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1991년 이전에는 새로운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 태양의 해변이라는 뜻의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해마다 1000만 명의 서유럽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태양, 경제적 여행, 중세의 고풍스러운 정취, 아마도 나체주의의 장소 등을 찾아서 아드리아해로 왔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의 격렬한 분리독립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 ‘2 주간의 은신처’에서 ‘전쟁으로 찢겨진 악명 높은 곳’으로 대중적인 별명이 바뀌었다. 최근에 격은 비극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의 매력은 거의 그대로이다.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던 대부분의 장소는 손상되지 않았고 전쟁 후 보수 되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아픈 과거는 도처에 남아 있으며 누구나 한 가지 씩 사연을 가지게 되었다.
중세 크로아티아의 향기는 로비니(Rovinj)의 자갈길과 최근 재건된 두브로브니크(Dubrovnik)의 스타리 그라드 (Stari Grad)에 남아있다. 또한 크로아티아에는 스플리트(Split)의 웅장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궁전 등 로마시대 최고의 유적들이 일부 남아있다. 날씨와 해변은 예전이나 다름없이 훌륭하여 크로아티아는 여전히 머무르기에 좋은 곳이다.
통계 자료
국명 : 크로아티아공화국 면적 : 58,540평방km 인구 : 470만명 수도 : 자그레브 (Zagreb 인구 100만명) 인종 : 크로아티아인(78%), 세르비아인(5%미만), 슬라브-이슬람인, 헝가리인, 슬로베니아인 언어 :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종교 : 로만카톨릭, 동방정교회 정체 : 의회민주제 대통령 : 스티페 메시치(Stipe Mesic)
크로아티아는 아드리아 해의 북동 해안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슬로베니아 와 헝가리, 동으로는 유고슬라비아, 남쪽과 동쪽으로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국경을 이루고 있다. 공화국의 크기는 벨기에의 두 배이며, 슬라보니아 (Slavonia)의 판노니안(Pannonian)평원으로부터 구릉이 많은 중부 크로아티아를 지나 이스트리안 (Istrian)반도와 울퉁불퉁한 아드리아해까지 부메랑모양으로 빙 돌아 나오는 모양을 하고 있다. 두브로브니크 마을이 있는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남쪽 끝은 손가락마디 하나정도의 차이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와 분리되어있다.
크로아티아 해변은 언제나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역이다. 해안선의 길이는 1778km이며 섬까지 포함하면 5790km에 이른다. 대부분의 해변은 모래보다는 넓직한 돌이 많다. 앞바다의 섬들은 그리스의 섬들처럼 아름답다. 1185개의 섬들 가운데 66개의 섬에 사람이 산다.
크로아티아에는 7개의 아주 훌륭한 국립공원이 있다. 풀라 근처의 브리유니 (Brijuni)는 잘 보존된 지중해 털가시나무 오크 숲이 있는 가장 잘 가꾸어진 공원이다. 산악지대의 리스니야크(Risnjak) 국립공원은 스라소니의 보금자리인 반면, 파클레니차(Paklenica) 국립공원의 우거진 숲에는 곤충, 파충류, 멸종위기에 처한 그리폰 독수리를 포함한 조류 등이 서식한다. 플리트비치(Plitvice) 국립공원에서는 곰, 늑대, 사슴 등을 볼 수 있다.
기후는 지중해에서 아드리아해를 따라 내륙으로 가면서 다양하게 변한다. 태양이 내리쬐는 해안지역은 덥고 건조한 여름날씨와 온화하고 비가 내리는 겨울 날씨를 지녔다. 해안의 높은 산들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서 봄은 빨리 오고 여름은 늦게 오도록 해준다. 자그레브의 평균 최고기온은 7월에는 27도이지만 1월에는 2도까지 내려간다.
기원전 229년 크로아티아의 토착민이던 일리리안족은 로마제국에게 영토를 잃었고, 서기 285년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스플리트에 궁전을 겸한 요새를 지었는데 오늘날 이것은 동부 유럽 최고의 로마유적지가 되었다. 서로마제국은 5세기에 몰락하고 625년경 슬라브족이 오늘날의 폴란드에서 이주해왔다. 크로아티아 종족은 과거 로마제국의 주였던 달마시안 크로아티아와 북동쪽의 판노니안 크로아티아를 점령하고 지금의 크로아티아로 이주했다. 이 두 주는 925년 합쳐져 단일한 왕국이 되었고 12세기까지 번영을 누렸다.
