를 들고 제복을 반듯하게 입고 눈매가 날카로운 자가 소녀들을 위협한다. 소녀들은 그에 주눅들지 않고 들고 온 빨래 바구니와 다듬이를 보이며 당차게 대답했다. 일본 순사인가, 지금은 일제 강점기일 것이었다. 1910년대의 그 잔혹했던 무단 통치 시절, 상념에 잠겨 있을 무렵 일본 순사는 흠 하고 검문을 마친 듯 팔짱를 꼈다. 작은 소녀들은 종종걸음으로 빨래터에 도착했다. 그 중 또렷하고 강직한 눈빛을 가진 소녀가 치마 폭에서 태극기 여러 장을 꺼내 들고 그녀의 친구들-로 추정되는-에게 나눠 주었다.
“하마터면 큰일날 뻔했어. 그렇지, 관순이 언니?”
“그래, 하지만 난 걸렸더라도 당당했을 거야.”
기백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렇다면 저 소녀가 그 유관순이라는 말인가,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소녀였던, 그 유관순 열사?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소녀들의 목소리가 윙윙, 점차 희미하게 들리며 내가 서 있던 공간이 아지랑이처럼 일렁였다.
“어지럽다. 게다가 광장의 한 가운데에 아깝다 사람이 많았다. 사람들의 가슴께가 이상하게 바스락거렸다. 오늘이 거사를 치루기로 한 날이제? 고럼, 이제는 왜놈들도 물러가겄지. 걸쭉한 아저씨들의 목소리와 아이들에게 오늘은 집 밖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하는 소녀들, 그 중심에는 유관순 열사가 서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삼일절이겠거니 하고 생각한 찰나 광장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리며 만세 소리가 쏟아졌다. 목이 쉬어라 독립가를 부르고 만세를 외치던 장내는 한발의 총성으로 고요해졌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어마어마한 일본 순사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끝없이 총성이 울리고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하얀 저고리를 새빨간 팟물이 적셨다. 거리는 피로 물들어 갔다. 올라오는 구역질을 간신히 삼켜 냈다.
“어머니! 아버지!”
싸늘하게 식은 부모님을 부여잡고 유관순 열사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계시면 안 돼요. 어서 피하세요……. 그러고 계시다간 열사님도 잡혀가실 거란 말이예요… 나의 바람이 무색하게도 소녀의 댕기는 무참히 붙잡혀 어둠속으로 끌려가고 말았다.
“아, 안 돼! 안 돼요… 열사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뻗었다. 아스라이 공간이 흔들렸다. 눈을 감았다 떴다. 고요한 도심으로, 현재로, 나는 돌아와 있었다. 이 도심의 하늘은 그들을 추모하듯 깊고 어두운 눈물을 눌러 담고 있었다. 짙은 먹구름이 막았던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조용히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감사합니다, 열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