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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계명을 주신 하나님
19장에서 구원 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의 소유된 거룩한 백성으로,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조건이 “듣고 지켜야”합니다. 듣고 지켜야 하는 것이 오늘부터 주시는 말씀(율법)입니다. 이런 정체성을 가진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핵심이 오늘 말씀인 십계명인 것입니다.
십계명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율법들이 이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십계명은 법입니다. 마치 헌법과 같습니다.
1) 1절에, 십계명의 제정자와 수여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해 내신 하나님이 제정하셔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인간이 만들어 낸 법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감해서도 안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신명기 4:2]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말을 너희는 가감하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라
인간들이 제정한 법은 불안전하여 폐기되기도 개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완전합니다. 지키면 살고 영혼을 소성되고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합니다.
[시편 19:7]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2) 십계명의 1~4계명은 하나님의 사랑, 5~10계명은 이웃사랑을 위한 계명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두 개의 계명으로 구분한다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며 첫 째되는 계명이며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했으므로 십계명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마22:36-40)
십계명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는가? 이웃을 어떻게 사랑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주신 것이 율법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벌써 그는 십계명을 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십계명에 대한 내용은 신명기 5장에서 다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회고하여 기록한 것이므로 그 내용은 출애굽기와 거의 같습니다. 다만 제4계명인 안식일의 의미에 대해서 출애굽기에서는 창조 후 안식일 개념으로, 신명기에서는 애굽에서의 구원의 개념으로 안식일을 지키라 하였으며, 제10계명에서는 출애굽기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가 먼저 기록되어 있으나 신명기에서는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가 먼저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십계명 자체에도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중요한 계명부터 먼저 말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먼저, 그 다음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것입니다. 조건부 사랑 수준일 것입니다.
그리고 짐승을 사랑하라, 식물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없습니다. 생물은 다스리면 되고, 식물은 그 열매를 먹으면 됩니다. 다스리다는 “라다”로서 “밟다, 지배하다, 통치하다”의 뜻입니다.
동물을 위하여 사람이 있지 않고 사람을 위하여 동물이 있는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애완동물 많이 키웁니다. 그들을 귀하게 키우는 것은 마땅하지만 사람보다 우선일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들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한 가정에서 우선순위가 바뀌면 안됩니다. 강아지가 사람보다 위에 있으면 안된다는 것이죠.
2. 십계명은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차이가 있습니다.
성경에 십계명이란 용어가 나옵니까? 예, 나옵니다. “십계명”의 내용은 출20장에서 주셨지만 “십계명”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곳은 출34:28절이며, 신명기에서는 신4:13, 10:4절에서도 열가지 계명들이란 이름으로 나옵니다 (아세레트 하데바림)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20장에서 제1계명, 제2계명과 같이 십계명을 번호를 붙여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열 가지 계명을 구분해야 하는데,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서 계명의 순서와 내용이 조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은 같지만 가톨릭과 개신교에서 구분하여 사용하는 십계명은 조금 다릅니다.
→ 가톨릭과 루터교는 신명기를 근거로 4~5세기에 활동한 교부 어거스틴이 분류한 십계명을 따르고, 대부분의 개신교, 정교회, 성공회는 출애굽기를 근거로 1세기 유대인 학자인 필론(필로)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출처 : 다음카페 창골산 봉서방
1) 첫 번째 중요한 차이점은 출20:3-6절을 개신교에서는 1계명, 2계명으로 구분하고 있으나, 가톨릭에서는 제1계명으로 사용합니다.