1242년 타타르족의 침략으로 크로아티아는 황폐화 되었다. 16세기에는 터키인들이 발칸반도를 점령하고자 위협하기 때문에, 북부 크로아티아는 방위목적으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그에게 도움을 구했고 1918년까지 그 영향권에 있었다. 그 동안 달마티안해안은 15세기 초 베니스에 점령되었다가 17세기말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프랑스에 점령되어 일리리안 주(이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와 함께)의 일부가 된다.
크로아티아의 문화와 정치의 부활은 농노가 해방되고, 북부 크로아티아가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했던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 되는 1835년 시작된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세계 1차 대전의 패전국이 되자 크로아티아는 세르브, 크로아트& 슬로벤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이는 1929년 유고슬라비아가 된다.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은 베오그라드가 연합국의 수도가 된데 불끈하여 이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1934년 알렉산더왕을 암살한다.
1941년 독일은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괴뢰 파시스트정권(우스타샤)을 크로아티아에 세운다.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의 모든 세르비아인을 몰아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인종청소의 일환으로 약 35만명의 세르비아인, 유태인, 집시를 학살했다. 모든 크로아티아인들이 이에 동조하지는 않고 다수는 우스타샤를 전복하기위해 공산빨치산이 되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00만 명의 사람들이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헤체르고비나에서 죽었다.
전쟁이 끝나고 크로아티아는 공산주의자 티토 원수가 지배하는 유고연방내 하나의 공화국으로 남게 되었다. 크로아티아가 남쪽 공화국들을 경제적으로 크게 앞지르자 더 많은 자치를 요구하였고, 이는1970년대에 한 차례의 주민대표 숙청을 몰고 왔다. 티토가 1980년에 죽자 공화국이 해마다 교대로 대통령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제도가 시작되고 크로아티아의 경제는 마비상태가 된다.
1980년 후반 세르비아 코소보주의 알바니아 소수족에 대한 심한 압제는 세르비아가 연방내 나머지 공화국들을 지배하고자 한다는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동부 유럽의 공산국가들이 몰락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자치를 요구하는 소요를 일으켰고 공산주의는 끝났다. 1990년 프란죠 투즈만(Franjo Tudjman)이 이끄는 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선거에서 승리한다. 크로아티아 내의 세르비아인을 국가의 구성원이라기보다는 소수민족으로 규정하는 새 헌법이 제정되었다. 새 헌법에 의해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게 된 많은 세르비아인들이 국가공무원자리를 잃었다.
1991년 6월 크로아티아는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세르비아인들의 크로아티아 내의 영토 크라지나(Krajina)는 크로아티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격렬한 전투가 전국에서 일어나며 세르비아 공산군이 우위를 점하던 유고슬라비아 인민군은 세르비아를 돕기 위해 개입한다. 상황이 복잡해졌을 때 크로아티아는 3개월간 독립을 유보하기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고 크로아티아 영토의 4분의 1은 세르비아 민병대와 연방군의 수중에 떨어진다. 1991년 연방군은 두브로브니크로으로 진격하고 자그레브의 대통령궁을 폭격한다. 이에 유럽연합 (EC)은 세르비아를 제재하기에 이른다. 11월 부코바르(Vukovar)는 3개월의 봉쇄 끝에 세르비아에게 점령된다. 6달 동안 약 1만명이 죽고 수십만이 피난을 가고 수 만 채의 가옥이 파괴된다.
