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안동의 역사를 찾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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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소 ∥ 1855년 영남 유생 1만432명이 연명해 장헌세자(사도세자)를 추존할 것을 청원했던 '만인소', '만인소'는 공론정치를 표방했던 조선시대 정치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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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사
신라 혁거세 원년 (BC57) ∥ 염상도사(念尙道士)가 창녕국(昌寧國)을 세우다.(창녕국과 함께 구영국 (驅令國), 소라국 (召羅國)도 지금의 안동땅으로 초기 신라의 속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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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 27년(1197) ∥ 남적 김삼(南賊 金三), 효심(孝心) 등이 주(州), 군(郡)을 약탈하매 부(府)에서 이를 평정하는데 유공 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신종 7년 (1204) ∥ 동경(東京) 야별초(野別抄) 패좌(悖佐) 등의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켜 부에서 이를 평정함에 유공 하여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
충렬왕 34년(1308) ∥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쳐 목사(牧使)를 두었다.
공민왕 10년(1361) ∥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 난리에 王이 이곳까지 피난할 당시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받들어 다시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로 승격
우왕 9년 (1383) ∥ 안동도로 고쳐 원사 겸 부사를 두었다가 동 14년(1388) 부사로 환원하였다.
조선(세조) ∥ 진을(鎭) 두고 부사(府使)로 兵馬節度副使(병마절도부사)를 겸하게 했다가 얼마 안 가서 부사는 폐지했다.
선조 9년 (1576) ∥ 부(府) 관내에 패륜아가 그 어머니를 죽인 변이 있어 현(縣)으로 격하되었다.
선조 14년 (1581) ∥ 고장 사람들의 상소로 다시 부로(府) 회복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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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07.01 ∥ 안동댐 건설로 월곡면 폐지
1983.02.15 ∥ 행정구역개편으로 와룡면, 남후면, 남선면, 임하면 일부가 안동시로 편입 (서지1·2리, 수상1·2리, 수하1·2리, 정상리, 정하1·2리, 송천1·2·3리)
1987.01.01 ∥ 행정구역개편으로 풍산읍 단호1·2리가 남후면 단호1·2로 편입. 와룡면 서현2리가 북후면 대현리로 편입
1991.04.15 ∥ 임동면 지례출장소 폐지
1993.11.06 ∥ 임하댐 건설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임하면 사의 1·2리 폐지, 임동면 지례 1·2리, 수곡 2리 폐지
1995.01.01 ∥ 안동시와 안동군을 통합, 안동시로 발족(1읍 13면 18동 3출장소)
1997.07.01 ∥ 행정동 통합(1읍 13면 13동 3출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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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중일기>>가 "전선일기"라면, <<징비록>>은 "국난극복기 "라 할 수 있습니다. 임진왜란시 서애 유성룡, 약포 정탁, 충무공 이순신 과의 관계? 이순신을 <천거>한 유성룡, 이순신을 위기에서 <구한> 정탁, 나라를 <지킨 >이순신......
안동은 늘 지나다니는 길이라서 정감이 많이 갑니다..영호루보니 생각나네요 칭구들캉 고향갔다 오다가 어머님이 만들어주신 김치.파김치 나물캉 밥을 맛나게 먹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잘보고 갑니다..
영남의 3대 루(樓)? 안동의 영호루,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영호루 는 한여름밤 데이트장소이기도 했었죠 // ㅎㅎㅎ즐거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