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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주기도문 왜 반드시 의미를 알고 해야 하는가? 하늘 문을 여는 주기도문의 능력과 휴거!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신실하신 목사님들이 주기도문을 왜 하지 않는가? 하는 제목의 설교를 올리셨고 들으신 분들이 계셔서 저도 들어보니 교회에서 주기도문을 예배 마칠 때 형식적으로 하는 면이 많았고,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에서 이 말씀을 부정적으로 보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말씀은 회개를 해야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고 남을 용서해야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뜻이며 구원은 용서의 복음이고 고백의 복음이 아닙니다. 우리가 용서할 때 주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요 라고 주기도문에 정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을 경시할 수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천주교는 주기도문을 많이 외우면 병도 낫고 마음과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해소된다고 가르치고 믿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형식적이고 주술적으로 사용되는 부분들이 있다 보니 과거 천주교의 형식적인 예배에서 벗어나고자 주기도문을 폐하셨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어떻게 기도해야 될 것인가 우리에게 정확하게 말씀하시는 기도의 대강령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이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언약의 중심이듯이 예수님은 거기에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합하여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관한 것이고 주기도문은 기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명심해야 될 것은 십계명의 언약과 사랑의 언약과 주기도문을 잊지 말아야 되고 반드시 기억해야 됩니다. 오늘날 주기도문의 의미를 모르고 하다 보니 오해가 생겼고 주기도문의 구조를 깊게 알고 기도하면 하늘 문이 열리고 그 기도대로 살아가는 분들이 휴거의 자격을 얻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부터 4절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 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저희 교회는 주보가 없습니다. 제가 어릴 때 주보를 받으면 누가 십일조 했고 교회 몇 명 왔는지 통계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과 선교와 감사 헌금이 드러나서 누가 했는지 적혀 있는 것입니다. 교회 주보를 없앤 이유가 성도들이 누가 어떻게 하는지 보이지 않고 하나님만 아시면 되고 또 한 가지 이유는 토요일 밤 이나 혹은 주일 새벽에 메시지가 정해져서 주보에 제목을 적기가 불가능합니다. 제가 성가대를 했을 때 졸지 못하고 핸드폰을 못 보고 연습할 때 박자 틀릴까 봐 땀을 뻘뻘 흘리고 끝이 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린다는 개념에서 경건되게 거룩하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형식적인 예배로 천주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원래 찬양은 회중 찬양으로 모두 함께 일어나 여호와를 경배하고 찬양하는 것이 진짜 찬양입니다. 그래서 예배 마치고 찬양이 제일 중요해서 성가대 찬양 말고 회중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경배를 받는 것보다 하나님을 공경하기를 원하시며 사랑하고 존경하기를 원하셔서 우리에게 형식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다듬은 돌로 계단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제단을 만들 때도 그냥 흙으로 만들라 하셨고 혹은 돌로 만들면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어떤 모양과 형태로 오든지 주님은 그대로 받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오기를 원하시고 마음을 오픈하기를 원하시만 아버지이기 때문에 주님을 높여드리고 경배드리고 추앙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주기도문에 처음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정말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시며 나에게 관심이 있고 나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분이 진짜 우리가 원하는 아버지입니다. 조금만 죄를 지으면 너는 지옥에 가라는 것은 아버지가 아니고 재판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던 형식적인 것을 버리기 위해 기존의 교회에서 했던 관행들을 없애고 진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빠져서 형식적인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5절부터 8절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지 말라 말씀하셨는데 그 당시에 기도는 요즘 우리가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기도는 공식 석상에서 남에게 들리게 하는 것이 보편 타당한 기도였습니다. 회중에게 나와서 방언이나 예언을 공식적으로 하던 시대이고 메시지 전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고 성도가 회중 앞으로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초대교회 예배 형태입니다. 우리와 예배 형태가 확연히 달랐고 그때 방언이라고 적은 것은 장로님이 앞에 나와서 눈을 뜨고 기도하는 것이고 예언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 당시에는 성경이 별로 없어서 귀했고 글자를 읽을 줄 아는 분들도 몇 명 없어서 글을 읽을 수 있는 분이 성경을 읽으면 회중은 들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신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어려운 말이 아니고 회중이 듣고 누구나 들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방언의 내용을 보면 지역 방언도 있고 현재 우리가 듣고 있는 방언도 동등하게 섞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회중에게 말을 하다 보니 분류하고 연구하듯이 말한 것이 아니고 편안하게 알아들을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 당시 기도 형식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은 기도의 혁명을 일으키셔서 우리가 지금 하는 일반적 기도는 예수님 때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제사장이 기도를 해줘야 되고 제사장이 말씀을 선포하고 제사를 지내고 기도도 개인이 못했습니다. 로마 시대는 구약 시대와 똑같이 개인 기도가 금지돼 있었는데 예수님은 처음부터 기도를 은밀하게 개인이 기도하라고 하신 기도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이 기도의 혁명을 막았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기도를 은밀하게 혼자서 나에게 들려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한 명 한 명이 왕 같은 제사장이므로 과거에 제사장이 하던 기도권을 내가 너에게 주었으니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기도할 때에 남에게 들리게 너를 돋보이게 하려고 말고, 선한 일을 할 때나 기도할 때도 은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하나님께 많이 아뢰어야 들어주실 거라고 믿고 백일 작정 기도, 천일 기도를 합니다. 