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원로이자 前 총무원장 가산 지관대종사가 법랍 66세(세수 80세)로 경국사에서 1월 2일 입적했다.
총무원이 밝힌 입적 시간은 이날 오후 7시 55분이다. 지관 대종사의 법구는 3일 오전 11시 해인사 보경당으로 이운되며 영결식은 8일 11시 해인사에서 거행된다. 장례격은 내일 중 결정될 예정이다.
지관 대종사는 지난해 9월에도 건강이 위독해 삼성서울병원 중환자실에서 수면 치료를 받았다. 당시 스님은 보름이 넘는 치료 끝에 고비를 넘기고 퇴원한 바 있다.
지관대종사는?
말이 앞서는 것을 유난히 싫어했던 스님
제32대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2005~ 2009년 재임)은 1932년 경북 영일에서 태어났다. 1947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수지, 1953년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1957년에는 해인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1963년 마산대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1976년에는 동국대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스님은 강원 졸업 후 1970년까지 해인사 강원 강주로 후학들을 지도했다. 1970~1972년과 1993~1996년에는 해인사 주지를 지냈다.
스님은 가야산 골프장 건설 논란이 한창이던 1995년에는 훼손 위기에 처한 가야산과 팔만대장경을 지키기 위해 ‘가야산 국립공원 골프장 건설저지’ 해인총림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당시 스님은 지역 주민, 환경단체들과 함께 골프장 건설 승인 계획 전면 백지화를 위해 밤낮없이 노력했다. 이런 노력은 2003년 대법원의 불허 판결, 2011년 환경부 고시 폐지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1982년 11월에는 서울시로부터 ‘서울시 정의사회구현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문화관광부 은관문화훈장 서훈, 2001년 조계종 포교대상, 2005년 만해대상 학술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5~1998년에는 동국대 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86~1990년에는 동국대 제11대 총장을 역임했다. 스님은 이 밖에도 조계종 원로 의원, 동국학원 이사, 동국대 명예교수, (사)가산불교문화연구원 이사장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쳐왔다.
한국불교의 대표적 학승으로 꼽히는 지관 스님은 저술 활동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지관 스님은 생전에 <치문경훈> <대혜서장> <도서> <선요> <절요> <요경서설> <남북전육부 율장비교연구> <비구니 계율 연구> <불교교단 발달사> <계율론> <조계종사> <가야산해인사지> <역대고승비문총서> <가산불교대사림>등의 저술을 남겼다. 특히 1947년 펴낸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는 한국불교학 자료의 서지적 기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관 스님은 종단 내 각 종 최연소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28세에 강사에 임명돼 최연소 기록을 세웠으며 38세에는 최연소 본사(해인사) 주지에 올랐다. 1986년에는 비구 최초의 대학 총장 기록도 갖고 있다.
경 율 론 삼장에 두루 능통한 스님은 “양심을 속이는 중들은 살지 말아라. 계율이 있는 곳에 불법이 있다”는 율사 자운 스님의 말씀을 평생 가슴에 새기며 율학관련 교재를 발간, 율풍 진작을 위해 노력했다.
칠순의 나이에도 하루 4시간 이상 자지 않고 하루 10시간 이상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만으로도 주위 사람들은 매서운 경책을 받는 느낌이었다. 스님은 가산불교문화원장을 지내며 동국대에서 명예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자가용 한 대 없이 버스카드로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30년 이상 강단을 지켜온 경력에도 스님은 매번 1시간 전이면 강의 내용을 점검하며 꼼꼼하게 준비했다.
가산불교문화원장 시절 스님의 손에는 늘 보유원고 목록과 각종 사업계획서, 아이템 노트가 들려 있었다. 스님은 이 노트에 수시로 메모를 하면서 불교연구에 관한 생각을 항시도 잊지 않았다.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설립 때부터 스님과 함께 했던 현원스님은 강원을 졸업하던 1979년 경 해인사에 계신 지관 스님을 찾아갔다. 당시 현원 스님은 “스님께서는 아는 것도 많으신데, 왜 강사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종단에서는 법상에 올라서 법문을 해야 대접 받는데, 스님도 강의 스타일을 좀 바꿔보시는 게 어떠십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지관 스님은 가만히 현원 스님을 바라보더니 “니나 공갈 많이 치고 살아라. 평생 동안 대장경 다 보고 배워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도 바쁘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지관 스님은 말이 앞서는 것을 싫어했고, 한 가지라도 열심히 실천행을 하면 종단도, 자신도, 모두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불교중흥의 초석이 될 인재 양성과 교학 발전에 독보적인 업적을 창출한 지관스님은 한결 같은 모범으로 불자들에게 살아 있는 법문으로 존경 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