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저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한 봄날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생님과 그리고 저를 도와주신 모든 분들의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저에게 따뜻한 사랑의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특별히 선생님과 여러 학우들에게도. 만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저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고‥‥‥ 뭐라고 표현 할 수 없는 제 마음을 선생님께서는 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너무 무뚝뚝하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표현을 잘 못하지만, 선생님께만큼은 마음을 터놓고 편하게 문을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선생님께서 출간하신 시집의 수입 전액을 절 위해 써주신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동안 절 위해 성금 모금과 혈소판 헌혈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많은 것들로 이미 도움을 주셨는데, 그래서 너무나 감사했는데‥‥‥.
"선생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늦었지만 이렇게라도 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제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건강했을 때 성경책을 보고 제가 가장 마음에 두었던 문구입니다. 믿음이 없었던 저에게 이렇게 믿음을 심어주시고 이제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건 선생님과 여러 학우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누나들, 그리고 또 식구들, 나의 가족들‥‥ 가족들만 생각하면 선생님의 시집 제목처럼 눈물부터 나옵니다. 사랑의 집! 화목했던 가정이 저 하나 때문에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식구들에게 뜻하지 않은 고생을 시켜 너무너무 마음이 무겁습니다. 반드시 완쾌하여 이 모든 분들께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은데. 예전의 건강한 대현이의 모습을 되찾아 선생님과 학우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은데. 꼭 그런 날이 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선생님,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한가봐요. 건강 조심하세요!!!
그럼 오늘은 이만‥‥‥.
1998년 1월의 어느 날
강 대 현 올림
< 편지 >
'푸른 낙엽'이 된 대현에게
대현아, 물 흐르듯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7월 31일! 그 날이 다시 돌아왔구나. 나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아마 앞으로도‥‥‥ 어쩌면 평생‥‥‥.
대현아,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네게 물으면 너무 잔인한 질문일까? 그래서 차마 입을 열지 못하겠구나. 그러나 너에게도 잊혀지지 않는 날임에는 틀림없겠지. 그래 기억하고 있겠지만 오늘이 네가 내 곁을, 우리 곁을 떠난 지 꼭 3년이 되는 날이구나.
3년 전 유난히 물이 많았던 그 해 여름, 나는 사랑하는 제자 너를 떠나 보냈다. 아니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표현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네가 18세의 짧은 일기로 이 세상과 이별을 고하던 날, 끝까지 미소 띤 얼굴로 보내리라 이를 악물고 다짐을 했건만, 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그만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구나.
대현아! 나는 오늘 낮에 너의 어머니, 누이들, 그리고 네가 다니던 교회 목사님과 너를 기억하는 청년부 회원 몇몇과 함께 너의 유골이 뿌려진 고향 앞 바다 '삽교호'에 갔었다. 서울을 출발할 때만 해도 3년 전의 그 날처럼 비가 세차게 흩뿌리더니, 다행히 서해대교에 다다르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해맑은 하늘이 우리 일행을 반기더구나. 우리는 작은 배편으로 삽교호 한가운데로 나아가 너를 추모하는 기도회를 가졌지. 기도회가 끝나고 목사님이 국화꽃을 하나씩 물위에 던지면서 대현이 너를 큰 소리로 한번씩 불러보라고 하더구나. 모두들 네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기 시작했지. 그러자 네 어머니는 지금껏 용케도 잘 억눌렀던 울음을 끝내 참지 못하고 목을 놓고 말더구나. 나 또한 "대현아!" 라고 부르는 순간, 흘러내리는 눈물을 삼키느라 혼났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지. 바닷물 위로 떨어지는 꽃잎 사이에서 샘물처럼 해맑게 떠오르는 너의 얼굴을!
너도 이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물속에서, 아니 어쩌면 하늘에서 지켜봤겠지? 그렇지?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선상에서의 모든 행사를 마치고 뭍을 향해 길을 돌렸을 때, 한 마리 갈매기가 "끼룩 끼룩" 소리를 내며 한동안 우리 뒤를 따라왔는데, 나는 네가 한 마리 새가 되어 우리에게 잘가라고 인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 정말 그런 거니?
