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모마리아님! (영성반 강좌)
※ 1시간여 동안 이어진 이 강좌는 성모신심 그리고 성모님의 기적과
교회 전통 안에서 드러나신 성모님에 관한 내용으로서 교구 은퇴
하신 신부님께서 가르멜 수도원에서 하신 강의입니다.
1) 성모신심
저는 기회 있을 때마다 성모님에 대해 강론합니다. 여기 가르멜 수녀원에는 특별한 날이 아닌 한 매주 토요일마다 성모신심 미사를 봉헌합니다. 그러므로 자연적으로 성모 신심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늘 강조하는 것은 성모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손해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합니다. 사실입니다. 체험적으로 성모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신자들이 기도한다 하면 대개 묵주신공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성모님을 기리는 성지들이 있어 성모신심으로 열심한 신앙인들이 즐겨 찾곤 합니다. 그중의 하나는 대구 성모당입니다. 이 성모당은 유명하여 대구시내 택시기사에게 “성모당 갑시다.” 하면 묻지 않고 그냥 데려다 줍니다.
이 성모당은 정말로 유명합니다. 장소와 이름으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기도하여 은혜를 받는 기적의 장소로 유명합니다. 그러므로 매일 사람들이 몰립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모당 기도꾼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습니다. 특히 입시철이 되면 더 많이 몰립니다. 저도 대구대신학교에서 교수로 일할 때 그 곳을 자주 찾곤 하였습니다. 사무실에서 바라보면 바로 코앞인데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직접 가서 대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어 가끔 찾아가곤 했습니다. 신학생들과 함께 성당에서 끝기도를 바친 후 내려오면서 가끔 들리곤 했습니다. 그 시간에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아 성모상 앞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가 좋았습니다.
거룩한 그 성모당의 유래에 대해 말하려면 대구대교구의 초대 교구장이셨던 안세화(플로리앙 드망즈, Floriant Demange) 주교님(1875년 출생. 교구장 1911년 4월 8일-1938년 2월 9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에서 일하시던 신부님은 1911년 4월 8일 조선대목구(서울대교구)에서 분리된 대구대목구의 교구장 주교로 임명을 받아 그해 6월 26일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해 7월 2일 복되신 성모왕고첨례(현재: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5월 31일) 미사에서 루르드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 서약서를 만들어 봉헌하였습니다. 성모신심으로 뛰어난 분이라 그 주교님의 이런 정신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로 어려웠던 그 시절. 선교사로서 이국땅에서 힘들고 교구의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던 그 열악한 시절에 호소하고 기댈 분이란 강력한 전구자이신 성모님뿐이라고 확실히 믿은 주교님의 영성이 이런 식으로 드러난 것으로 보입니다. 성모님의 그 축일에 성모님께 드리는 서약서는 그분이 매일 쓰신 일기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그 일기의 한 부분을 그대로 읽어드리겠습니다.
“대구에 와서 첫 번째로 맞는 주일이다. 나는 루르드의 성모님에게 ‘만약 교구를 분할할 때 받은 교구 기금에 의지하지 않고 첫째 주교관을 건설하고, 둘째 신학교를 건설하고, 셋째 주교좌성당을 증축할 수 있게 해 주신다면, 주교관을 위해 예정된 대지 안의 가장 훌륭한 장소에 루르드 동굴과 가능한 한 유사한 동굴을 세워 드리겠다.’고 공식으로 서약했다. 이 서약서는 내가 직접 세 개의 사본을 만들었고, 여기에 나와 참석한 선교사들, 그리고 유지 교우들이 서명했다. 사본 하나는 교구 고문서고에 보관시켰고, 두 번째 사본은 루르드의 성모상 아래인 성당의 중앙 제단 뒤에 놓았으며, 세 번째 사본은 루르드로 보냈다. 또 그 문서를 복사해 모든 선교사들에게 보냈다.”(드망즈 주교, 드망즈 주교 일기,가톨릭신문사,1987,21쪽)
성모님께서 불란서의 루르드에서 1858년에 발현하셨으니 1875년생인 주교님은 어릴 때부터 묵주의 기도를 배워 성모신심을 익혔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빠리외방선교회 소속 사제들의 성모신심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드망즈 주교님도 불란서인으로서 당신 나라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한 신심이 각별했을 것입니다. 그분이 성모당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서약서를 작성하신 것을 보더라도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대단히 돈독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분의 열성으로 시작된 공사들(주교관, 신학교, 주교좌성당)은 무명 은인이 보내준 성금으로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그 서약서에 나와 있듯이 모든 일들이 끝난 후 주교님은 성모당을 건립했습니다. 그리고 1918.10.13일에 성모당 봉헌식을 성대하게 거행하였는데, 그날 장엄했던 행사에 대해서는 주교님의 일기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위의 책,258-260쪽).
성모당을 찾아가보면 맨 위에 라띤어로 1911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s 1918로 기록되어 있는 문구를 보게 됩니다. 직역하면, “원죄없는 잉태의 서원으로부터”이며 계획한 일들이 1911년에 시작되어 1918년에
모두 완성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성모님의 죄 없는 잉태를 좀 더 설명하면, 루르드의 마사비엘 동굴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소녀 베르나뎃따에게 “나는 원죄 없는 잉태이다.”라고 당신의 정체를 알리신 말씀에서 유래합니다. 교회 초창기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잉태되셨을 때 구세주이신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미리 입으사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고 믿어오던 신심(원죄 없는 잉태, 즉 무염시태(無染始胎),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을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께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이란 회칙을 통해 믿을 교의로 장엄하게 선포하였습니다. 루르드의 성모님 발현은 무염시태 교리가 선포된지 4년 후 성모님께서 불란서의 루르드에서 발현하심으로 이 교리를 확증해주셨다는 의미도 됩니다. 무식한 시골 소녀 베르나뎃따가 무염시태라는 교리를 알리가 없었는데 소녀의 말을 들은 본당신부님도 이상하게 여겼다고 하니 신비한 일이 일어난 것만은 확실합니다.
