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광(高光) 장편소설
사마천이 사기를 쓰게 된 과정을 소설로 쓴 작품이다.
배경은 한무제 때...
사마천은 흉노(선우가 통치)를 정벌하려다 흉노에게ㅣ 사로잡혀 투항한 이릉을 변호하러다가 한무졔에게 괘씸죄로 낙힌찍혀 거세를 당한다.
태사령→역사를 기록하는 직책
중서령→황제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직책
司馬씨→同씨 馮씨
한대 황제 계보
한고조→혜제→문제→경제→무제→소제(유불릉)→선제(유순, 여태자의 손자. 무제의 유언으로 유불릉의 뒤를 잇는다)
한고조. 유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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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의 부인 여황후(여치) 의 인간돼지
여후의 장남 혜제가 황위를 물려받았으나 여후의 악랄함에 괴로워하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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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 문제로 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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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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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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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자 반란으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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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유불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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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여태자의 손자)
등 장 인 물
사마천 : 흉노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하다 사마천 거세 당함
위자부 : 무제의 황후
여태자 : 무제+위자..戾태자 : 據라는 이름도 있었다 戾(어그러질 려)
위청 : 대장군, 위자부의 동생이며 무제의 누이인 평양공주의 남편
유굴리 : 여태자의 사부, 승상
이부인 : 유철의 어미, 왕후 위자부가 죽고 나서 아들이 태자가 되고 구익부인이 되지만, 무제가 죽기 전, 동방삭의 비둘기 인형을 보고 불에 뛰어들어 자결을 한다
이광리 : 이부인의 오빠, 무제가 3만 군사로 흉노 토벌 명령했으나 실패하고 흉노에 투항
유불릉(유철) : 여태자가 반란으로 죽고 나서 후일 태자가 됨..
유불릉의 사부: 동방삭→유굴리→공손홍
곽해-무릉에 사는 건달이지만 신망이 높다
전분-태위, 뇌물 인사청탁 아첨, 무제의 신임을 받았다
오복-환관, 오락(양아들 죽고), 오사가 뒤를 이어 무제를 보필
장탕-집행관(정위)
전분-태위(무제의 외숙) 포악
굴원-사마천이 가장 존경
유릉-유안의 딸, 전분과 놀아남
장건-무제의 여자 물사를 선물받음
소무-차제후 선우에게 억류되어 숫양에게 젖이 나오면 풀어준다고 억류됐으나 풀려나지 못함
곽거병-표기장군
이광-飛將軍
아교-무제의 어린 시절 연인
공손홍-유굴리의 뒤를 이어 승상이 됐으나 장탕을 몰아내고 집권을 하려했으나 무제가 이를 알고 죽기 전 퇴츨
대홍려
상홍양 : 대규모 공사 담당
장탕(정위) : 처벌 담당
태사령→역사를 기록하는 직책
중서령→황제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는 직책
司馬씨→同씨 馮씨
※ 순임금의 여자→아황, 여영
승상(유굴리)→태위(공손홍)→대장군→어사대부
▶ 무제본기 완성 후
주을, 양운(외손자), 사마천이 각 1부씩 보관
사마천의 딸 + 양창(남편) → 두 아들(양운, 양창)
▶ 양창, 무제본기→유굴리→공손홍
▶ 공손홍이 양창을 어사대부에 임명
▶ 어사대부 양창 첫일→장탕(정위) 고발
장탕, 화폐(백록피폐) 발행 ←안이(대농령), '이렇게 큰돈'→장탕이 안이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마음 속으로 생각한 것도 죄라면서 처형(腹誹의 법)
◈ 장탕 측근 왕온서, 두주→공손홍 장탕 견제
. 양창이 무제에게 왕온서 고발→왕온서 자살
▶장탕이 공손홍(승상), 태위, 양창(어사대부)와 나마천을 소인배라고 무제에게 상주문 작성→오히려 장탕은 집에 돌아가 숙고하라는 명을 받음.→장탕 자결...사마천을 거세시켰던 장탕
혹리 :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고 좋은 평가는 받지 못하는 자리...
오복의 양아들 오락은 예전에 죽고 오사가 남았다.
오복 쓰러지다쓰러지다. 난대와 유수발근을 불러 병을 고치라고 명령하려다 그만두다. 오복이 죽다. 죽다
무제의 책상엔 평준서와 타다남은 황금처마
무제의 일생동안 두 개의하다 업적
1.흉노 토벌 2.한나라 왕조 태평성세로 이끔
사마천, 무제에게 무제본기 전하다 →장탕과잉 이은 두주에게 연행되어 하옥되다 → 음독자살→실패
황제도 쓰러지다 → 대장군 곽광, 대농령 상홍양, 시중대부 금일 (공손홍 명단에 없다 )
황제 죽기 전 동방삭이 이부인에게 준 비둘기에
황제가 이부인을 자결하라는 명이 있을 것그것
유불릉의 보정대신으로 곽광 임명→공손홍 처단
유불릉에게 태사공기 인쇄를 막다 막다
무제본기를 읽어보라
사마천을 직접 죽인 이후 보고하라
공손홍에게 이부인 자결을 명하게 하고많다 장안 떠나라→이부인은 불속에 뛰어들어 자결
두주의 손을 빌린 유불릉(소제)의 검에 사마천 죽다
또 한명의 한나라 제왕으로서 그의 생애는 사마천을 찔러 죽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무제, 유릉에게
"서로 풀지 못할 가게 뭐가 있겠느냐? 나도 유씨고, 너도 유씨인데......" 마지막 말을 걸다 남기고 세상을 떠나다
The end
첫댓글 사마천은 한무제에게 남성을 거세 당했으나.
사마천은 황제 개인의 역사라고 생각한 한나라의 역사를 거세시키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