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태평천국이란 1850년 7월부터 1864년7월까지 존속한 중국 최대의 농민 <반란>이며 이 14년을 사이에 두고 긴 전사(前史)와 짧은 후사(後史) 를 가진다. 태평 천국의 전사를 홍수전(洪秀田 :1814~1864)의 개인적 불만 상태의 심화와 청조(淸朝) 내부의 모순의 격화 그리고 중화제국에 대한 서구의 임펙트라는 세가지 요소의 상관 관계로 말하는 학자도 있다.
홍수전이 수 차례나 과거 시험에 낙방해 점점 깊은 실의에 빠져들고 있을 때 그는 서구 충격의 산물인 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는 기독교의 전도 책자를 얻어 이에 전통적 유교의 틀을 넘는 이상세계를 발견한다. 상제 여호와, 장형 그리스도, 차형 홍수전이라는 성스러운 신의 체계는, 공자를 받드는 이 민족인 만주족의 왕조인 청나라를 마귀로 규정하고 하나님과 마귀의 치열한 싸움을 개시한다.
이리하여 홍수전의 개인적 불만 상태가 아편 전쟁이후 가산 관료제국가인 청조의 복지정책이 파탄하면서 범사회적인 것으로 승화되고 또 기독교에 의해 그 정통성이 보증되었다. 여기서 여호와를 신으로 받드는 <상제회>가 결성되고 광서성의 자형산 지역에서 세력을 키우게 된다. 1850년 7월에는 광서에 산재하는 상제교 신자를 금전촌에 모아 그 군세는 2만가까이 되고 이듬해인 1851년 1월에는 청조 타도를 내걸고 태평천국 건국을 선언한다.
이후 태평군은 태평한 천국을 중국이라는 지상에 실현하려고 모택동 군대인 홍군의 대장과도 같은 장정을 감행한다. 그들은 지상의 천국을 소천당이라고 불렀는데 이 장정은 <약속된 땅>을 목표로 하여 진군하면서 적을 찾는 행동이기도 했다. 광서성의 금전에서 남경을 거쳐서 다시 천진 부근까지 거의 4,500Km(장정은 1만2천Km)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본영은 남경에 머물렀으며 1853년3월에는 이곳을 천경(天京) 이라고 칭하고 수도로 삼았다. 이리하여 북경을 수도로 하는 청왕조와 남경(천경)을 수도로 하는 태평천국이라는 두 국가가 출현하여 이후 양자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이어졌다.
그 싸움의 귀추는 창업한 6인의 왕가운데 5왕을 연이은 격전과 내부 투쟁으로 잃고 천왕 홍수전만을 남긴 태평국에 불리하였으며 장강 상류로부터 의용군과 남북으로부터는 정부군, 양자강 하류로부터는 고든의 상승군의 천경을 압박하였다. 5왕이 죽은후 새로운 왕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1864년 7월천경은 끝내 정부군에 함락되었다. 태평천국은 마침내 붕괴되고, 이후 태평군은 1868년 마침내 완전히 토벌되었다. 여기에 전공을 세운 고급관료에 의해 잠시 중흥을 맞이하여 청조는 1911년 멸망까지 연명할 수 있게 된다.
1. 약속된 땅을 향하여
1) 알파포인트(Alpha Point)
티야르드 샤르망의 말을 빌면 태평천국 운동의 알파포인트는 다름 아닌 홍수전의 환상체험이다. 1873년3월 세 번째의 과거 시험에 낙방하여 낙담한 나머지 고향에 간신히 돌아온 홍수전은 중병에 걸리고 만다. 병은 40일 남짓 계속되는데 그 동안 그는 끊임없이 기괴한 환상을 보았다. 홍수전에 대해 연구한 Theodore Hamberg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 자신을 영접하러 온 사람에게 인도되어 천상계로 향한다. 거기서 검은 옷을 입은 위엄있는 노인에게서 <세계 만물을 창조한 나를 경배하라, 마귀를 숭배하면 안된다>는 말을 듣고 검과 도장을 하사 받는다. 나아가 홍수전은 노인에게 이끌리어 세상을 내려다보고 사람들이 악심과 죄악으로 가득차 있음을 목도한다. 이런 신비한 환상을 체험한 후 그의 병은 낳았다. 이 환상을 일관하는 테마는 검은 옷을 입은 노인과 중년의 사람이 비호하는 가운데 세상의 사악한 마귀를 모조리 죽인다는 것이다.
