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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삼국지(三國志) - 사랑 (愛)
과목명 : 중국문학개론
작성일 : 2018.5.15
학과 및 학번 : 중국언어와문화학과 170216
이름 : 심상원
1. 내용 정리
초패왕 항우를 물리친 유방은 한(漢)나라는 200여년 동안 유지되어 이어 내려오다 외척 왕망에게 동안 제위를 찬탈을 당하고, 한 황실 후예인 유수가 15년 만에 제위를 다시 되찾고, 후한으로 이어졌다. 후한 12대 영제가 제위에 오르고 외척과 십상시(환관)들의 출연으로 국정은 극도로 문란해지고 민생은 크나큰 절망을 빠졌다. 이에 태평도의 교주 장각이 이끄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조정에서는 관군을 편성하여 황건적 토벌에 나섰다. 이때 한 황실 혈통으로 탁군이라는 조그만한 마을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는 유비는 관우와 장비를 만나 복숭아동산에서 복사꽃이 만발한 아래 의형제를 맺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 난세를 헤쳐나가자고 결의하니, 이른바 ‘도원결의’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의병을 모집하여 황건적의 토벌에 동참하고, 관군과 의용군의 협력으로 황건적은 토벌되고 그에 공을 세운 군웅들은 자신들의 근거지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이미 후한은 기울어지고 있던 셈이다. 영제가 죽고, 조정의 권력을 잡은 대장군 하진은 십상시들의 반대를 누르고 자신의 누이인 하 황후가 낳은 아들을 소제를 영제의 뒤를 이을 황제로 세웠다. 하진은 십상시 세력들을 뿌리 뽑아 몰살 시키기 위해 각지의 군웅들을 불러 도성으로 불러들이려고 하는데, 십상시들의 반격으로 하진은 오히려 죽게 된다. 장수 원소와 조조 등이 대궐로 들어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을 모두 죽였으나 나라 중추가 무너져 큰 혼란에 빠지게 됬다. 이때 하진의 격문을 받은 서량의 군벌 동탁은 환관인 단규 등이 소제와 그의 동생인 진류왕 유협을 인질로 붙잡고 소평진으로 달아났다. 동탁은 군대를 이끌고 북망에서 소제와 진류왕을 구출하여 낙양으로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하진의 부대를 흡수하고, 대군을 이끌어 입성하여 조정의 실권을 차지하고 무용이 뛰어난 장수 여포를 부하로 앞세워 궁정의 세력을 장악하고 횡포를 부렸다. 동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 태후를 무참하게 죽이고 소제를 폐위시키고, 소제의 이복동생인 진류왕을 새 황제로 세웠는데 이 때 진류왕의 나이는 겨우 아홉 살에 불과했다. 이 진류왕이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이다. 동탁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조조는 검문에서 잡히고 말았지만 진궁의 도움으로 다시 풀려나고 곧 동탁토벌을 위해 각지에 격문을 보내니, 북평태수 공손찬, 발해태수 원소, 남양태수 원술, 장사태수 손견 등의 각지 제후, 군웅들이 모여 연합군을 구성하여 동탁 토벌에 나섰다. 동탁은 화웅을 선봉으로 앞세워 기세를 올렸으나 당시 공손찬의 막하에서 있던 관우가 화웅의 목을 베어 전세를 역전시키고, 동탁은 다시 여포를 보내 싸우게 했지만,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분전으로 패퇴했다. 전세가 불리해진 동탁은 도성 낙양을 불태우고 황제와 수십만의 백성들을 강제로 이끌고 장안으로 천도했다. 장안에 도착한 동탁은 그곳 백성들의 재물 등을 약탈하며 장안 교외에 미오성을 짓고 그 곳에 식량과 금은보화 재물들을 쌓아두고 사치와 향락을 즐겼다. 한편 연합군의 맹주로 추대된 원소는 제후들과 군웅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고 서로의 이권만 생각하고 챙기려다 싸우는 바람에 연합군의 단합력은 급속도로 약화되고, 이때 동탁이 불태우고 떠난 낙양 궁궐 우물에서 연합군의 선봉장 손견은 옥새를 얻고 야망을 품은 손견은 자신의 근거지인 강동으로 향하는 것을 시작으로 연합군은 와해되어 각자의 근거지로 돌아갔다. 연합군 맹주 원소는 형주자사 유표에서 손견을 저지하여 옥새를 뺏으라는 밀서를 보내고 한나라 황실의 종친인 유표는 부장 황조를 보내어 강동으로 남하하는 손견을 저지하고 황조의 매복계에 걸려 손견은 무참히 전사하고 말았다. 이 무렵 북방에서는 공손찬이, 하북에서는 원소가 세력을 키우며 인재들을 모으며 천하를 넘보고 있었다. 또 남양에서는 원소의 사촌동생인 원술이, 산동에서는 조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때 공손찬의 막하에 있던 유비도 도겸이 물려준 서주의 소패성에서 힘을 기르고 있었다. 한편 장안에서 폭정을 일삼고 있던 동탁은 조정의 중신 왕윤과 그의 수양딸 초선이 합작하여 이루어낸 미인계와 연환계에의 함정에 걸려 대권을 잡은지 3년만에 자신의 부하인 여포에게 참살당했다. 동탁이 죽자 그의 부하인 이각과 곽사가 장안을 기습하여 다시 조정의 실권을 잡았다. 이 둘은 황제를 협박하여 왕윤의 목을 베고 자신들의 마음대로 벼슬을 정하는 등 국정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자기들끼리 싸움이 붙어 장안은 이각과 곽사의 싸움터로 변했다. 황제 헌제는 가까스로 장안을 탈출하여 들판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산동에서 힘을 키우고 있던 조조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와 이각과 곽사를 무찌르고 황제를 낙양으로 맞아들였다. 이로써 조조가 조정의 실권을 잡게되고 도성을 허도로 천도하여 자신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이때 조조의 휘하에는 순욱, 순유, 정욱, 곽가 등 뛰어난 모사들과 하우돈, 하우연, 조홍, 조인, 서황, 전위 등 훌륭한 장수들이 있었다. 조조는 먼저 서주에 있는 유비와 여포를 갈라놓기 위해 황제의 이름으로 조서를 보내 남양의 원술과 서주의 유비를 싸우게 했다. 유비가 원술을 공격하는 사이 얍삽한 여포는 서주성을 차지해버렸다. 이에 유비는 서주의 소패성으로 물러나 잠시 울적인 날을 보내게 되었다. 이때 원술의 휘하에 있던 손책은 나이가 듦에 따라 아버지의 손견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여 손견에게 물려받은 옥새를 담보로 맡기고 원술에게서 군마를 빌렸다. 그리고 아버지를 도운 정보, 황개, 한당 등 장수들과 그의 절친한 주유과 함께 빌린 군사를 이끌고 강동으로 향했다. 손책은 강동을 차례차례 평정하며 그곳에서 장소와 장굉, 태자자, 주태 등의 뛰어난 무장들을 얻으며, 천하제패를 꿈꾸는 신흥 군벌로 일어섰다.
