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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강 희랍 미술의 역사
1. 폴리스의 공통점
[김승중]
지난 시간엔 신화를 통해서 그리스 사람을 보았다. 오늘은 그리스 미술의 연대구분이 어떻게 되는지 살피고, 도기화뿐만 아니라 조각 등을 보겠다.
지금 그리스라는 나라는 하나의 국가이지만,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의 형태로 존재했다. 희랍어로는 폴리스라고 하고. 영어로는 city-state다.
폴리스(polis) : 도시국가(city-state)
이 도시국가들은 사실 작은 나라다. 그런데 이 각각의 작은 나라가 어떻게 그리스인줄 알겠나? 무엇인가 공통된 점이 있는 폴리스들을 총칭해서 그리스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첫 번째 공통점은 언어다. 이 언어가 아주 중요하다. 서로 말이 통해야 뭔가 형성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는 종교다. 같은 신을 숭배한다. 올림푸스 신은 모두 다 안다. 너도나도 제우스 신을 섬기고, 아폴로 신을 섬기고, 디오니소스를 섬긴다. 같은 신을 섬겨야만 뭔가 공통점이 생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오늘의 주제인 바로 예술이다.
언어(Language), 종교(religion), 예술(art) = 폴리스를 하나의 그리스로 묶는 공통 분모
2. 미케네 문명 시기
그럼 희랍 미술의 연대표부터 보자.
1600~1100BC
미케네(Mycenaean) 문명시기, 후기청동기시대
1600~1100BC는 바로 12세기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 시기다. 그리스 남부 지방의 미케네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청동기 시대다.
그리고서 미케네 문명이 하나하나 멸망하기 시작한다. 사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
3. 암흑 시기
암흑 시기(Dark Period)
1100~800BC. 이 시기에는 별다른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출토된 것을 보면 미케네 문명은 아주 화려하다. 슐리만이라는 사람이 황금보물도 무지막지하게 찾아냈다. 그런데 1100 ~ 800 BC가 되면 아무것도 없다.
이 암흑시기의 유물로서 발견된 희귀한 걸작품. 켄타우로스 점토상.
이때는 리니어 B(Linear B)라는 문자가 있다. 예전에는 몰랐는데 이 문자를 연구해 보니깐, 그리스 말이랑 비슷하다. 그리스 말과 상통한다. 리니어 B는 그리스말 이전의 형태를 갖고 있다. 그래서 미케네 문명기는 사실 선사시대가 아니다. 리니아 문자를 썼다. 그런데 암흑기에 오니깐 갑자기 문자가 없어졌다. 아무것도 없었다.
선문자 B(Linear B)
미케네 문명의 문자
4. 기하학문양 시대
기하학문양 시대(Geometric Period, 800~700BC)
이 시대에는 도기에 기하학 문양이 집중적으로 발견된다.
그리고 800~700BC를 Geometric Period라고 한다. 호머가 일리아드를 집필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갑자기 이때 희랍어가 나온다. 사실은 리디어 문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300년 이상 문자를 전혀 쓰지 않다가 갑자기 희랍어가 나왔다.
리디어 B는 중국어로 하면 갑골문자와 같은 것이다. 이때가 아주 중요하다.
미케네 문명이 굉장히 번성했는데, 암흑 시대에 아무것도 없다가 갑자기 나타난 게 기하학 문양이었다. 그래서 지오메트릭이라는 용어가 붙었다. 사람도 단순한 기하학 문양으로 그렸다. 굉장히 다양한 삼각형 모양, 나치 모양 등이 많이 나온다.
사람도 기하학적 추상형상으로 그려넣은 기하학문양시대의 도기.
5. 동방화 시대
동방화 시대(Orientalizing Period 700~600BC)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에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아 색채가 화려해지고 장식적 요소가 복잡하게 된다.
700~600BC는 동방화 시대로 동쪽 나라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 사람한테 동쪽 나라는 페르시아다.
6. 아르케익 시기
아르케익 시기(Archaic Period, 600~480BC)
도시국가가 형성되는 시기며, 대외적인 식민지 개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모든 것이 창조적이었던 시기. 신화 그림의 도기와 돌조각이 본격적으로 시작됨.
그 다음에 600~480BC가 아르케익 시기이다. 아르케익은 뭔가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이것도 다음 시기인 Classical Period의 이전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Classical art 보다 Archaic art가 더 인기 있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7. 고전 시대
고전시대(Classical Period, 480~323BC)
페르시아전쟁의 승리로 아테네가 패권을 잡고 도시국가의 전성기를 이룸.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까지.