대구 성모당에는 가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도 많아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습니다. 풍문에 의하면 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의 어머니들이 성모당에서 기도하여 그 자녀들이 성소의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신부님은 사제성소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성모당 출신이야.”라고 하자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신부님도 “나도 그래.”라고 화답한다고도 합니다. 또 어떤 신부님은 아주 어릴 때 몸이 정상이 아니었는데 모친이 매일 그 아들을 데리고 성모당에 가서 기도하면서 “만일 아들의 병을 낫게 해주시면 사제로 봉헌하겠습니다.”라는 서원을 성모님께 발하였습니다. 오랜 기도 끝에 아들의 병이 나아 건강한 몸으로 신학교에 입학하고 사제가 되어 훌륭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또 어떤 풍문에 의하면 누가 거기서 눈물을 쏟으면서 간절히 기도하더니 회개했다고도 하고 거기서 기도하여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들은 너무 많아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소문이니 100% 믿을 수는 없지만 사실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성모님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 요한복음 2장 카나 혼인잔치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잘 합니다. 여기서 성경 주석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그곳에서 일어난 이적(異蹟, semeion)은 제자들에게 믿음(pistis)을 주었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행하신 그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성경학자들 중 제가 좋아하는 Raymond Brown 신부님의 요한복음 성서주석서(Raymond E. Bro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the Anchor Yale Bible, Yale University Press, New Haven and London,1966)가 유명합니다.
학생 때 김병학 교수 신부님은 Brown 신부님의 그 저서를 교과서로 사용하면서 semeion(이적)에 대하여 강조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사제가 된 후에도 그 주석서를 보면서 Brown 신부님의 해박한 지식에 탄복하기도 하지만, 그분은 수도자이므로 그 이적사화에서 성모님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습니다.
그 이적사화의 핵심은 semeion(이적)을 통해 제자들에게 pistis(믿음)를 주었다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 이적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때가 오지 않았는데도 성모님의 개입으로 이적을 하셨다는 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요한 복음 2장 1절-11절까지를 상세히 읽어보면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당신의 어머니를 “여인”(guyne)으로 부르십니다. 언뜻 들으면 성모님을 무시한 용어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Raymond Brown 신부님은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의 guyne는 귀부인에게 사용된 칭호이지 일반 가정부인을 부르는 호칭은 아니라고 극구 변명합니다. 하긴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친을 함부로 부르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성모님은 혼인잔치집의 딱한 사정을 보시고 걱정하시며 주위를 둘러보시고(mater circumspiciens)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십니다(mater providens). 어머니는 기적을 못하시지만 옆에는 강력한 아드님이 함께 하십니다. 당신의 아드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이십니다. 어머니가 자기가 낳아 키운 아들을 모르실리가 있겠습니까? 온전한 사람이자 온전한 하느님이신 줄을 잘 알고 계셨지요.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밥을 떠먹이실 때도 천사의 말씀대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된 구세주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자렛에서 아드님과 30여년을 함께 사실 때 종종 특이한 일이 일어난 것도 기억하고 계셨을 겁니다.
저는 여기서 위경(僞經, apocrypha)이긴 하지만 예수님의 행적을 전하는 토마 복음의 일부를 인정하고 싶습니다. 동네 또래들과 놀던 소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이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고 다른 특이한 일들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상상해 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구원의 신비에 대하여 알려드렸을 겁니다. 이러한 아들에 대해 샅샅이 알고 계신 어머니로서 잔치집의 딱한 사정을 보시면서 가만히 있지 않으신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잔치집에 술이 떨어졌습니다. 술! 인간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술이란 표현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편(104,15)에도 나옵니다. 잔치집에 필수적인 음료인 술이 떨어지자 사람들이 수군거렸을 겁니다. “도대체 사람들을 불러놓고 술이 없다니” 하는 소리가 들려왔을지도 모릅니다. 주인의 부탁을 받지는 않으셨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딱한 사정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성모님께서 가만히 있지 않으셨습니다. “이 집에 술이 없구나.” 당신의 아드님이 들으시도록 딱 한 마디 하십니다. 어머니의 말씀입니다. 효성이 지극하신 예수님이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무시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착한 아들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어머니, 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 하시지만 성모님은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으시고 일꾼들에게만 말씀하십니다. “저분이 시키는 대로만 하세요.” 곤란하게 되신 예수님. 기적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때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러나 어머니는 부탁하시고, 곤란해진 예수님이시지만 어머니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십니다. 효성이 지극하신 예수님이십니다.
“물독에 물을 채워라.” “이제는 그것을 퍼서 과방장에게 날라다 주어라.” 성경은 그 결과를 이렇게 전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전통적으로 성모님께 드리는 호칭기도 중에 근심하는 이의 위로, 신자들의 도움, 즐거움의 샘, 병자의 나음 등이 있습니다. 이런 호칭들을 하나로 모으면 마리아는 능하신 분(Maria est potens)이십니다. 스스로 능하신 분이 아니라 전능하신 아드님이 옆에 계시니까 능하십니다. 아드님의 든든한 후원을 입고 계시니 그렇습니다. 카나 혼인잔치의 기적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성 베르나르도의 말씀처럼 성모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이는 누구나 손해를 보지 않고 도움을 받습니다.
성모신심에 대하여 이야기하려면 할 말이 제법 많습니다. 몇 개만 더 소개하겠습니다. 교구 사제들의 연중피정 강의를 부탁받고 여러 교구에 간적이 있었는데, 어느 교구에서 피정 마지막 강의를 마리아 신심으로 하면서 MARIA라는 글자를 한 자 한 자 다음과 같은 식으로 풀어 신심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mater advocata regina immaculata anawim. 다소 저의 주관적인 신심이긴 하지만, 성모님은 어머니, 변호사, 여왕, 죄가 없으신 분, 아나윔의 모범이시라고 하면서 사제생활에 성모신심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 제 강의를 들으신 어떤 분이 성모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하니까 좀 못 마땅하셨든지 강의 후 “신부님 좀 보십시다.” 하더니 마리아도 여느 그리스도인들처럼 하느님을 섬기는 한 신앙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독일 어느 성당의 성모상이 밖으로 향하여 있지 않고 성당 안을 향하여 세워져 있다는 예를 드셨습니다.