과거 낙방이라는 개인적 불만 상황이 전통적 가치 체계의 관건이라고도 할 공자에 대한 부정으로 향하고,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세속의 모든 것을 마귀라고 규정하여 여기서 과감한 토벌전이 환상속에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자기의 원한을 풀고, 현재의 가치 체계를 철저히 부정하며 자기 자신을 황제 자리에 앉힌다는 심리적 과정이 보인다. 즉, 가치 박탈에 대한 보완이 홍수전의 심리에서 모든 것이었다. 다만 그 보완 방법으로서 우선 자기밖에 있는 강력한 불멸의 영광이 설정되고 이어 과거의 가치 체계의 최고 권위가 부정된다는 역학은 홍수전의 회심(回心)의 겉과 속을 나타내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베버가 말하는 심정윤리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홍수전에게 신이 강림한 것이며 그에게 신이 현현(顯現)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는 몰트만이 말하는 <현현의 의미는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들려 오는 약속 속에, 그리고 그것이 지시하는 미래 속에 있다>고 한다면 이 환상은 물론 홍수전의 환상이 아니라 홍수전에게 강림,현현을 매개로 한,신의 홍수전에 대한 약속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신의 계시가 알파 포인트를 지시하여 <역사화 하면서 작용하는 > 약속이 분명해지기 위해서는 홍수전에게 좀더 시간이 흐를 필요가 있었다.
환상을 보았을 때 6년이 지난 1843년 홍수전은 네번째 과거 시험에 도전했으나, 또 불합격이었다. 네 번째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때 그의 사촌인 이경방이 마침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권세양언>을 읽고는 “이 책은 정말로 이상하다”고 하였다. 그래서 홍수전도 엄밀하게 주의를 기울여 읽기 시작했고, 마침내 6년전 병중에 본 환상을 푸는 열쇄를 이 책속에서 발견하고 크게 놀랐다. 그 때의 환상은 환상이 아니라 신의 현현, 신의 약속이었다는 의미에서 6년전의 환상 속은 신비한 노인은 천부 상제(上帝), 즉 여호와였고, 일찍기 마귀를 멸할 때 자신을 지도하고 도와준 중년의 사람이야 말로 구제주 예수이며, 마귀는 우상이고, 형제 자매는 세계의 인류였다. 이를 깨닭은 홍수전은 마치 오랜 꿈에서 깨어난 것 처럼 느꼈다.
홍수전과 이경방은 권세양언의 서술에 따라 독자적으로 세례를 행하고 공자상을 버리고 상제 하나님을 경배하였다. 이리하여 1843년 7월 홍수전의 사촌 동생 홍인간과 친구 풍운산을 더한 4명으로 상제 여호와를 숭배하는 <상제회>가 결성되었고 권세양언을 다시 숙독, 음미하게 된다. 이 책은 매우 훌륭한 기독교 입문서이기는 했지만 이들의 해석 방식 내지 이해는 매우 자의적이었다. 홍수전은 이 책이 자신을 위해 쓰여졌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문에 나타난 너.나.그 등의 인칭 대명사가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함벅이 말하였듯이 확실히 홍수전 등은 천상과 지상,정신과 물질의 구별도 할 수 없었지만 아전 인수격으로 이책을 이해하였으며, 이것은 그들이 성경을 가장 주체적으로 이해하였음을 의미한다. 자기 속에 끓어오르는 개인적인 불만의 분출구를 기독교라는 세계 종교에서 찾았으며, 전통적,체제교학을 비판하는 실마리를 여기에서 찾았다. 홍수전 등은 이질적인 문명과의 만남에 의해 사람들이 자명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가치를 가장 급진적으로(Radical) 비판할 수 있는 입장을 획득한다.
나아가 함벅이 전하는 다음 증언도 흥미롭다. 그것은 홍수의 범랑(노아홍수), 소돔과 고모라 파괴, 최후의 심판이라는 부분을 읽게 되었을 때 이러한 참극이 다시 일어날 것인가 생각하면서 그들은 고포에 떨었다는 부분이다. 중국 고전에는 유일신에 의한 천지 창조라는 신화는 없으며, 준엄한 선악의 대비와 심판이라는 사상은 정통 교학인 유교는 말 할 것도 없고 통속적인 도교의 공과사상(功過思想)에서도 끝내 발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인을 깊이 사로 잡고 있던 이 공과사상의 공은 선,과는 악인데 자신의 하루 행동을 반성하여 점수를 메기고 월말에 집계하여 플러스, 마이너스를 계산하고 이것을 12개월로 합산하여 선이 많으면 장수부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공과사상은 명.청시대에 서민이나 지식층에서도 널리 확산되어 있었다.
