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기사는 신동아 6월호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이 기사에 대한 저작권은 신동아에 있음을 밝혀둡니다.
<대한민국 영어도사 5인방>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어느 대학교수의 유학시절에 관한 은밀한 고백 한토막. “아무리 애를 써도 결국 영어가 문제였다. 고심끝에 언어치료사를 찾아갔다. 미국에서 언어치료사는 언어장애가 있는 환자가 찾는 곳이지 나 같은 외국인이 갈 곳이 아니다. 그래도 언어치료사에게 갔다오면 영어가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그때뿐, 조금 지나면 다시 말이 엉켰다.(…)지금도 영어에는 자신이 없다. 영어한번 잘해 봤으면….”한국인에게 영어는 영원한 스트레스인가. 그러면 영어 잘하기로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각계 각층에 포진한 ‘대한민국 영어도사 5인’이 밝히는 ‘나의 영어고지 정복 비결’.
대한민국 영어도사’를 손꼽을 때 다섯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이가 소설가 안정효씨(安正孝·58)다. 대학시절에 이미 영어로 장편소설을 7권이나 썼다는 사람, 지금까지 10여 권의 영문소설과 150여 권의 번역서를 낸 사람, 한국 작가로는 드물게 ‘하얀 전쟁(White Badge)’(1989) ‘은마는 오지 않는다(Silver Stallion)’(1990) 등 자신의 작품을 미국에서 출판한 사람…. 간단한 영문편지나 전자메일을 쓰느라 몇 시간 동안 끙끙거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안정효라는 이름은 까마득하게 높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먼저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된 내력부터 얘기해주시죠.
“대학에 들어가면서 영어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부분은 대학에 들어가면 놀잖아요? 나는 그때부터 공부를 했어요. 영어를 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내가 서강대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미술대학을 가려고 했는데, 그때 마침 서강대가 설립돼 갑자기 진로를 바꾼 겁니다. 제가 서강대 2회 졸업생이에요. 얼떨결에 들어간 게 서강대 영문과였어요.”
―대학에 가면서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입니까?
“기초부터 다시 배웠어요. 당시 서강대에는 미국 신부님들이 수업을 했는데 영어를 모르면 공부를 할 수가 없었거든. 1학년에 들어가니까 영어를 be 동사부터 가르치더라고. 물론 고등학교 시절에 영어 기초는 배웠지만 완전하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영어 기초를 배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바둑을 배울 때 처음엔 싸움바둑으로 배우잖아요? 처음 배울 때엔 바둑책을 아무리 열심히 봐도 잘 몰라요. 책을 보고 이해를 해도 금방 잊어버리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하나하나 순서대로 배운다고 해서 그게 다 소화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단어 생김새만 봐도 의미 안다”
―영어로 소설 쓸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습니까?
“영문학과에 들어갔는데, 문학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도서관에 있는 문학관련 책들을 모조리 읽었죠. 그땐 학교가 설립된 지 얼마 안됐을 때니까 도서관에 책이 별로 없었거든요. 다 읽고 나니까 더 이상 읽을 책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영어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까 내가 직접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처음엔 한글로 소설을 썼어요. 그러다가 영어로 쓰기 시작했지요. 그렇게 영문 장편소설 7권을 썼습니다. 그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도서관에 나가 살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의 영어공부 방법에는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 외에 특별한 게 없었다는 건가요?
“그렇죠. 나는 언어교육이라는 게 갓난아이가 말을 배워나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그것을 책읽기를 통해서 겪은 거지요. 말을 하면 순간적으로 휙 지나가잖아요? 그렇지만 책을 읽으면 중간중간에 멈출 수 있어요.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문법 중심의 파편적인 내용들이고…. 공부란 결국 자기가 혼자 하는 겁니다.”
―선생님의 영어에 대해서는 에피소드가 참 많은 듯합니다. 예를 들면 ‘걷다’라는 영어 표현만 봐도 끝없이 쏟아져 나오더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영한사전을 통째로 다 외웠습니까?
“내겐 영어를 배우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어요. 첫째는 영어 책을 읽을 때 사전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많이 읽을 수 있고, 단어가 눈에 익게 돼요. 나중엔 생전 처음 보는 단어를 만나도 무슨 뜻인지 감이 잡혀요. 예를 들어 ‘sluggish(게으른, 동작이 굼뜬, 부진한)’라는 단어가 생긴 모양만 봐도 그 뜻이 짐작돼요. 둘째는 일단 사전을 찾으면 펼쳐 놓은 양쪽 페이지를 다 읽었어요. 마치 책을 읽듯이 그 장에 나온 단어들을 죽 훑어봤지요.