성모상이 밖으로 향하고 있으면 공경을 받는 뜻이지만 안으로 향하고 있으면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섬긴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는 투가 성모신심을 강조한 저의 마지막 피정 강론이 마음에 들지 않으신 인상이었습니다. 저도 그분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며 여느 신앙인들처럼 마리아도 하느님께 기도하는 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조용히 듣기만 했습니다. 아, 이런 사제도 있구나.
그런가 하면 신앙생활이 재미가 없고 성당에서 하는 일들을 꼴불견으로 보며 사제.수도자들과 일부 신자들의 생활을 형편없다고 비판하던 신자가 신앙생활을 접기로 하고 벽에 걸려있는 십자가를 태워버리고 묵주도 집어 던지며 살아가다가 무서운 꿈을 꾸고 난 후부터는 회개하고 묵주를 다시 구해 잘못을 뉘우치면서 매일 수십 단을 바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로마에서 힘들었던 종합시험을 치르고 신학원으로 돌아오면서 여행사에 들려 비행기 표를 사서는 그 다음 날 예루살렘 성지로 떠났는데, 마침 유명한 성경학자 신부님들 몇 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순례지는 루르드와 피타마라고 했더니, 그들 중 한 분이 막 화를 내시면서 거기를 왜 가느냐고 야단을 치시기에 저는 잠시였지만 상당히 혼란을 겪은 일도 있었습니다. 경력을 보니 60년대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공의회가 한창 열리고 있던 그때 성모신심이 개신교와 전개되는 일치운동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던 일부 신학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만 대면 우리나라에서는 개신교 학자들까지도 존경하는 유명한 박사 신부님께서 당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유럽의 성지들을 순례하시다가 성모님의 성지에 들리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여행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데 그 신부님은 안 하시니까 그 여행 안내자(성지를 안내하다 열심한 신앙인이 된 신자)가 신부님을 보고 “신부님은 왜 묵주신공 안 하세요? 신부님은 어머니 없어요?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십니다.” 라고 불만 섞인 소리로 한 마디 하자 그 주위에 있던 신자들이 신부님께 감히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해도 그 안내자는 한 번 더 그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 말에 충격을 받은 그 위대한 학자님께서 그날 이후로 묵주의 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소문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의 은총은 신기한 방법으로 작용합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똑똑하고 지혜로운 것 같아도 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발버둥 친다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의 한계성을 안다고나 할까요? 이런 맥락에서 왜 기도하느냐? 고 묻는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기도 중에 가장 좋은 기도는 단연 찬미와 감사의 기도입니다. 확실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사랑이시므로 피조물인 인간은 마땅히 하느님을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섬겨드려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 하느님께서 알아서 우리에게 필요한 은혜도 주신다는 신심은 올바른 신심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완벽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이나 관상기도를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고차원의 기도도 있습니다. 수도자들과 사제들뿐 아니라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기도를 합니다.
묵주의 기도는 신비에 따라 묵상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신비 넷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지상 생애의 중요한 부분을 묵상하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마치 복음서의 축소판 같기도 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만민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므로 때가 찼을 때 가브리엘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시어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놀라운 사건부터 시작하여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수행하시고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의 뒤를 성실히 따르셨으며 인류를 위해 당신 자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시는 그 순간에도 아드님과 함께 하신 성모님은 돌아가시자마자 영혼과 육신이 결합되어 하늘로 올림 받으시고 천상천하의 모후로 옹립되신 놀라운 신비를 묵상하면서 바칠 때 묵주의 기도는 예수님과 성모님의 지상생애와 함께 하는 훌륭한 시간입니다.
입으로는 주모송과 영광송을 염하면서도 묵주알을 굴리는 나의 정신과 마음은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 파견되신 가브리엘 대천사를 만나 나자렛의 성모님의 집으로 향하다가 즈가르야 사제의 집으로 눈을 돌려 마니피캇을 노래하는 성모님과 함께 천상으로 향하고 베틀레헴의 구유에서 동방박사들을 만나고 성전에서 봉헌되신 예수님.....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나자렛의 사생활을 뒤로 하신 예수님. 요르단 강의 세례와 성삼의 현현을 묵상하다가 카나의 혼인잔치로 눈을 돌려 성모님의 부탁으로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 그리고 열심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셨고 타보르산에 오르사 당신의 몸을 변화시키시고 구약을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아와 더불어 장차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는 대사건을 의논하신 후 성체성사를 이루시고 키드론 골짜기로 향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며 피땀이 흐르도록 홀로 기도하시는 그분과 함께 애통하며 무수한 고통을 당하시고 사형선고를 받으사 70킬로 이상 되는 무거운 십자가를 지시고 800미터 정도 골고타 언덕을 향해 걸어 올라 가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 그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신 성모님 그리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시어 어머니와 제자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시는 예수님과 함께 기뻐하며, 성령을 받으신 어머니와 사도들과 함께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찬미하며, 하늘에서 영광을 받으시는 어머니를 그리며 천상에 대한 희망을 품고 도우심을 청하는 이 기도는 입놀림과 정신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 되는 좋은 묵상기도입니다.
이런 고차원의 기도는 아니지만 구은의 기도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덕의 성장을 위하여 유혹을 이기고 신앙인으로 인내를 다하여 성실히 살아가도록 구은의 기도를 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고 부족한 것이 많으므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와주십시오.” 라고 애원합니다.
“도와주십시오.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직장을 구하게 해주십시오. 이번 구직 시험에 꼭 합격하게 해주십시오. 암으로 고생하는 제 아들을 살려주십시오. 전방에서 근무하는 제 아들을 도와주십시오.....” 등등의 기도를 하기도 하고 미사를 청하기도 합니다. 성당에서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 않습니까? 하느님은 전능하시니 은혜를 청하고 성모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장 잘 전달하시는 강력한 전구자라고 하시니 도와주시도록 청하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는 마땅히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고 봅니다. 청원기도를 하는 신자를 보고 기복적인 신앙인이라고 비판할 수 없습니다. 주 예수님께서도 청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런 의미에서 묵주의 기도는 아주 훌륭한 청원기도입니다.
