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식적으로 수능이 쉬워야 사교육이 잠잠해질거라 믿고 있다. 교육당국도 그런 믿음에 근거해 변별력이 떨어지는 ‘물수능’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사교육인플레를 잡기위해 수능문제 난이도를 낮게 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런 믿음과는 반대되는 주장이 인터넷 토론방에서 제기되었다. 주장이 일반적인 상식을 뒤엎다보니 많은 관심을 끌었고 토론참여가 뜨거워 5일째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개천의 용을 누가 다 죽였을까?
‘스켑티컬레프트’라는 싸이트에서 아이디 ‘ mathlove’가 “누가 개천의 용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었나?”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쟁은 시작되었다. 상.하 두편으로 이어진 글에서 그는 ‘개천의 용’ 즉, ‘가난한 집의 수재’들의 서울대 합격 스토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만든 것은 쉬운 수능인 ‘물수능’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예전에는 사교육을 시켜도 어느 정도 이상의 점수는 범접할 수 없어서 효과에 한계가 있었는데 이제는 ‘실수안하기’경쟁 또는 ‘구구단 1,000문제 누가 많이 푸나?’ 식의 쉬운 수능이 되면서 사교육효과에 한계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이공대의 경우 과거에는 전국 상위 1.5% 내에 들어야만 입학이 가능했는데 요즘은 수능 전국 상위 2-5% 학생도 진학한다고 한다. 이정도면 사교육으로 극복이 가능한 영역으로 사교육으로 무장한 범재들이 수재들과 대학입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게 되면서 ‘개천의 용’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수능시험장
‘mathlove’는 실제로 지난 몇 년간 특목고나 외고 출신의 서울대입학자가 급감했고 서울대공대교수의 얘기를 들어봐도 2000년대 이후 이공대 입학생들의 평균적 수학능력이 급격히 떨어진 것이 통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사교육에 기대를 가지지 못하도록 수능을 아주 어렵게 출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97년도 수능(96년말 시행)의 경우 수학만점자가 10명뿐일 정도로 어려웠는데 그런 식의 수능이 되어야 포기할 사람은 포기하면서 사교육인플레도 줄어들게 된다고 얘기했다.
주장에 일면 납득되면서도 어느 면에선 불편하기도 하고 또 위험하기도 한 이 주장에 대해 즉각 많은 댓글과 답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쉬운수능'과 교육양극화는 관계없다
‘제임스탕’은 강남8학군의 서울대입학률은 학력고사 시기 4%에서 20%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오히려 수능실시 기간에는 18%로 내렸다며 쉬운 수능이 교육양극화를 부추기지 않았다는 반증을 제시하였고 ‘kms'는 한국의 사교육열풍은 쉬운 수능이 점수를 올려줄것이라는 합리적 분석에 의한 선택이 아니고 단지 부모의 과도한 자식사랑이 빚은 비합리적 교육열에 의한 것일뿐 쉬운 수능과 사교육열풍은 관계가 없다는 반론을 폈다.
특히 가장 지지를 많이 받은 반론은 사라진 것은 ‘용’이 아니라 ‘개천’이라는 주장이었다 ‘제봉’ 등이 주장을 하였는데, 예전엔 가난하고 참고서도 비싸서 못사는 형편이 일반적인 수준이었지만 요즘은 왠만하면 사교육을 받는 세상이 되는 바람에 사교육이 없는 개천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개천이 없는데 개천의 용은 당연히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 ‘mahlerian’은 입시제도의 불합리로 서울대 갈 학생이 서울대를 못간다 하더라도 아주 실패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조금 못한 수준의 학교로 간다면서 그것 때문에 그 학생이 좌절하거나 망가진다면 그것은 서울대 일극체제를 문제삼아야지 입시제도 탓을 할 수는 없다는 반론을 폈다.
그래도 사교육이 '쉬운수능'에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 ‘ mathlove’의 “쉬운 수능이 사교육열풍을 키워 개천의 용을 죽여버렸다”라는 주장은 참신하고 눈길이 가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엔 많은 약점들이 있다. 이미 토론자들이 지적했듯이 그는 ‘개천’과 ‘용’을 구분하지 못하는 실수를 저질렀고 쉬운 수능이 교육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증거도 보여주지 못했다. 반론자들도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는 반증할만한 자료를 가지지 못해서 토론은 ‘주장’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의 주장에서 부절적한 조건과 전제를 쳐내더라도 “사교육이 쉬운 수능에 효과를 발휘한다”는 가설의 뼈대는 생명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많은 토론자들이 여기에 대해선 일리가 있다면서 공감을 표시했는데, 이 것만 남더라도 그의 주장은 사교육효과가 과장되었다고 믿는 정책 담당자에겐 치명타가 되는 것이다. 사교육의 효과를 인정하는 즉시 교육계는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 주장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엔 사교육과 반복과 실수줄이기 학습이 혼동되었다는 것이 지적되어야 한다. 쉬운 수능에 효과가 있는 것은 반복학습이지 심화학습이 아니다. 원래 사교육은 심화학습을 위한 것인데 한국은 사교육이 학생의 학습시간을 늘리는 반복학습의 효과를 노리고있다 본질적으로는 반복학습 효과인데 그것이 사교육이 주도하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은 분명 잘못된 주장이다
이 경우 사교육과 겹치는 반복학습의 노력파 학생이 손해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 공부를 해도 안되느 경험을 하는 노력파들의 절망과 좌절의 사회적 비용도 계산되어야 한다. ‘상상의 자유’는 이에 대해 "인공적 엘리트보다 자연적 엘리트를 선호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라는 날카로운 댓글을 남겼다.
