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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합비 제1중 4차 교사교류 방문기행 기 간 2005.12.29 ~ 2006.01.02 장 소 안휘성 합비 제1중 목 적 학교 간 교사교류 방문 참석교사 유수필(단장),김선자, 한춘우 이남철, 유택순, 김미희
며칠 전부터 중국 합비 제1중 방문 날짜가 잡혀서 설렘 반, 부담감 반으로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방문에 따른 여권, 비자, 일정, 업무 등을 이유로 선생님들과 몇 차례의 의견을 교환했다. 이번 일행은 6명으로 이남철 선생님, 김선자 선생님, 한춘우 선생님, 유택순 선생님, 행정실 김미희씨(남자2명, 여자4명)로 구성되어 있었다. 2002년 이래 교사교류 4차 방문단으로 내가 단장이 되어 임무도 자세히 모른 채 얼떨떨한 상태에서 역할 갈등으로 고민을 하였다. 틀에 박혀있는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여행의 첫날을 맞이했다.
첫째 날 : 낯선 땅, 중국(2005.12.29)
아침 일찍이 일어나 일행의 여권 6개를 챙겨 여행용 가방에 깊숙이 넣었다. 아침밥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아내가 서산 터미널까지 실어다 주면서 잘 다녀오라는 말과 다정한 눈길을 뒤로 하고 터미널 매표소 앞에 왔을 때는 이미 동료 교사들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 일행은 환송해주는 교사들과 악수를 나누고 9시 50분 버스 탔다. 눈 덮인 산과 질주하는 차들을 보고 있노라니 어느덧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분주한 사람들이 이리저리 엉키어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을 보며 ‘내가 외국여행을 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을 했다. 인천공항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 환전하고 17:00에 출국수속, 17:40에 드디어 중국 민항인 동방항공 580에 몸을 싣고 19:30에 남경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입국수속을 마치고 대합실로 나오니 섭흠, 조암, 장옥생이 우리들을 반겨주었다. 서로 악수를 나누고 준비된 봉고차로 합비로 출발하였다. 이미 주변의 어둠은 짙은 안개와 엉키어 마치 생명체 있는 덩어리처럼 움직여 버스의 길을 방해 하고 있었다. 취병산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앞으로의 일정을 개략적으로 설명해주었다. 호텔 안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삼삼오오 모여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사람, 술잔과 담배를 물고 돌아다니는 사람, 퀴퀴한 냄새와 소음이 진동하는 호텔 안, 대형 크리스마스트리와 인자한 미소의 산타 할아버지 등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이해하기에는 작은 충격이었다. 섭흠과 조암의 안내로 저녁을 먹으면서 앞으로 중국 음식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했고 숙소인 합비 천도호텔에 도착하니 밤 11시를 훨씬 넘기고 있었다. 일행과 저녁 인사를 나누고 다음날 아침 로비에서 7:30분에 만나기로 하였다. 숙소에서 잠을 청하면서 정신없이 돌아간 오늘은 생각해봤다. 국제화 시대를 실감나게 하는 인천공항의 많은 사람들, 중국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끝없는 농토, 자유분방한 중국인들의 대화와 행동...
둘째 날 : 일류를 꿈꾸는 아이들(2005.12.30)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세면을 하고 로비에 나가보니 스마일 통역인 섭흠, 그리고 친절한 조암, 장옥생(2006년 방문단 단장, 역사), 이약홍(물리), 주홍(영어) 선생님들이 함께 반겨주고 있었다. 잠자리는 편했는지,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일일이 챙겨주며 식당으로 안내를 하였다. 식당은 호텔에서 운영하는 뷔페식이었다. 15가지 정도의 반찬과 빵, 죽 등으로 식단이 이루어져 있었다. 어제 저녁에 느꼈던 중국의 독특한 향내가 몸 전체를 자극하여 스멀스멀 혈액을 타고 지나다녔다. 우리 여섯 명은 음식의 거부 반응을 그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을 했고 밝은 표정으로 맛있게 식사했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첫 일정은 8시부터 안휘성 극장에서 합비제1중의 새해 공연이 있었다. 우리가 20분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리느라 공연을 지연하고 있었다. 일행 6명이 도착하자 하금초 당서기장이 개식사를 선언하고 우리를 소개했다. 많은 교사와 학생들의 박수를 받고 단장인 내가 간단히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처럼 반갑게 환대를 해주시니 합비1중의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본의 아니게 늦었는데도 따뜻한 박수를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합비제일1중의 새해공연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새해에는 많은 노력으로 큰 성취를 기원합니다.