조조는 동탁의 옛 부하 장제의 조카 장수의 침입을 받았으나 곧 항복을 받았다. 그런데 조조가 장제의 처 추 씨의 미모에 반하여 후궁으로 삼아 연일 음락을 즐기는 데 자신의 숙모를 농락하는데 화가난 장수는 반발하여 조조의 막사를 야습했다. 이를 막으려던 맹장 전위가 전사하고 조조의 아들 조앙, 조카 조안민까지 목숨을 잃었다. 무참하게 당한 조조는 크게 뉘우치고 다시금 천하제패의 각오를 새롭게 가다듬는 계기가 되었다.
한편, 남양의 원술은 손책에게서 얻은 옥새를 등에 업고 수춘성에서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올랐다. 조정에 엄연히 황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원술이 황제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이에 조조는 손책, 여포, 유비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합류하도록 요청하고, 친히 원술 토벌의 대군을 일으켰다. 수춘을 포위하지만 뜻하지 않은 장기전으로 인해 조조군은 군량이 모자라 군사들의 불평이 늘어나고 사기가 저하되자 조조는 죄 없는 군량 감독관 임준의 부하인 왕후가 군량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워 그의 목을 베어 군사들의 원망을 없애고 맹공격을 퍼부어 수춘성을 함락시켰다. 이미 성을 빠져나간 원술은 회수를 건너 도망쳤다. 원술을 패퇴시킨 조조는 예주에서 다시 힘을 기르고 있던 유비에게 서주의 여포를 치자고 한다. 후일 원소와의 결전에 대비하여 미리 화근을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여포는 모사 진궁, 맹장 장료, 장패 등과 결전을 준비하고 적토마를 타고 용감하게 맞서 싸웠지만 결국 서주성을 뺏기고 하비성으로 퇴각한 여포는 모사 진궁이 조조를 이길 수 있는 비책을 마련해 주었으나, 처첩의 모함에 빠져 진궁을 의심하는 변덕을 부렸다. 결국 여포는 잠든 사이에 부하장수들에게 포박 당한 채 조조 앞에 꿇려 목숨을 구걸하였으나 조조는 여포를 죽이고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었던 진궁의 목 마저 베고 맹장 장료는 살려주어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여포를 평정하고 조조는 허도로 돌아가는데, 유비도 조조를 따라 허도로 들어갔다. 조조는 사냥터에서 헌제를 업신여기는 행동을 서슴치 않게 하여 욕을 당한 헌제는 동승에게 조조를 제거하라는 밀조를 내렸다. 이에 동승은 비밀리에서 길평, 마등, 유비 등의 동조자들을 모으고 조조를 죽일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때 전에 유비를 보살펴주었던 북방의 공손찬이 원소와 결전을 벌이다 패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유비는 원술을 친다는 핑계를 대고 조조에게서 군사를 빌려 조조의 울타리에 빠져나왔다. 이 무렵 세력이 쇠락해진 원술은 갖고 있던 옥새를 사촌형 원소에게 바치고 도움을 요청하러 가다가 유비에게 참패하여 목숨을 잃었다. 손견, 손책을 거쳐 원술이 갖고 있던 옥새는 마침내 조조의 손에 들어가 원래 자리인 한의 황제에게 되돌아갔다.
공손찬을 패망시키고 하북 4개주를 다스리고 있던 원소는 드디어 조조와의 일전을 준비하여 심배, 전풍, 저수, 봉기, 허유 등의 모사들과 안량, 문추 등의 무장들과 함께 30만 대군을 이끌고 허도로 진출 했다. 조조는 이에 20만명 대군으로 맞서서 두 영웅의 결전이 시작되었다. 두 군사들은 서로 대치하며 공방을 벌이고 잠시 잠잠해진 틈을 타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사신을 보내서 장수에게서 항복을 받아내고 장수의 모사 가후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조조는 다시 예형을 유표에게 보내 형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그러나 예형의 심한 독설을 견디지 못한 유표의 장수 황조가 예형을 죽이는 바람에 조조와 유표도 원수 관계가 되었다. 그 무렵 국구 동승은 태의 길평과 함께 조조를 독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사전에 계획이 누설되는 바람에 가담자 중에 유비와 마등을 제외한 모두가 잡혀 가족까지 죽임을 당했다. 유비의 가담 사실을 안 조조는 20만 대군을 일으켜 유비가 있는 서주로 향했다. 유비는 관우, 장비와 병력을 나누어서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모두 패퇴하여 흩어지고 말았다. 장비는 망탕산으로 향했고, 유비는 하북의 원소에게로 갔다. 이때 유비의 가족들과 함께 서주의 하비성을 지키고 있던 관우도 패퇴하여 토산에서 조조의 대군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평소에 관우의 대해 관심이 있었던 조조는 장료를 관우에게 보내 항복을 권했다. 관우는 함께 죽기로 맹세한 도원결의와 유비의 가족을 생각하여, 관우는 항복을 권유하는 조조의 부하 장요에게 3가지 조건을 받아들이면 투항하겠다고 말하였다. 첫째, 자신은 조조가 아닌 한나라 황제에게 항복하는 것이며, 둘째 자신이 모시고 있는 유비의 두 부인에 대한 안전을 보장할 것이며, 셋째 지금은 행방을 모르지만 유비가 있는 곳을 알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조조는 이 조건들을 받아들이고 관우는 일시적으로 항복하였다. 조조는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벼슬을 내리고 잔치를 베푸는 등 정성을 다해 대하였고, 나중에는 여포가 타던 명마 적토마까지 주었지만 끝내 관우의 마음을 돌이키는 못하였다. 한편 원소는 다시 대군을 이끌고 조조와의 결전에 나섰다. 조조군은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에게 계속하여 패하자 조조는 마침내 관우를 불러내고, 관우는 안량과 문추의 목을 베어 조조의 은혜의 보답했다. 이때 유비가 원소진영에 있음을 알게 된 관우는 조조를 떠났다. 조조는 관우를 무사히 통과시키려 하였으나, 관문을 지키는 장수들에게 미처 명령이 전달되지 못하였다. 동령관에 이른 관우는 통행령을 전달받지 못하였다며 가로막는 공수를 베고 낙양으로 향하였다. 낙양관에 이르러서는 낙양 태수 한복과 그의 아장 맹탄을 베고 돌파하였고, 사수관에서는 변희를, 형양관에서는 왕식을, 황하를 건너는 관문에서는 진기를 베고서야 유비가 있는 원소의 영토로 들어섰다. (이 일이 ‘오관참장’의 고사성어의 배경이다.) 이 소식을 들은 유비도 원소에게서 빠져나오고 흩어졌던 유비, 관우, 장비 삼의형제는 다시 재회하게 되었다. 이때 유비는 공손찬의 패망으로 떠돌이 신세인 조자룡을 새로 얻었다.