8. 헬레니즘 시대
헬레니즘시대(Hellenistic Period 323~31BC)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이후로부터 클레오파트라의 죽음까지.
323~31BC는 여러분도 잘 아는 헬레니스틱 시기이다. 진짜 헬렌이 아니라 헬렌적이라는 뜻이다. 31BC가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때이다. 클레오파르타가 그리스의 마지막 연결이었다.
9. 그리스 미술의 3대 장르
그리스 미술의 3대 장르라고 하면, 첫 번째는 도기화, 두 번째는 조각, 세 번째는 건축이다.
도기화(Vase Painting), 조각(Sculpture), 건축(Architecture) = 희랍 미술의 3대 장르
그런데 예전엔 도기화를 예술로 보지 않았다. 그냥 집에서 쓰는 도자기였다. 심포지움에서 도자기 그림에 있는 신화들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술성이라고 하는 것이 어느 측면에선 참 우스운 것이다. 왜 우리가 도기화를 연구하냐하면, 사실 워낙 도기화가 많기 때문이다. 도자기라는 게 흙을 구워서 만든다. 깨지기는 하지만 좀처럼 썪지 않는다. 분해가 되지 않아서 워낙 많다. 그래서 연구를 하는 것이다.
사실 그리스 사람의 실제 생활에서 보면, 3대 예술에 들어갈 것은 그냥 페인팅(painting)이다. 이것을 Vase painting과 구별하기 위해 monumental painting이라고 한다.
나무판걸개 그림(monumental painting)
거대한 나무판에 그려서 회랑(스토아)에 걸어놓고 사람들이 토론하는 소재로 삼은 그림들, 도기화(Vase Painting)는 이런 소재를 모방한 것이다.
monumental은 거대하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그림이 그리스 시대 때는 존재했었다. 스토아 같은 곳에 커다란 그림들을 전시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나무에다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불행하게도 보존된 게 하나도 없다. 벽화가 아니라, 나무에 그려서 걸어놓은 것이었다.
10. 화병의 용도
[도올]
희랍의 꽃병을 통해서 알 수 있는 희랍의 정신세계는 어떠한가?꽃병 같은 것을 보면 희랍인들은 신들의 세계를 어떻게 생각한가?
[김]
꽃병에는 특히 술이나 그리스, 이태리의 중요한 식재료인 올리브 오일 그리고 마실 물을 담았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은 마실 물보다는 술을 더 많이 마신 거 같다.
꽃병항아리에는 1)술 2)기름 3)음료수가 담겼는데 가장 큰 용도는 술항아리였다.
술도 희석을 시켜서 마신다. 그 당시 술은 와인이었다. 그리고 와인의 신은 디오니소스다. 그래서 도기의 30%에는 디오니소스를 그리고 있다.
디오니소스와 사튀로스가 그려진 술항아리
화병들을 보면 특히 신화 이야기가 많다. 일상 이야기도 많이 나오긴 하지만, 신화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온다.
이렇게 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로는 실제로 토론을 위해 쓰인 것이다. 두 번째는 그냥 매장품이다. 화병들을 만들어서 쓰지도 않고, 죽은 자를 위해서 예쁘게 만들어서 넣어 주었다. 저승의 세계를 믿는 문명이었다. 어느 나라나 그런 것이 있다.
11. 심포지움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심포지움이라는 것이다. 심포지움은 그리스 남자들만의 특권이었다. 그리스 사람의 집을 보면 안드론이라는 방이 있다. 저녁이면 친구들을 안드론으로 모았다.
심포지움(symposium)
희랍에서는 ‘술파티’라는 뜻이다. 학술적 토론이 아니라 술 마시기 위해서 집집마다 밤부터 새벽까지 열리는 향연
안드론 안에는 카우치가 보통 3개 있다. 그리고 가운데 술이 담긴 커다란 도자기를 놓았다. 왜 이렇게 커다란게 필요하냐 하면, 그리스 사람은 술이 워낙 세고, 오랫동안 마시고 싶으니깐, 술에 물을 희석했다. 그리고 밤새도록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로운 도기를 만들었다고 하니깐, 오늘은 누구 집에 가자!’ 이러면서 가서 도기에 그려진 신화들을 보며 토론했다.
