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 : 11 - 15절
“기도할 곳이 있을까”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에서는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배를 타고 시계 방향쪽으로 돌았었는데 2차 전도 여행에서는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통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전도의 계획을 세웠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계획한 대로 아시아로 가지 못하고 마게도냐로 방향을 돌렸지만 1차 전도 여행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전도의 계획을 세워서 나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차 전도 여행 당시 더베라는 곳이 전도 여행 중의 가장 마지막 도시였는데 2차 전도 여행에서는 가장 첫 번째 도시가 된 이유는 1차 전도 여행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돌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서 2차 전도 여행에 대한 말씀을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진행해 나가다가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는 과정과 환상을 보고 나서는 마게도냐 방향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첫 마을에 들어가게 된 모습이 오늘 본문의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성경책에 나타나고 있는 지명으로 보면 빌립보 지역입니다. 빌립보서는 바울이 감옥에서도 잊지 않고 편지를 썼을 정도로 특별한 마음을 주었던 곳입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네 권의 책을 옥중 서신이라고 하는데 감옥에 갇혀서 자신의 몸도 간수하기에 힘든 상황 속에서도 편지를 썼을 정도이니까 얼마나 특별한 마음이었을까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곳 중에 한 곳이 바로 빌립보 지역이고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고 루디아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이 모두 믿고서 세례를 받아 그 집을 빌립보 교회의 기초로 삼았던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 지역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장소로 삼았던 곳은 대부분 유대인들의 회당이었습니다. 어떤 곳에 가면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는데 또 어떤 곳에 가면 회당이 없는 곳이 있습니다. 그 차이가 뭐냐면 유대인들은 성인 남자 10명이 있으면 반드시 회당을 만들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빌립보 지역처럼 유대인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았던 곳은 당연히 회당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바울이 기도를 한다거나 복음을 증거 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바울이 13절에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이렇게 기도할 곳을 찾다가 그곳에 있던 여자들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마게도냐의 첫 방문지라고 할 수 있는 빌립보 지역에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바울은 작은 오해라도 받고 싶지 않아서 자신이 세운 교회들로부터 선교비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받지 않고 자비량으로 선교를 했던 사람인데 빌립보 교회로부터는 도움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6절에 보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이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던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교회마다 여전도회 이름을 지어 부를 때 루디아라는 이름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루디아는 자색 옷감 장사를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 보면 바울 사도가 자비량으로 사역하는데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자색은 빨간색 계통의 옷감을 말하는 것인데 그 당시 빨간색 색소를 얻으려면 조개 한 개에서 한 방울 정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귀한 색이 자색이었기 때문에 왕이나 귀족들이나 사서 입을 수 있는 옷이 자색 옷이었던 것이고 그런 옷감을 팔았던 사람이 바로 루디아였기 때문에 바울에게 있어서 아주 좋은 경제적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루디아라는 이름은 사람의 이름이지는 않습니다. 루디아는 지역의 이름인데 우리가 평양 출신의 여인을 부를 때 평양댁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루디아 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 것입니다. 그러면 실제 이름은 뭘까에 대해서 궁금해지게 되는데 빌립보서 4장 2,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바울이 빌립보에 보내는 편지를 끝내면서 특별히 여인 두 사람을 언급하고 있는데 바로 유오디아와 순두게입니다. 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오늘 본문 말씀에서 언급되고 있는 루디아이지 않을까 추측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라는 지역에 들어가서 루디아라는 여인을 만나서 복음을 증거 하게 되었고 루디아는 바울을 자신의 집으로 초청을 해서 결국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순조로운 만남과 전도의 열매가 맺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기도의 열정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3절 말씀을 다시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슨 의미냐면 안식일에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할 처소를 찾다가 만난 여인들 중에 루디아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바울과 루디아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성경적인 교훈들 때문에 하루를 시작할 때 다른 것보다 먼저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 기도를 시작한 것도 아니고 기도하기 위해서 기도할 곳을 찾기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셨다면 기도하는 우리들에게 어찌 은혜를 안 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기도는 어려운 것이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10절에 보면 기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 이게 기도인데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이미 우리 구할 것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바울처럼 기도할 곳을 찾기만 해도 형통한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는데 항상 자신의 공로나 노력이 있어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공로의식 때문에 기도를 짐처럼 생각하고 힘들어 하고 어려운 종교적 행위로 생각을 하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런 잘못된 의식들을 이런 말씀들을 통해 고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한 해 동안 거둬들인 열매들이 있을 텐데 그 열매들이 기도를 통해 얻은 열매인지 인간적인 노력과 공로와 수고를 통해 얻은 열매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추수감사주일을 지키도록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라고 허락하신 절기인데 기도조차도 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힘으로 살면서 얻은 것을 가져 와서 하나님께 드린다면 일확천금을 드려도 그런 예물은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한끝 차이지만 오로지 복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기복 신앙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영적 호흡이라고 생각을 하고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을 하며 하나님의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하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그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받게 되는 복과 은혜의 열매가 하나님께 드려졌을 때 그것이 진정한 감사가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 주에 보게 될 말씀을 보면 빌립보 지역에서 바울은 억울하게 감옥에 감히는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기복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 발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건 이후에 바울이 기도를 끊고 오로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만 살았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쉬지 않고 기도했던 사람이고 기도 덕분에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게다가 보세요. 그런 기도의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바울이었기 때문에 14절에 보면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는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말씀을 듣고 있는 도중에 루디아의 마음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주셨는데 그 모든 원인이 바로 기도하려는 바울의 열정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입니다.
찰리 맥커스라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다닐 형편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나 달란트가 있어서 취직해서 일을 할 만한 형편도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기술이라도 배워서 사진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렵게 마련한 돈을 가지고 사진 기술을 가르쳐 주는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서점의 착오로 사진에 대한 책이 아닌 발성법에 대한 책이 배달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년은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잘못 배달된 책을 반품할 배송료도 없었고 또 너무 어려서 그 방법도 제대로 몰랐습니다. 너무 실망스러운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자기의 실망스러운 상황을 하나님께 맡기면서 하는 수 없이 그 발성법에 대한 책을 보기 시작을 했는데 결국 이 소년이 이 책을 통해 세계적인 성악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명령을 하셨던 것이고 사무엘 선지자는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해서 평생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면서 2024년 받은 은혜가 기도의 열매인지, 기도 없이 우리의 수고와 노력으로 얻은 것이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할 곳을 찾기만 해도 복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2024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런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작정하면 됩니다.
기도할 곳을 찾기만 한 바울에게 헤아릴 수 없는 복과 은혜를 주셨던 하나님께서 기도하기로 작정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와 복을 내려 주실 것을 믿으시고 2024년 남은 기간 동안 기도의 열정을 회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만한 값진 열매를 거두면서 유익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