강대현! 너와의 만남은 겨우 1년 6개월 정도로 짧았지만, 결코 내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영원히 살아 있을 제자의 이름으로 남아있다. 지금 이 시간도 너의 이름을 부르며 네가 예전에 내게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만지작거리며 너를 그리는 애틋한 심정으로 펜을 잡고 있다.
강대현! 너는 우리 반에 1번으로 들어왔지. 채 중학생 티를 벗지 못한 아이들 틈에서 유난히 하얀 피부에 동그란 뿔테 안경을 쓰고 살짝 웃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너의 첫 인상이다.
번호 1번 강대현. 누나 셋에 여동생 하나, 너는 5남매의 외아들이었지. 비교적 말이 없고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너는 그러나 장래 희망이 태권도 선수인 참으로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지. 한데 볼 때마다 의아스러운 점이 있었다. 갈수록 점점 창백해져 가는 너의 낯빛. 내가 왜 그러냐고 물어보면 너는 "고교생활에 적응하느라 조금 피곤해서 그래요." 하며 멀건히 웃곤 하였지. 그래서 그런 줄로만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러던 너에게 사고가 생긴 것은 입학 후 채 한 달이 못 되어서였지. 3월 25일이던가? 첫 모의고사를 치르던 날, 너는 피를 쏟으며 자리에서 쓰러졌고, 동네 작은 병원에서는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여 황급히 달려간 여의도 성모병원. 진단 결과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 네 어머니의 절망적인 목소리에 나까지 눈앞이 캄캄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네가 백혈병이라니!
그러나 마냥 절망하고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지.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이 혈액이었다. 어머니와 가족들이 나서서 서울역과 김포공항 등지를 전전하며 헌혈자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지. 그러나 헌혈 자원자는 쉽사리 구해지지 않았고, 설사 구했다 하더라도 병원과의 약속시간을 지키는 일반인은 거의 없었지. 이런 정황을 지켜보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더구나. 그래서 내가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전 교실을 돌면서 혈액형 A형인 학생들에게 헌혈해 줄 것을 간절히 호소했지. 다행히도 많은 학생들이 자원하였다. 낯모르는 너를 위해 기꺼이 제 피를 나누어주겠다는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 눈물나게 고마웠다. 학우들의 성원으로 혈액 공여가 해결되자, 그 다음은 병원비 마련이 문제였다.
당시에는 네가 알까봐 쉬쉬했지만, 이젠 얘기해도 되겠지. 사실 작은 검사 하나에도 수십 만원이 드는 백혈병 치료에는 골수이식수술비를 포함해 엄청난 돈이 필요했단다. 대현이 너도 알다시피, 너희집 형편으로는 그 많은 돈을 마련하기 어려웠지. 네 아버지는 사고로 허리를 다쳐 직장을 잃은 상태였고, 어머니와 삼촌이 신곡시장에서 세를 얻어 작은 식당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잖니? 그러나 너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우선 당장 급한 대로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인 식당을 처분해야만 했지. 그럼에도 늘어만가는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나중에는 마지막 보루인 전셋집 보증금마저 빼서 충당하고 삼촌 집에 얹혀 살게 된 7식구. 정말 옆에서 지켜보기가 안타까웠다. 그래서 모금운동을 시작했지. 학생회에서 시작된 모금활동은 선생님들까지 합세했고, 더욱 고마운 것은 너의 출신 중학교와 초등학교에서도 모금운동이 전개되었고, 신월4동 지역주민들까지 동참해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눈물어린 정성도 2억원이 넘는 병원비 앞에는 문자 그대로 조족지혈이었다. 누나 미남이와 골수 적합 판정이 내려져 10월 13일 '골수이식수술'까지 성공적으로 마쳤지만 큰 빚에, 계속되는 병원비…… 옆에서 보기가 딱했다. 아니 발을 동동 구르는 네 어머니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더구나. 그것은 마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었지. 살려 달라고. 누군가 나서야 했다 누군가가 어렵게 살려놓은 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에. 그게 처음에 '나'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바로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심이 섰지. 그래서 부랴부랴 그 동안 썼던 원고를 뒤져 작품을 선별, 정리하고 편집하는 등 시집 발간에 박차를 가했던 것이다.