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발전합니다. 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부단한 노력과 정열이 필요합니다. 젊음은 도전입니다.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하십시오. 하금초당서기님, 당부교장님, 왕부교장님, 그리고 많은 선생님과 학생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주절주절 인사를 하고 앞줄에서 관람을 하였다. 공연은 우리학교 서령제와 비슷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미리 연습을 하고 무대에 올라간다고 했다. 노래, 재즈 댄스와 그룹사운드, 연극, 피아노 연주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중에서 1학년 학생이 부르는 팝송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잘생긴 얼굴에 미성의 목소리를 가진 이 학생은 이미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난 학생인 듯 관중들은 열광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도 공연 무대에 서줄 것을 요청하였다. 4명의 여선생님들께 한국 가요를 불러 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여선생님들은 외투를 벗고 날씬한 몸매로 허리를 흔들며 ‘사랑해’를 불렀다.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여선생님들은 기대 이상으로 음정과 박자 그리고 율동이 잘 어우러져 관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잠시 공연을 관람한 후 우리는 공연장을 빠져나와 포청천 기념관을 둘러보았다. 우리나라에서도 포청천은 1993년에 수입한 드라마로 매주 금요일 저녁 9시50분에 편성되어 많은 인기를 누렸었다. 수입드라마 최초로 최고 시청률 45%를 한달 동안 유지하였고, 이후에도 꾸준히 20~25%의 시청률을 유지하면서 한반도 전역에 정의의 정도가 악의를 물리치는 권선징악의 풍토를 마련한 적이 있었다. 포청천은 999년에 합비에서 출생하였다. 포공(包公)이라고도 하는데, 1027년(인종 5)에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관직을 사임한 적이 있다고 하였다. 1037년 다시 천장현(天長縣:지금의 안후이성 천장현) 지현에 임명된 뒤 감찰어사(監察御使), 삼사호부판관(三司戶部判官), 하북로전운사(河北路轉運使)등을 지냈다. 1061년 추밀부사(樞密副使)에 임명되어 관직생활을 하는 동안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는 정치를 펼친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는 부당한 세금을 없애고 백성들의 억울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해 주었다한다. 판관이 되자 부패한 정치가들을 엄중하게 처벌하였으며, 높은 벼슬에 오른 뒤에도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여 청백리로 칭송된 자로 철면무사(鐵面無私)라는 현판이 눈에 크게 들어왔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오후 2시부터 합비제1중 2학년 3반에서 주홍 영어교사의 수업을 참관하였다. 낯선 이방인인 우리 일행을 2학년 3반 학생들은 따뜻하게 박수로 우리들을 환영해 주었다. 학생들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태도를 바르게 하고 영어책과 노트를 반듯하게 펴 놓고 수업을 받았다. 주홍선생님의 영어 수업은 우리들을 놀라게 했다. 선생님의 유창한 영어구사와 수업 기법, 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 학생과 영어로 주고받는 질문과 대답, 학생들을 편안하게 하면서 수업에 동참시키는 발문 등이 상당히 세련되어 있었다. 수업은 40분으로 60여명이 다 함께 참여하는 집중된 수업 내용이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찌르릉, 찌르릉…….’하면서 종료가 되었다. 다음 시간은 김선자 선생님의 영어 수업이 옆 반에서 이어졌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서산시의 소개와 서령고 학생들의 수업내용과 학교생활 등을 소개하였다. 학생들은 김선자 선생님의 수업을 아주 진지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미 중국에도 잘 알려졌다는 한국배우들의 사진이 스크린에 나타날 때 학생들은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정말로 한류 열풍을 실감할 수 있었다. 중국의 학생들도 우리나라 학생들처럼 연예인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장내 직업 선호도도 연예인이 되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고 하였다. 스크린에 비춰진 한국의 영화배우들을 학생들은 모두 알고 있는 듯했다. 안재욱, 장동건, 김희선, 권상우, 이영애, 송혜교, ses... 중국에서 보는 한국의 연예인들은 너무 잘생겼었고,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며, 어떤 면이 이 학생들에게 그토록 큰 이미지로 남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산시에서 제작한 서산시 소개를 중국어로 편집된 동영상으로 보여주었다. 