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우드
영화의 여러 장르 중 웨스턴은 가장 먼저 장르의 틀을 갖추었고 적어도 60년대 후반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웨스턴은 단순히 ‘서부’라는 지리적 배경 뿐 아니라 미국 역사의 특정한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에서도 정의되는
장르이다.
1. 웨스턴 영화의 역사
공식적으로 최초의 웨스턴은 미국 감독 에드윈 포터의 <대열차
강도(1903)>이다. 음악과 함께 보여진 이 짧은 무성영화는 리얼리티가 없는 곳을 배경으로 단지 이야기만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이후 1910년대를 전후하여 초창기의 헐리우드 자본은 막 형성되기 시작한 관객층을 대상으로 다양한 ‘영화 상품’을 내놓았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웨스턴은 관객의 기호와 맞아 떨어지며 장르로 정착하게 된다. 1910년대 말쯤에 웨스턴은 상당한 인기 장르로
자리잡았으며 다섯 명의 웨스턴 스타를 탄생시켰는데, 그들 중 톰 믹스는 고도로 양식화된 복장을 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버크 존스와 팀
매코이는 뛰어난 스턴트맨으로서 로데오와 서부 쇼의 무대에서 활약하던 경력을 가지고 있었고, 나머지는 후트 깁스와 켄 메이나드로
영화에서 한 쌍으로 자주 출연했다. 이들을 통해 웨스턴 장르의 도상학이 현저히 개발되었고 말에게도 초점이 맞춰지면서 거의 제2의
주인공이 되었다. 1923년 제임스 크루즈의 <포장 마차>와 1924년 존 포드의 <철마>는 최초의 서부
서사극의 시대를 열었다. 스튜디오 촬영을 거부하고 광활한 서부에서 야외 촬영을 했으며 강을 건너는 것이나 인디언의 공격, 험난한
기후와의 고통이 그려지면서 리얼리즘을 웨스턴에 부여할 수 있었다. 헐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탄탄한 구축과 함께 웨스턴은
1930-40년대 그 성숙기, 이른바 ‘고전 웨스턴(classic western)’의 시기를 맞이한다. 존 포드, 킹 비더, 라울
월쉬 등의 감독들과 함께 기억될 이 시기의 웨스턴 영화들은 단순한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역사를 해석하는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표면에 드러내었다. 이와 함께 B급 영화로서 제작되는 저예산 웨스턴도 붐을 일으켰다. 단시일 내에 값싸게 제작되어 2편 동시
상영을 위해 만들어진 이 웨스턴 영화들은 단순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인민주의적이었으며, 선과 악이 확실히 구분되어지고 권선징악적인
정형화된 결말을 가지고 있었다. 1950년대에 웨스턴은 새로운 테크놀로지 -컬러 화면, 시네마스코프, 입체 음향-를 발빠르게
채용하여 스펙타클로서의 장점을 발휘한다. 또한 웨스턴의 영웅들은 보다 복합적으로 성격화되며 고독하거나 정신적, 도덕적으로 분열된
페르소나를 가지게 된다. 프레드 진너만의 <하이 눈(1952)>, 조지 스티븐슨의 <셰인(1953)>, 니콜라스
레이의 <자니 기타(1954)> 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들인데, 선과 악의 확연한 구분보다는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주인공들,
부르주아 사회질서에 맞서는 아웃사이더들에 대한 동정적 해석, 그리고 인디안 문화에의 관심 등 수정주의적 경향을
띤다. 1960년대엔 TV에 빼앗긴 관객을 영화로 다시 불러오기 위해 웨스턴이 초서사적이 되었다. 심리적 리얼리즘은 돈벌이라는
거대한 가치 앞에서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와이드 스크린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의 스타들로 채워졌는데,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1960)>에는 7명의 스타가 등장했다. 또한 50년대의 복합적인 웨스턴과는 반대로 동기를 설명해 주는 어떤 분명한 이유나
도덕적 관점도 없이, 검열의 완화로 인한 폭력과 섹스가 주류로 등장하기도 한다. 이후 웨스턴은 이탈리아로 넘어가 소위
‘스파게티 웨스턴’ 으로 이어지는데, 무명의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스타로 만든 세르지오 레오네의 일련의 작품들-<황야의
무법자(1964)><석양의 무법자(1966)>-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오락 영화이면서 동시에 기존 웨스턴이
왜곡해온 미국 역사에 대한 비판적 텍스트였다. 1970년대에 들어 셈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1970)>, 아서 팬의
<리틀 빅 맨(1970)> 등이 만들어 만들어졌지만, 장르로서의 웨스턴은 매력을 잃고 급속히 쇠퇴하였고 최근에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그 대신 웨스턴의 오락적 요소들은 <인디아나 존스>나 <스타워즈> 등의 다른장르 영화들에
흡수되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2. 웨스턴 영화의 특성
웨스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대부분 19세기 후반,
1850년에서 1890년까지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시기는 주민들의 정착이 완료되고 새로운 촌락과 도시가 세워져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소를 서부로 몰아야 할 필요도 더 이상 없어진 때였다. 문명화와 광활한 황야는 웨스턴 장르의 전형을 이루는 두
가지 요소였는데, 웨스턴의 주인공은 언제나 이 상반되는 두 가치가 충돌하는 국면에서 나타난다. 서부의 영웅인 총잡이는 서부의 황야에서
떠돌아 다니기를 갈망하며 왕성한 에너지와 거칠고 완고한 개인주의로 뭉친 채, 미국식 개척자 정신의 신화를 서부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다.
