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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마중물을 아는가?
오늘 여러분과 만남의 인연,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묘년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와 같이 복 많이 받으셨으리라 믿습니다만,
실은 복을 줄 능력도 주지도 못하면서 정초부터 복을 받으라는 빈말 인사를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복은 누가 주어서 얻는 것이 아니라, 농부가 농사를 지어 가을결실을 거두듯이 복 농사도 본인 스스로 지어서 얻는 것입니다.
보살님 아이 몇 학년입니까? 그 아이가 돈 만 원을 달라면 어디에 무엇에 왜 쓰려느냐? 꼬치꼬치 묻고 주는데 돈 만 원보다 훨씬 더 좋은 복을 주는 부처님이 그냥 줄 턱이 없습니다.
복 받을 일도 하지 않고 복만 달라고 하면 있는 복도 빼앗깁니다. 부처님께 복을 달라고 하기 전에 복 받을 이쁜 일을 먼저 한 후에 복은 달라고 하지 않아도 반드시 언젠가는 찾아옵니다.
지금부터는 새해 인사에 복 많이 받으라고 하시지 말고 새해 풍년복농사 지으세요. 하세요. 오늘 자리를 같이하신 모든 분 신묘년에 풍년 복 농사를 지으세요. 합장인사
여러분 내 인생에 번뇌가 없는 즐거움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면서 오늘도 행복을 찾아 헤매는 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왜 왔는 누구인가? 이왕에 왔으면 어떻게 살면 행복한 삶이 일지?
살다가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영혼이 있는 것일까 없을까? 사후세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거기는 어디일까? 하는 의심덩어리를 누구나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에 작은 실마리라도 풀어 볼까? 하는 생각에서 오늘의 법문은, 여러분! “마중물을 아십니까?” 인데,
마중물은 땅속 물을 펌프로 끌어 오리려면 펌프에 붓는 한 바가지 물을 마중물이라 합니다.
우리 인간이 마중물같이 살면 부유하고(부), 건강하게(강), 장수하면서(수) 덕을 베풀며(유) 살다가, 깨끗하게 죽는(고) 오복을 얻을 텐데,
법흥스님 키가 얼마입니까? 큰 스님이 되려면 키가 법흥스님만큼 되어야 큰 스님인데, 키가 작은 지개야는 죽을 때까지 큰 스님 되기는 영글렸지만, 그래도 오늘 살아 있는 법문으로 여러분 가슴에 마중물을 심어 주도록 온 힘을 다하겠습니다.
부처님은, 응명여약(應炳與藥:병에 맞추어 약을 쓴다) 대기설법(對機說法:그릇에 맞추어 설법한다)으로 45년 동안 중생을 가르치려고 팔만사천법문을 중생의 눈높이로 설법하셨습니다.
경찰이 당신 원적은? 아부지 좃대가리요. 본적은? 어매 보지라고 하신 춘성스님의 법문을 듣던 할머니가 나이가 많아 법문을 듣지 못해 손녀딸을 보내 춘성스님 법문을 듣고 말해달라고 보냈더니,
춘성스님은, 찾아온 손녀딸보고 하는 말이 내께 너무커서 니 작은데 들어가겠나? 이 말은 내 큰 법문이 작은 너의 생각의 그릇에 들어가겠나? 말이었는데,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걸림 없이 유명하다는 춘성스님도
병에 맞추어 약을 주고, 그릇에 맞추어 설법을 못해 어린 아가씨한테 내께 너무 커서 작은 니한테 들어가겠느냐? 라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씀을 할 것이 아니라, 아가씨한테 맞는 법문을 했다면 손녀딸이 울면서 도망치지는 않았을 텐데,
법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때와 장소 듣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전달해야할 말이나 이정표입니다. 이정표나 말은, 전달수단인데, 우리 불교에 큰 스님은 응명여약, 대기설법을 무시한 법문을 하셔서 몇십 년간 부처님을 믿은 사람도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큰 스님은 자기 글자랑 하고, 신도님들은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큰 스님 법문 들었다는 자체만을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함께 맞아떨어진 궁합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가 하면, 번뇌에 찬 불자가 큰 스님을 찾아가 고민을 상담하면, 대다수 답은 ‘마음을 비워라.’합니다. 이 말은 초등학교 일 학년도 할 줄 아는 말의 답변을 들으러 가지 않았는데, ‘마음을 비워라.’말씀하실 것이 아니라,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기독교 방송에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을 몰라도 예수님을 몰라도 다 알아들어요.
우리나라 불교는 언행일치를 덕목으로 하는 선불교입니다. 선불교는, 중국 당대의 단하스님이 혜림사에서 날이 추워서 법당에 있는 목불을 꺼내 장작 대신 쪼개서 불을 지폈는데,
이를 알고 주지가 달려와서 “부처님을 쪼개 불을 때다니,..., 하면서 심한 항의에 단하스님은 목불이 탄 재를 뒤적이면서 “사리가 얼마나 나오는지 보고 있습니다.”
주지가 “목불에 무슨 사리가 나온단 말입니까?”
사리가 나오지 않으면 부처가 아니니 추운데 나머지 두 개도마저 때버립시다. 란 걸림 없는 것과,
부처님의 33세 되는 육조 혜능에 이어, 마조선사의 ‘할(喝)’ 소리에 백장스님은 고막이 날아갔고, 황벽스님은 혀를 빼물었다.는 ‘할’은 말 없음에 말 있음의 부처님의 염화미소며,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라는 임제스님의 선불교를 말합니다.
임제스님의 제자 22명 중에 신라의 지리산 화상이 있었고, 나옹스님이 평산처림한테 법을 받고, 태고 보우국사는 석옥청공한테 법을 이어받아 오니 그때부터 우리나라는 임제종 선법맥을 이어받아 오늘까지 오고 있습니다.