몇 차례의 휴전이 실패한 뒤에, 1992년 유엔은 세르비아가 점령한 크로아티아지역에 보호군을 배치한다. 연방군은 크로아티아에서 철수하고, 1992년 크로아티아는 소수그룹과 인권을 보호하도록 헌법을 고친 다음 유엔에 가입한다. 크라지나에서 세르비아 준 군사그룹이 우세하게 유지되었으나, 1993년 1월 크로아티아는 이 지역에 공격을 감행한다. 이에 크라지나는 공화국임을 선포하고 크로아티아인의 수를 거의 98% 추방하는 것으로 응수한다. 1994년 크라지나는 휴전에 서명하지만 다시 1995년 5월 폭력이 재발한다. 크라지나는 베오그라드의 지지를 잃고, 크로아티아 병력이 이 지역을 휩쓸어 15만 명의 세르비아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수 세기를 살아왔던 마을을 떠났다.
1995년 12월 데이튼 협정(Dayton agreement)은 마침내 크로아티아에 안정을 가져왔다. 하지만 많은 피난민들이 중간지대에 살며 그들의 운명이 결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에 정부는 고용되지 않은 제대 군인들을 이용하여 크로아티아인의 가옥문제, 심하게 손상된 사회하부구조를 해결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는 전쟁 중 입은 손상을 상당히 회복했고, 특히 두브로브니크는 성공적으로 보수되어 여행객들이 다시 찾고 있다.
국내총생산: US$ 227억
일인당 국내총생산: US$ 2640
연성장률: 1.5%
인플레이션: 4%
주요산업: 철강, 시멘트, 화학제품, 화학비료, 섬유
주요무역상대국: 독일,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조각가 이반 메스트로비치(Ivan Mestrovic)는 크로아티아 예술계의 자존심이자 기쁨이다. 그의 작품은 전국의 마을 광장에서 볼 수 있으며, 자그레브의 크로아티아 역사박물관 등 위풍당당한 몇몇 건물들도 설계했다. 크로아티아의 문인으로는 16세기의 극작가 마린 드르지치(Marin Drzic)와 20세기의 소설가이며, 극작가, 시인인 미로슬라브 크르레자(Miroslav Krleza)가 있는데 후자의 여러 권 분량의 작품 The Banners는 세기말 크로아티아인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크로아티아 민속음악은 여러 양식이 뒤섞여 있다. 집시풍의 바이올린과 탐부라, 만돌린 등의 반주에 맞추어 춤추는 생동감 있는 슬라브 원무인 콜로(kolo) 가 있다. 달마티아의 우아한 기타와 아코디언 밴드는 확실히 이탈리아 취향이다.
크로아티아인들은 압도적으로 로마카톨릭신자가 많은 반면에 거의 모든 세르비아인들은 동방정교를 믿는다. 여러 가지 교리상의 차이는 물론, 정교는 성상을 숭배하며 신부의 결혼을 허용하며 교황에 대해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시대에 철저히 핍박 받았지만, 매주 일요일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다시 찾듯이 로마카톨릭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회교는 약 1.2%, 개신교가 0.4% , 아주 소수의 유태인들이 자그레브에 있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약간의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 중에 진미로는 고기와 치즈가 들어 있는 여러 층의 파이 부레크, 자그레브 지역의 치즈 도넛, 피로스크(pirosk) 등이 있다. 아드리아해 지역에는 해산요리가 아주 뛰어나다. 스참피(scampi), 조개인 프르스타치(prstaci), 달마티안 브로데트(여러가지 생선과 쌀을 끓인 스튜) 등이 있다. 콩과 신선한 옥수수 수프인 마니스트라 오드 보비차(manistra od bobica), 혹은 시어진 우유로 만든 연하고 흰 치즈 스트룩클레(struckle) 등은 내륙지방의 특별 음식이다.
3월 21일부터 4월 4일까지 자그레브는 Spring Time Jazz Fever 행사가 열려 잘 알려진 멋진 곡조와 즉흥연주로 시 전체가 흥에 들떠있다. 자그레브에서 10월 중순 열리는 International Days of Jazz를 가보라. 자그레브의 Summer Festival과 같은 시기에 열리는 크로아티아 작가들의 고전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7월의 스플리트 Summer Festival에서 점박이 달마시안 형식의 팝을 들어보는 것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7월과 8월에 열리는 두브로브니크 여름축제는 나라의 대표적 극작가와 고전 음악가들을 볼 수 있다. 7월과 8월 오미스(Omis)에서는 노래축제를 위해 탐부라를 창 밖으로 던진다.