다른 나라의 도사가 중국어로 소개되니까 학생들 나름대로 자국어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듯 더 조용한 가운데 시청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김선생님이 한글의 기본 단어와 읽는 방법을 학생들에게 간단히 지도하였는데 의외로 쓰고 읽으면서 많은 흥미를 갖았다. 수업을 마치고 물리실과 컴퓨터실을 잠시 둘러보고 합비고등학교 학술회의청에서 “한국교육문화교류강좌”가 준비되어 있었다. 한국교사들과 2학년 문과 4개 반 학생들 240여명과의 대화의 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먼저 나는 서산시에 대하여, 한춘우선생님은 대학진학과 관련하여, 이남철 선생님은 한국학생들의 하루 일과에 대하여, 유택순 선생님은 한류에 대하여 약 10분씩 학생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한국의 교육제도 와 학교생활에 대한 전반적인 질문을 받았다. 몇 명이면 될 줄 알았던 학생들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20여명의 학생들이 연단에 나와 자기의 질문을 마이크로 통해 던지고 우리 선생님들의 대답을 진지한 태도 듣고 박수로 답례하는 예를 잊지 않았다. 이성교제, 체벌문제, 한국학생들의 강한 결단력, 한국의 산업 발전과정, 신사참배문제 등 많은 질문에 우리 선생님들은 성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듣는 학생과 질문하는 학생들의 겸손한 예절과 단정한 태도에 우리는 다시 한번 놀랐다. 학생들과의 토론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7시를 넘어 날은 어두웠고 부슬부슬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하루 일정이 너무 빡빡해 많은 어려움을 느꼈으면서도 중국학생들의 수업 참관과 수많은 질문과 대답에 만족한 얼굴로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8시 천도호텔에서 준비된 연찬회에 참석했다. 그동안 출장으로 바빠서 보이지 않던 진동 교장선생님이 나오셨다. 핸섬한 얼굴에 바리톤의 목소리로 하루 일정을 보고 받았는지 한국 선생님들 고생하셨다고 일일이 악수를 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하금초당서기장, 당부교장, 왕부교장, 그리고 2월에 한국을 방문 할 중국선생님들이 참석해주어 자리를 같이했다. 한국국기와 중국국기를 원탁의 중앙에 놓고 대화하고 식사하는 장이 어설프고 부담은 되었지만 중국선생님들의 극진한 친절에 감사했다.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들어온 우리 일행은 간단히 세면을 하고 커피를 한잔 나누며 담소를 하고 자기 룸으로 돌아갔다.
셋째 날 : 100년의 역사에 핀 꽃 (2005.12.31)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우리가 묵고 있는 곳은 17층으로 시내가 한 눈에 보일 정도로 큰 호텔이었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았지만 많은 차들이 서로 엉키어 S자 형태로 미끄러져 움직이고 그 사이에 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 구분 없이 길을 건너고 있다. 봄에 일본에 갔을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일본은 잘 정비된 도로, 쉼 없이 달리는 자동차, 질서 정연한 사람들, 경적이 없는 거리로 선진국임을 피부로 느꼈는데 중국의 시내는 전혀 다르다. 아침 6시부터 수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도로를 꽉 메우고, 자전거, 오토바이, 대형버스, 택시들은 희뿌연 안개와 서로 엉키어 마치 한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세면을 하고 로비에 나가니 섭흠과 조암이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식사를 하고 학교 정문 앞에 왔을 때 이미 점퍼 차림의 진동 교장선생님께서 반갑게 우리를 반겼다. 교장선생님의 안내로 우리 일행은 학교 교정, 학교 역사전시실, 생물표본실을 자세히 견학할 수 있었으며 하나하나 설명도 해주었다. 전문대학 수준의 큰 건물과 운동장, 체육관, 도서관, 교정의 연못 등을 설명하면서 역사와 전통을 강조하면서 합비의 제일가는 실력 있는 학교라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학교 역사관에는 합비제1중의 100년의 역사가 살아서 숨쉬고 있었다. 개교 당시의 설립자와 설립목적, 유능한 학자 및 사업가 배출, 수많은 박사 학위 취득, 중국을 흔드는 유명인사들의 방문 등 명문학교 임이 재확인하였다. 서령고에도 저런 역사관을 세웠으면 하는 바람을 하면서도 역사관을 채울 수 있는 자료는 무엇으로 해야 하는가 하는 혼돈에 빠지기도 하였다. 설명과 함께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 미래를 준비하는 작업을 하는데 역사관의 중간지점에 왔을 때 서령고에서 보낸 책자와 자료들이 있어 반가웠다. 역사관 입구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생물표본실로 올라갔다. 표본실답게 많은 동물들이 박제되어 있었다. 특히 호랑이, 고래 등의 크고 희귀한 동물들이 많이 있었다. 생물실에서 따뜻한 녹차 한잔에 다소의 긴장을 풀고, 생물 실험실 교사들과 담소를 나누며 중국 선생님들의 한결같은 친절과 겸손에 마음속 깊이 감사의 답례를 하였다. 생물 표본실을 나와, 한․중 교사 좌담회가 마련된 장소로 향했다. 교실 한 칸 정도의 크기에 빨간 탁자보가 씌워진 회의용 탁자에 앉아 우리 일행 6명과 중국인 교사 10명이 모여 좌담회를 하였다. 