지개야 어릴 때 어머님이 밤새도록 헝클어진 실을 실패에 감다가 더는 풀 수 없어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머님은 헝클어진 실을 실패에 감아서 써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실의 최종 목적은 실패에 감는 것이 아니라 바느질인데, 엉키고 헝클어진 실의 중간을 가위로 잘라서 방 벽 한켠에 매달아 쓰면 하나도 버리지 않고도 다 쓸 수 있는데, 가위로 중간을 자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같이 얽히고설킨 번뇌를 풀지 못해 이를 풀려고 깊은 산속에 혼자 들어가 풀려고 큰소리로 번뇌를 풀어 뇌이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큰소리한 만큼의 메아리가 돌아 올뿐입니다.
얽히고설킨 번뇌를 단칼에 베고, 몽둥이로 때려 부숴라. 란 뜻에서 우리 큰 스님들 법문하실 때 주장자를 내리치시면서 ‘할’ 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덕산 스님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방(몽둥이)’은 쏜살같이 했고, 임제 스님의 고함 소리 ‘할’은 천둥이나 벼락 치듯 했다는 것에서 가져 온 것이며, 이는 걸림 없는 자유인이 되란 뜻에서 큰 스님들이 법문을 할때 주자장를 내리치면서 '할' 하시는 이유입니다.
과언 우리는 말로는 임제의 선불교를 한다고 하지만, 지개야가 보기에는 아닙니다.
교회간판을 보면, 소망교회, 샘물교회, 아름다운 교회, 등 이름만 들어도 가고 싶은데, 이 땅에 불교는 1,640여 년 전인 372년 고구려 소수림왕 2년에 들어온 이래 우리 사찰이름은 사․ 암·정사·기원이란 끝자리에 구속되어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화음사 란 사찰이름도 전국에 20여 곳은 넘습니다. 1,640여 년 동안 사찰이름 끝자리 매김 하나 바꾸지 못한 우리 불교가 부처님을 뛰어넘는 대자유인이란 선불교라고 할 수 있을까?
사찰 ‘묵언마을’은 1,640여 년이나 아무도 깨지 못한 ‘사암정사기원’이란 사찰 끝자리 이름을 깨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작으나마 선불교의 실천이 아닐까? 합니다. 이때 손뼉을 치던데,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지 130여 년밖에 되지 않으나, 신도 수는 불교신자보다 300만 명이나 많고,
세계 10대 대형교회가 다섯 개나 되는 엄청난 발전을 하였습니다.
문화재의 70%가 불교문화인데, 이를 지키고 보존한 것이 우리 불교인들이지만, 왜 온 국민으로부터 칭송보다는 손가락질을 받아야 하는지?
천주교 김수환추기경 선종후로 천주교 신자 수가 20%가 증가했다는데, 우리 불교에 큰 어른 스님이시고, 온 국민의 존경을 받던 법정스님 열반으로 각종 뉴스 첫머리를 차지할 때, 우리 불교에 포교할 절호의 기회에 우리는 무엇을 했습니까? 봉은사 시주 돈 싸움이란 희극도 비극도 아닌 추태를 보였잖아요.
2011년도 예산 중 탬플스테이 예산을 삭감했는가 하면, 낙산사화재로 말미암아 화재로부터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전통사찰방재시스템 구축예산 20억원도 전액 삭감됐습니다만, 예산 삭감 방지를 위한 끝까지 노력을 해야 할 우리불교계의 시스템이 없이 뒤늦게 칼 가는 소리나 하다니,
모든 재앙을 자전에 예방하는 것을 덕으로 삼는 우리 불교가 행한 행동인가?
지금 우리 불교는, 온몸 전체에 심한 동맥경화에 걸려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심한 것은 우리 불자들이 동맥경화에 걸려 있다는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데 더 큰 문제입니다.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과 자기가 생산한 제품을 팔아야 하는 기업인은 신자숫자가 많고 단합이 달 되는 기독교 신자가 많을 수밖에 뿐입니다. 이는 누구 책임입니까?,
이는, 첫째는 불교지도인 스님들의 책임이고, 둘째는 불교신도들의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법납이 높다는 스님들이 얽매임에서 얼마나 벗어나지 못하는가 하면, 소승이 출가할 때 면접하는 큰 스님이 ‘지개야’ 란 법명이 3자라고 허락을 하지 않으시면서
한자를 빼라고 해서 난 뺄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빼라. 뺄 수 없습니다. 를 5분 이상 다투다가 꼭 빼야 한다면 빼겠습니다. 하고 ‘지’자를 확 뺐지요. 잘 생각했어, 하고 ‘지’를 빼고 나니, ‘개야’가 되잖아요.
그것은 안된다면서 뒤에 야를 빼라, 아니다 지를 빼겠습니다. 로 또 한 5분간 다툼을 하다가 야를 뺐는데, 각종 언론보도에 묵언마을 지개야에 대한 보도가 100여 회 이상 보도방영된 후에야 지개야로 고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조계종에 무진장스님과 태고종 지개야스님만이 승려 법명이 3자일 것입니다.
사찰 이름 등록도 ‘묵언마을’ 뒤에 사암정사기원을 붙여야 한다고 해서, 그러면 태고종에 등록하지 않고 조계종에 등록하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묵언마을에 있는 사찰 이름은 무엇인가? 하는 사람도 있어요. 앞으로는 ‘묵언마을’과 같은 사찰이름이 많이 탄생할 것입니다.
‘묵언마을’ 이란 사찰 이름 묵언의 뜻은 520여 년 경에 면벽 9년 묵언 정진으로 깨달음을 얻은 달마대사의 묵언과 거짓 없는 진실의 대화만 오가는 ‘고향마을, ’외가마을‘의 마을, 을 합한 묵언 참선을 하는 마을이란 뜻입니다.