자그레브는 7월 국제 애니메이션축제(International Festival of Animation), 국제민속제(International Folklore Festival), 6월에 유럽연극축제(EUROKAZ)를 주최한다. 오파차(Opatja)에서는 7월 이스트리아의 전통음악 축제가 열린다. 반면에 슬라브 문화는 9월의 포제가(Pozega)의 Golden Strings Festival에서 축하행사를 벌린다. 시베니크(Sibenik)에서는 국제 어린이 축제(International Child's Festival)가 6월 마지막에 열린다.
비자: 미국 비자를 가진 사람을 제외한 모든 방문객은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는 크로아티아 영사관이나 국경에서 발급 받을 수 있지만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미리 출발 전에 받아 두는 것이 좋다. 비자는 3개월간 유효하며 연장이 가능하다.
건강에 주의할 점: 없음(크로아티아의 의료체계는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시간대: 그린위치 표준시 보다 1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헤르츠
도량법: 미터법
통화: 크로아티아 쿠나(kuna)
환율: US$1 = HRK6.5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4-8
중급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8-20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20 이상
저렴한 숙박: US$12-20
중급호텔: US$20-50
고급호텔: US$150 이상
정부는 의도적으로 외화를 싸게 얻기 위하여 쿠나를 평가절상하였다. 호텔가격은 독일 마르크화로 표시되어있으므로 상당히 안정적이며, 매일 공식 환율에 의하여 계산된 크로아티아 쿠나로 지불할 수도 있다. 경제적인 숙박시설은 공급이 모자라지만 교통, 음식, 공연, 극장표 등은 가격이 적당하다. 만약 호스텔, 민박을 한다면 하루 US$35로 크로아티아를 여행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 캠핑을 한다면 더 적은 비용도 가능하다. 편안하게 여행한다면 두 배의 비용을 생각해야 하고 약간의 호화로움을 즐기려면 3배의 비용이 들것이다.
환전할 수 있는 곳은 많고, 환율은 거의 같다. 환전소는 수수료를 부과하지만 은행은 부과하지 않는다. 은행에서만 쿠나를 다시 경화로 바꿀 수 있다. 전국의 은행에서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나, 모든 은행은 비자카드를 받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았으면 서비스비용이 포함되지 않은 경우 잔돈을 받지 않고 팁으로 준다. 술집이나 택시 이용시에도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방법으로 팁을 준다. 관광안내원들도 팁을 기대한다.
여행 시기
5월에서 9월이 크로아티아를 방문하기에 기후가 좋은 계절이며, 7월과 8월에 아드리아해변은 붐빈다. 9월이 되면 사람들도 적어지고 비수기 요금이 적용되고, 무화과와 포도 등이 많이 수확되므로 아마도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일 것이다. 4월과 10월은 캠핑하기에 너무 춥지만 해안을 따라서는 날씨가 좋고, 민박할 곳이 많으며 값도 싸다. 6월 중순에서 9월 하순까지 바다에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주의사항
1998년 1월 15일, 과거 세르비아에 의해 지배되던 크로아티아와 유고슬라비아 국경지역의 동부 슬라보니아가 유엔에 의해 크로아티아 정부로 이양되었다. 2년간의 유엔임시위원회가 이 지역을 통제하여 비무장지역으로 안정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몇 차례의 폭력사태와 소요가 있었으며, 수백개의 지뢰가 이 지역에 흩어져 있다.
자그레브(Zagreb)
자그레브는 1557년이래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이였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도시 주변에 많은 중세도시가 있다. 자그레브는 1995년 로켓포에 의해 공격을 받았지만 피해가 그다지 심하지 않아 복구가 빨리 되었다. 부유하게 보이는 소비자들이 쇼핑을 즐기고 차를 마시고 그들의 미소와 이탈리아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박물관들은 문이 닫혀있고 일부는 ‘재해석’이라는 이유로 닫혀있다. 기차역 주변에 아주 우아한 비싼 호텔이 있으나, 경제적인 숙박시설은 찾기가 어렵다.