소패왕으로 불리며 강동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던 손책은 조정에 표문을 보내어 대사마 벼슬을 내려달라고 했으나 애송이 주제에 설친다고 생각한 조조에 의해 좌절되고 말았다. 이에 손책은 허도로 쳐들어가 조조와 결전을 벌일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을 실현하기도 전에 자객의 습격을 받아 중상을 입고 말았다. 병상에서도 조조를 어떻게 하면 무찌를 수 있을까 하며 골몰하던 때에 원소의 사자가 와서 함께 조조를 치자고 제의하니, 흔쾌히 수락하면서 원소의 사자에게 성대한 잔치를 베풀었다. 이때 신선으로 알려진 우길이 등장한다. 중신들과 강동의 백성들이 모두 우길에게 몰려가 그를 향해 경배했다. 이를 본 손책잉 강동에서 자기보다 더 추앙받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우길을 잡아 죽여버린다. 그 후 손책은 우길의 귀신이 빙의된 듯 발광하던 손책은 중태에 빠져 죽음을 직감하고 동생인 손권에게 후사를 맡기고 죽었다. 이에 열아홉살에 강동의 주인이 된 손권은 장소, 주유 등과 새로 얻은 노숙, 제갈근 등 모사들과 함께 강동을 지켜나간다.
한편으로 하북의 원소는 70만 대군을 일으켜 조조와의 결전을 준비했다. 이때 전풍과 저수 등 모사들은 시기가 좋지않다면 출전을 만류했지만, 원소는 듣지도 않고 막무가내로 대군을 이끌고 관도를 향해 출전했다. 조조는 7만병사로 원소와 붙었지만 원소군이 서전에서 대승을 했다. 패한 조조는 후퇴할 생각을 하고 허도에 있는 순욱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순욱은 후퇴하면 끝장이라 하며, 요충지를 굳게 지키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다가 기회가 오면 단숨에 무찔러야 한다는 회신을 보냈다. 다시 힘을 얻은 조조는 원소군의 군량창고 경비가 허술하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기습작전을 감행했다. 70만 원소군의 군량을 모두 태워버린 조조군은 다시 맹공격을 가했고, 군량이 다 타버린 원소군은 조조군에게 패하고 말았다. 원소는 다시 군사를 모아 반격해보았지만 계속되는 패배에 결국 각혈하며 죽고 말았다.
조조는 원소를 관도에서 격파하고 강북을 평정했다. 조조는 원소를 무찌른 기념으로 장하 언덕에 동작대를 짓고, 칼날을 형주로 돌렸다.
유비는 조조가 원소와 싸우고 있는 동안 비어 있는 허도를 공략하려고 했으나 여의치가 않아 형주의 유표에게 가서 의지하고 있었다. 유표는 조조의 침입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종친인 유비를 맞아들였다. 이때 유비가 형주에 온 것을 탐탁치 않았던 유표의 후처 채부인 일당은 유비를 해치려고 했으나 유비는 새로 얻은 명마 적로 덕분에 빠져나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형주의 신야에서 서서를 얻은 유비는 그를 군사에 임명하여 군사를 훈련케 했다. 그러나 서서의 노모가 조조에게 잡혀 있는 것을 알고 그를 할 수 없이 조조진영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서서는 떠나기 전에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해주었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천하의 최고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제갈량을 얻었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서촉을 평정하여 근거지로 삼고, 강북의 조조와 강남의 손권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는 천하삼분지계를 제시했다.
조조는 강북을 제패한 여세를 몰아 형주를 평정하려고 했다. 이때 조조진영에 있던 공융은 유비롸 유표는 둘 다 한나라 황실의 종친이니 그들을 치는 것은 부당하다며 형주 평정을 말리다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조는 형주로 출정하였고, 이때 형주자사 병상에 누워있던 유표는 유비에게 장남 유기를 부탁하고 죽었다. 그러나 유표의 후처인 채부인은 자기가 낳은 아들 유종을 형주의 새 주인으로 세웠다. 이때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오자 유종은 한번도 싸워보지도 않고 조조에게 항복했다. 유비는 자신을 따르는 수십만의 형주 피난민들을 이끌고 조조군을 피해 강릉성으로 향했다. 피난민들 때문에 느리게 이동하던 중 당양벌에서 뒤쫓아오던 조조군에게 추월당하고, 조자룡은 유비의 가족을 구하기 위해 혼자 조조의 대군 속으로 뛰어 들어 마침내 미부인과 어린 아들 아두를 찾았으나 미부인은 세 명이 대군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아두를 부탁하고 옆 우물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조자룡은 아두를 품에 안고 조조의 대군과 사투를 벌이며 뚫고 나왔다. 이때 장비는 장판교의 다리 위에서 혼자 말 위에 안장 조조의 대군을 막고 있었다. 장비는 부하들에게 말 꼬리에 지푸라기를 길게 달게 하여 먼지를 일게 했고, 의심이 많은 조조는 함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군사를 후퇴시켰다. 조조의 추격에서 벗어난 유비는 다시 군마를 재정비 할 수 있었다.