한국으로 보면 과거에 치성을 드리던지 절에 가서 하던 백일 정성 기도나 백일 작정 기도가 같아서 불교 믿다가 기독교로 전환하시는 분들이 믿기 편하다고 용어만 바꾸면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말씀과 어긋납니까? 하나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데 30분, 100분, 3시간, 기도를 오래 하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3시간 기도해도 안 들어준다고 하면 어떤 목사님이 6시간 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중언부언 하지 말고 이미 다 알고 계시므로 어떤 기도를 원하실까요? 예수님이 여기에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이것들은 이방인들이 하는 기도이며 우리가 원하는 것, 소원하는 것을 기도라고 착각을 하지만 기도가 아니고 중언부언입니다. 그럼 어떤 게 기도인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주십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5절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예수님이 기도의 마지막 목적을 적어놓으신 것인데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고백에 있습니까? 예수님의 은혜로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은 대강령이고 전제인데 여기에 머물려고 합니다. 여기에 말을 더하면 행위 구원론이라고 하지만 말씀에서 바울이 말하는 행위 구원론은 구약에 있는 제사법을 다 지키고 할례받고 형식과 예식을 하던 행위를 이야기합니다. 선한 자가 되는 행위와 십계명의 언약을 지키는 행위를 이야기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유대인의 형식을 배격하고 그림자였던 제사들은 폐해졌다고 하신 것입니다.
직접 예수께 나아가 기도하고, 왕 같은 제사장이므로 그를 경배하고 찬양하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과거에는 찬양도 레위인만 했지만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은 구원에 관한 가장 큰 바로미터가 용서하느냐, 마느냐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고 예수님이 용서의 제물 되셨으므로 너희도 용서하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나를 본받는 자 되고 나를 따르는 자가 되라. 그리하면 너희가 구원받으리라. 이것이 구원의 대강령입니다. 십계명의 언약은 폐해진 적이 없으며 예수님께서 친히 언약과 율법을 완성하러 왔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십니다. 아버지를 만나려면 천국에 가야 한다는 시작이며 우리의 소원은 천국에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을 천국으로 바꾸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가 원하는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고 백번 천번 만번 알려드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시며 처음 기도의 시작은 무엇입니까? 하늘 나라를 소망하는 소망으로 마음을 바꾸는 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기도의 처음과 끝이 같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무엇입니까? 용서함 받은 자가 천국 가는 것이며 기도하는 목적은 용서받고 천국 가려고 기도하는 것이므로 시작부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을 천국에 두고 그 나라에 가기 위하여 기도에 집중합시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은 구약의 모세가 당신을 누구라고 부르리이까 물을 때 내 이름은 여호와로다 하십니다. 뜻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로다. 나는 나다. 나중에 알려주신 진짜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라는 말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아버지 입니다. 나는 너희를 반드시 구원하여 나와 함께 있고 싶다. 이게 우리 아버지의 이름이고 아버지의 소망이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생명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신다는 것을 처음부터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아버지의 소망을 이루고 구원하기 위하여 내 아들 예수를 보내니 그 이름을 분별하라는 것으로 거룩하다는 뜻은 분별하다, 구별하다 이며 세상과 구별하여 예수를 믿고 따르면 반드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는 우리를 구원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을 원문 같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계신데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 주기도문은 제자들에게 축약으로 가르쳐주신 다른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 마태복음이 원문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인데 해석이 안돼니까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한다는 뜻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나라에 임하옵시며를 왜 알지 못하냐면 구약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구약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기다리고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도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가 이때냐고 말합니다. 모든 유대인의 소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인데 제자들이 착각한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임했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절에서 30절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 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 러하리라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 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30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다리며 구약에 도도히 흐르는 말씀이 그 말씀들입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기도할 때 은밀하게 하라고 혁명적으로 말씀하셨듯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합니까 바리새인들의 물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말씀하십니다. 많은 한국의 크리스챤들이 잘못 번역된 것을 보고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고 착각을 하는데 그 뜻이 아닙니다.