성 스테판(St Stephen) 성당의 네오고딕 양식 쌍둥이 첨탑은 1899년에 만들어졌으며, 과거에 이 자리에 있었던 중세 성당의 잔해 일부를 아직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13세기의 프레스코화, 르네상스시대의 교회의자, 대리석 제단, 바로크풍의 설교단 등이다. 시중심가에서 북서쪽에 있는 시내를 360도 돌아가며 전망할 수 있는 로트르차크(Lotrscak) 탑을 올라가든지, 뛰어난 예술품이 전시되는 무제이스키 프로스토르(Muzejski prostor) 을 방문해보라. 또 이 지역에는 화려하게 채색된 타일의 지붕과 이반 메스트로비치의 조각들이 있는 성 마르크(St Mark)성당, 예전의 수도원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크로아티아 역사박물관, 시립박물관 등이 있다.
중심가 아래쪽에 있는 박물관 모두는 신발이 닳을 정도로 다니면서 볼만한 흥미거리가 많다. 전시를 위한 가설건물에는 현대미술전이 일시적으로 열리고 있으며 스트로스마이어(Strossmayer) 화랑에서는 옛날 거장의 회화작품과 크로아티아 고대의 비문이 전시되고 있다. 고고학 박물관은 세계 다른 박물관처럼 선사시대, 중세 역사적 유물들, 이집트 미이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바깥 뒤쪽 뜰에는 로마조각이 있다.
너무 많은 박물관구경에 식상하기 전에 미라마(Mimara) 박물관이 있는 시 서쪽으로 향하라. 이 박물관은 유럽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관 중의 하나이다. 네오-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에 위치한 전시관에는 값을 메길 수 없는 작품들을 기증한 안테 토피치 미라마(Ante Topic Mimara)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회화들이 최고의 볼거리이며, 또한 유리공예품, 조각, 동양미술품 등이 있다. 자그레브의 또 다른 중요한 볼거리는 시의 북쪽에 있는 유럽에서 제일 아름다운 공동묘지의 하나인 미로고이(Mirogoj)이다. 몇몇 화려하고 큰 묘지가 있으며, 19세기 네오-르네상스 스타일의 긴 회랑에 둘러싸인 영국풍의 경치를 볼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
1300년 전 건설된 두브로브니크의 매력은, 대리석이 깔린 광장, 돌로 포장된 경사가 가파른 길, 수도원, 교회, 연못 등 모두가 비슷한 엷은 색조의 돌로 만들어진, 스타리 그라드의 구시가에 있다. 잘 보존된 시가지 성벽은 자동차운전자들을 만 쪽으로만 다니게 하고, 아드리아해의 남쪽 끝에 위치한 덕택에 마을은 쾌적한 기후와 푸른 숲이 있다. 1991년 두브로브니크는 심한 폭격을 받았지만 대부분 복구되었다, 최근의 관광객들에 의하면 수 많은 관광객들이 아직 다시 몰려들지 않아서 전쟁 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한다.
두브로브니크의 빼어난 보행자 산책로인 플라차(Placa)는 필레게이트(Pile Gate) 바깥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시내 끝에 있는 시계탑으로 연결되어있다. 필레게이트 바로 안에 있는 프란체스코 수도원에는1391년 이래 운영되어온 약국이 있다. 플라차의 다른 한 쪽에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바로크풍의 성 블라이세(St Blaise) 교회와 1441년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수도원장의 관저가 있다. 관저는 지금 가구가 비치된 방들, 바로크 회화, 역사 전시물 등이 있는 박물관이 되었다. 반대쪽에는 혼잡한 아침시장이 열리고 있다.
두브로브니크시의 성벽은 13세기에서 16세기 사이에 건설되었으며 아직도 원상 그대로 있다. 논의의 여지는 있지만 세계 최고의 성벽으로 여겨지는데 그 길이는 2km에 높이는 25m 이며 16개의 탑이 있다. 이 곳에서의 전망을 능가하는 곳은 없을 것이며, 성벽을 따라 걷는 것은 아마도 두브로브니크 방문 최고의 추억이 될 것이다.