[도올]
카우치에 죽치고 앉아서 술을 퍼먹으면서 밤새도록 신들의 이야기나 여러 이야기를 했다. 플라톤의 유명한 저술을 대화편이라고 한다. 플라톤의 철학적 저술들은 이런 심포지움에서 나누는 대화형태로 되어 있다. 말의 향연이다. 술과 말의 향연이다. 그리고 여기는 반드시 남자만 들어갔다. 여자는 끼지 못했다.
[김]
이태리 북쪽에는 에트루리아족(Etruscan)이 살았다. 리비아와 같은 다른 지방의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리스 사람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사람들도 심포지움을 했다. 그런데 여자랑 같이 했다. 그래서 그리스 사람들은 에트루이아족은 심포지움에 여자들도 나온다고 야만인이라고 했다.
여기 4번 그림을 보면,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팔에 뭘 묶어주고 있다. 그리고 글자를 보면 파트로클로스라고 써 있다. 반대쪽 사람을 보면 아킬레스라고 써 있다. 이게 바로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스를 그린 술잔의 내부이다. 그 잔으로 술을 마시면 조금씩 그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 마시면 이 그림이 보인다. 술을 마셔 취한 채, 이 그림에 대해 토론을 한다.
소시아스(Sosias)가 그린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스 술잔 내부 모습.
사실 플라톤의 대화편을 보면, 실제로 이에 대한 토론 내용이 나와 있다. 파트로클로스와 아킬레스의 관계는 대체 무엇일까? 파트로클로스가 선배다. 아니다. 아킬레스가 더 힘이 쎄니깐 선배다. 이러면서 서로 싸운다.
파이스툼(Paestum) 도시의 무덤 속에 그려진 심포지움 벽화
이게 바로 이태리에 있는 무덤 벽화이다. 이 안에 시신이 있는데, 심포지움하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영원히 술파티를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라는 의미다.
12. 쿠로스와 코레
우리가 알고 있는 조각은 아르케익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BC7~6세기 경이다. 이때 미술은 굉장히 딱딱했다. 그래서 워낙 딱딱하게 굳어서 아르케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아르케익 시기에는 크게 두 가지 상(像)이 있다. 쿠로스 상과 코레 상이 있다. 남성상과 여성상이다.
쿠로스(Kouros) : 아르케익 시대의 남성상
코레(Kore) : 아르케익 시대의 여성상
남성상인 쿠로스는 항상 옷을 벗고 있다. 하지만 코레를 절대로 옷을 벗으면 안된다. 쿠로스는 몸이 중심주제라서 골격과 근육을 잘 표현했다. 코레는 옷이 주제이다. 왜냐하면 그리스 문화에서 여성들은 옷을 입을 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이다. 여자들은 집에 앉아서 옷을 만들고, 남자는 밖에 나가서 벌거벗고 운동을 했다.
쿠로스 : 몸 근육 표현 중심(naked)
코레: 화려한 옷 표현 중심(draped)
이 쿠로스와 코레는 신한테 바쳐진 제물이다. 그런데 여자가 누드가 되면 어김없이 아프로디테다. 이것도 4세기나 돼서 나온다.
아프로디테(Aphrodite)
미의 여신. 4세기부터 발생하는 최초의 나체여인상.
여자를 벗겨놓으면 에로틱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남자를 벗겨 놓으면 그냥 일상 생활이었다. 그리스인들이 추구한 이상형은 운동선수였다. 그래서 이 둘의 차이가 아주 정확하다.
사진을 보자. 이게 600년경에 만들어진 쿠로스 상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있다. 보면 굉장히 기하학적이다. 그리고 특징을 보면 왼발이 앞으로 나와 있다.
아르케익기 초기의 대표적 쿠로스상(600BC). 이집트 영향이 역력하다. 뉴욕 메트로 소장.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왼발이 항상 앞으로 나와 있다.
13. 아르케익 미소
7번을 보시면 이건 다른 쿠로스 상인데 얼굴을 보면 웃고 있다. 이게 아르케익 미소라고 한다. 이름까지 있다. 항상 웃고 있다.
아르케익 미소(Archaic Smile)
이 미소는 인간의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영원한 신적인 미소이다.
미소 : 영원한 생명력(vitality)
왼발 나옴 : 영원한 기동력(mobility)
14. 클레오비스와 비톤
클레오비스(Kleobis)와 비톤(Biton)이다.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 바쳐진 쌍둥이 상이다.
델비(Delphi)의 아폴로 신전에 비쳐진 쌍둥이 상
클레오비스(Kleobis)와 비톤(Biton). 580BC
이 두 사람에 관한 전설이 있다. 역사학자인 헤로도투스가 말을 했다. 리디아의 왕인 크로니소스가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인 솔론한테 물어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느냐?’ 솔론은 대답하길, 클레오비스와 비톤이라고 답한다.