진동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에 이어 단장인 내가 간략하게 답례를 하였다. “ 교장선생님 이하 많은 선생님들의 친절한 안내와 설명에 감사를 드립니다. 중국에서의 생활이 불편할까 하는 염려도 했었습니다만 학교 측의 많은 배려로 아무 불편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수업참관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하는 선진적인 수업을 보았고, 학생들과의 대화에서는 학생들의 진취적 사고와 바른 행동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마 한국의 학생이나 중국의 학생들은 비슷한 생각에 비슷한 꿈을 꾸면서 생활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비춰진 학생들의 모습은 중국 앞날의 미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선생님들과 좌담회 중에 특별히 관심 있는 분야는 자기 전공과목과 관련된 내용 이었다. 중국 선생님들은 학교 교육과정, 학생들의 학교생활에 관하 여 집중적으로 질문하였고 우리일행도 중국의 교육과정이 한국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종일과 화기애애한 이야기가 오갔으며 마무리 무렵에 선물교환이 있었다. 서령고등학교에서 보낸 선물을 진동교장선생님께 전달을 하였다. 선물은 넓은 원판 형 청자 접시였다. 둥근 지구처럼 표현된 접시는 비취색보다도 더 맑은 빛을 발하고 있었으며 우리 고유의 상감청자처럼 민족정기를 내뿜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과 많은 중국의 선생님들도 아주 좋은 선물이라 말하며 잘 보관할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 일행에게 각각 멋진 그림을 한 폭씩을 선물했다. 정년퇴직하신 료도원 미술선생님이 우리 일행들의 여러 면을 감안하여 각각 특색있게 그렸다는데 너무 멋진 작품이라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이후에 점심은 칠레식 음식으로 주로 다양한 훈제고기였는데 모처럼 포식을 하면서 중국인들의 식사문화에 대하여 점차 익숙해져 갔다. 점심을 먹고 합비시가 자랑하는 큰 백화점을 들렀다. 우리나라의 백화점과 비슷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는데 가격은 그리 싼 편이 아니었다. 나는 가죽지갑을 300위안에 샀고 다른 선생님들도 필요한 물건들을 구매했다. 그리고 커피숍에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먹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어둠이 내려 있었다. 봉고차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큰 식당 앞에 내려 안으로 들어가니 4층 건물이 모두 룸을 갖춘 식당이었다. 그곳에는 벌써 학교 관리자들이 모두 나와 있었다. 특히 우리에게 그림을 그려준 화가 미술선생님도 있었다. 백발에 인자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기고 교장 선생님의 인사말과 단장인 내가 답례를 했다. 만찬은 어느 곳보다도 화려했고 분위기도 좋았다. “이렇게 친절을 베풀어 주시고, 가족과 같이 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당신들의 친절을 널리 알리고 합비제1중 방문이 뜻 깊었음을 전하겠습니다. 말과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잊혀질 수 있지만 지금 이곳에서 찍은 사진은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사진 속에 담겨있는 웃음과 친절,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따뜻한 마음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감사합니다.” 각자 술과 음료수를 권하고 받고 하는 모습이 너무 다정해 보였으며, 우리 일행들도 중국식으로 술잔을 권하며 망년 인사를 주고받았다. 화가 선생님께서 사진에 대한 일가견이 있다면서 우리에게 기념사진을 찍어 준다고 했다. 포즈도 일일이 재미있게 연출을 해줘 만찬회장은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음식도 맛있게 먹고 대화의 내용도 형식에서 벗어난 인간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던 것 같다. 만찬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많은 중국인들이 시끌벅적 건배를 하며 얼마 안남은 2005년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호탕하게 웃고, 권위와 격식을 따지지 않고, 많이 먹고 많이 이야기하면서 사는 것을 큰 보람으로 느끼는 것 같았다. 중국선생님들이 맥주와 음료를 사가지고 우리 숙소로 위로 방문을 왔다. 공식적인 자리와는 달리 훨씬 부드러웠고 만찬회장에서 못다 나눈 대화를 계속 나누었다. 2006년 2월 방한단의 일원인 주홍 영어선생님도 왔는데 나의 작은 제안에 고맙다고 다정한 건배를 하였다. 그들이 돌아간 후 세면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밖에서 갑자기 천지를 진동하는 대포 소리에 놀라 창문을 열어보니 건물마다 신년축포를 쏘고 있었다. 한국은 보신각 소리와 함께 새해를 시작하는데 중국은 불꽃놀이로 새해를 맞이하였다. 얼마나 오랫동안 쏘는지 아침에 일어나보니 그때까지 중국의 잠자는 의식을 깨우는 축포는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2006년을 중국에서 이렇게 맞이 했다.