가톨릭에서는 4절~6절에 기록된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고, 그것들을 섬기지도 말고 하는 내용을 그들의 제1계명인 한 분이신 하나님을 흠숭하는 것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흠숭하다“는 뜻은 사전적으로 본다면 “흠모하고 공경함”입니다 (다음,네이버 어학사전). 그래서 가톨릭에서는 제1계명인 하나님에게만 흠숭하면 우상숭배를 안한다는 것입니다. 곧 우상을 만들고 절하고 섬기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 십계명에 대한 분류 방법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문에 가깝게 번역된 십계명이 그대로 사용함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개신교에서는 히브리어 원문 그대로 번역하여 십계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3절~6절의 내용의 의미를 생각하여 “한분 하나님 흠숭”이라는 구절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숭배하는 것은 다른 신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못하도록 우상숭배를 금지 계명을 세부적으로 주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 출32장에서 일어난 금송아지 사건을 우리들은 잘 압니다.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를 범한 것입니다. 이후에 이스라엘이 망한 것도 다 바알, 아세라와 같은 우상을 만들어 섬긴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미리 아시고 강조하여 세부적으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 절하지 말라, 섬기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여기 저기에서 계속적으로 “신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출34:17,레19:4). 만들어진 신상도 찍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우상을 만드는 것에 대하여 싫어하시면 심지어 하나님 자신의 신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소리만 듣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물론 보면 죽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형상을 보면 인간들은 자꾸만 하나님 형상을 만들어 섬기려고 하니까 안보여 주신 것입니다. 모세에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했을 때 등만 보여주셨습니다 (출33:23)
[출20: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라 내가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 스스로 보았으니 23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이렇게 성경에서 강조한 우상금지에 대한 내용을 “흠숭”이라는 단어 속에 다 포함시킨다면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성육신 하여 보여주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형상은 만들어도 된다고~ 그러나 이것도 그럴듯하지만 아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지고 믿는 종교가 아니라 (엄밀하게 말하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믿음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섬기는 종교가 아닙니다. 구원도 믿음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아도 계심을 믿고 나아가는 자가 믿음이 있는 자이며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자꾸만 보이는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믿으려고 하면 안됩니다. 눈에 보이는 성상을 만들어 놓고 유혹될 수 있게 하면 안된다고 봅니다. 제가 브라질 리우에 있는 예수상을 직접 가서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두 손을 모으고 절하고 있습니다. 실상이 이렇습니다. 성상 자체가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 예수님의 원래의 모습. 형상은 그렇게 생기지도 않았습니다. 인성을 나타내시는 사람의 모습만 가지고 그가 참 예수님, 참 예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시멘트 조각상임에도 사람들은 절하고 빌고 합니다. 단지 시멘트 조각상으로만 본다면 왜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하십니까? 그것은 나약한 인간이 눈에 보이는 신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가 바로 보이는 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32:1), 그리고 그 금송아지를 놓고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출32:8)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야 안심이 되는 인간입니다. 우상을 만들고 안만들고는 믿음의 차이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성상은 믿음이 약한 자를 위함이 아니라 믿음이 약한 자에게 오히려 절하게 하고 섬기게 하는 우상숭배의 유혹에 빠지게 만들 위험이 높은 것입니다.
→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만드는 순간부터 그것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상이라고 할지라도 만들어 놓고 섬기지 말라고 하면 고양이 앞에 생선을 놓고 먹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여기는 우상숭배 금지의 계명이 흠숭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져 있다면 사람들은 잘 모르고 우상숭배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이것은 마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모든 조항이 다 포함되어 있으니 다른 율법이 필요없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거스틴이 유명한 사람이지만 그 한 사람의 생각에 따른 분류가 가톨릭 전체가 우상을 만들고 섬기는 일에 틈을 준다면 안된다고 봅니다.
→ 저도 로마 바디칸에 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기억이 나는 것은 베드로, 바울을 포함하여 많은 상들이 만들어져 세워져 있었고 죽은 교황들의 미이라가 전시되어 있는 기억이 뚜렷합니다. 저는 그 당시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베드로의 동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만져서 그 발이 닳아 빠졌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경 차원으로 절하고 만지고 입 맞추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상숭배의 위험성이 그 속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 결론적으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십계명에 그런 우상숭배 금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십계명에서 빼면 의도와 상관없이 무엇을 만들어 놓아 섬기는 우상숭배의 위험이 높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2) 두 번째 차이점은 출20:17절을 개신교에서는 하나의 계명으로 사용하는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두 가지 계명을 분리하여 사용하는 것입니다.
출20장 3~6절을 하나의 계명으로 했기 때문에 모자라는 한 계명을 채우기 위하여 17절을 두 개의 계명으로 나눌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신명기 5장을 근거로 십계명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명기 5장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보다도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내용이 앞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귀중한 아내와 다른 탐내는 것들과 구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과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말라는 계명으로 구분했다는 것입니다.
① 신명기는 시내산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율법을 회고하면서 다시 설교하는 것이므로 출애굽기의 내용보다 앞 설 수 없습니다.