헤로도토스(Herodotus 484~420BC)
희랍, 페르시아전쟁을 기술한 최초의 희랍역사가.
역사의 아버지(Father of History)로 불리운다.
이 쌍둥이의 어머니는 헤라 신전의 여사제였다. 헤라 신전은 이 가족이 아르고스라는 곳에서 10키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여사제니깐 신전까지 가서 제사를 지내고 잔치를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잔치에 쓸 물건을 끌고갈 소가 와야 하는데, 오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쌍둥이가 진흙길을 따라 황소대신에 수레를 직접 끌고 어머니와 갔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효자를 두었냐며 칭찬을 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너무 감격한 나머지, 헤라 여신한테 자기 아들들한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영광을 내려달라고 그날밤 기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영광이 무엇이었을까요?
클레오비스와 비톤은 잔치가 끝나고, 잠을 잤는데, 이튿날 아침 깨어나지 않았다. 결국 헤라 여신한테 죽음을 당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생각하면 이런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나? 엄마가 커다란 영광을 내려달라고 했는데, 죽음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리스 사람들한테는 이게 바로 큰 영광이었다. 젊은 날에 죽어서, 영원히 젊은이로 기억된다는 게 가장 큰 영광이었다.
15. 순간 포착
12번 그림을 보자. 이 조각은 유명한 것이다. 원반 던지는 사람이다. 뮈런이라는 사람이 BC 450년대에 만든 작품이다.
뮈론(Myron)의 원반 던지는 사나이(Diskobolos), 450BC
BC 480년부터 클래식 시대가 시작한다. BC 450년까지는 아르케익에서 클래식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였다. 그래서 클래식 시대의 초기 작품이다.
쿠로스, 코레랑 많은 차이가 있다. 원반을 던지는 어떤 순간이다. 이게 아르케익 시대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것과 크게 다르다. 지금 우리가 볼 때, 사진이라는 게 있어서, 순간포착이라는 개념이 빨리 들어오는데, 한동안 그리스 사람한테 이런 개념은 없었다.
원빈 던지는 사나이는 역동적 움직임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이것은 페리클레스 전성시기의 발랄함을 나타낸다. 소피스트, 소크라테스의 활약시기였다.
뮈론이라는 아티스트가 이것을 처음으로 시도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BC 440년 진짜 클래식 시대에 오게 되면, 피디어스와 폴리클레이토스라는 2대 조각가가 등장한다.
폴리클레이토스(Polykleitos)가 조각한 도리포로스(Doryphoros)와 디아두메노스(Diadoumenos), 고전시대의 완숙미를 과시한다. 440BC
뮈론의 작품에 비해, 율동감이나 불안정한 느낌이 없고, 완벽하게 쫙 가라앉았다. 두 석상이 도리포로스와 디아무메노스다. 도리는 창, 포로스는 그걸 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창을 든 사람이다. 디아무메노스는 머리에다가 묶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도올]
플라톤 철학이 이데아를 추구했다고 배웠다. 그리고 이데아는 이상적 형상(ideal form)이다. 즉 이상적인 형상을 추구한 것이다.
플라톤은 이상적 이데아(idea) 즉, 관념적 형상을 추구했다. 이런 철학은 예술품에도 표현된다. 희랍인들의 조각은 바로 이상적 형상(ideal form)의 예술이었다.
감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가 아니라 이상적인, 기하학적인 균형을 갖춘 어떤 형상을 추구했다. 그러니깐 희랍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 속에는 단순하게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식으로 자신를 표현하기 보다는, 자기들 머릿속에 있는 이상적인 형상을 예술품에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을 보면, 아르케익 시기의 초기에쿠로스 상 같은 것이 나온다. 이런 것은 굉장히 기하학적인 영원성이 있다. 항상 일정하게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있고, 생긴 것도 자기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상을 취하고 있다. 그들의 이상적 형상은 굉장히 경직되고 융통성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르케익시대의 쿠로스(Kouros)상은 영원함의 양식적인 표현이다.
그리고 아르케익 시대가 지나면서 점점 인간화되어 간다. 폴리크레이토스의 작품을 보면, 비례가 아주 정확하다. 그렇지만 보다 인간적이고 그 속에서 단순히 영원한 세계가 아니라 뭔가 현실적인 시간을 느낄 수 있다.
원반을 던지는 모습도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현실적인 시간 속의 어떤 순간에서 영원을 포착하고 있다.