웨스턴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는 약탈과 추적, 보복, 그리고 무법과 법의 회복이다. 이것은 세세한 묘사와 제스처에도 그대로
반영되는데, 공격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반복된다. 인디언의 포장마차의 공격과 열차 강도, 기병대의 진군 또는 악의없는 서부 거주자들에
대한 인디언들의 급습은 역마차의 추적으로 대체, 반복되는 것이다. 또한 소몰이, 금광 채굴, 철도 건설 등은 영광스런 서부로의 행진을
환영하는 아이콘이며, 총싸움, 술집 문을 밀고 들어가 으스대며 걸어가는 모습 등은 웨스턴 장르를 떠올릴 때, 즉각적으로 연결시키는
이미지들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서부가 자본주의의 이름으로 어떻게 식민화되었는가에 대해 은폐하고 있는 코드들이다. 서부는
정복된 것이 아니었다. 서부는 소수의 토지 투기꾼들이 인디언들로부터 약탈한 것이었으며, 인디언들이 갖고있던 금광 지역과 비옥한 토지를
사방에서 몰려온 개척자들에게 팔고 난 뒤에 남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화 과정은 항상 웨스턴의 신화 속에 묻혀 버렸다. 이것은
서부의 개척을 문명의 건설, 전파라고 받아들이는 백인우월주의적 세계관이었으며, 또한편으로는 법, 질서, 가족의 유지 및 수호에 최선의
가치를 두는 부르조아 이데올로기였다. 1950-60년대의 수정주의 웨스턴은 이러한 왜곡된 역사 의식과 장르의 관습에 회의를
느끼고 만들어진다. 적으로 간주되던 인디언들에 대한 동정적 해석부터 냉전 시대의 정치적 불안을 반영하거나 메카시즘이라는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한 언급도 웨스턴의 한 부분으로 포함시킨다. 델머 데이브스의 <부러진 화살(1950)>, 앤소니 만의
<악마의 문(1950)>, 존 포드의 <샤이엔 족의 최후(1964)> 등이 그 대표작들이다. 그러나 이들
영화들도 전대의 웨스턴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역사를 덜 미화하거나 감추어졌던 사실들을 폭로하기는 했지만, 좀더 역사적인 의식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 졌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
3. 웨스턴 영화의 대표작들
1) 하이 눈 (High Noon) -
1952년, 프레드 진네만
모든 마을 사람들이 외면하는 가운데 단신으로 악당들과 대결을 기다리는 보안관을 주인공으로 한
심리묘사가 탁월한 영화이다. ‘정의’와 ‘폭력’의 의미를 다시 물어보는 성숙한 웨스턴의 대표적 작품이다.
2) 추적자들
(The Searchers) - 1956년, 존 포드
조카딸을 유괴해 간 인디언의 무리를 추적하는 존 웨인- 고전
웨스턴의 주인공 이미지를 ‘결산’한 역할 - 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영화에서 존 포드는 자신이 정립한 장르인 웨스턴을
스스로의 손으로 수정, 반성한다. 헐리우드 상업영화의 완성도에서 절정을 이룬 작품이면서 가장 중층적이고 정교한 미국 영화 텍스트의
하나로 꼽힌다.
3) 옛날옛적 서부에서 (Once Upon a Time in the west) - 1969년, 세르지오
레오네
존 포드의 <젊은 날의 링컨(1939)>에서 링컨 역을 맡았던 헨리 폰다에게 ‘악당’ 역을 맡긴데서
드러나듯, 레오네 감독은 웨스턴 장르의 관습을 뒤집음으로서 ‘신화’ 아닌 ‘역사’로서의 웨스턴을 만들려고 하였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마르크시스트적 시각으로 시나리오를 쓴 수정주의, 비판적 웨스턴의 결정판이다.
4) 리틀 빅 맨 (Little
Big Man) - 1970년, 아서 팬
60년대 감수성으로 서부의 신화를 재해석한 ‘포스트 웨스턴’으로 인디언과 백인
사회를 오락가락하며 살아온 주인공(더스틴 호프만)의 눈을 통하여 원주민 인디언의 수난이 그려진다. 심각한 주제들 - 특히 인디언
학살이 상기시키는 베트남 전쟁의 범죄들 - 에도 불구하고 유머와 아이러니의 감정을 잃지 않는 영화이다.
5) 와일드 번치
(The Wild Bunch) - 1970년, 샘 페킨파
페킨파 감독은 ‘사라져 가는’ 서부의 총잡이들의 최후를
그림으로써 ‘사라져 가는’ 장르 웨스턴의 마지막을 이 영화로 장식하였다. 서사시적인 화면은 존 포드의 걸작들과 비교될만 하고 폭력의
영화적 표현에서 신경지를 개척한 점에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들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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