본교회에서 이탈된 개신교 신자들은 성모님의 전구를 빈다고 하면 우상이라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저의 가까운 친척 중에 장로님이 계시는데 그분은 수시로 신자들로부터 기도부탁을 받는다고 합니다. “장로님은 기도를 잘 하시니 저의 집안을 위해서 기도 좀 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제 아들놈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 좀 해주십시오. 매일 새벽기도 나가시잖아요. 부탁드립니다....” 그분은 그 교회에서 존경받는 장로님이시라 이런 부탁을 가끔 받는다고 자랑삼아 말하기도 합니다. 훌륭한 장로님도 그 어려운 신자의 가정을 위해 기도를 드리는데 하늘에 계신 성모님께서 간구하는 사람들의 청원을 하느님께 전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뿐 아닙니다. 개신교 TV를 보거나 라디오 방송을 들어보면, 어느 목사나 전도사도가 등장하여 기도를 해주는 프로가 있습니다. 신도들이 전화로 기도를 청하면 감정을 넣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은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줍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TV에 “콜링 갓”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영어로 고친다면 calling God일 것입니다. 거기에 등장하는 분은 전화를 받아 기도를 해줍니다. 아주 감동적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사건이 터지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연락하여 “중보의 기도”(개신교 용어. 우리는 중재의 기도라고 함)를 바칩니다. 같은 지향으로 여럿이 뜻을 모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훌륭한 장로님이나 신자들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면서도 하늘에 계신 성모님께 부탁드리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는 이들은 생각을 좀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성모님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그 사람들. 주님 보시기에 다소 불쌍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할 말이 많지만 간단히 한 두 말씀만 더 드리겠습니다.
모세는 하느님 대전에 나아가 범죄 한 백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여 전 백성이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도가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탈출 32:31-33;시편 106,23). 예언자 사무엘 역시 온 백성을 위하여 중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1사무 12,23). 참으로 감동적인 내용은 에스테르기에 나옵니다. 하만이라는 고위 관리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몰살시키려는 계교를 꾸미고 있을 때 에스테르는 단식을 하면서 화려한 옷을 벗어던지고 고복을 입고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는 민족을 위해 전능하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에스테르기). 기도의 결과로 아스라엘 백성을 죽이려던 그 고관 하만이 대신 죽게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말라키아 등 여러 예언자들도 백성을 위해 전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히 예언자 예레미아는 백성과 지도자들의 간청을듣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예레 42,1-12). 사도 성 바오로 역시 당신이 세우고 신앙 안에서 상호 교류하던 신자들을 위하여 늘 기도하셨습니다(1테살 3,10;로마 15,30). 이와 같이 성모님의 전구하심을 청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자, 살아가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제인 저에게도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군대생활을 비롯하여 유학생활은 물론이고 사목생활 중에도 어려운 일들이 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도와주시도록 주 성모님께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성모님의 전구하심을 비는 기도 중에 묵주의 9일기도가 있습니다. 청원의 기도와 감사의 기도로 되어 있는데 시일이 제법 걸리는 기도입니다. 이 외에도 100단짜리 묵주를 구해서는 매일 이를 다 채우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부족한 것이 많고 청할 것이 너무 많아 100단도 모자란다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에게 베르나르도 성인이 말씀하신 것처럼 성모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손해 보는 일은 없다고 말해 줍니다.
묵주의 기도는 바치기 쉬운 기도입니다. 기본적인 기도 주모송과 영광송 그리고 사도신경과 신비만 익히면 쉽게 바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어디서나 할 수 있습니다. 방에서나 성당에서나 산책을 할 때나 운전을 하면서도 또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이 기도를 하면서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 잠이 잘 안 오는 사람들은 이 기도를 바친다면 많은 효과를 보리라 확신합니다.
로마에서 일할 때 정진석 추기경(그 당시 대주교)님이 회의 차 로마에 오셨습니다. 빛의 신비가 나온 후 즉시 “장미꽃다발”이란 책을 쓰셨는데 교황님을 알현할 때 한 권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저보고 영어로 그 책을 간단히 요약해달라고 하셔서 해드렸습니다. 후에 교황청 신문 L’osservatore Romano에 실리기도 했는데, 그 때 산책하면서 추기경님과 나눈 대화 중에 묵주신공을 하루에 얼마나 하시느냐고 여쭈워보았더니 매일 적어도 모든 신비는 다 한다고 하셨습니다. 20단을 하신다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60년대 유럽에서 공부한 교수 신부님들 중 어떤 분들은 성모신심이 좀 부족 한 것 같았습니다. 그분들은 묵주신공을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인상을 주었고 성모신심이 개신교와 하고 있는 일치운동에 방해가 된다는 것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그 때 상당히 마음의 번민을 느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해온 그 기도를 결코 등한시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개신교(reformed church)는 정통교리에서 빗나간 그리스도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들 구미에 맞지 않은 성경이나 교리 및 전례 등은 모두 빼어버리고 자기들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골라 만들어서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성공회를 제외하고 모든 개신교인들은 공식적으로 성모마리아를 공경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성모공경을 우상숭배라고까지 합니다. 특히 올해(2017년)는 마르틴 루터 신부가 로마에 대항한 95개조를 발표한 5백주년이 되는 해라 하여 개신교는 그 역사를 상세히 다루면서 교회쇄신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중세기 말부터 유럽의 여러 곳에는 복음의 정신과 거리가 먼 삶을 사는 사람들, 특히 교회의 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가장 큰 원인을 정교분리(政敎分離)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으로 봅니다. 더 근원적으로는 그들이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틴 루터 신부가 나오기 전에 이미 복음의 정신에 따라 살자는 운동이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단순한 삶을 중시하며 가난하게 태어나셨고 검소하게 사셨으며 모든 것을 내놓으신 주 예수님을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딸리아의 아씨시에서 그런 삶을 사신 프란치스꼬 성인이 대표적인 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은 성모님을 잘 공경했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마르틴 루터 신부도 성모님을 공경하고 성모님의 축일마다 특별 강론을 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빗나간 성모신심을 비판한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하겠습니다.