넷째 날 : 남경, 피로 새겨진 역사 (2006.1.1)
아침을 식사 후 짐을 챙겨 여행용 가방을 끌고 나왔다. 밖으로 나오면서 왠지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룸과 통로 그리고 호텔 여기저기에 살펴보고 벽에 붙어 있는 그림과 플래카드를 쳐다보면서 느릿한 걸음으로 빠져 나왔다. 아마 며칠동안 정이 들었던가 보다. 밖으로 나오니 이미 진동 교장선생님과 많은 선생님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정을 새삼 느끼며 악수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가 떠날 때까지 그들은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답례를 했고 우리 일행도 기약 없는 손 사례로 답례를 하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운전기사는 차와 사람들 사이에 곡예를 하듯이 어느 듯 합비를 벗어나고 있었다. 합비에서 남경까지는 약 200키로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입국한 날은 어두워서 주변을 잘 살필 수가 없었는데 차장 너머로 중국의 농촌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듯한 밭들이 펼쳐져있고 허름한 민가들은 띄엄띄엄 전쟁 막사처럼 초라하게 서 있을 뿐 도무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중국의 농산물이 한국식탁을 점령한 이유를 저 넓은 대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중국은 우리나라 70년대 농촌 현실은 보고 있는 듯 농민들의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변화하고 있다. 무궁무진한 노동력과 농토로 언젠가는 우리나라에 더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올 것이다. 남경에 도착하여 일제의 남징대학살이 이루어 진 곳을 견학하였다. 1937년 30여만 명의 남경 인들이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의하여 무참히 학살당하였고 처참하게 버려졌다.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만행을 보면서 어떤 방법으로도 일본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한국을 40여 년간 식민통치하면서 인적․물적 수탈을 얼마나 자행했던가. 징용, 징병, 정신대, 위안부 등등 인간취급을 받지 못했던 우리의 슬픈 과거가 그곳에도 존재하고 있었다. 1월1일부터 끔찍한 현장을 보았지만 서로 국가간 평화의 소중함을 느꼈고 앙상한 뼈 위에 그들의 명복을 빌면서 주원장의 능을 향한 불안한 봉고차에 몸을 실었다. 주원장은 원(元)나라 말기에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한때 불교에 귀의하여 걸식승으로 활동하다가 원나라에 반항하는 무장 세력인 홍건적으로 활동하였으며, 나중에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패권을 움켜 줘 중원에서 몽골인을 몰아내고 명(明)나라을 세웠다. 그 후로도 장애가 될 만한 개국공신들을 제거하는 데에 주력하여 수만 명의 신하들을 죽였기 때문에 오랑캐를 타도하고 한(漢)민족의 중원지배를 회복시킨 영웅으로 치켜세우는 이가 있는가 하면, 교활하며 잔인한 책략가로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심 식사 후 남경에서 간단한 쇼핑을 했다. 남경 시내에서 다시 중국을 확인 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었다. 인구 제한으로 한 명밖에 자식을 낳을 수 없는데도 남경의 시내에는 사람으로 폭발할 지경이었다. 초라한 각자의 모습에도 웃음은 가득했고, 가족끼리, 연인끼리 삼삼오오 짝지어 먹을 것을 입에 물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정을 마치고 공항 근처인 호텔에서 여장을 풀면서 중국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를 중국, 어느 곳을 가도 낯설지 않은 땅, 3박4일 동안 수많은 곳을 다녔지만 지도에 표시하면 하나의 작은 점으로 남을 광활한 대륙을 생각했다. 이제 내일을 위해 잠들 시간, 꿈속에서 그리운 조국과 가족을 만나러 고도의 비행으로 황해바다를 건너는 꿈을 꾸어야겠다. |
첫댓글 중국 여행기~ 꽉 짜여진 일정 정말 보람 된 날~ 잊지 못할 3박4일 자랑스럽습니다 ㅎㅎ 유 회장님~!!
우린 북경이랑 천진으로 갔었는딩
유회장님!~~~ 교육과 여행을 함께한 살아있고 의미있는 중국에서의 교육체험을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