만약 태양을 즐기고 싶다면, 두브로브니크 시의 해변에 누워 한동안 있을 수도 있지만, 페리를 타고 로크룸(Lokrum) 섬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이 섬은 나체주의자의 바위 해변, 식물원, 중세 베네딕트 수도원 등이 있는 국립공원이다. 두브로브니크에서 숙소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페리 터미널에서 호객하는 여자들에게 민박을 구하는 것이다. 호텔은 아주 비용이 많이 든다.
자그레브에서 항공편과 거의 모든 곳에서 버스가 있고, 흐바르(Hvar), 스플리트, 자다르, 리예카에서 페리로 두브로브니크로 갈 수 있다. 페리는 비싸지만 버스를 타는 것보다 훨씬 편안하다. 버스는 보스니아-헤체르고비나가 크로아티아의 남쪽을 단절하므로 네움(Neum)에 있는 국경검문소를 통과해야 한다.
스플리트
스플리트는 달마티아주의 중심부에 위치한다. 두브로브니크 북쪽 150km에 있으며 아드리아해의 크로아티아 도시 가운데 제일 큰 도시이다. 스플리트는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안(예수의 지지자들을 사자에게 던져서 유명한)이 그의 은둔궁전을 이 곳에 지은 기원 4세기에 지도에 나타났다. 가까이 있었던 로마식민지 살로나(Salona)가 7세기경 야만인 무리들에게 버려지자, 많은 주민들이 스플리트로 이주해와서 높은 궁전벽 뒤에 숨었다. 스플리트는 산업도시가 되었지만 구시가는 충만한 분위기와 트럭가득한 물건들로 유럽에서 가장 매력있는 도시의 하나로 되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은 세계에서 가장 위엄있는 로마유적 중 하나이다. 궁전이라기 보다 요새에 가까운 이 궁전 성벽의 한쪽은 약 215m, 다른 한쪽은 180m, 내부에는 황제의 거처, 성전, 능이 있었다. 아직도 원래 있었던 성의 현관, 요새의 열지은 기둥이 있는 광장, 주피터궁전, 디오클레티안묘의 흔적, 성당 등을 볼 수 있다. 궁전 바로 바깥에는 15세기 시청건물 등의 몇몇 중세건물이 있다. 마치 야외 박물관 같이 북적대는 일상생활이 있는 이 지역을 서성이면 몇 시간은 쉽게 보낼 수 있다.
스플리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곳은 17세기 요새에 있는 해양박물관이다. 이 곳에는 많은 지도, 사진, 조형물, 축소된 모형 등이 모여있다. 바깥의 정원에 일부 소장품이 전시되어있는 고고학 박물관은 방문할 가치가 있다. 메스트로비치미술관은 크로아티아 최고의 현대조각가 작품이 일목요연하게 잘 전시되어있다.
호텔에는 피난민이 아직도 머무르고 있으며, 전쟁 중 크게 침체되었던 민박사업은 이제 겨우 다시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스플리트에서 방을 구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스플리트는 자그레브에서 비행기나 기차로, 전국 어디에서나 버스로 갈 수 있다. 두브로브니크, 흐바르, 코르출라 등의 본토와 섬에 있는 여러 항구에서는 페리를 이용해 스플리트로 갈 수도 있다.
로비니
여유로운 분위기의 로비냐는 슬로베니아와의 국경지대에 있는 크로아티아 북동부의 심장모양의 반도, 이스트리아 해변에 있는 조약돌이 깔린 거리 풍경이 그림같은 도시이다. 도시를 둘러싼 숲이 우거진 언덕에 낮은 층의 호텔이 솟아나 있고, 로비냐 군도의 13개 섬이 완벽한 바다경치를 보여준다. 로비냐는 활발한 어항이며, 이탈리아의 역사적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Trieste)에 쉽게 항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로비냐에서 이탈리아 사회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이스트리아에서 제일 큰 바로크 건물은 시내에 우뚝 솟아 있는 57m 높이의 성 유페미아(St Euphemia) 성당이다. 성당은 로비니가 베네치아 함대의 방어기지였을 때 지어졌다. 유페미아의 유해는 그녀가 순교 후 500년 후인 기원 800년경 콘스탄티노플로부터 이곳으로 옮겨졌다. 매년 9월 16일 참배객들이 그녀의 묘지에 모인다.
