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유혹15 - 시드니 셀던
-------------------------------------------------
마음과 마음
리차드와 저스틴은 시고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그들이 보기에 시고니는 그 문제 때문에 몹시 착잡한 모습이었다.
그가 무엇 때문에 착잡해 하는가에 대해서 메인 부부는 이미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시고니."
리차드가 먼저 말을 꺼냈다.
"단신이 걱정하는 것은 존이 주민들을 강제로 몰아낼 경우를 생각하는 거죠?"
"맞습니다, 메인 씨.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거든요.
만일 거기서 강제로 내쫓기게 된다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일방적인 행동을 하겠어요? 적절한 보상이 선행될 테죠. 안 그래요?"
"그것이 영 개운하지가 않아요."
"무슨 뜻인가요, 시고니?"
저스틴이 궁금해 하면서 한마디 물었다.
"이런 말씀을 들여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메인 씨나 부인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어요."
리차드와 저스틴은 동시에 시고니를 쳐다보았다.
"원래 있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의 형편을 모르는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메인 씨."
"아녜요, 시고니."
"우리한테까지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리차드에 이어 저스틴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위로를 했다.
시고니가 그런 식으로 말했다고 해서 메인 부부는 조금도 언짢게 생각하지 않았다.
"계속해 봐요, 시고니. 전부터 그 사람하고 친했었나요?"
"친했다기보다는 그냥 좀 알고 지낸 사이였죠."
"같은 고장 출신 정도였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큰 뜻을 품고 돌아온 셈인데, 오자마자 시고니를 찾았다면 뭔가를 시고니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요."
"그래요, 여보."
저스틴이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제 생각에는 시고니에게 주민들을 몰아내는 악역을 시키려는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습니다."
시고니도 저스틴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것이 바로 시고니를 착잡하게 만드는 이유였던 것이다.
"전 그런 일은 못합니다. 충분한 보상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또 모르겠지만요."
"시고니, 그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군요."
"그가 만일 충분한 보상을 계획하고 있다면 시고니에게 도움을 청하진 않았을 거예요."
"맞습니다. 메인 씨.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니 좋은 뜻을 가진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그래요?"
"변호사 두 명이 비서처럼 따라다니고 보디가드가 여러 명씩이나 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좋은 방법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아닌 것이 분명해요."
시고니의 생각은 간단했다.
떳떳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리차드처럼 경호원 같은 것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시고니의 결론이었다.
그가 리차드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존처럼 돈을 가졌다고 거드름을 피우지도 않는다.
변호사는 사업상 필요에 의해 사무실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이지 비서처럼 대동하고 다니지도 않았다.
사업을 위한 경쟁에는 늘 정당했고 가지지 못한 사람을 멸시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출혈을 감수하면 도산한 기업을 인수해서 활성화시키는 경우가 있을 정도였다.
"그가 정식으로 부탁했나요?"
리차드 역시 시고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가 해결되어야 개발에 착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다른 문제?"
저스틴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편이었지만 가끔씩 그렇게 한마디씩 묻기도 했다.
"좀 복잡해요. 그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존, 그 사람이 모두 인수해야 되는데 그게..."
시고니는 존과 히든 벨 클라크와의 관계를 간단히 설명했다.
"히든 벨 클라크?"
리차드가 재빨리 물었다.
"네."
"그래요, 시고니.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어요."
"알고 계실 줄 알았습니다."
"그 사람 초창기에는 좋지 않은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제대로 사업을 경영하는 사람이오 자신의 그런 과거 때문인지 좋은 일도 많이 하는 모양이더군요."
"'좋은 일이요?"
"몰라도 되는 그런 일이 있어요."
리차드는 그 이야기를 시고니와 저스틴 앞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히든 벨 클라크는 최근 과거를 뉘우치려는 뜻에서 직업훈련학교를 설립했다.
주로 창녀나 불우한 여성들을 수용한 다음 적성에 맞는 직업훈련을 무료로 시키는 곳이었다.
히든 벨 클라크가 아직 독신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으며
리차드는 그 문제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다.
"맞아요. 히든이 빈민구역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어요."
"바로 그겁니다, 메인 씨."
"네?"
"존은 히든 씨가 소유하고 있는 몫까지 전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까지?"
"그 몫까지 합쳐서 자기가 전체를 소유해야 개발할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심각하게 발전될 수도 있겠군요."
리차드는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오늘날의 메인 그룹이 있기까지 그가 겪어온 과정과 경험은 어느 경영자 못지 않게 넓고 깊다.
시고니가 설명하는 이런 경쟁 과정도 여러 번 지켜 보아온 터였다.
정당한 경쟁에서는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그것과는 정반대일 경우 반드시 문제가 발생한다.
심지어 피까지 보는 분쟁이 발생하는 광경도 직접 목격한 경험도 있었다.
"그런데 메인 씨."
시고니는 문득 생각이 떠오른 것처럼 입을 열었다.
"오늘은 매우 조용하군요."
"뭐가 조용하다는 거지요?"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으니 말입니다."
"미리 특별한 문제가 아니면 연락하지 말라고 부탁해 놓았어요."
"그러셨군요."
그때 시고니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전화 벨이 울렸다.
"저런! 제가 받죠."
시고니가 혀를 차며 전화기로 가는 모습에 리차드와 저스티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여보세요, 네? 메인 씨 댁입니다. 네?"
리차드와 저스틴은 곧장 시고니를 바라보았다.
"지금 계십니다만, 누구시라구요? 나이젤 하그렌드 경감님이요... 아, 네. 그러시군요."
