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여화인 불득입내,(狗與華人不得入內)'
신문에 '브루스 리(Bruce Lee)'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철학자 '이 소룡(李 小龍)' 이라는 타이틀 밑에는, 불멸의 스타, 살아서 한 세대 죽어서
한 세대를 장식하는 '스타' 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 말은 맞는것 같다.
물론 우리 동양인들이 서양인으로 부터 인정 받으려고 존재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동, 서양 심지어 아프리카인등 전 세계인 들이 알아주는 인물이다.
당시 '브루스'라는 이름은 동양인을 깔볼때나, 그렇지 않을때나 쓰이는 '보통 명사' 였다.
역사 이래로 동양에도 걸출한 뛰어난 인물들도 많이 나왔지만 '브루스 리'만큼 세계인들의
뇌리에 '각인'이 된 이름은 없다고 생각 한다.
'간디, 모택동, 히로히토, 마르코스, 수하르토, 등소평, 홀필렬(^^)등등의 이름들은 특정
인들 만이 아는 이름 일뿐이다.
그런데 지금 살아 있으면 66세가 된다는 '브루스 리'는 미국인들도 십대쯤 되면 알게 된다.
그들 자신도 모르게 그 부모로 부터 듣고 익히게 되는 이름 이다.
그는 비록 영화 였지만 자신의 생긴 모습으로 작은 동양인들의 숨은 모습, 서양인들이 따라
하기 힘든 것들을 유감 없이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만든 4편의 영화가 '카메라 트릭'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따로 기록영화도 만들었다.
커다란 덩치의 미국인 두명이 붙들고 있는 큰 메트를 작은 그가 발로 차서 그들을 나가
떨어 지게 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체중이 가벼워서 파괴력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그는 스피드에 주력했다.
마치 지구 표면 도착 당시 직경 10 미터 정도의 작은 유성이 핵폭탄과 같은 파괴력을 내는
이유는 바로 스피드에 있다는 것을 자신의 운동에 이용 했던것 같았다.
"기존의 '쿵푸'는 실전에서 불필요한 동작이 많다."라고 느낀것 같았다.
소위 쿵푸에 있어서 '거두절미(去頭截尾)'를 해버린 그는 '절권도'를 창안하여 아주 짧게
끊어 쳐서 빠른 스피드로 상대의 충격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을 쓴것 같았다.
그와 한편의 영화에서 싸움의 상대로 나왔던 '척 노리스'는 지금까지 30년을 액션 스타로
정상에 자리잡고 있다.
요즘은 그도 늙어 텔레비 드라마 'Texas Rangers'에서 악당들과 싸우는 보안관 으로 출연
하여 범인을 잡을때는 한국에서 배운 태권도로 걷어차서 잡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브루스는 7살쯤 홍콩으로 갔다가 19살때 고향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와 의대에 진학 했다가 철학과로 바꾸었다.
당시 인기 티비 프로인 '그린 호넷'인가 하는 프로에서 조연을 맡아서 아주 좋은 연기를
했었다.
당시 그 방송사의 PD 가 차기작으로 '소림사(Shaolin Temple)'를 정하고 '브루스'를 주연
으로 캐스팅 했었다.
그러나 때는 인종 차별이 심하던 60년대라 방송사 사장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어떻게 '칭크(동양인의 경멸어)'가 미국에서 안방극장의 주연을 해?"
결국 '소림사'의 주연은 꽤 유명한 백인 배우(이름잊음)에게 돌아가 백인이 머리를 박박
깍고 스님 노릇을 하는것을 보고 저절로 비웃음이 나왔다.
영화 '대부'에서 '말론 브란도' 대신 한국 액션 배우'장 동휘'를 쓰면 어땠을까?ㅋㅋㅋ
하여간 소림사 캐스팅 낙마에서 열받은 '브루스'는 홍콩으로 귀향 하여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하여 드디어 그 첫편 '정무문(Chinese Connection)'을 만들어 화산이 폭발
하듯 전 세계에 울분을 토했다.
당시 미국 에서는 온 거리가, 특히 극장 앞에서는 백인이고 흑인 이고 간에 모두 이소룡
특유의 몸짓과 걸음 걸이, 째려 보는 눈초리, 고양이 소리 같은 괴성, 미간을 찌푸리는
인상등 으로 모두가 '부루스 리' 처럼 행동 하였다 한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엔 아이들이 부르스리 티셔츠, 노란 체육복에 검은 옆줄로 긋
고 '눈척(쌍절봉)'을 목에 걸고 다니며 실제로 어린 갱단들이 싸울때 쌍절봉을 사용 하여
서로의 눈탱이나 박이 터지는 경우가 꽤 많았다 한다.