1,640여 년의 화두를 깬 묵언마을와서 자기 따내는 일등 불교신자라는 사람이 찾아오면 법당에 부처님한테 인사도 하지 않고, 지개야 주지 먼저 찾습니다. 만나보니 승복은 길표 승복에다,
생김새는 보니, 와이셔츠 단춧구멍만 한 눈 빼고는 볼품이라곤 하나 없는 꼬락서니 지개야를 보고 자기 멋대로 저울질합니다.
여기는 무슨 종이냐? 물어요. 그러면 지개야는 답은 종은 여밀래 종이 제일 좋은데, 돈이 없어 새마을종도 못 사서 학교 종입니다. 하면, 씨쿠등에 아니꼬운 인상을 쓰면서 자기는 조계종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지개야는, 보살님은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조계종을 믿는가 보지요. 하면서 핀잔을 주면 아주 기분 나쁘다는 뜻으로 얼굴 색깔을 바꾸면서 하는 말,
여기서는 법문을 어떻게 합니까? 이 말은 부처님과 수보리가 나눈 공사상 대화인 금강경이 소의경전이냐? 아니면,
일체법이 무아로 본성이 없다는 연기법(緣起法)에 무애자재(無碍自在)한 생활을 강조한 화엄경을 소의경전이냐? 아니면, 법화경이냐? 등의 질문인데,
지개야 답은 소승의 법문은 한국말로 합니다. 내가 미국가면 영어로 하지만 한국에서는 주로 한국말로 합니다. 하는 경우의 답은,
만동자가 부처님께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정신과 육체는 하나인가, 둘인가? 등의 14가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부처님께서 답하지 않으셨지만, 지개야는 지팡이 없는 주장자로 내리치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어쨌든 간에 지개야는 하루에도 몇 번씩은 저울에 올라가야 합니다.
천주교 묵상기도는, 16세기 스페인에서 출발했는데 이는 우리 불교보다 1,000여 년 뒤진 묵언이나, 우리 불교보다 천주교 피정에서 묵상기도를 더 잘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도는 2시간만 같이 있으면 우리 교회 가지고 해요. 천주교 신도는 사귄 지 일주일 되면, 우리 천주교에 가자고 해요. 우리 불교신도는 사귄 지 일 년 넘어야 불교신도란 것을 알리고, 십 년 넘어도 우리 절에 나가자 하는 사람 없어요. 여기 화음사 불교신도 빼고 말입니다.
우리 불자님들은 말로만 부처님할 뿐, 불자가 행해야 할 제일 중요한 사섭법을 모르는 것 같아요.
사섭법(四攝法)은, 중생을 찾아 교화해 불도(佛道)에 들게 하는 보시섭(布施攝)·애어섭(愛語攝)·이행섭(利行攝)·동사섭(同事攝)의 4가지 행위를 말합니다.
① 베푸는 보시섭에는, 재물을 베푸는 재시, 부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시, 두려움과 어려움을 구해주는 무외시가 있고,
② 애어섭:사람들에게 항상 따뜻한 얼굴로 부드럽게 말을 하는 일,
③ 이행섭:신(身)·구(口)·의(意) 3업(三業) 즉 몸으로 하는 행위, 입으로 하는 행위, 마음으로 선행하여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는 일,
④ 동사섭:부처님의 교리를 근거로 중생들에게 접근하여 함께 일하고 생활함으로써 그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우리 불자님들은 사섭법을 행하지 않은 큰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지은 줄 모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부터는 근심․걱정, 번뇌에서 허덕이는 내 이웃에게 사섭법을 전하는 불자님이 되어 화음사에 많은 불자님들을 모시고 오시길 바랍니다.
왜 불교가 좋은가? 기독교는 의자에 앉아 입으로만 기를 하지만, 우리 불교는 온몸으로 절하는 의식 종교이므로 건강에는 아주 좋은가? 하면, 지혜의 종교입니다. 지혜란 위기에 처했을 때, 위험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위기를 새로운 탄탄대로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99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라. 했습니다. 이는 99명의 착한 사람보다 나쁜 한 사람을 교화하라는 말씀이고,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나쁜 친구와 사귀지 마라. 저속한 사람과도 사귀지 마라. 착한 벗과 사귀고, 가장 훌륭한 사람과 사귀어라.”라고 했습니다. 인간 안 될 놈하고 놀지 말고, 인간 된 놈과 놀라 했습니다.
이는 어리석은 자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하는 것은 마치 국자가 국 맛을 모르듯이 아무리 오래도록 가까이하여도 그 진리를 알지 못하네! 어진이가 지혜로운 이를 가까이하는 것은 마치 혀가 음식 맛을 알 수 있듯이 비록 잠깐동안 가까이하더라도 참다운 진리의 뜻을 아네!
불교에 중승僧는 사람인 변에 일찍 증(曾)입니다. 말하면 중 이전에 사람이 되라. 즉 말하면 중 이전에 인간이 먼저 되란 말인데, 지개야가 과언 스님이란 말을 들어도 될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내일에 어른이 될 오늘에 어린이들을 잘 포교해야만 그 종교에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어린이 포교를 잘하고 있지만, 우리 불교법당은, 탱화가 무서워 어린이들이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어린이 포교를 한단 말입니까? 소비자가 선택하지 않으면서 외면하는 상품은 망합니다.
20년 전에 보살님보고 휴대폰 사라고 하면 저놈 미친놈 아니냐? 하다가 보살님 삐삐 하나 사시지요. 하면, 산속에서도 터지느냐? 하면서 사려고 했고, 지금 삐삐 사라고 하면 저놈 미친놈이 아니냐? 하고, 휴대폰 사라고 하면 공짜냐 하지 않습니까?