한국교육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창 달아오른 논의는 이제 큰 틀을 건드리기기 시작했다 ‘하킴’은 설득력있긴 하지만 부질없는 얘기로 보인다며 대학입시의 문제는 수능시험의 난이도가 아닌 보다 근본적인 부분을 봐야 한다고 얘기하면서 한국의 명문대효과가 너무 크고 대학교육의 질이 낮은 것을 문제삼았다. 수능시험에서 아무리 변별력을 조절해봐야 명문대를 향한 학부모와 학생의 욕구를 조절할 수는 없기 때문에 부질없다는 뜻이다.

미국중학생
‘오돌또기’는 한국 교유의 문제는 과잉투자라는 점을 지적했다.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과다하게 투자하고 학생들의 진을 다 빼놓는데 투자대비 효율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너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가 번역해서 올린 '게리베커'의 시험성적과 경제적 성과라는 글에는 미국의 학생들이 경쟁국 학생보다 낮은 점수를 받지만 다른 나라보다 경제적 생산성은 높게 유지하고 있다면서 경제생산성이 교육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언급한다.
막판에 토론과 관련하여 ‘mahlerian’ 참고자료로 올려준 양신규교수의 “미국의 교육”글은 토론의 마지막을 장식한 하이라이트였다. 양신규 교수의 글에 의하면 이렇다.
미국에선 average(평균)나 ordinary(보통)을 사람에게 붙이면 쌍욕이 된다고한다. 그들은 어느 부분에선 꼴찌라도 어떤 부분은 잘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성이 시스템에 고대로 녹아서 미국의 교육은 복종하는 인간이 아닌 혁신하고 저항하는 인간을 키운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절대 반복학습을 시키지 않고 시험 잘보게 하는 인간을 키우지 않는 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일본의 교육시스템을 베꼈고 또 일본은 독일의 시스템을 베꼈는데 이 나라들은 파시즘과 군국주의의 나라로서 교육이 “혈통주의적 민족주의 근대화 프로젝트”과 “황국신민교육의 일환으로 결국 사회에 충실히 복무하는 평균적인 인간을 바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의 차이가 인간자원의 차이를 가져왔는데 지식기반문명의 초입인 21세기에 당연히 미국형 교육이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능한 인재선발시스템이 사교육열품의 원인이다.
정말 사교육열풍을 없앨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시험의 비중을 줄이고 인터뷰와 자기 소개소와 추천서로 학생을 선발하면 사교육은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다. 사교육 열풍의 직접적인 원인은 시험문제를 통한 기계적 선발제도 때문이다. 기계적인 시험제도가 아니라 대면 또는 서면접촉을 통한 선발과정으로 대학생을 선발한다면 사교육은 당장 사라질 것이다.
실제로 미국 등 많은 서구 나라들이 이런 식의 선발시스템이다. 선발시험은 참고자료일뿐이다. 그렇게 해도 미국의 인재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경제적 성과도 많이 내고 있다.
한국이 이와 같은 선발제도를 시행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신뢰의 부족이다. 보나마나 돈이나 인맥 등을 동원한 부정이 만연할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곧 선진시장경제로 들어선다는 한국이 시장경제의 기본 중에 기본인 신뢰가 부족해서 교육제도를 이렇게 개판 친다는 것은 분명 문제있다. 수능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시장의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신뢰만 있다면 교수가 학생을 믿고 학생도 교수를 믿고 사회가 교육계를 믿는다면 이 문제는 단박에 해결된다.
학교도 수능같은 기계적 시험이 아닌 여러 가지 자료를 활용한 인재를 선발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집담보로 대출이나 잡는 금융능력밖에 없는 한국금융산업이 론스타에 휘둘리는 것처럼 수능만 보고 인재나 선발하는 한국은 미국의 인재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쩌면 한국의 시험제도를 무력화 시킨다는 것은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것인가라는 문제처럼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하면 우리는 서서히 고양이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방울 달래 잡아먹힐래? 어떤 위험을 각오하더라도 고양이 목에 방울은 달아야 한다.
by 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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