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슬 같은 청년 (시 110:3)
오늘 본문엔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 앞에 나오는도다”라고 하는 말씀이 있죠. 유행처럼 새벽이슬이란 말이 번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어디에 나와 있는지 무슨 뜻이 있는지도 모른체 여기저기 할 것 없이 새벽이슬이란 말을 붙이고 있음을 볼 때 좋은 말임엔 틀림없는데 여러분! 도대체 새벽이슬은 어떤 뜻이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새벽이슬은 첫째 세상에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날씨에 대해 푸념을 많이 합니다. 가뭄이 오면 그 고통으로 ... 또 장마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푸념을 많이 합니다. 비가 많이 오니까 습도가 높아 불쾌지수가 높고 칙칙하고 빨래도 안 마르고, 곰팡이 생기고 잡초도 많이 자라고.... 이처럼 어떤형편이든지 불만이 많이 생길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행복합니다. 만약 우리나라가 열대지방처럼 몇 달간 아니 몇 년간 비 한방울 구경하지 못하는 곳도 있다고 합시다. 이렇게 되면 순식간에 모든 식물이 말라죽고 초식동물, 육식동물 벌래 한 마리 살지 못하는 삭막하고 황폐한 땅이 될 것입니다.
열대의 사막은 늘 건조합니다. 그래서 건기때 어린 생물들은 견디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도 하나님이 생명을 살리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건조하고 더운 사막이지만 새벽이 되면 황량한 모래땅에 언제나 이슬이 내리지요. 그래서 땅에 뿌리만 박고 생명을 연명하고 있는 식물들이 이 새벽이슬을 먹고 자라고 또 다른 사막의 동물들도 풀에 맺힌 새벽이슬로 그들의 생명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새벽이슬은 괜한 옷을 적시고 신발을 버리고 일을 못하게 막는 방해물처럼 여겨지나 사막이나 광야가 많은 땅에서 새벽이슬은 생명수 그 자체입니다. 없으면 어떤 것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도 생명의 젖줄인 새벽이슬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사막같이 사랑이 없고 정의가 없는 황폐한 이 땅을 적실 새벽이슬 같은 생명의 일꾼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생명의 물이 되어 새벽이슬이 되어 온몸으로 이 땅을 구원하셨습니다. 나는 생명의 물이니 나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7: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물과 피를 다 내주시기기까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헌신하셨고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거룩한 헌신과 생명을 내놓은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온땅에 퍼져 세상을 잘 이끌어나갈 그런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을 원하고 바라고 있어요. 정치하는 곳, 교육을 하는 곳, 물건을 만드는 공장, 제품을 개발하는 연구실, 나라의 관리를 맡은 관청, 우리들이 섬기고 있는 교회등 이 세상의 수많은 곳에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을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어요. 비록 우리가 연약할지라도 우리를 강건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며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이곳에서 결단하고 준비하여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새벽이슬이 되어 날로날로 황폐화 되어 가는 이 세상을 촉촉히 적시는 멋진 젊은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가 이처럼 새벽이슬을 귀히 여기고 노래합니까?
새벽이슬은 맑고 투명합니다.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의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은 깨끗함의 대명사입니다. 누구나 깨끗하고 빛을 받아 영롱한 이슬을 보면 감동합니다. 세상을 향해 흘린 주님의 눈물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는 거룩함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슬 풀잎의 색깔이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맑습니다. 결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습니다. 정직합니다.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습니다. 사그라질 때까지 맑은 모습 그대로를 지킵니다. 여러분 주의 청년들에게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깨끗함이 있어야 합니다. 순결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 하라.”고 했습니다. (마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믿는 자는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야 합니다. 믿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처럼 주님께 무릎 꿇어 날마다 정결 정결한 맘 주시옵소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고서 하고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참 더러운 세상입니다. 조금만 눈을 돌려도 우리의 눈과 영혼을 더럽게 하고 유혹하는 것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님 앞에서 깨끗치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버린바 된 소금처럼 주님 앞에서 버림 받게 됩니다. 부디 이 시대 거룩함으로 옷 입으시기 바랍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말씀대로 말입니다 (롬 13:11-14)“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골 3:12-14)“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갈 3: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여러분 투명하지 않으면 기업이 망하고 높은 사람도 쫓겨납니다. 장관 대통령도 존경받지 못합니다. 지금 세상은 비록 악하고 거짓말하고 술수를 쓰고 뇌물을 주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 같지만 결국엔 하나님 안에서 정직하고 자신을 지키고 의로운 사람이 승리 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새벽이슬은 어둠을 물리치는 미래의 가능성입니다.
유대교의 랍비가 한번은 제자들을 불러 모아 놓고 물었습니다. ‘밤의 어두움이 지나고 새 날이 밝아 온 것을 그대들은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제자 가운데 하나가 ‘동창이 밝아 오는 것을 보면 새날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을 하자 스승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가 또 말하기를 ‘멀리서 개와 양을 식별할 수 있으면 새 날이 밝아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스승은 역시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또 다른 제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창문을 열어보고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를 구별할 수 있을 때입니다.’이번에도 스승은 여전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계속하여 여러 제자들이 나름대로 대답을 하였지만 스승은 듣고 나면 모두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궁금해진 제자들이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스승께서는 밤이 가고 새 날이 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스승은 ‘너희가 눈을 뜨고 밖을 내다보았을 때,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이 형제로 보이면 그 때 비로소 새 날이 밝아 온 것이다. 그러기 전까지는 밤이요 어둠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청년은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길어야 80살인 인생을 24시간으로 계산할 때 40살이 12시라면 우리 청소년들은 새벽 4시~6시에 살 듯이 가능성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하는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겠는가?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며 주님의 새 계명인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청년들은 새벽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이슬은 태양보다 먼저 일어나 태양이 뜨면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사라집니다. 부지런함과 겸손함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역사는 청년들에 의해서 움직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알렉산더대왕은 약관의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올라 유럽, 소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징기스칸은 26살에 몽고의 부족장이 되어 세계최대의 국가를 이룩하는 정벌을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30세에 인류구속의 공생애를 시작 하셨습니다. 성경의 유명한 인물들도 청소년의 시기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민족을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요셉이 그랬고, 여호수아, 다윗, 다니엘등등이 청소년시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민족을 구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우리민족의 현대사에서도 젊은이들의 의거로 이만큼 성장했습니다. 오늘 우리 민족은 또 다른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모두들 경제적위기를 말하고 있지만 저는 그 보다 더 큰 위기는 영적 위기, 정신적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가치관의 혼란, 도덕의 붕괴, 물질만능주의, 우상숭배, 부정부패의 만연등이 우리민족의 최대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위기를 넘길 처방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젊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들은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에 의해서 이런 개혁이 일어나기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때 이곳에 태어나게 하시고 나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왕비가 된 것이 유대인의 학살을 면케 하기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처럼 여러분들을 이 시대에 부르신 뜻이 위기 속에 빠진 이민족을 구하기 위함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새벽이슬 같이 신선하고 많은 청년들이 일어나서 이민족을 구하고 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기를 빕니다.
<기도>
하나님! 저희들에게 축복하시고 새벽이슬 같은 촉촉히 황폐한 온 대지를 자들이 되게 하여 주세요. 세상이 사모하는 그런 젊은이들이 되어 주께 영광 돌리며 세상을 섬길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세요. 우리의 젊음과 삶을 당신께 헌신하기를 원합니다. 세상을 살리는 생명이 되며 거룩함으로 옷 입고 새벽을 깨우는 주님의 귀한 종들이 다 되게 해 주세요 새벽이슬 되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