동서양에서 선악의 상태가 결정적으로 달랐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베버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듯이 구약의 신은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격렬하게 독촉하는 능동적인 사명 예언인데 대하여 동양에서는 깨닭음의 경지에 있는 어떤 신의 뒷 모습을 보면서 따라 배우면 그만이라는 모범 예언으로 나타난다. 홍수전은 이러한 전능의 여호와로부터 현세를 엄하게 부정하는 사명예언의 정신을 읽어 낸 것이다. 홍수전은 다음과 같은 칠언율시를 지어 동지들과 함께 불렀다.
손에 삼척의 검을 들고 천하를 평정하여 ..
사해를 일가로 삼아 함께 마시며 화합하리
요사스런 것들을 모두 사로잡아 땅 그물에 던지고(지상에서의 심판)
간악한 것들을 잡아 죽여 하늘 그물에 떨어뜨리리(천상에서의 심판)
동서남북 어디가 황극인가
일월성신 개선가를 연주하네
호랑이와 용은 표효하며 세계를 비추니
태평의 일통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즐거울까
이러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은 분명 공자의 위패를 철거하고 중국 4천년 동안의 문(文)의 전통에서 이탈하려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어쩔 수없이 현존의 가치 체계에 대한 날카로운 반역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으나 아직 현 왕조를 전복한다는 데에까지 이론을 진척시키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이 <혁명>사상을 가지게 될 때까지는 다시 수년의 세월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그들의 시야가 청조의 사회 모순 전반으로 향해질 때 찾아올 것이었다.
2) 역사와 때의 발견 (오메가포인트)
홍수전의 기독교에 관한 지식은 권세양언과 1847년 광주 지역에서 미국 선교사인 아이자커 로버츠 밑에서 보낸 2개월 사이에 신.구약 및 신학 등을 접한 것뿐 그리 깊지는 않았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수용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이해도 역시 매우 자의적이기 조차하였다. 그 때문에 홍수전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고 양자를 일괄하여 거기에 神天上主皇上帝의 의지를 본다는 오늘날 유르겐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에 가까운 이해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 깊은 일이다.
그것은 <신의 나라는 우리의 행동에 일관하여 형성되고 있다>는 인식으로 몰트만의 말을 빌면 <약속이라는 사건에서 약속하는 신은 우선 미래의 범주에서 역사를 위한 의미를 개시하고 따라서 역사화 해가면서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또는 그 예수 이외에 무에서 생명과 새로운 존재를 창조하는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중국 正史의 사상은 반복되는 왕조의 창업에서 붕괴, 매해의 제사나 사건을 기술하는 주기적 순환의 전통적 시야에 빠져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수전은 권세양원을 한 번읽고 여호와의 전능함에 공포를 느꼈으며 환상을 매개로 자기에게 신이 현현하였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리고 신의 이러한 현현은 역사에 개입을 통해서 낡은 아이온(세상)은 부정되고 새로운 아이온이 장차 도래하게 된다. 그 때문에 태평천국의 역사 기술은 신의 분노와 신의 현현을 축으로 하여 전개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홍수전의 초기 혁명 문헌 가운데 하나인 원도각세훈(原道覺世訓)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반고로부터 삼대에 이르기까지 군민은 일체가 되어 모두 황상제를 숭배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시황제가 나와 순우를 제사하고 신선을 우상시하여 황상제(하나님)에 대하여 경배하는 생각을 잊은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거의 2천년동안 천하의 많은 사람들은 황상제를 알지 못하고 염라요(사탄)의 포로가 되어 있다.”
즉 멀리 천지 개벽 이전부터 진나라의 시황제가 등장하기 전까지가 황상제를 받드는 빛의 이상 시대이고 진나라 이후 현재까지가 사탄의 암흑의 시대이므로 홍수전의 환상을 계기로 하여 새로운 아이온이 열린다는 뜻이다. 새로운 아이온을 여는 황상제 여호와의 커다란 진노는 천지 창조 이후 우선 노아의 홍수, 이어 출애급, 나아가 메시아 크라이스트의 강림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신이 홍수전에 현현한 것은 크라이스트의 속죄를 이은 여호와의 인류 구속사에서 네 번째에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그 권위를 획득하였다. 이리하여 여기서 노아-->모세-->크라이스트-->홍수전이라는 구세주의 계보가 완성됨과 동시에 여호와의 현현을 통한 역사화가 완성된다.