영어 성경으로 킹제임스나 NIV 성경에 너희 안에 있다고 적혀 있지 않고 within you 라고 적혀 있습니다. ‘안’이 ‘in’ 아닌 'within' 으로 적혀 있고 뜻은 '특정 거리 이내에' 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있는 너희의 특정 거리 이내에 곧 내가 하나님의 나라 라고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하나님의 나라다 라고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나라 번역으로는 표준새 번역에 '가운데' 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는 예수님 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성경을 끊어서 읽다 보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모르고 신약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를 천국으로 착각했습니다.
주기도문 처음부터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시며 라고 이미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셨는데 어떻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까?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것은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바라고 소망하고 기도하라는 것이며 초림은 재림을 향한 시작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알파와 오메가다 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너희는 소망하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제자에게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예수님 이땅에 오시는 날을 이야기합니다.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제자들은 주의 재림을 사모하며 기다리다 순교할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도 자신이 재림 예수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는 주의 강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먼저 못 박혀 돌아가셔야 된다고 말씀하시고 그 일 후에 내가 다시 이 땅에 강림하리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밑에 구절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강림할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가를 적어놓으셨습니다.
누가복음 17장 26절에서 29절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 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28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이땅에 오실 때 세상이 평화기라고 말씀하시고 2023년에 예수님 오실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가 실망한 분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실 거라고 기다리는 분들이 많으면 그때 오실까요? 잠들었을 때 오실까요? 자꾸 잠들고 계셔서 때가 다가오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 그대로 노아의 때 이야기는 구원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 노아의 방주와 세례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제일 중점을 두는 게 내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하고 회개에 중점을 두시는 분이 많고 세례 또한 우리의 죄를 씻고 구원받는 표라고 생각을 합니다. 구원받는 것은 죄를 씻는 것이 아니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이고 세례이며 예수님을 선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선한 분, 우리 아버지라고 믿고 예수님을 나의 신랑으로 믿고 그분을 찾아가는 것이 구원이고 이런 자가 구원받는다는 뜻입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이 이 땅에 죄가 관영함으로 물로 홍수 심판하려 하시는데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왜 노아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을까요? 노아도 죗덩어리였지만 하나님을 향해 찾아갔습니다. 노아의 눈동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고 노아의 눈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나를 사랑하시고 반드시 구원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자는 구원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고 나아가면 하나님이 과거의 모든 사람이 물의 심판을 받았지만 내가 너를 구원하리라 이것이 세례입니다. 죄를 씻어주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찾아갈 때 하나님을 찾고 찾을 때 그분께서 구원하십니다. 노아의 때를 얘기하신 것은 너희도 노아와 같이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뒤에 나온 롯은 하나님을 잘 믿고 기다립니까? 노아는 기다렸고 방주를 지었지만 롯은 하나님을 믿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은혜로 롯과 가족들을 빼내주시는 것은 휴거 이야기가 아니라 환난 날에 피난처에 관한 이야기로 두 가지를 분별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환난 날에 피난처로 갈 때 믿고 가는 사람이 반인데 반은 믿지 않다가 피난하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제일 처음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께 나아가 방주를 지읍시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와 영원히 사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입니다. 그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고 왜 하늘에서 이루어졌을까요? 