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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시 |
프 로 그 램 |
비 고 |
4월 14일 9시 |
서울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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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 - 11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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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 - 12시 |
대전 뿌리공원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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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 12시 30분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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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30분 - 14시 |
점심 |
대전 종친회 제공 케잌 - 대종회장,청장년회장,대전회장 |
14시 - 15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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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 16시 30분 |
도자기 체험활동 |
계룡산도예촌 |
16시 30분 - 17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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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 - 18시 |
국립공주박물관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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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 18시 30분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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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 30분 - 19시 30분 |
저녁 |
금승헌 감사 - 오리정식 |
19시 30분 - 20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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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 - 21시 |
숙소 배정 |
금강자연휴양림 |
21시 - 23시 |
정기총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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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시 |
뒷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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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9시 - 10시 30분 |
아침 |
컵라면, 빵, 우유 |
10시 30분 - 12시 |
산림박물관, 식물원, 숲 |
숲 해설 |
12시 - 12시 30분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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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30분 - 13시 30분 |
점심 |
청장년회장 - 들깨수제비 |
13시 30분 - 14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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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 15시 |
무령왕릉 관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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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
서울로 출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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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 17시 |
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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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 |
서울 도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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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금씨서울경기청장년회
대전 뿌리공원
위 치 : 대전 중구 침산동 산 34번지 일원
연 락 처 : 전화 042-581-4445~6
팩스 042-606-6929
중구 보문산과 방화산 사이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갖춘 뿌리 공원이 있다.
뿌리공원은 효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게하여 경로효친사상을 함양시키고 한겨례의 자손임을 일깨우기 위해 세운 공원이다.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 일원 3만 3천여평의 부지에 세계 최초로 성씨를 상징하는 조각품 및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효를 주제로 1997년 11월 1일 개장한 테마공원이다.
뿌리공원은 충효사상 및 주인정신을 함양시키는 교육공원이면서 가족 단위의 다양한 이벤트 행사가 마련된 가족친화 공원이며, 또 심신수련, 건전한 청소년육성의 체육공원이자 천혜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서의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다.
공원 정상의 삼남기념탑은 공원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 영.호남,충청도의 화합과 상부상조를 기원하는 의미의 상징성을 부여한다.
만성교(모든 성씨가 한 곳에 모인 곳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음), 뿌리공원 표석, 뿌리공원 관리사무소, 우리나라 성씨의 유래를 담은 비(碑)가 있다.
전문조각가가 성씨별 씨족의 유래를 나타낼 수 있는 조형품을 만들었다.
전면에는 조상의 유래, 뒷면에는 작품설명 및 기타 참고 자료가 조각된 성씨별 조각품 72점이 설치되어 독특한 공원 이미지를 전해주고 있다.
공원 중심에는 잔디광장이 조성되어 각종 행사장으로 활용이 가능하며, 잔디광장 주변의 순환도로를 이용한 어린이 교통안전교육장은 유치원 및 초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미니카를 직접 타면서 현장체험을 통한 올바른 교통문화를 습득하는데 도움을 준다.
수변무대와 수변스탠드에서는 야외공연, 각종 문화행사 및 야외결혼식 등 이벤트 행사에 적합하다.
계 룡 산 도 예 촌
아름다운 명산 계룡산은 산세 못지않게 옛부터 도자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도자기의 종류 중 분청사기는 지역의 독특한 특징을 잘 나타내는데, 철화 분청사기는 오직 계룡산에서만 만들어져 '계룡산 분청' 이라는 별칭이 있다. 계룡산 도예촌은 철화 분청사기의 우수성을 다시금 재창출하기 위해 '92년 7월 젊은 도예가 18명이 상신리 통일신라 시대의 옛절인 구룡사터에 개촌하였다.
현재 상신리 도예촌 상설 전시관과 15명의 도예작가가 창작활동을 위한 공방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일반인들이 도예체험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다. 도예촌이 위치한 상신리는 계룡산의 여러 등반 코스 중 출발지점의 하나로 동학사나 갑사 입구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다른 계룡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도자기체험활동과 전시관 관람
- 분청사기 기법 중 계룡산에서만 출토된 철화분청사기를 제작하는 과정 을 실습하고 전시관을 관람한다.