10년이 넘게 교직에 몸담으면서 제자가 이렇게 큰 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기는 네가 처음이었다. 항암 치료와 싸우는 너의 모습은 실로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40도까지 열이 오르는가 하면 갑자기 저혈압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머리칼과 손발톱이 모두 빠져나가는 고통으로 한없이 일그러진 너의 얼굴……. 담임 교사라는 이름만으로도 어깨에 무거운 힘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방사선 치료의 영향으로 머리털이 죄다 빠진 너의 모습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보았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나온 책({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이 다행이 너에게 큰 힘이 되어 보람을 느꼈다. 너를 도우면서 오히려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감동했다. PC통신과 몇몇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며 멀리 부산에서, 목포에서, 강릉에서 책을 주문하는 사람들, 우리 반 아이들과 함께 영등포역에 나가 거리 모금을 할 때, IMF 경제 위기 상황이라 모두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음에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성원해 주던 손길들, 그 동안 모아 두었던 헌혈증서를 곱게 모아 보내 주는 사람들, 병원비에 보태라며 학급비를 보내준 여고생과 돼지 저금통을 열어 그 돈 전부를 보내 준 어린이, 모금함을 통째로 건네 준 서점 아저씨, 자신의 일처럼 나서서 책을 수십, 수백 권씩 팔아준 학부모와 교회 성도들…… 모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런 분들의 정성을 보아서라도 꼭 너의 병이 나으리라 확신했다.
사실 '골수이식 수술' 이후 여러 번 힘든 고비가 있었지만, 너는 그 때마다 초인적인 힘으로 잘 이겨내어 가족과 주위 사람들을 기쁘게 했잖니? 한동안은 정말로 정상인처럼 건강했잖니?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면서 병원은 한 달에 두 번 정도 가서 기본적인 검사만 하면 되었고 복용하는 약도 많이 줄었었고. 그래서 모두들 안심했고 병원측에서도 성공적인 케이스라고 자랑했었는데. 그래서 너의 간절한 소망대로 '99년에는 학교에 다시 돌아와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고 마음껏 뛰놀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랬는데, 그런 너에게 7월 접어들면서 폐에 숙주반응이 왔었지. 의료진들의 말을 빌리면, 그 동안 워낙 독한 약을 써온 터라 면역력과 저항력이 극도로 떨어져 아무리 좋은 약을 투여해도 병을 잡을 수가 없었단다. 결국 폐 기능 정지로 너는 차마 감기지 않는 눈을 감아야만 했지. 민둥머리에 푸른 마스크를 쓴 너의 눈에서 포도알처럼 떨어지던 눈물을 나는 지금껏 잊을 수가 없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그 해 가을(10월 13일, 골수이식 수술 일주년 기념)로 예정했던 잔치를 앞당기는 건데, 어디 여행이라도 한번 같이 다녀오는 건데, 후회막급이었다.
아직도 하늘나라에 갔다고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너, 금방이라도 "선생님!" 하며 달려올 것만 같은 대현아, 이제 태양의 계절이 가고, 가을이 깊어져 하늘이 높아지고 멀어지면 녹색으로 빛나던 저 짙푸른 은행잎은 하늘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노란색 물감으로 물들이겠지. 그런데 나는 네가 빠져나간 이 텅 빈자리를 무엇으로 어떻게 곱게 물들일까?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작은 힘이나마 너처럼 백혈병 등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로 마음먹은 거지. 그것이 너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이 될 것 같기에. 그리고 대현아, 올 가을엔 꽃보다 더 고운 단풍 잎새에 너의 이름을 새기련다.