마르틴 루터 신부는 교회의 전례력에 따라 성모 마리아 축일에 설교했는데, 1520년에는 성모무염시태 축일(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축일, 12월 8일)에, 1523년에는 성모승천대축일(8월 15일)에, 1540년에는 주님 탄생예고 축일(3월 25일)에, 1540년에는 성모님 엘리사벳 방문 축일(7월 2일)에, 그가 귀천하던 해 1546년에는 주님 봉헌 축일(2월 2일)에 설교했습니다. 1525년 성화상 파괴자들에 대해서는 십자가나 성모상을 수중에서 떼어낼 수 없다고 하였고 1529년판 작은 기도서에 삽입된 축일에는 성모 마리아의 이름이 성 아녜스,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성 암브로시오, 성 제오르지오, 성 우르바노 교황, 성 에지디오 등과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주해한 “마그니피깟”
(Magnificat)은 중세 신비가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서 마리아를 온유하신 어머니로 찬미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에 대한 그의 사상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1523년부터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은 전부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 폐지는 본래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 만(solum propter abusum)이라는 부언을 달았습니다. 사실 아비뇽 유배(교황청을 로마에서 프랑스 남부 Avignon으로 옮겨 1309년부터 1377년까지 머무르게 된 사건을 말한다. 약 70년동안 머물렀으며 그 시기에 모두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서 생활하였고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이전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이후 일부 신심에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일부 광신자들이나 무지한 이들이 마리아를 마치 하느님 위에 있는 여신처럼 표현한 것이나 주일에 미사는 참여하지 않아도 성모상 앞에 가서 기도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신심 등은 분명히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중심에서 빗나간 신심은 마르틴 루터만이 아니라 중세기 이후 여러 사람들이 비판하고 바로 잡으려 했으므로 그도 그 맥락을 따랐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마리아에 대한 그 당시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모범자로서 마리아를 공경한 것만은 확실합니다. 마리아가 신앙인의 위로(Trost)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십자가를 지고가신 당신 아드님의 뒤를 성실히 따라가신 신앙의 모범(Vorbild)으로서 마리아를 평가한 그의 태도는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현대 교회는 제 2차 바띠깐 공의회 이후 갈라져 나간 개신교와 일치하려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일치운동의 맥락에서 공동번역 성경이 나왔는가 하면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가 발족되어 관계자들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문은 동일한데 교파 간에 번역이 달라 이를 해결하는 용어사전도 나온다고 하니 진일보한 행보라 기대해볼만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들, 특히 성령기도 하는 이들은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기도하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묵주의 기도를 하는 그날이 교회일치 운동의 종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 일치는 행정적인 일치가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일치일 것입니다. 교회일치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모든 그리스도교 교파가 교황님 밑으로 들어가는, 소위 행정적인 흡수통합 같은 일치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 일치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이것은 이상이고 세상종말까지 그런 일치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기도하고 세상의 평화와 구원을 위하여 함께 봉사하는 일치가 하루 빨리 도래하는 그날을 기대하면서 일치와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전구를 간절히 빌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멕시코의 과달루뻬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의 성지를 순례하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되어 그 성지를 순례하게 되었는데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확신합니다. 순례 기간 중 늘 기쁘게 지냈습니다. 그런데 호텔의 승강기 안에서 우리나라 여성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여성이 “과달루뻬 성지에는 기적이 일어난다는데 어떤 성지입니까?”라고 묻기에 “성모님의 발현지라....”라고 말을 시작하자 그 여성이 얼굴을 홱 돌리더니 불쾌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분명히 성모신심을 반대하는 개신교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모 마리아가 누구십니까? 개신교신자들도 믿는 구세주 예수님을 낳으신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30여 년간 나자렛에서 예수님을 키우시고 돌보시며 함께 사신 분이 아니십니까? 카나의 혼인 잔치 기적은 물론이고 인류 구속의 가장 중요한 순간, 즉 십자가의 죽음 그 순간에 함께 하신 어머니가 아니십니까? 이를 무시하는 개신교 신자들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마리아는 무조건 배제한다. 마리아 공경은 우상이다.”라고 하는 이들은 교회의 역사를 꼼꼼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가르침에는 빗나간 목사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와 알고 지내는 개신교 신자들에 의하면, 그분들은 1년에 두 번 이상 마리아 공경은 우상이라고 설교한다고 합니다.
성모님의 여러 발현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지만 과달루뻬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실한 징표는 57세의 어른이자 그 지방 사람인 꾸아우틀라토아친(세례명: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당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의 작업복(tilma)에 새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의심할 수 없는 증거입니다. 4백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도 성모님 발현의 모습은 그대로 보존되고 있습니다.