- 체험활동비 : 1인당 10,000원
- 1시간 정도소요
- 이재황 작가 011-9917-8815
국립공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은 대전·충남지역에서 출토된 국보 19점, 보물 3점 등 문화재 10,000여 점을 체계적인 방법으로 보관·관리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중요유물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를 통해 관람객과 전문연구자들이 쉽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고, 더불어 문화유적에 대한 발굴조사 및 연구를 수행하며 그 결과물을 발간합니다.
이 밖에 열린문화공간이자 평생학습의 장으로서 국민들이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야외공연장·강당·세미나실 등을 갖추었습니다.
국립공주박물관은 일제강점기에 공주지역 사람들이 백제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공주고적보존회를 모태로 시작하여, 1940년 공주사적현창회(公州史蹟顯彰會)에서 조선시대 관아건물인 선화당(宣化堂)을 이용하여 박물관 사업을 시작하였고, 해방이후 1946년 국립박물관 공주분관(公州分館)을 거쳐, 1975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습니다.
공주사적현창회시기부터 박물관으로 이용된 선화당은 1972년 현대식건물이 세워질 때까지 지속적으로 이용되고, 이후 국립공주박물관은 전시와 각종 문화 행사를 실시하며 지역민의 문화교육기관으로의 역할을 수행했으나 최근 급격히 증가한 발굴문화재의 보존과, 국민들에게 폭 넓은 문화체험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하기 위해 2004. 5월 공주시 웅진동에 새롭게 개관하였습니다.
금강자연휴양림
충남의 명산인 계룡산 줄기의 한쪽 국사봉(마티재) 자락인 반포면 도남리, 백제의 고도 공주팔경중의 한 곳, 창벽에 가로막혀 나룻배를 타고 드나들어야 했던 오지에 충청남도 산림환경연구소가 이전되면서 주변의 잘 보존된 울창한 숲을 금강자연휴양림으로 지정하였고 부속시설로 산림박물관을 개관하였다.
휴양림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고 수종은 주로 활엽수이다. 숲에 들어가면 유유히 흐르는 충남의 젖줄인 금강이 내려다 보이며 바람소리가 시원하다.
그 외 이곳의 볼거리로는 산림박물관, 수목원, 온실, 야생동물원, 야생화원, 연못, 팔각정 등이 있어, 중부권 최대의 산림휴양문화공간 및 자연학습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다.
특히 산림박물관의 웅장한 건물은 백제의 전통양식으로 건립되었으며, 5개 전시실별로 주제를 달리하여 산림에 관련된 자료 3,000여점이 전시되어 있는데 금산의 은행나무, 공주의 당산나무, 안면도소나무 등을 실제 크기와 모양으로 재현해 놓았다.
유리 돔으로 지어진 대형 온실에서는 열대·아열대 식물을 전시·재배하며, 야생 동물원에서는 반달가슴곰, 멧돼지 등의 수류와 원앙, 독수리 등의 조류를 사육하고 있으며, 수목원, 야생화원, 연못등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무 령 왕 릉
1971년 송산리 제5.6호 고분의 침수방지를 위한 배수로 공사중 우연히 발견되어 약 1,500년만에 처녀분으로 발굴되었다. 특히 무덤의 주인공이 무령왕 부부라는 사실이 명백히 기록되어 있어 세상 사람들을 크게 흥분시켰다. 조사된 무령왕릉은 봉토가 마치 작은 봉우리 같은 외형을 한 원형으로 봉토의 직경은 약 20m이며, 높이는 현실 바닥에서 7.7m에이르고 있으나 오랜 시일이 경과하면서 유실이 심하였던 것으로 보여 원래는 현재의 상태보다 훨씬 큰 규모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축의 단실묘로 평면이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형태를 지닌 묘실은 중앙에 연도가 부설되어 있다. 벽면은 남쪽과 북쪽인 아래에서 천장부까지 수직으로, 동쪽과 서쪽은 상부에 이르러 차츰 곡률을 주어 아치형 천장을 구성하였다. 묘실 내부 규모는 남북길이 4.2m, 동서 너비 2.72m이며, 천장 중앙까지의 높이는 3.14m이다. 왕부부가 함께 모셔진 합장무덤으로서는 낭비공간이 별로 없는 기본적인 규모이다. 벽체의 전축은 길이모 쌓기와 작은모 쌓기를 되풀이 한 방식으로 길이모 쌓기는 전 4개를 눕혀서 포개고 작은모 쌓기는 11개를 세워서 배열한 4평1수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벽돌은 모두가 아름다운 연꽃무늬로 장식되었으며, 문양은 상용된 위치에 따라 몇 종으로 구별되는데 길이모 쌓기에 사용된 벽돌문양은 중간에 사격자의 망상문을 두고 그 양단은 네모나게 구획하여 대각 십자선의 중심에 6판의 소형 연화문을 하나씩 배열하였다.