지금이나 그때나 휴대폰이나 삐삐의 사용은 똑같은데, 시대의 인연에 따라 변했습니다. 보살님은 왜 겨울옷을 입었어요. 추위를 이기기 위해서 겨울옷을 입었잖아요. 이 같이 오늘날 시대정신에 벗어난 불교의 똥고집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처님은 인연이란 말씀이 꽃이라면, 남녀성관계를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실수가 아닌지, 하나님은, 사랑이란 말씀이 꽃이라면, 나 외에는 어떤 신도 믿지 말라고 하신 것 또한 실수가 아닌지? 깨우쳤다고 하는 부처님과 예수님이 그런 엄청난 실수하신 것이 아니라
오늘에 우리가 해석을 잘못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살아 활동하던 인도갠지스 강 주변에는 43도가 넘을 때가 잦은 더운 지방이어서 노팬티로 살았을 때입니다. 브라만, 왕족,상인,노동자, 4계급 밑에 천민이란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밤낮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은 문란한 성관계 계도를 위해 자라봐 가면서 잔치를 하란 이야긴데, 그때 주변환경을 무시한 부분만 확대해석 한 것은 아닌가? 도를 통한 부처님이 남녀성관계가 없으면 100년 이내 인간의 종말인 것을 몰랐을 턱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활동하던 시절에는 자연물을 숭배하는 애니미즘, 특정 동물을 수호신으로 믿는 토태미즘, 무당이나, 주술사을 믿는 샤머니즘, 하늘에 태양과 달, 별 등 다양한 것을 신으로 믿는 것을 보고, “나 외 어떤 신도 믿지 마라.” 여기서 말하는 나는 부처님의 자등명과 같이, 하나님이 아닌 그 당사자 즉 나 자신을 말하는 나입니다.
어떤 집에 학생이 공부는 하지 않고 컴퓨터 오락만 하는 것을 보고, 어머님이 잘한다. 그래 공부는 하지 말고 컴퓨터만 열심히 해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주변환경을 무시한 해석을 하면, 공부보다 컴퓨터 오락이 더 좋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같이 우리는 불경이나 성경의 문맥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왜 위대한 성인들이 그런 말씀을 했을까? 생각하면 그분들의 말 실수가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이 해석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말하면 성경을 알려면 성경을 뛰어넘어야 하고 불경을 알려면 불경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어쩌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은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풀지 못할 숙제만 잔뜩 내고 가셔서 오히려 인간으로서 살기가 더 어렵지 않나 하는 헛소리를 해 봅니다.
부처님이든 하나님이든 오늘의 소비자인 너와 내가 선택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부처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지구 상에서는 오랜 날 내려오던 종교가 문을 닫는가 하면,
새로운 신흥종교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무엇을 말하나 하면 소비자 선택의 여부 때문입니다.
여러분 식당이름 끝 자에 ‘촌’ 자가 많지요. ‘촌’자 유행시킨 사람이 바로 지개야입니다. ‘안동황우촌’이란 한우 식당 이름 때문입니다.
지금 전국에 식당 끝자리에 ‘촌’자를 붙인 식당 이름은 세수하고 코 만지는 만큼 쉽게 보았을 것입니다. 이는 소승이 최초로 지은 안동황우촌 이란 이름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끝자리를 촌이라고 했는가? 하면, 이름이나 상호 이름 끝자리에 니은 받침은 다른 어떤 바침보다 아주 부드럽고 정감이 갑니다.
이름에 있어서 이순식보다는 이순신, 유명설보다는 유명선이 부드럽습니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안동황우촌이었습니다. 이 이름이 탄생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면,
1980년에 송아지 한 마리에 120만 원 주고 사서, 2년간 먹여 어미소가 되어 송아지까지 낳아, 어미 소에 송아지를 끼워 팔아도 사료 값은 고사하고 원가에도 반도 못 미치는 50만 원밖에 못 받았어요.
120만 원 하던 송아지가 2년 만에 12만 원으로 폭락했어요. 그때 하나 밖에 뿐인 목숨을 던지는 농부님들이 속출해도 그 누구 책임지는 사람 하나 없습니다.
축협상무일 때 우재석의 고민은 날밤을 새우다가 얻은 결론, 모든 경제의 원리는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른다는 것은 아침이면 태양이 뜨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길로 소 사육 농민들에게 술을 받아 주면서, 서울사람들은 땅 투기를 하는데 서울 사람이 못하는 소 투기를 하자면서 두 달 월급으로 쇠뇌 교육을 두 달간 시켰습니다.
술을 얻어먹을 때, 내일 소를 사로 장에 가겠다고 해서, 새벽 4시면 서는 소장에 나가 농부님들이 오도록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어요. 결국은 그 사람은 소승의 끈질긴 졸림을 피하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너희가 소를 사 넣지 않으면, 소승이 소를 사 넣어서 돈 버는 시범을 보이려고 1,000만 원 대출 내어 송아지 100여 마리를 사 먹였습니다. 송아지 사 넣고 2여 년이 지나고 나니, 소 값은 5배 정도 올랐어요.
천만 원 주고 사 넣은 소가 5천만 원이 가니, 그때야 농부들이 너도나도 소승이 하는 대로 따라 했습니다. 소승이 소장에서 암송아지를 사면 암송아지를 사고 수놈을 사면 수놈을 하고 했어요.
안동황우촌이란 소 사육 농가 계를 모아서 소 판매과 구입을 공동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그때 소 판매는 송아지, 중소, 큰 소 한 마리에 얼마였습니다. 그러니 많게는 큰 소 한 마리에 송아지 한 마리를 끼워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직판장을 내면 우리는 돈을 많이 받아서 좋고, 소비자는 저렴한 가격으로 진짜 한우를 먹어서 좋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하자고 하고 서울하고도 역삼동에 안동황우촌을 차렸습니다.