모세오경을 모세가 기록했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말씀드리면, 기록된 순서가 그래도 출애굽기보다는 신명기가 나중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기록시점은 정확히 모르지만 출애굽기는 시내광야에서 있었던 내용이고, 신명기는 모세가 요단 저쪽 숩 맞은 편 아라바 광야에서 출애굽기의 내용을 포함하여 지난 날에 있었던 모든 것을 회고하면서 경험했던 내용을 기록한 것입니다. 회고록과 같습니다. 그래서 한글 성경은 제목을 “신명기”(申命記)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자 “申”은 거듭하다, 반복하다의 뜻이 있어 “다시 계명을 기록한 것”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어 제목을 보면 “하데바림”인데 “그 말씀들”이란 뜻입니다. 정관사가 붙은 것은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말씀들이란 것입니다. 알고 있는 말씀들, 이미 주어진 말씀들은 바로 출애굽기를 포함하여 출애굽 이후에 주어진 율법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70인역 성경은 “율법의 복사” 또는 “제2의 율법”이란 뜻을 가진 “듀트로노미온”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어성경은 “Deuteronomy”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신명기는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에 대하여 다시 회고하면서 가르치는 내용인 것입니다.
② 그러므로 출애굽기에서의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1차적으로 직접 주신 계명이며 (출20:1) 신명기는 모세의 기억력에 의지해서 다시 출애굽의 십계명의 내용을 정리하여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내용은 출애굽기에 비하여 일부 내용도 다를 수 있고 순서도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저자가 구약을 인용할 때 일부 내용도 순서도 다르게 인용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신명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를 우선으로 하여 십계명을 나눈 것은 자칫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는 것입니다.
③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처럼 여겼던 시대입니다.
출애굽기 17절은 그런 환경에서 주어진 것이므로 아내를 다른 종들과 소나 나귀의 가축처럼 소유물로 탐내는 대상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탐내지 말라”에는 남의 아내와 종들과 가축까지 다 포함된 내용인 것입니다.
더구나 가톨릭의 제9계명인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는 계명은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것과도 사실 같은 내용입니다. 남의 아내를 탐내는 것은 간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7절은 간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탐심에 관한 내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했습니다(골3:5)
심지어 남의 아내까지 탐내지 말라는 강력한 탐심에 대한 경고의 계명인 것입니다. 그래서 17절을 두 계명으로 나누는 것은 어거스틴의 생각일 뿐입니다.
이제 십계명의 세부 내용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부분 알고 계셔서 중요한 것만 짧게 그리고 모든 계명을 다 하지 않고 대신계명만 볼까 합니다.
3. 십계명의 세부 내용 (대신 계명인 제1계명~4계명)
구약적 율법, 십계명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실제 “그 행위를 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간음하거나 살인하는 것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하지 않았고 들키지 않아도 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마5:17)라고 말씀하시며 새로운 차원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품은 죄도 죄이며, 들키지 않은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십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행하고도 들키지 않는 죄, 마음 품은 죄에 대해서도 하나님 앞에서 용서 받아야 할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제1계명, 3절,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정확히 원어를 보면 “내 얼굴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력한 부정어 “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는 우리들, 나의 얼굴 앞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 앞이라고 했을까요? 내 얼굴 앞에는 눈에 보이는 것만 해당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는 우리들 마음 속에 있는 것까지 포함되므로 마음속에 품은 다른 신을 섬기는 어떤 것도 포함된다는 뜻입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든지 아니든지 상관없이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행함으로든 마음 속으로든 어떤 다른 신들을 섬기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배타적이긴 하지만 타 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른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WCC, NCCK, WEA에서 주장하는 다원주의, 혼합주의는 배제하는 것입니다.
2) 제2계명, 4절~5절,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①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하늘에 있는 것, 땅에 있는 것,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면 안됩니다. ※ 여기서 우상은 히브리어로 “테무나”인데 형상, 초상, 닮은 것을 말합니다. 섬기고 절하기 위한 우상입니다.
하늘과 땅, 땅 아래는 모든 곳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동안 많은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그 중에는 해와 달과 별들이 있고, 천사도 있습니다. 지금도 해. 달. 별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는 신으로 섬김 받고자 하는 인간들도 있고 (황제, 적그리스도), 사람들은 큰 나무도, 바위도, 짐승도, 곤충까지 섬기고 있습니다. 땅 아래에 물속에 있는 고기들도 만들어 섬기면 안됩니다. 섬기기 위한 초상까지도 닮은 것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② 만든 우상에 절하면 안됩니다.
절하다는 “샤하”로서 몸을 구부리다, 절하다 입니다. 그것들에게 무릎을 꿇으면 안됩니다. 오히려 다스려야 합니다. 인간보다 낮은 차원의 것들입니다. 강조형,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으므로 끝까지 절대로 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나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들이므로 그것들에 인간이 무릎을 꿇으면 안됩니다.