저는 과달루뻬 성모님의 발현에 대해서는 이런 견해를 펴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일고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우리 선조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이주했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문화인류학적으로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어학, 역사학, 고고학, 민속학 등의 측면에서 볼 때 맞다고 생각합니다. 몽골 반점은 오래 전부터 알려 진 이론이고 긴 설명을 하기 보다는 멕시코 여행을 한번 다녀오고 나면 놀랄 뿐 아니라 우리 선조들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과달루뻬 성지에서 3일 간 지낸 후 하루는 멕시코 내륙을 관광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여러 성지들을 보고 피라미드에 관해 이야기를 잘 들은 후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민속박물관에 들렸습니다. 박물관 관람은 한 마디로 놀람 그 자체였습니다. 놀람이란 다른 것이 아니고 제가 태어나 어릴 때 살던 고향집에 온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저의 집에 있던 지게, 디딜방아, 절구, 멧돌, 짚신 등을 그 박물관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모두 멕시코 원주민들이 사용했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이 물건들은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다는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다소 논리적인 비약인지는 몰라도 나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후안디에고(꾸아우뜰라또아찐) 성인은 아메리카 인디안 아즈텍 부족의 사람이었는데, 그 부족은 동이족이었고 우리나라 선조일수도 있다는 견해입니다. 성모님은 그 부족의 예쁜 여성의 모습으로 발현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그 성인을 통하여 우리 보다 먼저 우리 선조에게 발현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성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과달루뻬의 성모님을 통하여 아메리카의 복음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성지순례 하면 늘 1등을 하고 싶어 하는 우리나라 신자들을 통하여 과달루뻬 성모 발현지가 많이 알려져 민족의 복음화에 기여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통적인 성모신심 영성에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로”(Per Mariam ad Jesum)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성모님을 알면 알수록 예수님을 더 잘 알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이는 교회 전통 안에서 자라난 신심이 꽃피고 열매 맺은 영성이자 체험 영성입니다. 그러므로 성모신심에 뛰어난 이들도 함부로 말은 하지 않습니다만 생활 속에서 여러 가지로 성모신심을 표현합니다. De Maria nunquam satis.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에 대해서는 아무리 말해도 충분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제가 서명을 할 때 맨 뒤에 mm이라고 쓰는데 그것은 mater mea(저의 어머니)의 약자입니다. 하늘나라에는 어머니가 두 분 계시는데, 한분은 돌아가신 모친이시고 다른 한분은 천상천하의 모후이신 성모님이십니다. 그리고 사제로서 저의 좌우명이 totus tuus인데, 이를 주님께 드리면 “저는 당신의(주님의) 것입니다” 이고 마음을 성모님께 드리면 “저는 성모님의 것입니다”가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모신심에 아주 뛰어나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에프렘 성인이나 베르나르도, 몽포르의 루도비꼬, 요한 유데스, 막시밀리아노 콜베 성인들의 성모신심을 생각해보면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도 언젠가는 그 성인들처럼 되리라는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묵주기도라는 소책자를 준비하여 이 기도에 대하여 상세히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합니다. 오늘 여기 오신 분들에게는 나중에 연락하시면 한 권씩 보내드리겠습니다.
2) 교회 전통 안에서 드러나신 성모님
그리스도교(基督敎)는 한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로 존재하십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대상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사람들에게 알려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합니다. 이분을 통해서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요한 복음 14,6: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사도 4,10.12: “불구자였던 저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바로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힘입어 된 것입니다....이분에게 힘입지 않고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이 이름밖에는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리서에 잘 나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리고 절대자이시므로 창조주이시고 온전히 선하시며 아름다우시고 공정하시며 악을 싫어하십니다. 진선미성(眞善美聖) 자체이신 하느님. 우리는 이런 하느님을 믿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입니다.
그런데 교회 초창기부터 성모님이 늘 신앙 공동체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모님은 구세주의 어머니이시고 당신 아드님의 구속 사업에 온전히 동참하신 분이시므로 신앙인들의 모범이셨습니다. 그리고 신앙공동체는 초창기부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성모님의 전구하심을 빌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적으로 “마리아 신심은 신앙 공동체에서 저절로 일어났고(自生的 信心) 교회가 후에 공인했을 뿐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자들이 모인 공동체 안에서 기도를 바치니 교회의 권위가 후에 이를 인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기록된 역사를 보면, 3세기 초부터 오늘까지 신앙 공동체 안에서 생겨난 수없이 많은 성모님께 관한 기도문들과 시, 그림, 조각 등이 살아있는 증거품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Sub Tuum"(일을 마친 후 바치는 기도, 기도서 19쪽)이라는 기도문입니다.
원래 이 기도는 오래 전부터 교회 안에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1917년 이집트에서 대형 공사를 할 때 땅 속에서 여러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빠삐루스에 기록된 이 기도문이 나와 화학 처리를 해보니 3세기 초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저의 견해는 두 가지입니다. 1)교회의 수도원은 이집트와 시리아에서 시작되었으니 이집트의 수도자들이 사막에서 그 기도를 바쳤거나, 아니면 2)로마의 참혹한 박해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 박해가 다소 잠잠하던 이집트로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하던 신자들이 바치던 기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하여튼 박해 시대의 어려운 공동체들이 마리아의 전구를 비는 기도를 바치고 있었다면 이는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라띤어로 된 원문은 이러합니다.
Sub tuum praesidium confugimus, Sancta Dei Genitrix.
Nostras deprecationes ne despicias in necessitatibus nostris,
sed a periculis cunctis libera nos semper,
Virgo gloriosa et benedicta.
우리말 번역은 이러합니다.
천주의 성모님,
성모님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옵시고,
모든 위험에서 항상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그리스어와 슬로베니아어로 된 기도문들도 있습니다.
이 기도문에는 놀라운 교리가 발견됩니다. 천주의 모친(theotokos)과 동정녀라는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와 431년 에페소 공의회에서 천명되고 451년 칼체돈 공의회에서 재확인된 것이지만 신앙 공동체에서는 이보다 훨씬 이전에 그 교리의 내용을 믿고 있었고 마리아의 전구하심을 청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 공경은 중세기를 거치면서 절정에 이른 감을 받습니다. 어떻게 피조물이며 인간인 마리아를 공경하였을까? 하는 의심이 날 정도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분명히 하느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인간에게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종교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교회의 역사를 보면 신앙의 중심인 주 예수님 옆에 늘 마리아가 함께 하신다는 인상을 많이 받습니다. 마치 카나 혼인 잔치집에서 예수님 옆에 함께 하신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본질로 들어가면 마리아신심은 언제나 신비와 의문을 동반합니다. 왜냐하면 이 신심은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오랫동안 연구를 한 후 내린 결론이자 마리아 신심에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마리아의 발현입니다. 왜 마리아인가? 하느님의 심부름꾼으로서 마리아가 그 역을 꼭 해야 하는가가 저의 의문이었습니다. 발현이 필요했다면 예수님이 직접 발현하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만사는 하느님이 주관하시니 승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발현과 같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할 때 쉽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수십 년 간 기적의 신빙성에 대하여 조사합니다. 가급적 기적으로 돌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교회의 이런 분위기를 전제하면서도 마리아의 발현들은 도저히 그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합니다. 역사 이래 마리아의 발현이 2천 번 이상 있었다는 보고서가 있습니다. 교황청 교리성에 보고되었다고 합니다. 교회는 그것을 모두 인정하지 않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현재 매주고리의 사건이 바로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몇 개는 도저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 공인하게 되었으니 멕시코의 과달루뻬. 불란서의 루르드, 벨지움의 바너, 아일랜드의 노크, 포르투갈의 파티마 등입니다
.