노랗고 빨간 단풍 잎새를 / 하나씩 하나씩 책 속에 끼워 넣듯이 / 이젠 너를 책갈피에 실어 / 나의 푸른 책장에 접어 두련다 // 생각나면 언제나 / 겨울에도 봄에도 여름에도 / 그 책갈피의 낙엽에서 / 애틋한 가을을 호흡하듯이 / 추억처럼 너의 향긋한 내음을 맡을 수 있게 // (나의 졸시 <물망초 8>)
대현아, 너를 그리는 마음에 몇 줄 적긴 적었다만, 안타깝게도 이 편지를 너에게 전할 방법이 없구나. 할 수 없이 내 책상 위에 백양꽃과 함께 놓을 테니, 언제든지 편한 시간에 와서 읽어보렴. 어쩌면 벌써 다 읽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럼, 다시 또 편지하마. 그 때까지 샬롬!
2001년 7월 31일
여전히 너를 사랑하는 선생님이
* 해설
거리 좁히기
- 있어야 할 세상과 있는 세상과의 거리 -
姜 信 珠(문학평론가)
김형태 시인은 1994년에 첫 시집 《사랑일기》를, 1997년에 두 번째 시집 《아부지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를 발간하여 시단에 이름이 두루 알려진 시인이다. 특히 두 번째 시집은 시인이 재직하고 있는 학교의 제자였던 강대현군의 치료비 마련을 위해 간행했던 것으로, '교사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는 이 시대에 참스승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교단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계로부터 감동의 눈길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에 간행된 김형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물빛 안경처럼 나는 너의 창이고 싶다》에는 80여편의 시가 7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먼저 1부는 전통적인 서정시들로, 자연 친화적인 경향이 주된 특징을 이룬다. 자연에 묻혀 어린 시절을 보낸 시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이 유독 강하게 드러나는 작품은 그 중에 <보리밭>이다.
봄이면 한번쯤 황소걸음으로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볼 일이다
샛바람 장단에 어깨춤 추는
연록빛 파도에 얼굴을 씻어볼 일이다
별빛처럼 비라도 흘러내리면 겨울색 옷을 벗어 던지고
그대로 벌렁 누워 구름 좇아 살을 섞어볼 일이다
키 작은 햇살에도 몸을 뒤척이는 초목들처럼
고랑과 두둑을 넘나들며 흙향과 풀빛이 빚어내는
날(生)내음을 취하도록 마셔볼 일이다
또는 호젓하게 보리피리 부는 종다리 따라
하늘 향해 힘껏 돌팔매질 해볼 일이다
그러다 입이 고프면 연둣빛 보리알을 한 움큼 털어 넣고
그렇게 봄을 씹어볼 일이다
<보리밭> 전문
여유를 가지고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보리밭을 걸으며 봄내음을 마시고 싶은 것은 도시의 메마른 삶에 지친 사람들의 공통적인 소망일 것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 쫓겨 그것이 한낱 꿈으로 그치고 말 때, 이 <보리밭>을 한번 읊조린다면 어느덧 자신이 보리밭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착각에 빠질 것처럼 생생한 자연의 도취상태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시이다.
2부는 일상에서 겪은 삶의 풍경들을 노래한 작품들인데, 풍자적인 성격이 짙다.
아침에 일어나기 무섭게 텔레비전,
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
하루에 신문의 얼굴 셋 이상 어루만져야 소화가 되지
그럼에도 집에 오면 또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중략)
어느 날 회색빛 고독 떨어내려 길거리를 헤매다
공원 벤치에 벌렁 누워 별 헤아리다 헤아리다
돌아온 그 날밤,
TV 9시 뉴스에서는 "어느 실업자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나를 읽어내고 있었다
읽고
읽히고
먹고
먹히고
보이지 않는 사슬이
감옥처럼 서로의 마음을 옥죄고 있다
<세상 읽기>에서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세상, 타인의 삶이 뉴스거리가 되는 세상, 진실이 오도되는 세상풍경이 직설적으로 드러난 시이다. 세상의 소식을 읽지 않으면 뒤쳐진다는 현대인의 조급한 심리가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에 집중되는데, 그 매스컴이 읽어내는 사회현상이 얼마나 진실한 것이냐를 시인은 반문한다. 공원 벤치에 누워 자연을 벗삼은 한가로운 하루가, 놀랍게도 실업자의 무기력한 하루로 둔갑하여 보도되는 현실을 시인은 개탄하는 것이다.