양식적 표현이 점점 살아있는 역동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바뀌어가지만 역시 이상적 형상임에는 변함이 없다.
원반 던지는 사나이(Diskobolos)는 순간을 영원으로 포착하였다.
이렇게 초시간적인 세계와 시간적인 세계 그리고 이상적인 형상의 세계와 현실적인 인간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왔다갔다하는 모습들을 희랍예술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6. 종교와 희랍미술
[김]
일단은 그리스의 모든 예술은 종교에서 비롯된다. 그리스 사람들은 이성과 수학적인 철학을 추구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피타고라스는 수학자이면서 종교의 지도자였다. 그리스 시대는 어떤 미신적인 종교의 역할이 아주 컸다.
우리한테 전해져오는 유명한 석고상들이 보기에 너무 아름다우니깐 로마 사람들도 좋아했지만, 결국에는 모두 아폴로 신이었고, 인간을 표현하는 경우에도 나를 만들어서 나를 신에게 바친다는 뜻이었다. 결국엔 모두 종교적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다.
[도올]
결국 희랍의 조각은 오늘날 보면 굉장히 이상적인 인간처럼 보이지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인간의 현실적인 몸을 표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현실적인 몸은 팔등신이 될 수 없다. 실제로 여러분들이 옷을 벗고 보면 희랍 예술이 그리고 있는 그런 이상적인 균형을 가진 몸들이 아니다.
그런데 희랍인들이 그렇게 표현한 것은 인간의 몸속에서 어떤 신적인 균형을 본 것이다. 서구 예술이 진짜 인간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하는 것은 거의 19세기 후반이나 되어서 이루어진다.
17. 아레떼
[김]
그리스 문명은 아레떼를 추구한다. 아레떼는 여러 가지 뜻을 담은 용어인데, 가장 탁월하다는 뜻이다.
옷은 모두 자연의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레테를 추구한다는 것도 발거벗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뭐든지 근본적인 모습을 추구했다.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생기면 아름답다. 그런 아름다움, 탁월함, 아레떼를 추구했다.
아레떼(arete)
훌륭함. 탁월함(excellence), 덕성(virtue)
[도올]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아레테를 보통 우리말로는 덕(德)이라고 번역한다. 영어로 virtue라고 하는데, 희랍사람들에게 아레테는 virtue가 아니라 ‘in virtue of’라는 표현에서 약간 들어난다. 이게 ‘~덕택에’라는 의미가 된다.
눈의 virtue는 눈의 덕은 잘 보는 것이다. 귀라는 것은 잘 듣는 것이고, 머리는 이성적으로 잘 생각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도로 잘 발현하는 상태를 excellence라고 한다.
가장 탁월하게 그 기능을 발현하는 상태를 아레테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게 바로 excellence다. 그게 바로 virtue다. 그러니깐 그 무엇이든지 가지고 있는 기능을 최대한도로 발현되는 상태이다.
희랍사상에서 중요한 것은 중용이라는 개념이다. 너무 모자라지도 않고, 너무 과하지도 않은 아레테가 유지되는 그러한 삶이 희랍인들의 이상이다. 거기서 balance나 시메트릭(상하.좌우가 대칭이 되는 스타일)과 같은 개념들이 나오는 것이다.
적도(適度, to metrion), 중용(中庸, mesotes)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덕의 상태이다.
희랍인들이 추구한 예술은 아무리 옷을 근사하게 입어도 소용없다. 그런 것으로 가려봐야 소용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몸을 가진 존재이고, 몸의 기능을 최대한도로 발현해야 히는 것이다.
그리고 폴리스에 사는 사람들의 상황에선 전쟁을 잘하고, 위대한 운동가가 되어 올림푸스 제전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것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 대한 이상적인 아레테를 예술품으로 구현한 것이 희랍의 모든 조각들이라는 이야기다.
18. 학문의 공통점
[도올]
천문학을 공부하고, 이런 미술사 같은 것을 공부할 때 느끼는 소감같은 것은 없나?
[김]
일단 천문학은 하늘을 쳐다보는 학문이다. 물론 지금은 하늘을 직접 쳐다보지 않고 컴퓨터를 쳐다본다. 고고학이나 고대미술그리고 고대미술을 하려면 고고학을 꼭 해야한다. 왜냐하면 그냥 미술사를 공부한다고 해서 스타일만 보면, 뭔가 부족하다. 진짜 이런 작품이 어디서 나왔는지 진짜로 만져봐야 한다. 그래서 고고학을 꼭 해야 한다.