이 역사의 발견은 또 시간의 발견이기도 하였다. 일찍이 칼만하임이 날카롭게 지적하였듯이 유토피아적 의식의 제일 형태인 아나밥크스트의 열광적인 천년왕국의 실질적인 담당자는 하층민이 었다. 그리고 태평군에 가담한 실질적인 담당자도 역시 하층 농민이었다.
그간의 사정은 극빈한 일개 병사로서 스스로 태평군에 가담하였고 후에는 충왕으로서 태평천국을 지지한 이수성은 자신도 극빈한 집안 출신으로 온가족들이 상제이신 하나님을 숭배하게 되면 뱀이나 호랑이에게 물리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 태평군이 북벌의 장정에 나설 때 이수성 일가는 이를 따라갔다. <상제를 경배하는 사람은 도망가지 않는다. 모두 함께 밥을 먹자>는 태평군의 포고가 나왔다.
태평군대가 출발할 때 상제를 경배하는 사람들은 가옥을 모두 불태워버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들은 이미 반란의 무리였으며 그 죄는 구족의 멸함을 받기 때문에 노인,부녀 등도 모두 참가하였고 정들었던 집에 불을 놓아 다시 돌아오는 일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마을을 한번도 나서본 일이 없는 가난한 농민들이 태평군이라는 행동하는 거대한 일대 군중 속에 흡수되고, 흡수됨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한 심리적 전환을 이루게 된 것이다.
태평군은 그러한 극빈자에게 <모두 함께 밥을 먹자>고 하여 내일의 양식, 눈앞의 희망을 보증하였다. 이들에게는 <성지>정복을 위해 출발하는 것은 구원받은 빈민이며, 일단 이 정복행에 참가해 버리면 계속해서 이어지는 구름떼 같은 동지들의 모습에 자기의 사소한 불만은 털어 버리고 의기가 고양되어 전체 속에 융합함으로서 가난하고 학대 받던 이제까지의 생활과는 정반대의 새롭게 탄생한 인생을 살게 된다.
상제회의 기독교적 교리도 청조 타도라는 큰 목적도 모른채 다만 내일의 밥을 위해 따라간 태평군은 거듭되는 격전에서 그 수가 감소하면서 태평천국의 가장 용감하고 가장 신앙이 돈독한 중핵부대로 성장해 갔다. 바로 이수성 자신이 그 전형이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일개 빈농 병사가 태평군을 지탱하는 유능한 왕으로 성장해 간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초기 혁명 문헌에서는 궁극적인 이상향으로서 <천당>이 구상되고 있었다. 죽은후 혼은 천당에 올라 영원히 천상에서 복을 누린다는 등의 말에서 천당은 분명히 저 세상에 있었다. 그러나 태평군이 거병하여 북상하는 도중 1851년 말에 홍수전은 진군의 사기와 전투 의욕을 높이기 위해 소천당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천당에 도착하면 관직의 고하를 정하고 공이 작은 자에게는 작은 상, 공이 큰 자에게는 큰 상이 있을 것이니 각자 마땅히 힘써 스스로를 사랑하라 이를 공경히 받들것> 이 말은 곧, 각자가 노력하여 소천당이라는 약속의 땅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곳에 이르러야만 비로서 이제까지의 가난하고 학대 받던 생활을 떨쳐 버릴수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태평군이라는 도가니 속에서 과거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자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여기서 소천당이라는 저들의 행군의 목표를 부여받았다. 소천당이 어디에 있고 언제 도달할 수 있는 가는 아무도 모르지만 천부황상제의 가호 아래 미래의 그 때에 반듯시 거기에 이를 것이라는 결정론은 이 학대받아 반란에 나선 태평군의 병사 한사람 한 사람에게 왕성한 사기를 주었다. 종말(에스카톤)을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의 비호아래 스스로의 힘으로 거기에 도달하려는 태풍과 같은 천년왕국 운동이 탄생한 것이다.