요한계시록에 나와 있는데 천사들 중에 3분의 1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3분의 2는 하나님을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진짜 내 아버지로 모시고 사랑하는 자는 천사가 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저버린 자는 사탄을 따라가서 마귀가 돼서 땅에 갇힌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만 그 나라에 있는 것입니다.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은 하나님만 사랑하는 자들이 이 땅에 거할 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는 새 하늘과 새 땅 이야기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천국 가는 것만 생각하고 올라가는 것, 영이 구원받는 것만 생각합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마지막 때 내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말씀하시는데 왜 자꾸 마지막 때를 얘기할까요? 성경적인 것은 예수님이 구원받은 형태로 영과 육이 함께 구원받는 것이 진짜 구원입니다. 마지막 때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실 때입니다. 그러면 뜻이 땅에서 어떻게 이루어 지는가를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부터 8절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 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 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 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주기도문은 천국으로 올라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내려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옵시며 무엇입니까? 주의 재림 주의 강림이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완성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기도입니다. 새 하늘이 생기고 새 땅이 이 땅에 내려옵니다. 과거의 하늘과 땅은 다 사라져버리고 새 땅이 이 땅에 내려오고 놀랍게도 하나님의 나라가 내려오는 시대를 기다리고 소망하고 살아야 됩니다. 주 기도문은 우리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라고 고백하고 주님의 날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그 나라가 오는 것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오늘날 주기도문을 잘 모르다 보니까 어떻게 기도합니까? 내 문제 이야기하고 내 소망 기도하고 세상 기도와 똑같고 중언부언입니다. 우리가 할 기도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이고 우리가 준비하고 예비하며 용서하며 사랑하며 사랑하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줄 믿습니다. 조금만 고생하십시오. 생명수 샘물로 값없이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9절부터 14절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 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 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이 말씀에 큰 성 예루살렘이 어린 양의 아내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거하는 자들이라서 성경 말씀 보면 신부가 아니고 우리가 다 하객이며 주를 기다린 신부들에게 뭐라고 합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예수님의 결혼식에 하객들이고 예수님의 진짜 신부는 교회입니다. 교회가 하나가 되어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서 모두가 신부이고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열두 진주문이 있고 동서남북 문 이야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진을 형성하고 있는 것과 똑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형성하라고 하신 것은 새 하늘 새 땅이 내려올 때 새 예루살렘 성의 모형입니다. 구약에 있던 이야기들은 알고 보면 새 예루살렘 성의 모형입니다. 새 예루살렘성에는 하나님과 예수님이 앉아 계시고 그분이 성전이시기 때문에 성전이 따로 필요 없고 성소와 지성소는 사라집니다. 구약의 모든 이야기들이 알고 보면 새 하늘과 새 땅 이야기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5절부터 21절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 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함에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 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 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대제사장이 앞에 옷 입을 때 박힌 열두 보석이 새 예루살렘성 각 문의 기초석들에 관한 것입니다. 구약의 이야기는 새 예루살렘 성에 귀속되고 새 예루살렘 성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는 바로 그 새 예루살렘 성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2절부터 27절
22 성안의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그 성 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성전이시고 그 빛으로 어둠이 없습니다. 여러분들 모두 왕이 되어 만국의 영광을 가지고 들어가서 주님께 영광 돌리고 주를 향하여 소망하여 산 여러분에게 주의 영광이 함께할 줄 믿습니다. 영광체가 되어 그 새 땅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 줄 믿고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기다립시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의 시작에 나오는 하늘의 소망이고 우리의 소망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소망하며 기도합시다.
사랑하는 주님
놀랍게도 주기도문에 하나님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너희는 사모하며 기다리라고 말씀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예비하며 노아와 같이 기다리겠습니다.
우리가 방주를 예비하겠습니다.
주여
우리를 늘 지키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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