리차드와 저스틴이 재빨리 마주보았다.
"경감?"
리차드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은 채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런던으로 돌아간 다음 몇 번 전화가 왔지만 최근에는 뜸했던 하그렌드 경감의 전화였다.
"전화 받으세요, 메인 씨."
"고마워요, 시고니."
리차드는 시고니로부터 전화기를 넘겨 받았다.
시고니도 저스틴도 궁금한 표정으로 리차드를 바라보았다.
"오랫만이군요, 경감님."
"안녕하세요, 메인 씨."
"런던에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까?'
"런던요?"
"네."
"여긴 런던이 아니에요."
"네?'
"미국입니다. 방금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해서 곧장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그래요?"
리차드는 놀라더니 재빨리 전화기를 막고 저스틴에게 경감의 소식을 알려 주었다.
"하그렌드 경감이 이곳에 왔다는데."
"어머, 그래요?"
저스틴도 놀랐다.
하그렌드 경감이 로스앤젤레스에 와서는 곧바로 메인 부부에게 전화를 한 것은
확실히 심상치 않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처럼 보였다.
나이젤 하그렌드 경감의 미국행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무슨 일로 로스앤젤레스까지 오셨습니까?"
"아무래도 전 로스앤젤레스하고 인연이 있나 봅니다."
"그래요?'
"여기는 공항이라 긴 얘기는 만나서 하도록 하죠. 제가 댁으로 찾아가도 괜찮겠습니까?"
"우리집으로 오신다구요?"
리차드가 설명하지 않아도 저스틴은 그가 집으로 직접오겠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짐작했다.
시고니 역시 커피나 저녁식사를 손님 몫까지 준비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는 연락이 안되는 줄 알았습니다."
"왜요?"
"회사에서 아주 까다롭게 묻더군요.
어디에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신분을 확인한 다음에야 겨우 계신 곳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보안장치가 철저한 데 놀랐습니다."
"미안하게 됐군요. 불필요한 전화들이 많이 걸려와서요."
"이해합니다."
"그건 그렇고, 지금 곧장 오시겠습니까?"
"지장만 없으시다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부탁드릴 일도 있고 해서요."
"좋아요. 기다리죠."
"곧 가겠습니다. 거기가 어딘지는 제가 잘 아니까요."
리차드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지금 오신 답니까?"
시고니가 묻자 저스틴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시고니."
"뭘 좀 준비해야겠어요, 공항에서 여기까지 금방이니까요."
"도착한 다음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예감이 드는군."
"뭐가요?"
"부탁할 일이 있다던데 일상적인 문제 같지가 않아."
"혹시 또 무슨 사건 때문에 온 것이 아닐까요?"
"글쎄..."
"그 사람 매우 바쁜 형사군요, 런던에서 여기까지 출장을 또 오다니."
"형사가 아니고 경감이죠. 런던경시청에서는 베테랑으로 손꼽힌다고 들었어요."
"네에."
시고니는 그 문제를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그에게는 형사나 경감이나 똑같이 생각되었다.
어차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녀야 되는 사람이라면
다를 것이 뭐가 있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건 그렇고, 시고니. 아까 그 얘기 아직 안 끝났죠?"
"존 얘기요?"
"그래요. 그러니까, 아직 정식으로 부탁을 받은 건 아니군요?"
"네."
화제는 하그렌드에서 다시 존에게로 돌아갔다.
시고니의 표정은 화제가 돌아가자마자 곧 바뀌었다.
그만큼 부담스러운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부탁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요?"
리차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시고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뭐죠?"
"왜 히든이라는 사람 있지 않습니까?"
리차드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존은 그 사람에게도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지 않은 일을 꾸민 후에 계획을 진행시키려 하는 게 분명합니다."
"히든 정도면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그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존도 대단해요. 40층짜리 빌딩이 그의 소유인데다 그 시설도 굉장하더군요."
저스틴은 하그렌드 경감이 또 무슨 사건 때문에 미국에 왔을까를 생각하느라
시고니의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가 뉴 파더 호텔에서 침대에 앉혀진 채 묶여 있던 모습은 아직도 저스틴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메인 씨, 이럴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글쎄요... 갑작스러운 일이라 어떻게 얘기해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우리 변호사를 통해 넌지시 알아볼까요?"
"아닙니다. 메인 씨.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어요.
단지 메인 씨의 의견을 들었을면 해서요."
시고니는 공연한 문제로 리차드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변호사까지 동원시키는 문제는 더 더욱 원하지 않았다.
다만 리차드에게서 개인적인 조언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리차드 역시 난처했다.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시고니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좀처럼 자신의 내면적인 문제를 꺼내놓지 않는 성격을 가진 시고니였기 때문에 더욱 말을 하기가 어려웠다.
과묵한 성격에다가 성실한 성격 때문인지 시고니는 불필요한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메인 그룹이 있고 메인이 있기까지의 시고니는 건축물의 초석과 같은 존재였다.
"시고니, 내 생각에는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어때요?"
"알겠습니다.."
"언제 그 사람하고 만날 약속이 되어 있나요?"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알았어요. 나도 그 문제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겠어요."
"고맙습니다. 메인 씨."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메인의 집까지는 비교적 한적한 도로이기 때문에
차로 곧장 달리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하그렌드 경감은 필경 속도를 늦추지 않고 달려올 것이다.
시고니가 말한 존에 관한 문제를 생각하던 리차드는 무심코 시계를 보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하그렌드 경감이 도착할 시간이군."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집 앞에서는 자동차가 들어와 멎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