3부와 4부는 사회성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들로, 문명에 의해 훼손된 인간성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시인의 염원이 강한 어조로 표출되고 있다.
어제는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편지가 날아오더니
오늘은 전화가 왔다
어떻게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았느냐고 묻자
다 아는 수가 있단다
다 아는 수가?!
그는 인터넷, 신용카드의 속내를 통해
또는 감시 카메라를 동원, 심지어 도청까지 하면서
우리를 엿보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나의 충치의 개수와 등의 검은 점까지도
헤아리고 찾아낼 수 있단다
<원형감옥>에서
벗아, 역사의 수레바퀴가 직진하면 할수록
점점 자유로운 세상이 된다더니
웬걸 후진만 거듭하고 있지 않는가?
어찌된 일인지 광음이 계절처럼 동그라미 짙게 그려갈수록
하기 싫은 일 억지로 시키고
강요하는 것 또한 점점 많아지는 거냐고?
참말 마음의 동의 없이 내 몸이 움직이고 있어
<벗에게 - 선택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입바른, 올곧은 소리를 하면 반골이래요
반골, 그것은 안된다네요
맹충이 되라네요
그러나 로보트로 살 수는 없지요
하늘빛 푸른 피가 펄펄 뛰는 생명체가
어떻게 숨죽이고 시키는대로만 할 수 있나요
<구경꾼>에서
정보화시대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비밀을 보장받지 못하는 삶,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선택을 끊임없이 강요당하는 삶, 입바른 소리 한번 못하고 숨죽인 채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하는 삶, 이런 것들은 인간의 인간다움을 지키지 못하는 삶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 대한 시인의 분노와 저항은 짧은 말 몇 마디로 끝날 수 없다. 그런 까닭에 3, 4부에 실린 시들은 일반적인 시의 개념을 벗어나 산문화되고 있다. 사회부조리에 대한 저항이나 인간성 회복을 부르짖는 데에 직설적인 언어만큼 유용한 것은 없을 것이다. 말속에 겹겹이 의미를 감추고 있는 함축어는 직설적인 언어에 비해 즉각적인 호소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사회 고발적인 성격의 시들이 어조가 강하고 산문화되며, 직설적인 언어를 채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환경문제와 관련된 시들인 5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원시적 자연과 동심, 그리고 고향은 시인에게 있어 향수어린 추억거리이지만, 지금 그것들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훼손당한 상태이다. 시인의 추억 속에서 동심의 세계나 어릴 적의 자연은 늘 아름답게 반추되며, 따라서 그것을 훼손시킨 환경오염에 대해 시인이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도 시인의 어조는 강하고 직설적이며 시의 형태는 산문화의 경향을 띤다.
6부는 시집 '시인의 말'에서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실험적인 형식의 시들이다. 그런데,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배열된 시(<서울 피카소>), 단어들만 나열된 시(<직사각형>) 등 실험적인 형식의 시들이 몇 편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사회 풍자적인 성격이 짙은 작품들이 대부분이므로, 유형적으로 볼 때 앞서 살펴본 3, 4, 5부의 시적 경향과 맥을 같이한다고 하겠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앞의 경우와는 달리 6부의 시들은 장시 혹은 산문화의 경향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자신도 버릇없는 아이였으면서
자기는 버릇있는 아이였던 것처럼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고 말한다
<모순 4> 전문
입으로는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라! 목소리 높이면서
정작 자기는 황제경영을 하고 있는 언론사!