마리아의 모든 발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묵주의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여섯 번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님께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만일 회개하지 않으면 더 큰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성모님의 말씀대로 더 큰 전쟁,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얼마나 큰 재앙이 전쟁 중에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무수한 부상자들과 전염병, 기아, 파괴 등 상상을 초월하는 온갖 재앙들이 일어나 온 세상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비참한 전쟁이었습니다. 인류가 성모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실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한편 가톨릭교회와 완전한 일치는 이루고 있지 않지만 동방교회는 성모신심에 대단히 뛰어납니다. 여러 기도문들 중에서 아카티스토스(Akathistos) 찬미가는 대단히 유명합니다. 이 찬미가는 마리아에게 최고의 존경과 영예를 드리는 찬미와 감사의 찬가입니다. 역사를 보면 626년 경 콘스탄티노폴이 위기에 처했을 때 총주교좌는 그 도시를 마리아께 봉헌하고 기도를 드렸는데 승리를 거두게 되자 모두 마리아의 전구하심으로 여기고 이 찬미가가 나왔습니다. 그리스어의 의미처럼 이 찬미가는 모두 서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본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형제들 중 성공회는 성모신심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수도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신교는 성모 마리아 공경을 반대합니다. 그들은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를 주장합니다. 이는 “오직 그리스도만으로”(solus Christus)라는 뜻입니다. 유일한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만이 신앙의 유일한 대상이시므로(요한 14.6:“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그들의 이 주장에는 조금의 오류도 발견할 수 없고 신학적으로 완벽합니다.
신앙생활은 신학적인 이론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신앙공동체의 역사와 전통 안에서 실천해온 신심도 아주 중요합니다.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신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교회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신심 깊은 신앙인들이 공경해온 마리아 신심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모든 성인 성녀들이 예외 없이 성모님을 잘 공경하고 성모님의 아름다운 덕행들을 본받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성모신심의 맥락에서 볼 때 모슬렘인들이 성모님이 사도 성 요한과 함께 사셨다는 에페소 성지를 순례하며 기도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이를 계기로 모슬렘과 그리스도교의 일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성모님의 찬미가 Magnificat 중에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루카 1,48)라는 기도는 하나의 예언이 되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론이고 모슬렘인들도 심지어는 종교가 없는 이들도 성모 마리아를 존경합니다. 마리아를 성(聖)처녀로 부르기도 합니다. 특별히 예술가들은 각자의 능력이나 소질에 따라 성모님을 표현해왔습니다. 화가는 정교한 필치로, 조각가는 뛰어난 손재주로, 음악가는 아름다운 곡으로, 시인은 멋진 문장으로 성모님을 찬미해왔습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따는 아들을 안고 통곡하시는 성모님의 비통한 모습을, 구노의 아베마리아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성모님을 찬미하며 무수한 시인들은 아름다운 문장으로 성모님의 아름다운 덕행들을 찬미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감명을 주고 있지 않습니까? 성모님에 대한 찬가는 대부분 기도로 되어 있습니다. 성모성월에 본당신자들이 바치는 아름다운 기도들도 이런 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서 성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본받는 이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수도자들입니다. 수도자들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근본적으로 살기 때문에 세인의 존경을 받습니다. 그들은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늘나라를 위한” 순수한 동기로(마태 19,16-30) 청빈, 정결, 순종의 생활을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추종(sequela Christi)과 성모님을 모방하는(imitatio Mariae) 삶을 충실히 사는 사람들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베네딕또회와 카르투시오회, 가르멜회 수도자들은 수도명에 마리아를 붙입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 프란치스카, 마리아 엘리사벳 등의 수도명입니다.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활동가로만 알려져 있던 로욜라의 이냐시오 성인은 깊은 신앙체험을 한 후 쓰신 영성수련의 제 4주간 예수님 부활 체험 묵상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는 제일 먼저 당신의 어머니를 찾아보셨다고 하며 이를 묵상하도록 권합니다(참조, 영성수련 218-220번;299번).
사복음서는 모두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먼저 발현하셨다고 전하지만 이냐시오 성인은 신심적으로 이해하신 듯합니다. 하긴 성경에는 주 예수님의 행적이 모두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 이해할만도 합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를 보나 끝까지 아드님의 수난에 동참하사 십자가의 죽음에까지 함께 하시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찾으신 마리아의 신앙심은 구속자(Redemptor)이신 아드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고통을 당하셨으니 신심적으로 보아 능히 공속자(공동구속자Co-redemptrix)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어머니에게 부활하신 주 예수님께서 제일 먼저 발현하셨다고 믿는 이들은 복된 자들일 것입니다.
수도자들은 교회 초창기부터 있어 왔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사막의 안또니오(251-356) 성인이 그 시조로 되어 있지만 그가 사막에 들어가서 선배 수도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록을 볼 때 이미 수행자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지 그의 덕이 뛰어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추종하였으므로 서서히 제도적인 수도원이 설립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뒤로 빠꼬미오 (290-347) 성인을 거쳐 본격적으로 서방의 수도원이 현 상태의 모습을 갖춘 것은 베네딕도(480-546) 성인의 덕분입니다. 그분은 수도원의 규칙을 썼으며 그에 따라 신앙인들을 수도자로 양성하였습니다.