형주를 차지한 조조는 강동까지 평정하여 천하통일을 이루어내려고 양자강의 적벽에 진을 치고 손권을 격파하려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손권에게 파견하여 함께 협력하여 조조를 치자고 했다. 손권은 제갈량과 주유, 노숙의 말을 받아들여 유비와 힘을 합쳐 조조를 물리치기로 했다. 적벽대전이 서막이 오른 것이다. 손권 측 대도독인 주유는 조조군이 물의 싸움에서 불리하고 약한 것을 파악하고 화공으로 무찌르는 전략을 세웠다. 주유는 제갈량에 버금가는 봉추 방통을 조조에게 잠입시켜 조조군의 배를 모두 쇠사슬로 묶게하는 연환계를 사용하는데 성공한다. 주유는 노장 황개를 조조에게 거짓 항복하게 한 다음 동남풍이 불 때 황개의 투항선 20척에 불을 붙여 조조군의 배에 돌진하게 했다. 쇠사슬로 묶여진 조조의 선단은 모두 불에 타고 이때 손권과 유비의 5만 연합군이 조조의 진을 습격하니 조조의 백만 대군이 여지없이 패하였다. 이때 제갈량은 조조가 도주하는 길목마다 복병을 배치했다. 조조가 패잔병과 화용도에 도착했을 때 그곳을 지키고 있던 관우는 일전에 자신에게 극진하게 대해주었던 조조의 은혜를 생각하여 조조를 그냥 보내주고 만다. 유비는 군사를 움직여 형주를 탈환하고 마량, 마속 형제와 노장 황충, 맹장 위연까지 새로 얻게되었다. 적벽대전의 전리품이라고 할 수 있는 형주를 유비가 먼저 차지하니 손권과 주유는 심기가 불편했다. 결국 형주는 유비와 손권의 외교 문제로 번지게 되고, 주유는 형주를 되찾기 위해 손권의 누이동생을 유비와 정략결혼 시킨다고 속이고 강동으로 유인해 죽이려는 계략을 꾸미지만, 이를 간파한 제갈량 때문에 계락은 수포로 돌아가고 손권은 누이만 유비에게 바치는 꼴이 되고 머리 싸움에서 여러 번 제갈량에게 진 주유는 화병이 터진 데다, 전에 화살을 맞았던 상처까지 다시 도져서 죽고 말았다.
주유가 죽자 강동의 군권은 노숙이 이어받고 노숙은 방추 방통은 손권에게 천거했으나, 방통의 볼품없는 용모에 손권은 방통을 기용하지 않았다. 방통은 유비를 찾아갔다. 유비 또한 손권처럼 용모에 실망하여 중용하지 않았으나, 곧 깨닫고 부군사로 임명하니 유비는 천하의 두 기재 복룡과 봉추를 모두 얻었다. 한편 조조는 서량의 군벌 마등을 도성으로 불러들였다. 전에 국구 동승과 함께 조조암살음모에 동참했던 마등은 왠지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조조가 황제의 조서로 부르니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등은 무예가 뛰어난 아들 마초에게 서량을 맡기고 5천 군사를 이끌고 도성으로 향했다. 조조가 자신을 죽이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등은 반대로 조조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꾸미지만 그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결국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마초는 서량태수 한수와 방덕, 마대와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아버지 마등의 원수를 갚으러 허도를 향해 돌격하여 조조군을 상대로 거듭 승리를 이끌지만 조조가 마초와 한수 사이를 이간질
시키는데 성공하여 마초를 한중으로 쫓아냈다.
이렇게 서로 치고, 맞고, 싸움이 계속 되고 있을 때 서촉의 인근 한중에서 장로가 서촉 국경을 끊임없이 건드리고 있었다. 이를 처리하기고 해결하기에 부족한 인물인 유장은 형주의 유비에게 도움을 청했다.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를 제의 받았던 유비는 기회다고 판단하여 서촉의 관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방통, 방충, 위연 등과 함께 대군을 이끌고 서촉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유장의 극진한 대접과 환영을 받았지만, 점점 둘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유비가 촉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투 도중 부군사 방통은 낙봉파에서 전사하고 만다. 유비는 형주의 수비를 관우에게 맡기고, 제갈량, 장비, 조자룡 등을 서촉 정벌에 합류토록 한다. 이때 제갈량은 장로 휘하에서 근신하고 있던 맹장 마초를 지략으로 사로잡아 유비의 사람이 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을 넘어 유비는 서촉의 도성인 성도를 점령하고 서촉을 평정한다. 이때 강동의 손권은 유비에게 사신을 보내 서촉을 얻었으니 형주를 돌려달라고 요청한다. 유비는 형주의 일부를 손권에게 떼어 주려고 하였으나 형주를 지키고 있던 관우의 반대로 떼어주지 못한다. 이에 앙심을 품은 노숙은 관우를 진중으로 초대하여 관우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칼 한 자루만 차고 찾아온 관우를 죽이지 못하고 돌려보내고 만다. 이 무렵 조조는 헌제로부터 위공에다 구석의 특전까지 받고, 이를 본 순욱과 그의 조카 순유는 한나라 황실의 충성을 내세워 조조의 부당함을 고하다가 조조에게 죽임을 당했다. 조조는 서쪽으로 칼날을 향하여 서촉에 인접한 한중을 평정했다. 이때 합비를 지키고 있던 장료로부터 손권의 오군이 쳐들어왔다는 전갈을 받은 조조는 급히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구하러 갔다. 이 전투에서 조조군의 장료와 오의 감녕이 눈부신 활약을 했고 손권의 경호를 맡은 주태는 조조군의 포화속에서 손권을 여러번 구출해냈다. 손권을 무찌르고 다시 허도로 돌아온 조조는 위왕으로 즉위했다. 위 왕궁이 건립되자 조조는 성대한 잔치를 베푸는데, 이때 환술사인 좌자가 나타나 조조를 우롱했다. 조조는 좌자를 잡아 목을 베었으나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이에 조조는 관로를 불러 점을 쳤는데, 관로는 정월 대보름날 허도에 큰 화재가 나며, 유비가 곧 한중으로 쳐들어온다고 예언했다. 대보름날이 되자 관로의 점괘대로 한나라 황실을 섬기는 조조의 반대세력들이 도성에 방화하고 모반을 일으켰다. 이에 미리 대비하고 준비하고 있었던 조조는 신속하게 도성의 불을 끄고, 모반을 꽤한 자들을 일망타진했다.