바담풍! 바람풍?
<모순 6> 전문
3, 4, 5부의 시들처럼 역시 냉소적이고 직설적이며 풍자적인 성격은 강하지만 길이가 짧기 때문에 시인의 생각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7부는 기독교적 신앙시 모음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시인은 삶의 여러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기도와 간구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시인이 사회적인 부조리와 인간성 상실의 시대에 저항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원하는 내면에는 기독교적 세계관이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식,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는 예언자적 지성이 작품 곳곳에 드러남을 알 수 있다.
여기,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만도 못한
인생을 드리오니
푸른 잔디 위에 앉히고 축사하사
영적으로 목타고 주린 죄인들을 구원하는
생명의 양식으로 사용하옵소서
오천 명을 배불리고도 열두 광주리가 풍성했던
성서의 역사가 오늘날 이 종의 삶 가운데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병이어> 전문
잘 알려진 성서의 내용인 '오병이어'의 기적 사화를 자신의 인생에서 다시 이루어지게 해 달라고 간구하는 시이다. 나를 내어주는 삶, 타인을 위해 나를 버리는 삶을 살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천명이다. 이와 같은 희생정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닮을 때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시인은 "주여, 이 시간 간절히 원하오니 / 죽어야 살고 / 비워야 채워지고 / 버려야 구해지며 / 썩어야 잉태되는 / 하늘의 진리를 깨닫게 하소서(<십자가>에서)라고 간구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기독교적 소명의식은 있어야 할 세계에 대한 염원에서 발원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시들은 있어야 할 세계를 가로막는 장애물들- 사회 부조리 및 불의를 고발하고 그에 맞서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이고, 따라서 그 언어 또한 예언자적 지성의 날카롭고 직설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시인이 진정 원하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그것을 위해 시인이 현재 걸어가고 있는 것이 어떤 길인가를 다음의 글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다.
시에 관한 나의 진정한 속내는 이백처럼 적선(謫仙)이 되어 가이없고 밝고 낭만적인 노 래를 부르고 싶은데, 그러나 내가 밟고 있는 이 땅은 자꾸만 나에게 두보의 길을 걸으라 고 요구한다. 언제쯤이면 깊은 산 속이나 무인도에 사는 들꽃과 새들처럼 대자연의 품에 안겨 사랑과 평화를 그려낼 수 있을까? 과연 천국같은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 시인의 말 - 에서
시집의 머리말인 윗글에서 시인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은 평화로운 천국이며, 그런 곳에서 유유자적 한가함을 즐기며 이백처럼 낭만적인 시를 쓰고 싶지만, 현재 이 땅의 현실은 그렇지 못해 두보처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시에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이상과 현실의 갈등이 잘 드러난 글인데, 이것이 곧 김형태 시인의 시세계를 이끌고 있는 주된 정서라고 하겠다. '있어야 할 세상'과 '있는 세상'과의 거리를 절감하며, 현실을 향해 직설적으로 분노하고 야유하고 풍자하고 냉소하지만, 내면으로는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과 구원의식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삶, 이것이 바로 직설적이고 산문화되어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그의 시에 시적 긴장감과 예술성을 부여하는 힘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시집의 제목이자 1부의 표제시인 <물빛 안경처럼 나는 너의 창이고 싶다>는 명실공히 김형태 시인의 시세계를 대표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나는 너의 눈이고 싶다
늘 곁에 있어도 없는 것 같은
그림자가 눈부신
그런 창이고 싶다
낮달처럼 콧등에 앉아
나를 잃어 너를 돋우는 빛,
열매를 위하여 치마를 내리는
그런 꽃이고 싶다
별이 크게 눈을 뜨는 시간이면
너를 지켜보며 지켜주는 눈썹의 키 작음으로,
밤새워 이슬 맞는 허수아비의 깨어짐으로 깨어있는
그런 파수꾼이고 싶다
나는 너의 참사랑이고 싶다
보이지 않는 오롯함으로 너의 눈이 밝아진다면
열 번 금이 가고 깨뜨려져도 순수로 남는
그런 유리알이고 싶다.