[빌립보서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③ 만든 우상을 섬기면 안됩니다.
섬기다는 “아바드”로서 일하다, 섬기다. 예배하다의 뜻입니다. 사역형,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그것들을 신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상숭배 금지 계명과 관련하여 “질투하시는 하나님”으로 당신을 소개하십니다. 다른 다른 우상을 섬기면 질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로부터 삼사 대까지 죄를 갚는다고 하십니다. 반대로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상을 만들지 않고 그것에게 절하지 않고 섬기지 않는 계명이 이렇게 중요한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망하지 않는 길이요 복 받은 길인데 우상숭배 금지와 관련된 이 어마 어마한 계명을 눈에 보이지 않게 “한 분 하나님 흠숭”이라는 구절에 감추어지면 안됩니다.
조금 다른 차원이지만 섬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슨 형상에 더러운 귀신이 들어가서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귀신은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을 가장 좋아하지만 어떤 형상들에게도 들어갑니다. 인형에도 들어갑니다. 이것에 대한 간증이 제게 있습니다. 그리고 달마상 그림에도 더러운 귀신이 역사합니다. 이것도 저희들과 함께 신앙생활하시는 집사님에게 간증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5절에서는 우상에게 생기가 들어가 말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무생물과 같은 우상에게도 귀신이 들어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 형상에 귀신이 붙어 있으면 집안이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던 장롱과 같은 가구들을 잘 사용 않고 태워버리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지 않는 그들도 이런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3) 제3계명, 7절,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망령되게 부른다는 것은 원어가 “샤우”인데 이것은 공허, 헛됨, 거짓이란 뜻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의 뜻이 있으므로 헛된 맹세에 여호와의 이름이 사용되는 것, 신성모독하는 것 다 포함됩니다. 그런데 히브리어 원어적으로 본다면 그 뜻이 우상과 같이 허무하고 헛된 것이고 거짓된 것이므로 마치 우상처럼 대하지 말라는 뜻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같이 대하면 안됩니다.
일본인들은 하나님, 예수님도 그들이 섬기는 수많은 신들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아벡전투에서 하나님의 궤(법궤)가 빼앗긴 적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다곤 신전의 다곤 곁에 둔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 엎드려져 있고 얼굴은 땅에 닿았고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뚱이만 남게 되었습니다 (삼상5:2-4). 그리고 블레셋의 아스돗 사람들이 독한 종기와 재앙으로 망할 정도가 됩니다 (삼상5:6) 이것은 하나님을 다곤과 같거나 못하게 대우한 결과입니다.
그런데 어찌 하나님을 나무로 빚어서 돌로 깍아서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나무와 돌로 만든 것이 어찌 하나님입니까? 이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의 영광을 가리는 언어 행동을 해서 안됩니다. 모두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입니다.
4) 제4계명, 8-11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창2:2-3)
[창세기 2:2]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입니다. (출31:13)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것은 믿는 자의 표징인 것입니다.
[에스겔 20: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 안식일은 영원히 지켜야 할 규례입니다.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지키라는 것입니다.
[레위기 16:31] 이는 너희에게 안식일 중의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
→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너무 중요하여 어기면 죽음을 당합니다.
[출애굽기 35:2]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너희를 위한 거룩한 날이니 여호와께 엄숙한 안식일이라 누구든지 이 날에 일하는 자는 죽일지니
→ 안식일을 성회로 모이는 날입니다. 예배와 교제를 위하여 거룩하게 모이는 날인 것입니다.
[레위기 23:3]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
→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
[마가복음 2: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 그래서 오늘날 개신교에서는 안식일인 토요일 대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안식은 창조와 관련이 있으며 구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출20:11, 신5:15).
오늘날 예수님을 통하여 재창조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심과 관련이 있으므로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로, 주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그 자체를 굳이 이단시하여 정죄하지는 마십시오.
<맺는 말>
십계명은 우리를 율법으로 속박하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이 십계명이 없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는 갈등과 대립 속에 살아갈 것이며,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가를 알지 못하여 제 소견대로 하나님을 잘못 섬기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십계명의 정신을 기반으로 모든 성경 말씀이 세부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에 십계명은 우리들의 소중한 영적 자산입니다. 우리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는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을 십계명이 잡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의 내용과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길이요 이웃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특히 그토록 하나님께서 싫어하고 경계하는 눈에 보이는 우상을 섬기지 말고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믿음을 가지고 영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