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추억의 공간
-부엌 궁둥이를 읽고-
신금철
‘부엌 궁둥이’라는 말은 어렸을 적 들어보기는 했으나 정확한 위치는 아리송하다. 그러나 이 단어는 이내 유년의 시골집 부엌을 소환한다. 하얀 앞치마를 두르고 머릿수건을 쓰신 어머니가 아궁이에 솔가지를 욱여넣으시며, 토닥토닥 부지깽이로 불을 때시던 정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언젠가 아궁이 앞에서 앞치마로 눈물을 훔치던 어머니를 보았다.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분이었다. 마침 가마솥 사이로 밥물이 넘쳐 눈물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삶이 힘들어 소리 내어 울고 싶어도 내색하지 못했던 어머니가, 가족들의 시선을 피해 잠시 묻어둔 훌쩍임이 머물던 곳이 바로 부엌이었다. 동시에 그곳은 잠시 어머니가 털퍼덕 주저앉아 고단한 다리를 쉴 수 있는 쉼의 공간이기도 했다. 부엌이 그러했듯 '부엌 궁둥이' 또한 시집살이에 지친 여인들의 한숨과 눈물이 서린 장소였으리라.
작가는 힘들었던 마음을 다독거리며 풀어내는 은밀한 처소로 부엌 궁둥이를 찾았다. 그는 부엌 궁둥이가 다산한 아내의 돌아앉은 궁둥이만큼이나 편안하고 따뜻하다고 했다. 그곳은 작가에게 안식처이자 위로의 공간이었고, 추억의 저장소였다. 자신의 삶이 축축하게 젖어 들 때마다 찾아와 마음을 정리했던 그곳에서, 작가는 홀로 남겨진 아내 역시 외롭고 고단한 삶을 위로받기를 바란다.
고향에 두고 온 아내가 부엌 궁둥이에 기대어 남편을 원망하는 모습을 상상할 때, 그의 가슴은 얼마나 미어졌을까. 참을성 많은 아내가 갓난아기를 업고 자신과 함께 바라보던 밤하늘, 그리고 별처럼 빛나던 아기의 눈망울을 떠올리며 작가는 더욱 분발한다. 이처럼 부엌 궁둥이는 작가에게 주저앉는 대신 다시 나아갈 용기를 준 곳이기도 하다.
한편, 며느리가 시아버님의 눈을 피해 시집살이의 중압감을 내려놓을 부엌 궁둥이는 아버지에게도 절실한 공간이었을 터이다. 남편 없이 홀로 지내는 며느리를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 또한 편치 않았을 것임을 알기에, 아버지에게는 숨어들 부엌 궁둥이조차 없었음을 헤아리는 작가의 마음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글 속에서는 아버지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된다. 빳빳하게 풀 먹인 두루마기를 입은 선비가 아니라, 출전을 앞둔 함장처럼 결연하게 소를 몰고 연장을 챙겨 들며 사립문을 나서는 전형적인 '농투성이'의 모습이다. 일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었던 당시 농촌의 삶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대목이다. 며느리 또한 시아버지처럼 고단한 농촌의 삶을 살아야 했으리라.
작가는 아내 몰래 부엌 궁둥이를 찾았다가 들켰을 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만삭의 몸으로 온갖 고초를 견뎌냈을 아내의 인내에 감동한 탓이리라. 어쩌면 그날, 작가는 아내를 위해 농사꾼의 꿈을 접기로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힘에 겨워 어깨로 숨을 몰아쉬는 아내의 기척을 알아챈 대목에서는 아내를 향한 깊은 연민이 묻어난다. 임신한 아내의 고단함을 이토록 섬세하게 눈치채는 남편이 과연 몇이나 될까. 무심한 척하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깊고 애틋한지 잘 보여준다.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찾아 들던 은둔과 애정의 장소, 부엌 궁둥이는 오늘날 이토록 아름다운 명작을 낳았다. 혹시 그 옛날, 초저녁별을 바라보며 문학을 향한 꿈을 키웠던 곳도 바로 그 자리가 아니었을까.
작가의 부엌 궁둥이는 오늘날 바쁘고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잠시 멈추어 쉴 수 있는 '휘게Hygge'의 공간이 필요함을 넌지시 일러준다. 그 아늑한 공간이 우리에게 위로와 추억의 장소로 삶에 새로운 희망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는, 이 시대의 ‘현대판 부엌 궁둥이’가 되어주기를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