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제8회 사이펀 상반기 신인상 시 심사평
노매드랜드 (Nomadland), 유목에서 유목으로
정익진(시인)
응모작들을 읽어나가는동안 2023년 상반기 사이펀 신인상에 탁월한 시인이 선정되어 우리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올해는 예심을 통과해 9명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본심에 오른 작품들을 거듭 되돌려 보면서 당선작으로 최종 세 분에게 손을 내밀게 되어 매우 기쁘다.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기나긴 다리를 건너왔다는 느낌이다.
최종 당선작에서 멀어진 작품들 대부분은 이정표대로 따라가서 무난하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동선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그야말로 일상에서 시작해서 아무런 분발 없이 그친 경우다. 또 다른 몇몇은 이정표가 없는 길을 걸어가는 것처럼 시종일관 긴장감을 던져주어 시적 모험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길을 잃을 경우도 있었지만 어쩌면 그것이 시가 가야 할 길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시는 이정표가 없는 길일 것이다. 동시에 유목과 유목을 이어주는 ‘다리’라고 생각했다. 유목의 정신과 시 정신은 맞닿아 있지 않을까.
따라서 올해 당선작은 자신이속해 있는 현재의 영토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토를 찾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유목 정신’이 투철한 작품이기를 갈망했다.또한 詩作의 기본이 되는 시적 운용의 자연스러움과 창조적 상상력, 독특한 어법의 구사도 선정기준에 포함시켰다.
최종 당선자는 ‘불안 선생’ 외 9편을 투고한 구경화 씨와 ‘학회’ 외 9편을 보내온 김이오(본명: 김혜숙) 씨, 그리고 ‘목나물’ 외 9편을 보내오신 오제혁 씨, 이상 세 분을 선정하였다.
구경화의 작품들은 비유 중에서도 대비를 사용해 사물의 이중성을 끌어들이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큰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비구상에서 구상으로 변해가는 아름다운 허물벗기의 시편이다. 반대로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변신해가는 과정을 마술과 같은 표현력으로 이끌어 가기도 한다. 작품 ‘木’은 사람의 목과 나무 ‘木’ 자를 병치하여 대비적인 효과를 가져와 미적인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흩날리는 국경’은 슬픔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이다. 국경에 설치된 철조망과 수술실의 가위를 대비하여 슬픔과 고통을 표현한다. 좀 엉뚱한 대비이긴 해도 구상화 속의 추상적인 현상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미의 각도를 생성한다. ‘사직서’도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이다. 수작이다. 사직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기보다는 ‘먼 비유’를 통해 시를 형상해 나가는 시적 능력이 놀랍다. 여러 시편 중 ‘어깨너머’에 유독 눈길이 갔다. 구화 시인의 시적 특장이랄 수 있는 ‘먼 비유’의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낸다. 착함이나 선을 지향하는 시도 아니다. 서사의 진행도 그리 매끄러운 편은 아니지만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전혀 다른 지형에서 발아된 시편이라 말할 수 있겠다. 유목의 냄새가 짙게 풍겨오고. 슬픔의 그림자가 무수하다. 원망일까. 막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일 것이다. 감정의 과잉이란 기름기를 제거한 뒤 고스란히 남아 사금처럼 반짝이는 문장들이다.
김이오의 작품들은 본심에 오른 9명의 후보 중에 가장 고른 수준의 시편들을 펼쳐 보인다. 때에 따라서 시적 비유의 폭이 너무 넓어 위험수위를 들락이지만 다른 장점들이 굳건하게 포진되어 전혀 염려될 게 없었다. 김이오의 시편들은 세상에서 사라진 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무덤덤하게 들려주는 이야기이며, 현실 체험의 토양을 싹 갈아엎고 우리들의 시선 밖에서 가져온 반석 위에 전혀 다른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건축술’을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경복궁이란 장소는 공개적이며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예측가능하다. 하지만 김이오의 시 속 경복궁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일들만 일어난다. “기념사진”을 찍을 거라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흩어져 버리고, 두 발과 얼굴도 집에 두고 온 모양인데, 경복궁이란 장소에는 누가 왔단 말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도는 노매드적 보폭을 보여준다. ‘주간학습통신문’이라는 비교적 익숙한 듯한 사물의 흔적은 온데간데없다. 오히려 족보에도 없는 ‘모자’라는 사물이 등장하고 ‘승미’라는 인물을 통해 ‘주간학습통신문’과는 하등 상관없는 행위들을 생산하고 있다. 모든 인과관계를 해체하고 우리가 알고 있던 사물을 지워나가고 있는 시적 여정을 보여준다. 따라서 ‘기존의 질서 지우기’ 이 방면에서 김이오의 시편들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난공불락이다.
오제혁의 시편들은 앞서 언급한 두 분의 시편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서정적 리듬과 내용이 두드러진다. 시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고뜯어보면 볼수록 그만이 가진 섬세하고 독특한 선과 선율이 영 잊히지가 않는다.또한 미적 흡인력이 충만한 시편들이다. 무리한 접합을 시도해도 전혀 이음새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만큼 리듬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세밀화이다. 그물과 같이 워낙 촘촘하여 여간해서 그 균형이 흩어지지 않는다.
‘미지의 세계’는 새와 민첩한 고양이의 길들여지지 않은 움직임을 통하여 무한한 세계를 경험하는 시편이다. 시인의 세심한 관찰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상식의 일상’은 물이 몸의 상식이란 놀라운 비유로 시작하고 있다. 몸이 물과 같이 투명해지고 결국 물방울이 되거나 흘러가는 물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곧 ‘몸이 물이다’라는 진리체를 터득하고 그리하여 무엇이든 몸이 닿으면 젖게 마련이고, “글씨를 마구 흘리는 와중에도/종이가 젖어 흔적을 머금”는다는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한다. 시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상의 감동을 전해준다. 고인 물이 아니라 미지를 향하여 끊임없이 자리를 옮기는 ‘유목의 진정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비교적 짧은 시편 ‘머무르기로 하여요’에서는 순진무구한 아이의 말에 공감하는 엄마의 따뜻한 애정을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울컥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감정을 자제하며 시를 이끌고 나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언제나 연민은 시의 시작이다.
이상 당선된 세 분의 폭풍과 같은 활약상을 기대하며 뜨거운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