수도자들은 예수님을 추종하면서 그분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덕행들을 쌓아나갑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면서 덕을 쌓아 나가는데 재물의 욕심을 버리고 검소하게 사셨던 예수님을 본받아 청빈의 삶을, 혼인을 포기하고 정결하셨던 그분을 본받아 정결의 삶을,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셨던 그분을 본받아 순종의 서원을 발하면서 덕을 쌓아나가는데, 그들은 성모 마리아를 피조물 중에서는 가장 높은 성인으로 공경하며 훌륭한 덕을 쌓아 성인이 되도록 성모님의 도우심을 청합니다.
그들에게 성모 마리아는 정결하신 모후, 순명하신 모후, 만덕을 갖추신 모후이십니다. 성모님께 관한 아름다운 시와 성가들이 거의 모두 수도원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이 천상을 향해 맑고 순수한 것처럼 가사와 곡들도 모두 맑고 순수해 이를 읽고 노래하는 이들의 마음을 천상으로 향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반 신자들에게도 익숙한 성모님 찬가 Salve Regina는 수도원에서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잠자리에 들기 전에 바치는 끝기도 후의 성가인데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던 중세기 풍의 아름다운 성가입니다. 평생 동정녀이신 성모님은 우리의 희망이자 변호자이시므로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특별히 이 찬류 세상이 끝난 다음 구세주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뵙게 해달라는 천상에 대한 그리움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노래하는 수도자들은 마음을 하느님 계신 천상에 두고 있어 비록 이 세상을 살면서도 마음을 성모님과 천사들과 성인들이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 천국에 두고 있으니 복된 삶을 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인간인한 유혹과 나약한 인간성으로 인해 고통을 느낄 것입니다. 그 고통을 인류의 죄악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으로 오르신 예수님과 그분의 뒤를 성실히 따라가신 성모님의 고통을 바라보고 묵상하면서 수용하고 극복하며 승화시키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십자가 밑에 서계시던 성모님(요한 19,25-27)에 관한 묵상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위안을 주지만 수도자들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모자의 비통한 고통은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음미하는 신앙인에게는 큰 위안이 됩니다. 그 고통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은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영광스러운 부활로 이어졌습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고통과 영광스러운 부활의 그 신비를 깨달은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차원에서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이 삶을 주신 이상 나는 현실에 충실할 것입니다. 수시로 나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십자가는 고통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모님처럼 아드님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하면서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성실히 찾아 수행하는 수도자들은 장차 부활의 기쁨이 주어지리라는 확신과 희망으로 살아가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어느 공소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묵주신공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목을 할 때 신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5일에 한 번씩 서는 장에 큰 소를 끌고 나가 팔고 작은 송아지를 한 마리 사서 집에 돌아가던 신자가 있었습니다.
큰 소를 팔았으니 수중에 돈이 두둑하였습니다. 허리춤에 돈을 잘 감추고 는 천주님께 감사드리며 그 돈으로 아들 대학도 보내고 집안 살림에 요긴하게 쓸 궁리를 하면서 늘 하던 대로 호주머니에 있는 묵주를 꺼내어 왼손에는 송아지 줄을 잡고 오른쪽에는 묵주를 쥐었습니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집으로 향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우시장이 서는 장날에는 도둑들이 많이 모여든다고들 합니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힘이 좋은 도둑놈이 그 신자가 큰 소를 팔고 돈을 손가방에 넣은 다음 작은 송아지 한 마리 사는 것을 주위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 신자가 식당에 들려 국밥을 사 먹을 때 그 도둑놈도 같은 식당에 들어가 국밥을 시켜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먹으면서 그 신자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신자가 국밥 값을 지불하고 나오자 그 도둑놈도 값을 지불하고는 멀찌감치 서서 뒤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장터를 빠져나와 큰 길을 한참 가다가 논길로 들어서 조금 가니 언덕이 나왔습니다. 언덕을 돌아 작은 산 주위를 지날 때였습니다. 한적한 곳이었습니다.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사방을 둘러본 도둑놈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이 때다.”하면서 그 신자를 덮치려고 가까이 접근을 하자 그 사람의 발뒤꿈치에서 꽃송이들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한 발작을 떼면 꽃 한 송이가 떨어지고 또 한 발작을 떼면 꽃 한 송이가 또 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꽃송이들 때문에 도둑놈은 감히 그 사람을 덮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다, 이 때다” 하면서도 감히 덮치질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다가 마을이 보였고 어느새 그 사람은 자기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도둑놈은 하도 신기해서 그 사람을 뒤따라 그 집 안에까지 들어가 보았습니다.
뒤에서 사람이 따라오는지도 모르고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서 걸어가던 그 신자는 집안에 들어와서는 성호경을 그으면서 묵주기도를 멈추고 소 마구간을 열고 시장에서 사온 송아지를 그 안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송아지에게 물을 주려고 뒤돌아 설 때 자기 앞에 낯선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그 도둑놈이 뒤따라오면서 본 것을 그대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이 걸어가는데 당신 발꿈치에서 꽃송이들이 떨어지기에 하도 이상해서 뒤따라오게 되었다고 하자 그 신자도 이상하게 생각했던지 그럴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도둑놈이 그렇다고 하자 그 신자는 그럴 리가 없다고 힘주어 말하였습니다. 도둑놈이 하도 신기하여 당신은 길을 가면서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자, 그 신자는 웃으면서 자기는 천주교신자라 길을 갈 때는 늘 묵주의 기도를 한다면서 주머니에 있던 묵주를 꺼내어 보여주었습니다. 도둑놈이 실토했습니다. 자기는 도둑인데 우시장에서 그 신자를 보고 돈을 빼앗으려고 뒤따라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발꿈치에서 떨어지는 꽃송이들을 보고는 감히 덤비지를 못했다면서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기도 성당에 나가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교우 여러분들,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면 이런 놀라운 일도 일어난답니다.
모쪼록 정결하신 모후, 순명하신 모후, 만덕을 갖추신 모후이신 성모님께
의탁하여 기도와 은총으로, 기쁨속의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