서촉 평정을 마무리한 유비는 서촉과 인접한 한중을 쟁탈하기 위해서 군사를 일으켰다. 조조도 대군을 이끌고 한중을 구원하러 왔다. 이때 촉군의 노장 황충이 조조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하후연의 목을 베었다.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촉군은 계속하여 조조군을 상대로 맹공격을 퍼부었다. 거듭된 패배를 당한 조조는 어느 날 ‘계륵’이라는 군령을 내리는데 이에 양수는 조조의 심리를 파악하여 전군에게 철수준비를 시켰다. 그러나 조조는 불같이 노하며 군령을 어지럽힌 죄로 양수를 참수하고, 전열을 정비하여 재반격에 나섰지만, 촉의 맹장 위연의 화살을 맞고 낙마하는 등 참패를 당하고 마침내 한중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이제 서촉, 형주, 한중을 평정한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에 올라 제갈량을 군사로, 관우, 장비, 조자룡, 마초, 황충을 오호대장군으로, 위연을 한중태수로 임명하는 등 국가의 체제를 갖추었다. 천하는 조조, 유비, 손권에 의해 완전히 삼분이 된 것이다.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자 조조는 우금과 방덕을 보내어 형주의 관우를 공격하게 했다. 관우는 양강 상류의 물을 이용하여 조조군을 공략하므로 방덕의 목을 베고 우금의 항복을 받아내는 큰 공을 세웠다. 이때 전투 중 독화살을 맞은 관우는 화타의 수술 집도로 팔을 치료했다. 관우는 봉화대를 세워 오나라 손권의 방어에도 충실을 기하고, 위의 후방을 공략하기도 했다. 이때 노숙의 뒤를 이어 오의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를 쳐서 형주를 뺏으려는 계획을 세웠다. 여몽은 일부러 병을 핑계로 일선에서 물러나고 그 자리에 육손이라는 인물을 배치했는데, 육손을 업신여긴 관우는 주력부대를 모두 위쪽으로 옮기고, 기회가 왔다고 판단한 여몽은 군사를 이끌고 형주를 향해 진격하여 형주성을 점령하고 맥성으로 쫓겨 간 관우는 상용성에 있는 유봉과 맹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의견차이로 지원하지 못하고 관우는 결국 오군에게 사로잡혀 참수 당하였다. 오에서는 유비의 보복이 두려워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내고 이를 간파한 조조는 관우에게 형왕의 시호를 내리고 후히 장사지내 주고, 얼마 후 조조도 죽었다. 조조가 죽자 장남인 조비가 위의 왕위를 이어 받았다. 조비는 아우 조창과 조식을 멀리 변방으로 내쫓아 후환을 없애고,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이던 헌제로부터 선양받아 제위를 찬탈하여 위 황제에 올랐다. 전한 200년, 후한 200년 도합 400여년 동안 이어 내려오던 한나라 왕조가 조조의 아들 조비에 의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 이듬해 한중왕 유비도 한의 부흥을 앞세우며 촉 황제에 오르고, 머지않아 손권도 오왕에서 오 황제에 올랐다.
유비는 관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정비하며 오 정벌을 준비했다. 그러나 출전에 앞서 장비가 자신의 부하인 장달과 범강에게 암살당하여 장비의 머리가 오에 보내지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한날 함께 죽기로 맹세하였던 두 아우가 죽자 이성을 잃은 유비는 제갈량의 만류를 뿌리치고 대군을 몸소 이끌고 오로 쳐들어 갔다. 이때 오에서는 제갈량의 친형 제갈근을 보내 형주를 도로 촉에게 반환하겠다며 화친을 제의했으나 유비는 듣지 않았다. 서천싸움에서 승리로 장식한 촉군은 승승장구하여 강을 따라 오 국경 깊숙이까지 들어갔다. 다급해진 손권은 육손을 대도독으로 임명하여 유비의 촉군을 막게 했다. 육손은 서두르지 않고 계속 시일을 끌며 장기전으로 들어가 촉군을 지치게 했다. 어느 덧 여름이 되어 한여름 햇빛을 견디기 힘든 촉군은 계곡가 숲에 장사진을 치자 육손은 총공격을 내렸고, 촉군이 진을 치고 있는 숲에 불을 지르며 맹공격을 가하였다. 참패한 유비는 백제성으로 후퇴했고, 유비를 물리친 육손은 이릉전투의 영웅이 되었다. 백제성에서 병이 든 유비는 제갈량을 속히 불러 후사를 부탁하고 죽었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촉의 새 황제가 되었다. 제갈량은 오와 다시 화해하는 한편, 남쪽 궁격을 어지럽히는 남만정벌에 나섰다. 남만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고 일곱 번 다시 놓아주면서 결국 마음으로 따르게 한 제갈량은 황제에게 출사표를 바치고 북벌에 나섰다. 이때 위에서는 조비가 죽고 아들 조예가 위 황제로 즉위했다. 제갈량이 이끄는 촉군은 조자룡의 활약으로 연승을 거두었고, 강유라는 인재를 얻었다. 그러나 가정의 싸움에서 마속이 명령을 거역하고 위의 사마의에게 패함으로써 다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전군을 철수한 제갈량은 울며 마속의 목을 베었다. 촉 조정의 비협조와 위 명장 사마의에게 막혀 북벌을 이루지 못했다. 오장원 진중에서 병을 얻은 제갈량은 마침내 숨을 거두니, 그때 그의 나이 54세였다. 촉은 제갈량이 미리 일러둔 대로 사마의의 공격을 잘 막아내었으나, 군권이 양의에게 돌아간 데에 불만을 품은 위연이 반기를 들고 일어섰다. 다시 위연의 목을 베고 반군을 진압한 촉군은 제갈량의 시신을 앞세우고 성도로 철수했다.