로비니 수족관은 100년 이상 되었으며 독이 있는 전갈어, 화려한 아네모네 등과 이 지역 해양사를 잘 모아놓았다. 시 남쪽에 있는 푼타 초르렌테(Punta Corrente) 수목공원은 수영을 하거나 바다를 바라보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는 아름다운 장소이다. 대부분의 크로아티아 마을에서 버스로 로비냐로 갈 수 있으며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서 여름에는 페리로 갈 수 있다.
라브(Rab)
크로아티아 북서쪽 크바르너르(Kvarner) 군도의 중심부에 있는 라브섬은 아드리아해에서 가장 매혹적 섬의 하나이다. 섬의 북서쪽은 불모지이며 암석지형인 반면에 남서부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녹지대이다. 중세에 건설된 라브 도심지는 좁은 반도로 둘러싸여 잘 보호된 항구에 세워졌고, 부두지역에서 바다를 굽어보는 절벽 위로 돌로 지어진 건물이 있으며 이 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라브는 베니스와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아 오늘날 크로아티아어 만큼 독일어를 말하는 사람이 많다.
라브 교회의 4개의 탑은 도심의 수많은 붉은 지붕 중 사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성 안토니오(St Anthony) 수도원은 1175년에 세워졌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은 바다를 굽어보는 멋있는 테라스가 있다. 성 유스틴(St Justine) 교회는 지금 종교예술 박물관이다. 라브의 오래된 교회 유적지는 탑과 토대만 남아있다. 멋있는 시내경치를 보면서 성벽을 따라 걸어보던지, 북쪽 시립공원의 그늘진 산책길을 걸어보라. 라브섬은 페리나 버스로 갈 수 있으며, 페리는 본토의 야블라나츠(Jablanac)에서 출발한다.
코르출라(Korcula)
코르출라섬은 포도밭, 올리브나무가 많다. 남쪽 해안은 한적한 만과 작은 해변들이 있다. 코르출라 마을은 둥근 수비를 위한 탑과 붉은 지붕이 있는 집들이 있는 전형적인 중세 달마티안 도시이다.
코르출라의 성당 광장은 베네치아의 강한 영향을 받았으며, 틴토레토의 그림이 두 점이 있는 성 마크 성당이 있다. 성당 옆에는 14세기에 세워진 도시의 보물을 소장한 애비궁(Abbey Palace)이 있다. 반대쪽에는 지금은 그리스 도기류, 로마 도자기, 가구 등이 전시된 도시박물관으로 쓰이는 15세기 가브리엘라 궁전이 있다. 이 지역 관광안내소를 신뢰한다면 마르코 폴로는 코르출라에서 태어났으며, 그가 살았던 집을 잠시 볼 수도 있다.
코르출라에서 섬의 남동쪽에 있는 그림 같은 마을 룸바르다(Lumbarda)를 방문할 수 있다. 좋은 해변이 있고 도시는 담백한 백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밭에 둘러싸였다. 코르출라에서 나체주의자들의 해변이 있는 바디야(Badija)를 왕복 운항하는 보트가 있다. 바디야에서 하루 묵으려면 호텔로 개조된 15세기 수도원에서 지낼 수 있다.
코르출라는 크로아티아의 남쪽 아드리아해에서 약 20km 떨어져 있으며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리트의 가운데 있다. 이 두 항구에서 페리로 섬에 갈 수 있다.
솔린(Solin)
스플리트의 북동쪽의 포도밭 가운데 있는 고대도시 살로나(Salona- 지금은 솔린으로 알려져 있음)의 유적지는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흥미로운 고고학적 장소이다. 살로나는 율리우스 시저 때부터 소위 이민족들에게 함락되었던 서기 614년까지 로마 달마티안 주의 수도였다.