그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희미한 영광에 살려고 한다. 그들은 과거의 엘도라도나(황금향) 현상의 긍정속에 사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그 때를 향하여 산다. 노만브라운의 <억압받는 생명만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이 천년왕국 운동을 담당하는 자의 시간과 역사에 대한 인식 상태를 말하고 있다.
2. 태평천국의 사회제도
홍수전이 남경을 천경이라고 명한 후 1854년에 공포된 <천조전무제도>는 이 지상에서의 천년왕국 건설의 조감도이며 태평천국의 이상국의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 제도를 보면 다음과 같다.
- 태평천국의 직관
천왕을 정점으로 하여 이하 승상. 점검. 지위. 장군. 총제. 감군. 사수. 여수. 졸장. 양사마의 직제(하이어라키) 가 확립되었다. 1군안에 일체의 생사 출척에 관한 일은 군수에서 감군. 총제. 장군의 절차를 밟아 천왕의 결재를 기다린다. 한 가정에서 1명의 병사를 내며 일단 유사시에는 군인이 되어 싸우고 전쟁이 없으면 농업에 종사한다.
- 토지의 균분
수확고와 지질에 의해 토지를 9등급으로 나누고 16세 이상의 남녀에게 등급을 안배하여 균분한다. 이리하여 모든 사람이 토지가 있으면 함께 경작하고, 밥이 있으면 함께 먹고, 옷이 있으면 함께 입고, 돈이 있으면 함께 사용한다는 이상을 달성한다.
- 공산제도
양사마(반장)가 25가정을 단위로 1조의 조직을 통괄한다. 사람들은 뽕나무를 심어 누에를 치며부인은 실을 뽑아 의복을 짠다. 5마리의 닭, 5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보리,통,마 등의 수확물은 25가정의 소비 분량과 이듬해의 파종분을 남기고 모두 장부에 기입한 후 국고에 들인다. 왜냐하면 천하는 천부상주황상제의 커다란 일가이며 모두 천부의 것이기 때문이다. 태평국의 홍수전은 천부(여호와)의 특명을 받아 이를 관리하고, 천하의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여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따듯한 옷을 입게 하는 것이다.
- 국고와 예배당
25세대(가정)안에 국고와 예배당을 하나씩 두고 양사마가 맡아 관리한다. 각 가정의 관혼상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일률적으로 이 국고에서 지급하며, 결혼은 자유혼으로 천부에게 제사로 고하고 구례의(구습)의 관계는 모두 폐기한다. 7일마다 돌아오는 예배일에는 25가정의 사람이 남녀 별로 예배당에 모여 양사마의 講道理(설교)를 듣고 천부에게 기도한다. 예배일 이외에 이 장소는 아이들의 학교가 되며 양사마가 신구약 성경과 진명조지서(眞命詔旨書)를 가르친다.
- 상 벌
25가정 가운데 소송이 있으면 양사마가 판결한다. 그 판결에 불복하면 직제의 절차를 좇아서 차례로 상고할 수 있다. 다만 천왕의 판정은 절대적이다. 천하의 인민과 관리는 십관천조(십계명을 고친 것)와 명령을 지켜 국가를 위해 진력을 다하며 이를 여기는 자는 관위(직급)를 떨어뜨려 농민으로 삼는다. 농사에 힘쓰는 자에게는 상을 주고 농사는 게을리하는 자는 벌한다.
- 예 배
내외의 관리, 인민은 예배일마다 성경 강독을 듣고 진심으로 천부를 경배한다. 태만한 자는 농민으로 격하시킨다. 77, 49번째의 예배일마다 사수,여수,졸장은 휘하 양사마의 예배당에 가서 성경을 강론하며 인민을 교화하고 아울러 사람들이 천조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가를 시찰한다.
- 병역의무와 복지
한 가정에서 1인 병역에 나간다. 기타 홀아비,고아,장애자 등은 병역의무에 제외되고 국고에서 부양한다.
이러한 제도와 법규가 태평천국이라는 중국의 기독교적 천년왕국의 도달이다. 이제도 자체는 현재의 태평천국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전혀 실행할 수 없었고, 농촌의 기존 권력에 의한 왕조체제로 후퇴하여 농민에 대한 조세 수탈 기구로 변질되고 말았다고 한다.