제갈량이 죽고 삼국은 한동안 잠잠했다. 사마의는 제갈량의 공격을 막아낸 공으로 위나라에 원훈이 되었다. 이때 위 황제 조예가 방탄한 생활로 서른여섯의 나이로 죽자 그의 태자 조방이 여덟살의 나이로 위 황제에 즉위했다. 실권자는 조상이었으나 사마의가 쿠데타를 일으켜 조상을 처리하고 자신이 실권을 장악했다. 사마의가 죽자 장남 사마사가 대장군이 되어 실권자의 지위를 이어받았다. 오나라의 손권은 일흔한 살의 나이로 죽었다. 그의 어린 아들 손량이 즉위를 이어 받고, 위군이 쳐들어오자 실권자인 제갈각이 물리쳤다. 기세가 오른 제갈각은 촉의 강유와 연합하여 위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사마사 형제의 활약으로 촉과 오는 모두 패퇴하고 말았다. 이때 패하고 돌아온 제갈각은 반대파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한편 성장한 위나라 황제 조방은 실권자 사마사를 제거하려고 하자 사마사는 오히여 조방을 내쫓고 조모를 위 황제로 새로 세웠다. 신하가 황제를 폐위하고 세우는 상황에 동탁과 다를바가 없었다. 그 후 사마사가 눈병으로 죽자 그의 아우 사마소가 실권자의 지위를 물려받고, 위 황제 조모가 사마소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살해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사마소는 조환을 위나라 황제로 세우고, 촉을 멸하기로 결심하고 명장 등애와 종회를 시켜 두 갈래 길로 공격하게 했다. 촉장 강유가 종회의 위군을 막고 있는 사이 등애가 성도를 포위하고, 촉 황제 유선으로부터 항복을 받았다. 제갈량이 죽은 지 31년만에 촉은 멸망하고 만 것이다. 촉을 멸망시킨 사마소는 진왕이 되었다. 후에 사마소가 풍병으로 죽고, 새로 진왕이 된 아들 사마염은 위 황제 조환으로부터 제위를 찬탈하며 진 황제가 됬다. 조조의 아들 조비가 헌제로부터 제위를 찬탈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찬탈한 것이다. 오나라는 손량, 손휴에 이어 손호가 황제로 즉위했다. 손호는 허구헌날 놀기만 하며 국정을 돌보지 않아 국력이 피폐해진 틈을 진 황제 사마염이 왕준과 두예를 육로와 수로를 나누어 오를 공략하니, 오 황제 손호는 항복하고 말았다. 손견과 손책이 갖가지 고난을 짊어지며 창업하고, 오랜 기간 수성을 이끌어낸 손권이 지켜낸 오나라도 멸망한 것이다. 이로써 진의 사마염에 의해 위, 촉, 오 삼국이 멸하고, 중국대륙의 천하통일이 이루어졌다.
2. 소회 및 자기 평가
‘삼국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아마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역사이자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지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후한 말기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진수의 역사서인 정사 삼국지와 다르게 역사책을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연의(演義)라는 말 자체가 "사실에 내용을 보태서 재미나게 설명한 책이나 창극"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청나라 학자 장학성은 7할의 사실과 3할의 허구라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어느 정도 큰 줄기와 틀은 역사의 사실을 기반으로 하여 적어도 그 시대의 분위기 정도는 느낄 수 있으며, 무엇보다 역사에 대한 흥미유발이란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인 초선과 여포의 러브스토리와 초한지의 항우와 우희 그리고 신조협려의 양과와 소용녀의 러브스토리를 탐구, 비교해 보고자 한다. 먼저 초선은 누구인가? 중국 4대미녀 중의 한 명으로 서시, 왕소군, 양귀비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초선의 미모에 달도 부끄러워 구름 사이로 숨어 버리는 구나.' 폐월(閉月)이라고도 불렸다. 그러나 정식 역사서에는 초선이란 여성의 기록은 없다. 정사 삼국지 「여포전(呂布傳)」에 “동탁이 여포로 하여금 중각(中閣)을 지키게 하였는데, 여포가 동탁의 시종과 사사로이 정분을 통하여 발각될까봐 두려워 마음이 불안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시종을 두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기록에는 그녀가 초선이라고 확실하게 명시되지는 않았다. 초선의 이야기 중에는 4가지의 설이 있다.
(1) 왕윤(王允)의 가기(歌妓)라는 설.
왕윤은 영제때 예주자사에 임명되어 헌제가 즉위하자 다시 사도에 임명되었다. 당시 동탁은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정권을 전횡하고 있어 동탁을 제거할 생각으로 미인계로써 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동안 적합한 대상을 찾지 못해 고심에 빠져있었다. 가기 초선은 그러한 왕윤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항상 정성을 다해 가무를 연출했다. 왕윤은 초선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도움을 청했다. 초선은 사정을 알고 성심을 다해 왕윤을 돕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녀는 왕윤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해 마침내는 여포의 손을 빌어 동탁을 죽이게 한다.
(2)동탁의 시녀라는 설.
동탁은 본래 양주의 호족으로 영제때 병주 목사가 되었다. 동탁은 군대를 이끌고 낙양에 진입해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옹립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이에 조조와 원소등이 군대를 일으켜 반대하자, 그는 헌제를 협박해 장안으로 천도 후 스스로 태사가 되었다. 그 후 동탁은 여포에게 피살되었는데 <후한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동탁은 여포를 기도위로 삼고 부자간이 될것을 맹세한 후 그를 매우 아끼고 신임하였다. 그러나 항상 조금만 뜻을 이루지 못해도 동탁은 창을 뽑아 던졌으며 여포는 권법으로 재빨리 피했다. 이로 인해 여포는 동탁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동탁은 또 여포에게 중각을 지키게 했는데, 여포가 몰래 그의 시녀와 정을 통하자 동탁은 더욱 불만을 가졌다." 여기에서 초선이 여포와 정을 통한 동탁의 시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여포의 아내라는 설.
여포는 처음 병주자사 정원을 따랐다가 정원을 죽이고 동탁의 부하가 되었다. 그러다 다시 왕윤과 모의하여 동탁을 죽이고 분위장군에 임명되어 온후에 책봉되었다가 결국 조조에게 죽게된다.
<삼국지>에 인용된 <영웅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여포는 유비를 보고 그를 매우 존경하였다. 그래서 유비를 장막으로 초빙하여 아내의 침상 위에 앉게 하고는 아내에게 명하여 절을 올리고 술과 음식을 내오게 했다." 곧 여기에 나오는 아내가 초선이다.
(4)여포의 부장, 진의록의 아내라는 설.
<촉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잇다.