개업한 정육점에 안동 국회의원, 시장 등 유지이름으로 꽃을 우리 돈으로 사서 세워놓고, 촌놈 13명이 서서 손님을 기다렸으나, 서울사람들이 촌놈들을 보고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하면서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소 5마리분을 가지고 갔으나, 5만 원어치도 못 팔았어요. 그러니 농부들의 입에서 욕설까지 하는 원망을 혼자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오늘 첫날이니까? 그렇지, 내일부터 잘 될 거야. 라고 임시 변명으로 순간을 겨우 모면했습니다.
답은 홍보야! 우리나라에 제일 많이 보는 조선일보에 광고를 내면 되지, 하고 조선일보에 전화해서 광고비를 물어보니, 촌놈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돈을 달라고 해서 공짜로 낼 수는 없느냐? 물으니, 상대방에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촌놈이 서울하고도 강남에 진출해서 쫄닥 망할 것인가? 아니면 안동양반이 서울 촌놈 돈을 빼앗느냐?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때야말로 부처님 지혜의 힘을 빌어야 합니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부처님을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공짜로 광고를 낼 수 있을지 지혜를 주십시오. 하면서 계속 절을 했습니다. 절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는 모르지만 쓰러져 있는데,
"부처님께옵서 공짜로 낼 수 있다. 면서, 점포사진을 찍고 안동황우촌 정육점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히 적어서 신문기자한테 보내라."는 지혜를 얻었습니다. 부처님이 시킨 말씀대로 했더니, 그 다음 날 조선일보 전국네트워크에 손바닥보다 큰 기사가 났어요.
소승의 속가 이름이 우재석인데, 주로 우 소장으로 통할 때입니다. 신문기사가 나간 다음 날, 소승이 아침에 신문을 보고 있는데, 손님이 찾아와서 우소장보고 우소장님 어디 갔어요. 하고 물어요.
왜 찾느냐고 물으니 우소장 만나러 왔다고 하더군요. 우 소장을 왜 만나러 왔느냐? 고 물으니, 우 소장님 만나서 말할 테니, 우 소장한테 연락 좀 해 달라고 해서, 무슨 일로 어디서 어떻게 오신 분인지 알아야 하지요.
서울 방송국에서 왔는데, 우소장님한테 연락하면 압니다. 그래요. 알았습니다. 하고 신문을 계속보고 있으니, 이 사람이 화를 내면서 우소장님한테 연락하고 신문 보면 안 되느냐? 고 했어요.
그분이 우소장을 보고 우소장을 불러달라는 이유는, 그때 소승이 입은 옷은 길표 중에도 싸구려 길표로 농부보다 더 남루한 옷을 입었어요. 왜냐하면, 그래야 농부님들이 무슨 말이든지 소승에게 어렵지 않게 막하라고 그렇게 옷을 입었어요.
그러니 그분 생각에는 저 사람은 여기 청소부이고, 우소장님을 따로 있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신문을 보고 있는데, 또 독촉해서 지개야가 어디서 왔다고요. 하고 다시 물으니,
서울 kbs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거기서 왜 왔는데요. 우소장님 만나서 이야기할 테니 연락이나 해 주세요. 하면서 신경질까지 내고 있었어요.
그러다니 직원들이 출근하면서 소승보고 인사를 꾸벅꾸벅 하는 것을 보고 아- 저 거지 같은 놈이 우소장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야 죄송합니다. 를 연달아 하면서 명암을 주는데 보니,
KBS TV 6시 내고향 PD 누구였습니다. 아 PD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봅니다. 하니,
다음 주에 6시 내고향에 안동황우촌을 방영하기로 결정이 나서 내일부터 촬영을 때문에 왔습니다. 해서,
우리 안동황우촌은 6시 내고향에 안 나갑니다. 하니, PD가 우소장님 6시 내고향 프로 보고 있습니까? 예 거의 매일 같이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안 나가려고 합니까? 우리는 지역 시장군수, 국회의원들의 로비를 뿌리치느라고 고생인데, 방송에 내어 준다는데, 왜 안 나간다는 말은 처음 들었습니다.
아마 그때 PD가 자기 귀를 의심하면서 “이 프로에 나가기만 하면, 장사에 앞날은 훤하게 보이는데, 안 나간다고 하니, 옷 입은 꼬락서니나, 말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그러니 저 모양 저 꼴이지 했을 것입니다.
소승은 우리 안동황우촌은 믿음을 판매하는 곳인데ㅡ 거짓말투성인 6시 내고향에는 안 나갑니다라는. 말에 PD는 흥분을 참지 못해 하면서. 알았다고 하면서 나가 버려 협상은 결렬되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하니, PD가 소승보다 먼저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 나간다는데 또 왜 왔어요. 하니, 안동황우촌을 다음 주에 방영 못 시키면 내 목이 달아납니다. 아니 PD님의 목이 달아난다면 해야지요.
촬영하기 전에 정육점 주인들한테 물어보았어요. 어떻게 하면 정육점이 돈을 버는가? 를 그랬더니 이구동성으로 등심만 다 팔면 돈을 끈다고 했어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에 정육점에 소고기를 사려 가면 소고기 한 근 주세요. 하고 뒤에 하는 말 기름 없는 데를 달라고 했어요. 그때는 맛 좋은 등심은 먹지 않고, 기름 없는 뒷다리와 안심이 인기가 있던 때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등심을 소비자한테 잘 설명해서 팔아먹을까? 하는 생각에서 등심과 한 시간 동안 대화에서 얻는 결론! 그래 살코기 사이사이에 핀 흰 살코기 등심, 너 이름은, 지금부터 이 세상에 가장 아름다운 꽃등심이다. 라고 했어요.
