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 낙동강 제방 쌓기전의 낙동강 하구 모습
1933 구포다리(낙동교)와 낙동강 제방
낙동강하류지역인 구포 사상과 김해(강서)사이의 동서연안(沿岸)에 제방을 쌓기 시작한 것은 구포다리 건설과
때를 같이 한 것이다.
원래 낙동강 하류지역의 본류(本流)는 김해군 대동면과 대저면 출두리 사이의 서낙동강으로 흘러 가락면을
지나 녹산면쪽으로 빠져 나갔다.
일제시대 낙동강의 대치수 사업으로 위로는 대동수문(大東水門)을 설치하여 강의 흐름을 구포, 사상쪽으로
흐르도록 하고 아래로는 녹산수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의 조수(潮水)를 막아 김해평야의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수리사업을 전개하였다.
낙동강 하류지역은 강 상류로부터 운반되어 온 유사(流砂)가 퇴적되어 김해쪽은 충적토(充積土) 지대로서
삼각주가 형성되어 김해 평야 일대는 물론 구포, 사상지역에도 비만 오면 물바다가 되는 강변 저습지였다.
1930년대 낙동강제방공사 현장.
축제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을 향해 무엇인가 전달하는 정복차림의 감독관과
그 뒤에 공사용 자재 운반용으로 설치된 레일이 보인다.
잦은 물난리의 악순환을 벗어나기 위하여 낙동강제방을 쌓기 시작한 것은 1931년부터였다.
동․서 양안의 하상(河床)을 낮추고 하폭(河幅)을 넓히기 위하여 축제용(築堤用) 토량(土量)을
강변의 하천부지(河川敷地)에서 채토(採土)하여 임시 철로(鐵路)를 가설하여 바퀴가 달린 궤짝에 담아 운반
하였다고 한다.
낙동강 일천식 개수공사의 산증인인 김덕조씨(대저1동)는 "중장비도 없는 그 당시로서는 김해일원 지방
민들의 인력에 의존.축조용 흙은 강변의 짜투리 땅에서 수거해 철로위 트롤에 담아 운반했고, 석축용 돌은 인근
의 엄궁.금곡 등에서 무동력 바지선으로 실어 날랐다."며 옛 공사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들려 줬다.
김씨는 또"단순 노무자일 경우 하루노임이 19전, 선로 술자는 21전을 받았고 매 5일마다 노임을 계산, 그것도
하루에 1~3전씩 세금을 뗐다"고 덧붙였다.(강서구청홈에서)
구포쪽 낙동강둑 붕괴모습 1930년대
이러한 대규모의 제방이 완공되기 전인 1933년 8월에 있었던 두차례에 걸친 대홍수와 1934년 7월에도
대홍수가 몰아닥쳐 제대로 굳어지지 않은 제방이 터지면서 홍수는 삽시간 구포, 사상쪽과 김해(강서)삼각주
일대를 완전 물바다 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엄청난 큰 공사를 진행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게 되자 당국에서 공사 연기하려는 기미를 보이자,
이에 김해지역에서는 1932년 3월 공사연기에 항의하는 군민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930년9월 착공하여 1932년3월 구포다리가 준공되었을 때 제방축조 공사는 계속 진척되고 있었고 노역에
동원된 김해지역(강서지역)과 구포 사상지역 주민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대동수문 1973
녹산수문 1970년대
우여곡절 끝에 개폐식인 대동수문(1934. 4)과 녹산수문(1934. 9)공사가 완공되어 김해평야는 낙동강 본류와
격리되어 옥토로 변하는 기반을 마른 하였다.
많은 시련속에 낙동강제방이 근 5년만인 1935년에 완공을 보았고 그 이후 1936년 1940년 1957년에 걸쳐
일어났던 대 홍수에도 이 지역이 옛날의 큰 물난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구포 낙동강제방 7호 수문 '70년대
구포쪽의 낙동강 제방에는 설치 당시 강변쪽의 나루터로 드나들기 위한 7개의 수문(水門)이 있었다.
홍수가 지면 철제로 된 이 수문을 닫았는데 평소에는 열려 있었다.
낙동강은 압록강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긴 하천으로 유로 연장은 525㎞, 유역면적은 23,860㎢로
가야와 신라시대 이후 영남지방의 문화를 창출한 원천이었다. 낙동강은 태백산맥의 준령의 하나인 태백산
에서 발원하여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의 사이에 놓인 경상분지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다가 한반도 남동부
말단에서 대한해협으로 흘러 들어간다. 낙동강 하류의 거대한 삼각주 충적평야의 형성은 자연이 우리 인간
에게 베푼 최대의 선물이 아닐까 한다.
세월따라 낙동강제방은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문화공간으로 역활을 하고있다.
둑길 위는 벚꽃나무와 배나무 가로수들이 촘촘히 심고 둑길위에 걷기 편리하게 다듬어 놓아 아침저녁으로
많은 사람들이 걷거나 뛰며 운동을 즐기는가하면 강서쪽 제방에는 낙동강에 관련된 노래비와 시비들을 세워
져있는데 밋밋한 제방의 품격을 올려주는 보석들이 아닐 수 없다.
대저쪽 강둑에 있는 금수현 그네 노래비 2017
강서쪽 낙동강제방 둑길은 구포다리부터 명지IC까지 12km. 거의 직선에 가깝게 낙동강을 따라 곧게 뻗어있다.
강서 출신인 작곡가 금수현의 '그네' 노래비가 금속 조형물과 함께 구포다리 대저쪽 인근에, 다목적운동장 입구
에서 이은상의 '낙동강' 노래비를, 그리고 배재황의 '오막살이' 이은상의 '고향길',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
의 '나그네', 이주홍의 '엄마의 품' 등의 시비들이 차례로 고개를 내민다. 그밖에 독립유공자 조정환·이수강 선생
의 흉상도 둑길에서 만나 볼 수 있다.
1970년대 엄궁동, 하얀 동그라미 친 곳이 낙동강제방과 학장천제방이 만나는 곳이다.
사상쪽 낙동강 제방은 엄궁수문 조금 지나 학장천 제방과 만나면서 끝이 난다. 낙동강 제방과 학장천제방이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