"조조와 유비가 하비에서 여포를 포위했을 때 관우가 조조에게 말했다. '여포가 진의록을 보내어 도움을 청하니 그의 아내를 첩으로 맞이하길 청합니다.' 조조가 그것을 허락하였다. 싸움이 끝난 후 다시 여러번 조조에게 그 것을 말하자, 조조는 그녀의 미모가 뛰어난 것을 의심하여 다른 사람을 보내어 보게 한다음 그 것을 만류했다. 이에 관우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서 진의록의 아내가 매우 뛰어난 용모를 지닌 여인임을 알 수 있다. 원래 관우는 자신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엇으나 조조가 그 것을 만류하자 질투가 나 단칼에 진의록의 아내를 죽였다. 이가 곧 초선이다.
이 4가지 설 중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내용은 미인계를 통한 연환계를 사용하는 첫 번째 설과 유사한데 왕윤의 가기(歌妓)가 아니라 수양딸로 등장하며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왕윤이 동탁을 죽이고자 한탄을 한다.
•연일 시름에 젖어있는 왕윤을 지켜보면서 친부모보다 더한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양부에게 어떻게든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선이 끼어들게 되고, 여포와 동탁 사이를 이간질하는 역할을 맡겠다고 자청한다.
•먼저 왕윤이 여포를 불러들이고 초선을 보여준 다음, 초선을 여포에게 첩으로 주겠다고 말을 띄워둔다.
•다음에는 동탁을 초청하여 동탁에게 가무를 보여주면서 그의 첩이 되도록 만든다.
•여포가 '초선을 나에게 주기로 했는데 왜 동 태사(관직명)에게 보내느냐'라고 하자 동탁이 며느릿감으로 제대로 삼으려고 그랬다고 왕윤이 거짓말.
•그러나 동탁은 자기의 침소로 초선을 데려가고, 여포는 시녀에게 그걸 듣고 화가 치민다. 이 때 여포가 동탁에겐 모른 척 하고서 초선을 흘끗흘끗 쳐다보다가 동탁이 그 사실을 깨닫고 여포를 내쫓는다.
•이유가 나서서 동탁과 여포를 화해시키려 한 덕분에 약간 화해한다.
•동탁이 궁궐에서 헌제를 보고 있을 동안 봉의정으로 달려가서 초선과 만난다. 뒤늦게 알아차린 동탁이 그 곳에 도착, 여포를 발견하고 뒤쫓다 방천화극을 던지지만 여포가 피한다. 그 와중에 이유가 도착하고, 이유의 간언에 따라 초선을 여포에게 주는 쪽으로 일단 얘기를 끝낸다. 이유는 물러나오면서 여포에게 동탁이 초선을 줄 것이니 참으라고 한다.
•그러나 초선이 울며 매달리자 동탁은 화를 풀고, 또 초선이 "저런 사나운 가노(家奴, 노비)에게 절 주려고 하십니까"라 하자 동탁은 마음을 고쳐먹고 없었던 얘기로 한다.
다음날 이유가 그대로 행하라고 하자 동탁이 "넌 네 마누라를 남한테 줄 수 있냐"라면서 화를 낸다.
•동탁은 집을 아예 미오성으로 옮기고, 초선도 같이 데려간다. 여포는 언덕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초선이 가기 싫다는 듯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화가 치민다.
•여기서 왕윤이 나타나 여포에게서 사정을 듣고, 자신은 동탁이 여포에게 초선을 주려고 데려간 줄만 알았는데, 며느리 뻘 되는 아이를 자기가 취할 줄은 몰랐다며 오리발을 내밀면서 화를 돋운다. 그러면서 여포를 충동질하여 동탁은 역적이니 죽여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준다.
•여포는 왕윤에게 완전히 넘어가서 연애 감정과 충성심에 휩싸여 동탁을 죽이기로 결심, 왕윤의 동지들(황완 등), 이숙과 함께 동탁이 궁궐에 도착하자 참살한다.
여기에서 초선은 단순히 계략의 도구로서 이용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동탁과 여포를 말로 속이는 지혜로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거의 대부분 남자들의 이야기인 삼국지에서, 여성이 드라마의 중심을 차지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기도 한다.
이 연환계를 실행하는데 성공한 후의 초선의 행적은 또 다시 두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본래의 삼국지연의 판본(모종강본)에서는 그 후에 여포는 초선을 첩으로 삼았는데,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결말은 판본(길천영치본)으로 초선이 시 한 수를 남기고 자결하는 장면이다.
『여자의 살결은 연약하지만
거울 대신 칼을 지니고 있으면
다시금 마음이 가다듬어진다
이 몸은 자진해서 형극으로 돌아가노니
어버이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또,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들었으므로
악기 잡고 춤추던 손에 비수를 감추고
수왕(獸王)에게 다가가 마침내 독배를 주었노라
최후의 한잔은 나를 넘어뜨리노라
아아, 죽어가는 내 귀에 들려오누나
백성들의 환희의 노래 소리가
하늘에서 이 몸을 부르는 소리가』
여포는 이 시를 몇 번 반복해서 읽고 나서야 자신이 속아 넘어간 것을 깨닫고 혼자 가슴을 쥐어뜯었다고 한다. 자결로 이야기를 마친 것은 아마도 초선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보다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창작으로 사료된다. 초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보고, 만지고, 품에 안으며. 동탁에게서부터 되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 여포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초선의 시체를 품에 안으며 슬픔과 고통의 절규에 빠져 흐느끼다 목 놓아 우는 한 남자의 모습이 눈 앞에 생생하게 비추어 지는 것 같다. 참으로 애절하고 비극적인 러브스토리일 수가 없다. 이와 비슷하게 초한지에 등장하는 항우와 우희의 러브스토리를 이야기할 수가 없지 않은데, 우희(우미인) 그 자체는 실존인물이지만, 삼국지연의의 초선만큼이나 창작적인 면이 많은 인물로, 정사에서의 기록은 몇 줄 되지 않으며 오늘날 알려진 그녀의 대부분의 행적은 후대의 문학작품에서 창작된 허구이다. 그러나 아예 허구의 인물인 초선과는 달리 최소한 실존했던 인물로 여겨지기 때문에 간혹 초선을 대신해 중국 4대 미녀에 들어가기도 한다고 한다. 우희는 항우의 숙부 항량이 사람을 죽인 후, 항우를 데리고 오중(吳中,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蘇州) 지역)으로 피신했다. 당시 우희는 회계군(會稽郡, 지금의 저장성 사오싱(紹興)현)에 있었는데, 항우를 흠모하여 그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고 하고, 우희에 대한 묘사는 사마천의 《사기》에 실린 간단한 기록이 전부이다. 기록에 따르면, 항우에게 총애를 받던 미녀로, 늘 그를 따라다니며 곁에서 모셨다고 한다.