<물빛 안경처럼> 전문
너를 위해 나를 희생하되, 없는 듯 존재하는 투명하고 순수한 유리알 같은 삶, 너의 눈이 밝아진다면 수없이 깨뜨려져도 너를 위해 다시 살고픈 순수한 희생의 사랑, 이런 삶을 통해 시인은 '있어야 할 세상과 있는 세상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다.
*** 표사 및 서평 ***
지인의 음성은 칼날 같고 영웅의 음성은 불꽃이 된다. 이런 음성으로는 사람의 영혼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시인의 음성은 조용하지만 언제나 사랑 안에 있다. 가을 꽃잎이 이슬에 젖듯 시인의 음성은 사랑에 젖어 있다. 빗방울은 자선사업가의 연설 같지만 이슬방울은 하늘과 땅이 빚은 사랑의 보석이다.
나는 김형태 시인의 시집을 읽고 조용한 음성의 시인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젖은 음성으로 빚은 한 편 한 편의 시, 그리고 한 권의 시집……
사랑과 평화와 인정이 퇴색되고 있는 오늘, 읽는 이의 마음에 구원의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사람들이여, 천하를 얻으려고 무기를 들지 말고, 사랑을 나누기 위하여 시집을 들라! 시인은 시(詩)가 되어야 한다. 한편의 시 말이다. 여기 시가 된 시인을 만나보시라! (시인 황금찬)
리울 김형태 시인은 소년 시절부터 시짓기를 좋아하여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에도 소년의 순정함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그는 또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세상의 잘못된 점을 비판하고 올바른 길을 찾으려는 성숙한 구도의 자세도 갖고 있다. 소년적 순정성과 구도자적 진실성이 결합된 그의 시는 참으로 대담 활달하여 전통적인 서정시에서부터 해체적인 실험시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표현의 대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자유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그의 시정신이 진일보하여 불교와 노장사상 등 동양정신까지 수용한다면 그의 시는 한국시단에 개성적 광채를 드리울 수 있을 것이다.
이숭원(문학평론가·서울여대 교수)
빛과 창의 상반관계를 버무려놓은 시편들의 집대성이다. 창을 내다보는 시적자아의 눈은 맑음을 찾지만 밖의 풍경은 항시 어둠으로 점철된 세상이다. 하지만 그 눈은 풋풋한 생명의 빛인 미세한 봄의 푸름을 갈구하고 있다. 창밖의 어둠이 깊을수록 빛나는 별을 주시하고 있는 한 그는 희망적이다. 또한 자신의 살가운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실천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시인은 맑은 창을 통해 바라보려는 투명하고 순수한 유리알 같은 마음의 소유자라만 바깥세상 밝히기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시인 정노천)
*** 축하 메시지 ***
김형태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소중한 정신적인 양식이 되리라 믿으며 앞으로 더욱 문필에 정채(精彩)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시인 구상)
글을 보면 글 쓴 사람을 보지 않고도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김형태 시인을 글보다 먼저 만났다. 시인을 볼 때마다 '어쩌면 저렇게 순수하고 맑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세계도 맑고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기대는 이번 시집의 시들을 읽으면서 시인과 시가 너무 닮아 있어 시인이 시이고, 시가 시인임을 보게 되어 기뻤다.
보리밭의 청보리처럼 언제나 풋풋하고, 촘촘히 여무는 보리 낱알 같은 시인으로 남으리라 믿는다. (희곡작가 유현숙)
김형태 선생님의 시는
그의 바쁘고 드넓은 삶만큼이나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넓디넓다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이인제)
구도자의 길을 걷듯
한 땀 한 땀 우리들의 고단한 삶을 노래하는
시인 김형태
그의 삶은 잔잔한 감동을 주고 그의 시는 영혼을 울립니다.
그의 시가 더욱 많은 분들에게 사랑받기를 기원합니다.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김근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