그때 부터 미국인들이 동양인들 에게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 조금은 존경심을 갖고 보더
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는 또한 한국인 태권도 사범들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 주기도 했다.
정무문, 용쟁 호투, 맹룡과강 등을 본 미국인 부모들은 당시 풍요로운 물질에 나태해진
아이들의 정신 교육을 바로 '동양식 무도(Martial Art)'에서 찾고자 했다.
그의 영화에서 보면 그는 늘 정의롭고 스승님을 부모님 이상으로 생각 하니 미국 선생님 들
이나 교육계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죽어서 땅속에 묻히는 스승의 관을 붙들고 대성 통곡을 하였으니 말이다.
2차대전 당시 중국과 미국의 '공동의 적' 일본인의 유도 도장을 작살을 내버리니 그 또한
그들에겐 함께 좋은 일 이었다.
또, 서서히 눈엣가시 처럼 보이기 시작 하는 '토요타,혼다,닛산'등의 장난감 처럼 보이는
일제 소형 차량에 대해 불안하게 비웃고 있을때 였다.
하여간 그 당시는 태권도 도장의 문턱이 닳아 질 정도 였다 한다.
한,중,일의 얼굴이 구분이 안가는 미국인들은 태권도 도장을 많이 애용 했다.
쿵푸는 대중 교육 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정적인것 같아서 그런것 같다.
지금도 미국식 영어 에서 동양 무도의 보통 명사는 '크라리(Karate)'이다.
그만큼 일본인의 '가라데(공수도,空手道)'가 오래전 부터 자리 잡아 왔었다.
하지만 이소룡 이후로는 태권도가 더 '붐' 이었다.
그의 절권도는 쿵푸 보다는 태권도에 더 가깝다고 할수도 있다.
지금도 30대 이후 특히 40~50대 이상의 모든 인종들은 '브루스 리'를 정말로 좋아한다.
심지어 존경 하기 까지 한다.
중년 이상의 인생 경험자 들은 느낄수 있다.
브루스의 그 표정이 단순한 연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최근 'Ak- 47 소총'을 들고 있는 혁명가'체 게바라'를 우상화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소룡'은 영화 속에서 '지배자'에 대한 '피 지배자' 들의 울분의 저항을 무기
없이 인간의 순수한 육신 으로만 강력하게 표현 하였다.
그것이 미국인들의 철학 과 다른 점이고 먹혀 들어간 점 이다.
그 어떤 인간이던 느낄수 있는 통쾌한 육체적 '저항 본능'을 자극 했던것 같다.
수많은 격투기 영화가 있었지만 그것은 참으로 표현 하기 쉽지 않은 점이다.
그러기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를 되 새기는것 같다.
'정무문' 에서 그는 상해의 한 공원을 들어 가려다가 인도인으로 보이는 경비원에게 입장
금지를 당하자 입구 벽에 높이 붙어있는 현판을 발로 걷어차곤 공중에서 두쪽을 내버린다.
그 현판에는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 (NO DOGS AND CHINESE ALLOWED, 狗與華人不得入內)
라고 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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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여화인 불득입내,(狗與華人不得入內)'
홀필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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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6.11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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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 기억에도 이 소룡 대단 했지요. 이후 성룡, 이 연걸..그리고 홍콩 르느와르..그리고 몰락..한국 영화의 부흥..
한때 성룡이 한국에서 영화 보조 하던때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학교 다닐때도 이소룡은 우리들의 우상 이었습니다.ㅎㅎ 저와 친구들은 이소룡이 상의를 탈의하고 기를 모으면 배에서 용이 나오는줄 알았습니다.ㅋㅋㅋㅋ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ㅎㅎㅎ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마지막글 입니다.
못난 나 자신이 늘 우리 보다 못났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일제와 서양 침략자들 에게 '狗與華人不得入內'라는 뼈아픈 설움을 당한후 14억 인구가 똘똘 뭉쳐 외세를 완전히 몰아내고 난후 다시는 그런일은 벌어지지 않을거라고 맹세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 과 같은 시기에 같은 처지에 있었던 우리의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