그러나 토지가 있으면 함께 경작하고, 밥이 있으면 함께 먹고, 옷이 있으면 함께 입고, 돈이 있으면 함께 사용하여 균등하지 않은 곳이 없고, 한 사람도 배고픈 사람이 없고, 따듯한 옷을 입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념을 태평천국에서 손문을 거쳐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에 이르는 한 가닥의 붉은 실(공산주의)이라는 것을 여기서 다시 상기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과의 유사성은 우연은 아니다. 태평천국은 중국의 근현대사의 벽두에 선 것인만큼 과거의 각인과 새로운 정신의 쌍방을 아울러 지닌 야누스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3. 태평천국과 중국 공산당
1951년 1월11일 중국 공산당 중앙기관지 인민일보는 <태평천국 혁명백주년을 기념하여>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태평천국을 <선진계급의 지도자 없는 구식 농민 혁명의 최고 형태이다>라고 규정하였다. 구식이라는 것은 이제까지 중국 역사를 장식해 온 농민 반란같이 노동 계급의 지도자가 없는 단순한 농민 전쟁이라는 것을 의미하며 최고 형태라는 것은 혁명의 규모가 크고, 그 정권에 상당히 완비된 제도가 있었던 점, 혹은 그 혁명 정권이 장기간에 걸쳐 봉건국가 청조와 대치했다는 점, 뿐만아니라 선구적인 반제국주의 임무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던 점에 있다고 한다.
요컨대 태평천국운동은 근현대 중국사의 벽두에선 야누스이며 한편으로는 고대 제국 청조에 대한 반역이라는 중국의 이후의 사조(思潮)를 선취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 2천년의 전제적 지배의 잔재를 띠고 옛 왕조 체제로 역행하는 요소도 있었다. 홍수전의 일련의 혁명운동은 베버가 일찍이 날카롭게 통찰하였듯이 <천년왕국적 망아적(忘我的)요소와 금욕적 요소의 특이한 혼합>을 낳아 지금까지 알려진 유교적인 행정과 윤리에 항거하는 중국이 경험한 가장 완강하고도 가장 교권적인 정치적, 윤리적 반란>을 가능케하였다. 이 좌절한 종교왕국위에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하는 모택동의 혁명 이론이 구축된 것이다. 그 때문에 신민주주의 혁명이 태평천국과 많은 유사점을 공유하는 것은 같은 천년왕국으로서 유연한 일은 아니다.
- 메시아 : 모든 사람들이 홍수전,모택동이라는 메시아를 받들었고 한편은 유일신 여호와, 다른 한편은 과학적인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지도 되었다.
- 선 민 : 모두 농민 혁명이며 억압받는 농민, 빈민으로부터 혁명의 에너지를 얻었다. 선택된 자 사이에는 균등한 노동과 균등한 향수라는 점이 관철되었으며 이 사상은 인민공사로까지 이어졌다.
- 종 말(에스카톤) : 모두 종말을 향해 흐르는 시간을 발견하였다. 엄격한 현세의 금욕과 적에 대한 과감한 투쟁은 아직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천년왕국에의 입장을 예약한다. 이 투쟁 주체의 교육, 재생산의 방법으로서 태평천국에서는 설교로 정치,종교,교육제도를 가지며, 모택동은 <대중속에서 대중속으로>의 정치교육 채널이 있었다. 양자 모두 아동 교육과 남녀 평등 <태평천국에서는 세계에서 선구적으로 이것이 실행되었다>을 철저히 행하였다.
- 새로운 세계(아이온) : 모두 천년왕국 운동의 오메가 포인트를 <大同>이라고 표현했다. 이상 4가지 점에 걸쳐 천년왕국운동이라는 관점에서 태평천국과 모택동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유사성을 소묘했는데 이미 지적하였듯이 양자의 엄밀한 유사성이야말로 마르크스, 모택동의 혁명사상은 천년왕국 사상이 세속화한 형태에 지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태평천국의 역사에서 많은 것을 배워 취할 수 있었던 것도 천년왕국이라는 동일한 사상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천년왕국 사상이 도교.불교 반란에 보이는 것과 같은 억압받는 자의 저항의 이론으로서 가능 하였기 때문에 중국 자체가 억압받아 망국의 위기에 몰린 청조말기의 중국은 가능한 모든 사상을 동원하여 외압에 대항하였던 것이다.
<저 자> : 1937년 일본 나가노출생. 1971년 동경대학 박사과정 수료. 현재 츠쿠바대학 교수로 동양 정치사상사를 담당. 역서로는 <유럽의 중국문명>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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