이렇게 해서 이 세상에 꽃등심이란 낱말이 탄생하였습니다. 그리고 방송프로 제목은 “믿음을 팝니다.”에서 꽃등심을 주제가 되어 방영되고 나니, 야 방송 위력이 그렇게 쌘 줄을 몰랐습니다. 전화기 두 대를 받고 끊으면, 걸려오고를 며칠간 계속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에만 해도 휴대폰이 귀할 때가 아닙니까? 고기를 사러온 사람이 휴대폰으로 전화하면서 예 회장님 하면서 절을 하는 것을 보니, 비서인 모양인데, 한 근 두 근이 아닌 갈비한짝, 꽃등심 한 채로 사갔습니다.
강남경찰서장은 촌놈들 고기 잃어버릴지 모르니, 역삼파출소에 순찰해주라고 까지 했어요. 그 후 KBS.MBC.SBS TV 및 라디오, 조중동을 비롯한 각종 언론에 400여 회 이상 보도방영 되었습니다. 일본 NHK에도 하유미 영화배우가 조연하고 소승은 주연으로 2번이나 나갔습니다.
소승의 지어낸 꽃등심이란 말 한마디로 온 국민의 입맛을 바꾸어 놓았어요. 그렇게 되니, 남아돌던 등심은 모자라고, 모자라던 다리 살은 남아돌았어요. 등심은 구울 때 기름이 나와서 맛이 있습니다.
다리 살을 구울 때도 소고기 기름과 함께 구우면 맛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정육점 업자를 모아 놓고 소고기 기름 중 버리는 곳이 어디냐? 고 물었는데, 순수한 기름은 무기 원료와 화장품 원료로 가나기 때문에 안 되고,
차돌박이는 기름 반, 살 반이래서 쓰레기통으로 버린다고 하더군요. 버리는 차돌박이를 가지고 오라고 해서, 다리 살과 차돌박이를 함께 구웠더니, 차돌박이에서 나오는 기름이 다리 살에 베어서 훨씬 더 맛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차돌박이와 뒷다리살, 갈비살, 양지 등을 함께 구워 먹는 모듬구이를 만들었습니다. 쓰레기통에 들어가던 차돌박이가 우리 밥상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리 살이 남아돌아서 육회 덮밥을 개발했습니다.
지금에 한우가 온 국민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은 소승과 함께 한 안동 양축농민들에 마중물의 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저렇게 살다가 1995년도에 경상북도 도의원을 통해 축산정책 자금을 양축농민들에 받아 주려고 3번의 면담신청을 거절당했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도의원을 만나려고 면담할 것이 아니라, 내가 도의원을 하면 되지 않나? 하고
그해 3월에 축협상무자리를 사표 내고 도의원에 출마한다고 하니, 모든 사람이 우상무 미쳤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상대는 집권 여당에 도의회 현직 부의장이고, 소승은 무소속이고, 돈도 100억이 넘고, 돈은 퇴직금 3,000만 원이고, 선거구역 내, 상대 후보의 성씨도 2,000여 가구인데, 소승은 겨우 18가구였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후보보다 열세인 것을 자랑으로 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합동유세가 있는 날, 난 사무실 직원 2명과 나까지 3명이 어깨띠를 두루고 갔는데, 상대 후보 두 사람은 유세장 입구에서 200여 명의 대학생을 동원해서 1번 누구 부탁합니다. 하고 절을 90도로 했어요.
아무리 간이 몸보다 더 크다고 해도 거기서 패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합동유세에는 안동에 권정달이를 비롯한 정치인들은 다 모인 자리였습니다.
합동유세 차례 제비를 뽑는데, 소승이 일 번을 뽑았어요. 아 살았구나! 만약 내가 3번을 뽑았다면 맨땅에 해띵였고 나와야 했어요.
다행이 일 번을 뽑아서, 여러분 들어오시다가 여러분에게 인사하는 사람을 보았지요. 그 사람들은 봉사자라고 하지만, 아닙니다. 돈주고 샀습니다. 기호 3번 우재석이도 돈주고 살 줄 압니다. 그러나 돈 주고 사면 도의원이 되면, 본전 뽑는 도둑놈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기호 3번 우재석이한테 짜장면 한 그릇 얻어먹은 사람 있다면 찍지 마세요. 자장면 한 그릇 사주고 표를 사면, 도의원 되어 그만큼 도둑질을 해야 합니다. 기호 3번 우재석은 절대로 도둑놈 되려고 도의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300만 경상북도민을 위해 도의원을 하고자 합니다.
진정 어린 유세에 힘입어 도의원이 되어서, 초선에 무소속으로 경상북도 도의원 의정 활동 대구·경북행정학회 평가에서 일등을 했습니다만, 돈을 좀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사업을 해서 30억 벌고 나니, 돈 버는 것도 싫증이 나서 이 싫어서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다가,
정치 병이 재발해서 2004년도 국회의원 출마에 노무현 탄핵정국에 파편을 맞고 패잔병이 되어, 빈 하늘에 흐르는 구름소리만 헤아리던 중,
언론보도에서 2003년 도 통계를 보는 순간 남은 여생에 가야할 길을 찾았습니다. 국내서는 45분마다 한 사람씩 자살을 하고, 또 지구촌 65억 인구 중 70%는 양식이 굶고, 30%는 살을 빼려고 굶고,
하루에 3만 5천여 명의 어린이가 굶어 죽어 가는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고 고민을 하다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구하라는 마음에 소리를 듣고,
2004년도에 출가해서
누구로부터 일원의 보시금도 받지 않고, 휘어져 꼬부라진 우리나라 소나무로 설계도도 없이 혼자서 묵언마을을 불사를 했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온 종일 노동자님들과 같이 일하고, 저녁이면 너무 힘들어 죽었어요. 죽었다가 아침에 눈이 떠져 살았으니, 다시 묵언마을 불사하기를 5여 년 만에 완성을 했습니다.