『(항우에게는) 우(虞)라는 이름의 미인이 있어서 늘 총애를 받아 따라다녔고, 추(騅)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어서 늘 이를 타고 다녔다.』
有美人名虞, 常幸從, 駿馬名騅, 常騎之. - 《사기》 〈항우본기〉
초한전쟁 막판에 항우가 패배하고 전세가 기울자 그날 밤에 항우는 자신의 최후를 예감했는지 군막에서 술을 마시면서 후세에 〈해하가(垓下歌)〉라는 제목으로 알려진 노래를 불렀는데,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을 만한데, 시운(時運)이 불리하니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나아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꼬? 우(虞)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가사가 몹시 슬펐고, 헤어지기에는 정이 너무 깊고 마음이 아픈 정서가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에 우희가 검무(劍舞)를 추며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땅을 차지하여 사방에 초나라 노랫소리가 가득하고, 대왕의 의기(義氣)가 다했으니 천첩(賤妾)인들 어찌 편히 살겠습니까?”라는 노래로 답했다. 이를 <복해하가(复垓下歌)> 또는 <화해하가(和垓下歌)>라고 한다. 이에 감정이 북받쳐 오른 항우가 눈물을 흘리며 울음을 터뜨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어 서로를 보지 못하였다고 전한다. 결국 그 해하 전투에서 패배한 항우는 스스로 자결을 선택하였다. 이후에 우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그리고 이하는 모두 후대의 문학작품 속 창작이다. 흔히 항우와 함께 〈해하가〉를 부른 후에 그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자결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또한 후대의 창작일 뿐, 역사기록에는 그런 이야기가 일절 없다. 다만 항우가 우미인과 오추마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고, 이후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난전 중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후세까지 기억되는 맹장 여포와 초패왕 항우, 그들의 곁에 있던 초선과 우희, 이들의 이야기가 비슷하게 흘려가는 것 같지만, 실제 항우는 이야기처럼 일 평생 우희 한 여자만 일편단심으로 바라보았고, 여포는 아니였다. 초선의 모델이 된 동탁의 시녀와 통정했다는 기록부터 시작해 자신이 군벌의 수장이 된 후에 부하의 아내들과 간통했다고 서술되는 기록도 있다. 영웅기에 따르면, 여포가 조조에게 사로잡혀 자신을 살려두고 수하로 두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시점에 조조가 언급하길 여포는 부하들의 아내를 사랑했으면서 어떻게 부하를 후대했다고 할 수 있냐고 했다. 한 두명의 부인과 바람 피우고 끝난 일이면 저런 상황이 이루어질까? 강제로 겁탈했다는 표현은 없긴 한데, 간통 자체만으로도 당시 여포는 일개 장수의 신분도 아닌 한 세력의 지도자이기에 충분히 지탄받을 행동이다. 지도자가 조직의 불화를 어떻게든 줄이려고 사사로이 다른 부하의 아내와 간통을 벌인 부하에 대해 조직 내 불화를 초래했다고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에 지도자가 앞장서서 조직 내 불화를 일으키고 다닌 꼴이다. 게다가 부하들을 보호해야 할 위치에 있는 주군이 되려 부하 아내들의 정조를 유린했으니 파렴치할 뿐만 아니라 부하들의 충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심지어 여포의 미화 근원이 되는 초선을 등장시킨 연의에서도 여포는 호색한이라고 못을 박은 바 있다. 왕윤의 연환계도 여포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시도가 가능했던 것. 또한 여포는 초선와의 스캔들 시점에서 이미 아내와 딸이 있었고, 그 이후에도 조표의 딸을 아내로 취했기에 초선에 대하여 일편단심인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로 남녀간의 사랑에서 항우와 우희가 보여주는 일편단심의 모습이 바람직하고, 옳다고 생각하는데, 이와 같이 김용의 작품 신조협려에서의 양과와 소용녀의 러브스토리가 개인적으로 진리라고 생각한다. 소용녀는 조지경에게 쫓겨 동굴까지 온 양과를 감싸다 죽은 손노파의 부탁으로 14세의 양과를 맡아 돌보게 된다. 그러면서 양과에 고묘파 무공 전반을 전수하면서 양과와 소용녀는 사제지간이 되고, 시간이 지나므로 여러 사건에 의해 헤어지고, 재회하고, 떠나면 찾고, 재회하고...를 반복하며 양과가 금기시되던 사랑(사부와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당시의 사상인 군사부일체를 무시하고 하루든, 한달이든, 16년 동안 헤어져있어도 서로 그리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여 만나는 서로 상호간의 일편단심적인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형성된 정(情)을 바탕으로 형성된 사랑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에 대해서 한 가지 이상의 사유에 도달하게 될 정도로, 여기 신조협려에서 그리는 사랑은 지극히 심오하다. 또한 어두운 과거로 인해 사람의 정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가운데 선과 악의 경계 가운데서 지극히 불안정한 행보를 걷는 등 인격적으로 미성숙한 주인공 양과가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이 굉장히 디테일 하며, 극적으로 전개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3쌍의 커플들의 탐구와 비교를 마치며 사랑의 사전적 의미로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녀 간에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런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녀의 사랑이 희극적인 사랑에서 시작하고 비극적인 사랑으로 끝나든지 반대로 비극적인 사랑에서 시작하여 희극적인 사랑으로 끝나든지 결국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이 사랑의 본질을 잊지 않고, 지금 혹은 훗날 사랑하는 사람을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며, 이해하고, 그리워하거나 좋아하고 바라보며, 남자로써 항우와 양과처럼 한 여자만 일편단심 바라보는 그런 해바라기가 되자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초한지-천하대전에서 우희 역을, 신조협려 2006에서 소용녀 역을 연기한 유역비가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영상서사의 압도적인 전달력이 이렇게 무섭다...)
첫댓글 멸하고-->멸망되고. 주제가 재미있긴 하지만, 선생님이 내준 보고서 취지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좀 더 주요한 주제를 골라 썼더라면 좋았을 텐데, 지엽적인 주제로 흘러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