작은모 쌓기 벽돌에서는 세 종류의 문양이 사용되었다. 벽체 하부를 구축한 전에는 주위를 네모나게 구획하고 그 내부에 8엽연화문을 반절한 것과 그 양현에는 인동문을 하나씩 나타내고 있다. 이것을 좌우로 맞대고 구축하였으므로 벽면에는 만개된 팔엽연화문의 전형이 이루어지게 되어 아름답게 배열된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연꽃이라는 불교적 소재를 사용함으로써 고인의 명복과 내생을 기리는 종교적인 의미까지 함축하고 있다.
무덤의 구조는 크게, 들어가는 입구와 왕. 왕비를 모신 현실의 방과 배수구로 나누어진다. 현실의 벽면에는 등잔을 두기 위하여 북벽에 1개, 동서벽에 2개씩 모두 5개소의 작은 벽으로 백자 등잔을 배치하였다.
등 밑에는 각각 창을 상징하는 모양을 시설함으로써 방안에 조명과 함께 영원으로 향한 창문들이 갖추어진 건축물임을 알 수 있다. 바닥구조는 먼저 암반을 평탄하게 깎아낸 후 그 상면에 벽돌을 삿자리 모양으로 배열하고, 벽돌 사이에는 석회를 발라 암반에 고정시켜 깔았다. 묘실 남벽의 중앙에서 시작된 연도는 길이 2.9m, 너비 1.04m, 높이 1.45m의 규모이며, 천장은 완전한 아치를 이루고 있다. 돌의 문양과 구축방법은 묘실 내부와 흡사하나 8엽연화문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바닥의 높이는 묘실의 바닥보다 높아 관대와 동일하게 하였다. 발굴당시 명문전이 발견되었는데 "...士 壬辰年作 "(...사 임진년작 )이라고 기록이 있는바 무령왕이 승하(523)하기 11년전인 512년에 축조 또는 준비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능에서 출토된 유물은 사용된 재질로만 분류해도 석조물, 목제품, 금은제품, 청동기류, 도기류등 다양하며, 모두 108종 2,906점으로 이중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종 17점에 달한다. 이 무령왕릉은 전축분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송산리 6호분과 함께 유일한 벽돌 무덤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 하겠으며 백제문화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는 매우 소중한 능이다.
♠ 무령왕
- 무령왕은 백제 25대 왕이다. 24대 동성왕의 둘째 아들로 462년(개로왕 8년)에 태어났으며 성은 부여 이름은 사마·융, 시호는 무령이다. 공주 도읍기의 역대왕 (문주, 동성)들이 불행하게도 신하들에 의하여 비명의 생애를 마쳤으나 무령왕은 62세, 당시로는 천명을 다한 나이에 생을 마쳤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에 의하면「무령왕은 키가 8척에 장신이며, 이목구비 또는 미목(眉目)이 수려하고 인자관후하여 백성이 잘 따랐다 」고 기록되어 있다. 동성왕이 501년 12월 돌아가시자 501년 즉위하여 523년 (22년간)까지 많은 업적을 남겼다.
홍보팀장 금재걸
첫댓글 좋은 곳을 가시는데 따라가고 싶지만 시간이 안되니.... 잘 다녀 오시길 바랍니다....
즐거운 나들이가 되시길 바랍니다... 가까우면 같이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