사찰을 지을 때는 몰랐는데, 사찰을 다 짓고 점안식을 하려고 하니, 신도가 한 명도 없으니, 지개야 혼자 마룻바닥을 보고 점안식을 해야 할지?
그래서 현대불교신문에 광고하고, 각 기자한테 보도자료를 넣었더니, 연합신문과 기타 인터넷 신문들이 묵언마을 점안식 보도를 해주어,
2007.8.15일 점안식 날에 생각지도 못한 300여 명이란 많은 사람이 참석해 주었습니다.
그해 10월 12일에 조선일보에 why 난 두 면에 나갔습니다. 지개야가 유명 스님도 아니요. 그렇다고 묵언마을이 고찰도 아닌데, 그렇게 해서 지금껏 각종 언론에 100여 회 이상 보도 방영되었습니다.
컴퓨터 검색에서 묵언마을이나 지개야라고 검색하면 더욱 많은 자료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네이버나 다음 묵언마을 카페가 첫 화면에 보면,
몸이 아프면 병원으로 가고 마음이 아프면 극락마을 위해 묵언마을로 오세요. 상담은 필요하시면 사전 전화를 주십시오.“ 라고 써 놓았는데
지개야한테 상담받으려 목사, 신부, 수녀, 스님, 정신과의사, 전문상담인, 등 각양각색입니다.
지개야 상담은,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답이 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에 답을 찾아 두 사람이 하나 되어 찾아가는데,
내담자의 처지에서 내담자의 말을 잘 들어줍니다. 그러다 보니, 내담자보다 상담해 주는 지개야가 먼저 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껏 내가 들어보아도 어떻게 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는가? 하는 쏟아지는 눈물 사연의 70여 명을 삶의 현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한 번은 부티나게 생긴 50대 중반의 남자가 찾아왔어요. 사연인즉 어떻게 죽으면 고통 없이 죽을까 하는 생각에서 컴퓨터 검색에서 묵언마을을 찾았다며 하는 사연
직원이 200여 명이나 되는 중소기업 사장은 S대를 나와 명예를 중요시하면서 살아왔는데, 부도에 형무소 가는 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합디다.
부도나게 된 동기는 자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환경에 의한 것인데, 그래서 친구 변호사 은행지점장 다 찾아다녀도 해결책은 없다고 합디다.
회사에서 리스자금과 기타 자금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는데, 은행에서 자금회수를 하려고 하니, 공장을 경매처분되고 나면, 직원들 퇴직금을 지급하지 못해 형무소를 가야 한다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듣고
지개야가 공장을 계속 운영하고 싶어요. 그리고 직원들은 공장에서 일하려고 합니까? 사장도 직원도 다 공장운영을 계속하고 싶다고 합디다.
그러면 공장을 운영하면 되지 뭐! 그까짓 가지고 죽으려 하나?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아서, 지개야가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라.
오늘 당장 공장을 직원들 퇴직금으로 주세요. 그러면 자연적으로 공장은 직원 명의로 변경됩니다. 그리고 사장은 신용불량자가 되어서 사시고, 사장은 바지사장을 세워 놓고 실지 사장은 사장님이 하면 됩니다.
신용불량자라고 명암이나 목에 신용불량자라고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공장은 옛날처럼 돌리면 되지 않는가? 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 3배를 하고는
실은 자기 부인이 불자인데, 절 앞에까지 태워주고 법회를 마칠 동안 산행하고 부인을 데리고만 왔지 한 번도 법당에 들어간 본 적이 없다고 합디다.
그러면 오늘은 부처님께 108배를 드리고 떠나겠습니다.
그 다음 날에 전화가 왔는데, 은행지점장도 자기가 하고자 하는 계획을 모르고 있어, 변호사 사무실에 가서 직원들과 공증을 마치고 중이라면서 수화기 저 너머서 머스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공장은 지금도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 고한 덕산제자 운문선사가 “부처님이 태어나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했다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몽둥이로 때려잡아 굶주린 개에게 던져주었을 것이다”. 라고 외친 것은 실수가 아닌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 한 말은 부처님 당신을 위한 말이 아니라. 운문선사를 비롯한 모든 사람을 칭한 말입니다.
보살님은, 이 시간까지 살다가 죽어간 모든 사람, 오늘을 함께 사는 67억 지구촌 가족들, 앞으로 지구가 멸해 없어질 때까지 사람 중에,
보살님과 꼭 같은, 얼굴, 생각, 지문, 유전물질 DNA가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부처님이고 하나님입니다만 행을 그렇게 못 해서 아니지만?
이렇게 고귀하고 고귀한 인연에 보답하고자 돈 버는 보시법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화엄사 법흥스님이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 삼불을 모신다고 하니, 많은 보시금이 들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보시는 한 만큼 반드시 자기에게 배가 되어 돌아옵니다.
춘원 이광수가 “임에게 육바리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에서 ‘임에게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 라고 한 보시의 원어명은 dana인데, 우리말로 ‘다나’라는 말의 어원인이 아닌가?
아무튼 베푼다는 보시에는, 재물로서 베푸는 재시(財施), 부처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법시(法施), 마음에 두려움과 어려움을 구해주는 무외시(無畏施)등에서 세속의 명예나 이익을 위한 반대급부를 바라는 마음이 없이 그냥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보시입니다.
즉 계산기를 두드리는 보시는 복을 쫓는 보시고, 복이 오고 돈 버는 보시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보살님들은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가족 건강보시를 위해 장에 가시리라 믿습니다. 지금 배추 한 포기가 만 원 하니, 배추를 더 사 먹으려고 하고, 배추 한 포기에 500원 할 때는 맛 없다면서 배추를 적게 사는 것이 우리 주부들의 장보기 습관이 아닌가?