고대도시 바깥의 마나스트린(Manastrine)은 기독교가 금지되었을 때 순교자들이 묻히던 장소이다. 발굴된 묘지와 5세기 바실리카풍의 공회당을 볼 수 있다. 묘지 위에는 고고학 박물관이 있다. 남쪽에는 5세기의 3개 통로가 있는 성당, 공중목욕탕, 세례에 쓰이던 작은 물통 등, 초기 기독교 예배를 보던 유적지가 있다. 살로나의 서쪽 끝에는 터키 침입자들이 은신처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17세기경 베니스 인들이 파괴한 2세기에 건설된 거대한 원형경기장이 있다. 솔린은 스플리트에서 쉽게 하루 만에 여행할 수 있다.
믈레트(Mljet)섬
연필 같이 가느다란 믈레트 섬의 3분의 1은 국립공원이다. 고원에서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소나무로 덮인 언덕으로 둘러싸인 두 개의 염분호수이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당일 여행코스로 오지만 하루를 머무르려면 호젖한 장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두개 중 더 큰 호수의 가운데에는 작은 섬이 있는데 보트를 타고 여기로 가면 12세기 베네딕트 수도원이였던 지금의 호텔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믈레트섬은 수영과 일광욕에 아주 좋은 장소이며, 자전거를 빌려서 공원을 둘러볼 수도 있다. 믈레트섬은 크로아티아 남쪽 아드리아해안에서 약 15km떨어져 있으며 코르출라와 두브로브니크사이에 있다. 드브러브니크에서 페리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산들이 많은 크로아티아의 해안에서 떨어진 길고 울퉁불퉁한 지형의 섬들은 요트를 타기에 아주 좋다. 수심이 깊은 수로, 고풍스러운 정취가 있는 항구, 요트타기에 좋은 바람이 있다. 특히 엘라피티(Elafiti) 섬과 코르마티(Kornati) 섬 주위는 바다 카약타기에 아주 좋다. 크로아티아에서 다이빙은 아직 초보 수준이며, 막 다이빙과 관련된 상점들이 흐바르(Hvar)와 라브(Rab) 섬에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의 기구가 있다면 맑은 물에 있는 많은 수중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다. 바다에 익숙치 않은 사람에게는 리스니약과 파클레니차 국립공원 두 곳을 권한다. 하이킹에 아주 좋은 지역이 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자그레브로 가는 항공편이 있다. 크로아티아 국제공항은 자그레브 남동쪽 약 17km지점에 있다. 출국세는 US$8이다. 자그레브와 헝가리, 독일의 몇몇 도시와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벨기에의 안트워프를 버스가 운행한다. 기차는 자그레브와 이탈리아,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루마니아를 연결하며, 크로아티아와 그리스, 이탈리아를 운항하는 페리가 있다. 자동차를 가진 여행자는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두 개의 국경통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29개,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23개, 유고슬라비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의 7개 지점을 이용하여 국경을 통과할 수 있다.
크로아티아 항공사는 자그레브와 두브로브니크, 풀라, 스플리트과 스코피예를 운항한다. 전국의 버스연결망은 훌륭하고 광범위하며,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되어 있다. 기차는 버스보다 값이 싸고 편안하지만 훨씬 느리다.
일반적인 모든 종류의 자동차는 자그레브와 스플리트에서 빌릴 수 있다. 자동차는 도로 우측으로 주행한다. 이탈리아에서 알바니아로 가는 장엄한 아드리아 고속도로는 크로아티아의 급경사진 해안지대를 지나가는데 세계에서 가장 스릴있는 도로의 하나이다.
만일 목적지로 가는 페리가 있다면 한번 타보라. 아드리아해의 섬 사이의 항해는 버스가 값이 아무리 싸고 빨라도 버스를 타고 가는 것보다 분명히 낫다. 야드롤린야(Jadrolinja) 페리는 두브로브니크과 리예카(Rijeka) 사이를 정기 운항한다. 전체 여행을 위한 표를 구입하면 한번 여행에서 일주일 간은 언제든지 원하는 곳에 내렸다가 다시 탈 수 있다. 그 외에 풀라 (Pula), 말리(Mali), 로시냐(Losinj) 와 자다르(Zadar), 사이를 운항하는 페리가 있고 대부분의 섬들으로 다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