이렇게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뭔가 우주의 모든 분야를 공부한다는 욕심을 갖고 시작했다. 그런데 이 둘이 굉장히 비슷하다. 천문학은 수학을 많이 알아야 되니깐 좀 틀리지만 연구하는 방법도 비슷하다. 자료를 얻어서 자료를 분석하고 거기에 따라 결론을 내리고, 일단 이론을 정립하고, 그것을 증명한다는 과정이 비슷하다.
슐리만이 트로이가 어디에 있을지 확인하려고 다 돌아다니면서 검사를 했다. 그리고 일단 여기에 있다는 일단 이론을 냈다. 그래서 파보니깐 맞았다. 그런 것들이 학문으로 보자면, 굉장히 비슷한 것이다.
어떤 학문을 해도 비슷하다. 모든 학문은 기본적인 공통점은 있다.
[도올]
그러니깐 지금 한 이야기는 천문학을 공부하나, 미술사를 공부하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증명할려고 하는 노력은 학문의 공통적인 노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블랙홀도 이론적으로 가설을 세운 것인데 그걸 실제 관측을 통해서 우주속에서 찾아내었다. 마찬가지로 고대미술이라는 것도 여러 자료를 검사해서 어떠한 궁전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거기에 직접 들어가서 파보고, 거기서 찾아내어 입증을 한다. 이런 공통점이 있다. 하늘에서 찾는 것이나, 땅에서 찾는 것이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19. 이성과 감성
희랍예술은 단순히 희랍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중앙아시아나 페르시아문명을 통해서 인도 간다라 예술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그 간다라 미술은 결국 우리나라까지 온다.
우리 동양문명에는 몸 전체를 조각한다는 개념이 없었다. 대게 부조 개념으로 조각을 했었는데, 통채로 거대한 석상들이 나오는 것은 주로 희랍예술의 영향이라고 본다.
희랍에서 전신상이 나오게 되는 것은 이상적인 형상, 이데아를 추구하는 그들의 경향이 그런 예술품을 남기는 동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피타고라스와 파르테논 신전의 관계를 이야기했듯이 기하학적이며 이상적인 형상은 우리 눈에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다른 곳의 조각을 보면 대게 기형이다. 사실 그건 기형이 아니다. 그 문명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느낀 것이다.
아프리카의 조각들을 보면 기형이 굉장히 많다. 그 사람들은 세계를 기하학적 도식으로 바라본 게 아니라 느낀 것이다. 예를 들면 엄마의 젖을 크게 느꼈다면, 엄마의 젖을 크게 강조한다. 이상한 조각이라고 볼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어떠한 느낌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세계문명에서 들여다보면, 다른 곳의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표현한데 반해서, 희랍인들은 굉장히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기하학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20. 희랍과 신라
[도올]
그런데 인도문명과의 관계같은 것도 공부한 게 있나?
[김]
사실 간다라 미술을 보면, 희랍미술의 조각 특히 아폴로 상을 닮아있다. 아폴로 상이 지역적으로 간다라 쪽으로 가다보면 싯다르타 왕자상이 된다. 머리 모양이 아폴로의 머리처럼 예쁜 모양이 된다. 그런데 이게 아직까지 제대로 연구되어 있지 않다.
[도올]
앞으로 희랍예술과 철학을 좀더 깊이 공부한 후, 희랍미술이 인도미술로 내려갔다가, 그 인도미술이 실크로드를 타고 다시 동양으로 가서 용문석굴이나 우리 통일신라의 석굴함까지 오는 전체적인 미술사적 흐름을 공부하면 좋겠다. 그런 계획이 있나?
[김]
그게 바로 제가 하고 싶은 것이다.
[도올]
석굴암을 연구해도 석굴암 자체를 가지고 연구할 게 아니라, 이렇게 희랍미술로부터 시작하는 전세계적인 시각을 가지고 연구해야 한다. 석굴암을 그렇게 연구를 해야만, 석굴암이 세계적인 예술로서 자리잡을 수 있다. 희랍미술을 분석하는 모든 학문적인 성과를 가지고 우리 석굴암도 연구하면 좋겠다.
김승중(金承中)
서울대졸, 프린스턴대 천문학박사(우주론 전공) 버지니아대, 콜럼비아대에서 희랍미술사 전공.
오늘 미케네에서 헬레니스틱 시기까지 변천하는 희랍미술사는 보았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희랍미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매개로 해서 우리 문명의 미술작품들을 보는 시각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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