배추 한 포기에 만원 가면, 적게 사 먹으시고, 한 포기에 500원 갈 때 많이 사 먹으세요.
예를 들면 고등어 한 손에 1,000원이고, 꽁치 한 손에 5,000원, 무 총은 500원, 배추 만원이면, 헐한 고등어 와 무 총은 안 사고, 비싼 꽁치와 배추를 사 와 돈 쓸게 없다면서 남편 기죽이지 말고,
싼 고등어 무 총을 사세요. 그러면 생산비도 못 건져 우는, 생산자에게 웃음 주는 무외시오. 살림살이에 절약하니, 재시오. 절약한 돈을 사찰에 스님 법문 잘하라고 보시하니 법시가 아닙니까?
모든 농수산물은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것은 철칙이며, 그 주기 또한 비슷합니다. 장터에서 비싼 농수산물을 사면 가격은 점점 더 올라가 수입해야 하고, 싼 농수산물 가격은 점점 더 하락해 밭에서 버려야 하는 악순환인데, 반대로 한다면, 복이 와, 돈 버는 보시이자 내 이웃을 위한 마중물입니다.
우리 불교에서는 오욕을 버려야 오복이 온다고 하지만, 오욕과 오복은 어디서나 함께 합니다.
수壽(장수)명예욕(名譽慾), 부富재욕(財欲), 강녕(康寧)식욕(食欲), 자손중다(子孫衆多)성욕 고종명考終命 수면욕(睡眠欲)입니다 지나친 욕심을 내지 말라는 이야기지 욕심이 없는 인생은 희망 없는 인생입니다.
오늘 자리를 같이한 불자님들에게 선물로 “왜. 어떻게. 무엇.”이란 화두를 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에 왜란 문제를 제기하고, 어떻게란 문제의 답을 찾아, 무엇이란 즉 무엇을 남길 것인가?
인간은 왜 살아야 하나, 태어나 죽지 않았으니 살아야 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 인간답게 살아야 하지, 무엇 때문에 내 인간 후배들에게 작은 교훈이라도 남기기 위해서 말입니다.
왜 화음사 왔느냐? 이왕에 왔으면 어떻게 법문을 듣고 어떻게 해 복을 받아 갈 것인가? 무엇 때문에 잘 살라고,
모든 일에 왜 어떻게 무엇으로 살아가시면 큰 실패 없는 삶이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중 한 분에게 선물로 드리는
祉丐也五虛說지개야오허설은 지개야의 다섯가지 헛소리란 뜻인데, 이 말은 지구 상에서 처음으로 지개야의 말입니다.
1. 山去無山有江산거무산유강산에 가니 산은 없고 강만 있더라. 산에 가니 산마루 꼴째기 산은 없고흙나무돌풀만 보일 뿐,
뒤돌아 멀리 눈 끝 가는 그곳엔 굽이 휘돌아 흐르는 강이 훤히 보인다. 내 안에 나는 없고 니 안에 내가 있다.2. 江去無江有山강거무강유산강에 가니 강은 없고 산만 있더라. 강에 가니 굽이돌아 흐르는 강은 없고넓은 강폭만 보이네!강 건너 높낮은 산들의 이야기 산마루 꼴째기 바위얼굴 미소까지 들린다.니 안에 넌 없고 내 안에 니가 있다. 3. 山去江見我見산거강견아견산에 가서 강을 보듯이 나를 보아라.내 안에서 나를 보지 말고내 밖 멀리서 나를 바라보아라.진정한 나의 주인이 나인가? 너인가?난 누굴 위한 나의 삶인가?무엇을 쫓아 어딜 그리 바삐 가는가?4. 江去山見我見강거산견아견강에 가서 산을 보듯이 나를 보아라. 내가 나를 바라보지 말고내가 아닌 니가 되어 나를 보아라.진정 내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난 누굴 위한 내 인생인가?무엇을 찾아 갈팡질팡 헤매는가?5. 目說耳說口聽목설이설구청 눈 귀로 말하고 입으로 들어라.웃는 눈으로 너의 말을 끝까지 경청일은 말없이 내가 먼저 말은 제일 마지막에 미소로 행복이 얼쑤 추임새를 넣는구나! 실천 없는 말은 불행의 씨앗,
마지막으로 지개야란 법명은,
'복지祉' 자, '빌개丐' 자, '어조사야也' 자로 복을 구걸하는 '거지야' 란 뜻이며
복 구걸에는 6바라밀이 좋다는데, 자연의 일부분인 '지개야'는 '극락마실' 위에 있는 '묵언마을'에서 세상사 의심덩어리를 내려놓고, 물처럼, 바람처럼, 때론, 망부석 헌 신짝같이
닭벼슬보다 못한 중衆벼슬로 세월에 배를 타고 길 없는 길 험악한 길 가는 복 거지가 한 사람의 ‘자살위기자’라도 구하려고 온 힘으로 하루를 등짐 하며 詩를 못 쓰는 시인의 먼 눈으로 4바3계를 바라보기도….행여나 내가 그대와 인연을 깜빡,…….그대가 지개야와 인연을 말씀해 주시면 얼씨구 내 그대를 사랑하리라.그대와 참 인연 지개야가 그대의 마중 물이 될 수 있다면얼마나 좋을까? 지난 크리스마스 날, 얼마나 추웠습니까?
그 추운 날 어떤 보살이 찾아와서
지개야 스님 행복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지개야 스님 불행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다.
지개야 스님 행복도 불행도 없으면 무엇이 있습니까?
밥이나 먹자 오늘도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별이 뜨네,
오늘 우리도 밥이나 먹읍시다.
질문 무슨 질문이든지 하세요. 답해 드리겠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석사모니불
첫댓글 성불하십시오
하하 재밌는 법문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