이렇게 하다보면 없는 말을 만들어낼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말로 ‘그 사람 쫀닥스럽다’고 하면 ‘쫀닥스럽다’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지 않습니까? 그런 식으로 영어를 만들어 써도 미국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요.
‘걷다’에 대해서 얘기하니까 말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면서 흔히 간과하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말로는 비척비척 걷다, 슬슬 걷다,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걷는다, 이런 식으로 ‘걷다’라는 동사에 부사와 형용사로 수식을 하잖아요? 그런데 영어로는 이게 각각 한 단어예요. 예를 들어 ‘술 취해서 비틀거리면서 걷는다’면 ‘reel’이라는 한 단어로 충분해요. 이런 건 영어 소설을 쓰면서 알게 됐어요. 기껏 장황하게 묘사해놓고 보니까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영한사전·한영사전에는 잘못 나와 있는 게 참 많아요.”
―사전적 의미와 실제 쓰이는 용법이 다른 경우를 말하는 겁니까?
“그런 것도 있고, 많지는 않지만 아예 단어 뜻 자체가 틀린 것도 있어요. 예를 들어 영한사전에서 ‘모터사이클(motorcycle)’을 찾아보면 ‘오토바이’라고 나와 있어요. 오토바이는 우리말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에요. 일본에서 만든 말로, ‘오토모빌(automobile)’과 ‘바이시클(bicycle)’을 합성한 겁니다.
또, 예를 들어 ‘짝사랑’이라는 단어를 한영사전에서 찾아보면 대체로 ‘one-sided love’ ‘응답받지 못한(unanswer-ed, unreturned) 사랑’이라고 씌어 있는데, 그게 아니거든요. 영어로 그냥 ‘crush’라고 하면 되는데, 우리나라 어느 사전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않아요.”
―사실 미국인과 일상 대화를 나눌 때 어려운 단어는 거의 쓰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선생님의 경우에는 어려운 단어를 많이 사용할 것 같은데요?(웃음)
“나로선 전혀 어렵지 않은 단어들인데,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렵다고 해요. 대체로 영어를 처음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영작해보라고 하면 사전에서 제일 어려운 단어만 골라서 써요. 반면에 정말로 쉽고 많이 쓰는 단어, 예를 들어 ‘쫀쫀하다’ 같이 아이들도 다 아는 말은 오히려 몰라요.
―요즘에는 영어공부 할 때 대체로 회화나 발음에 치중하는 편인데, 영어책을 많이 읽을 경우 발음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지요?
“나는 발음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많은 단어와 의미를 아는 게 훨씬 중요하죠. 우리나라에서도 경상도와 전라도 사투리가 다르지만, 그 사람들에게 우리말 못한다고 하지는 않잖아요? 미국 남부지역 사투리는 저도 알아듣기가 힘들어요. 그렇다고 영어 못합니까? 발음이 조금 어색해도 국제회의에 나가서 얼마든지 멋진 연설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머릿속에 든 게 없다는 거지….
또, 영어라면 다들 회화로만 생각하고 가르치는데, 회화는 관광 가서 굶어죽지 않으려고 쓰는 것 아닙니까? 상대방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려면 그런 영어로는 도저히 안 되죠.”
―몇 년 전부터 영어 조기교육이다 뭐다 해서 난리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영어 조기교육에 반대하는 사람이에요. 그럴 여력이 있으면 우리말 교육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먼저 우리말, 우리 문화를 배워야 해요. 영어는 그 다음에 얼마든지 배울 수 있어요.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영어 때문에 우리말을 익히지 않아요. 내가 모 대학에서 번역을 가르치는데, 번역할 때 ‘쇼핑’이니 ‘에너지’니 이런 말은 쓰지 말라고 하면 학생들이 “그럼 우리말로는 뭔데요?”하고 묻습니다. 우리말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영어부터 가르치는 것에는 정말로 반대해요.”
―요즘은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십니까?
“소설은 아니고, ‘꼴값영어사전’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영어 단어들, 텔레비전이나 신문에 나오는 단어들, 이거 문제가 참 많아요. 그런 것들을 모아놓은 거지요.”
―몇 가지 예를 들어주시죠.
“패션이나 미용계통 사람들 말을 들어보세요. 라인(line)이 샤프(sharp)해서 어쩌고…. 이렇게 꼴값들을 떨어요.
또, 지하철에서 칼들고 다니면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놈을 가리킬 때 마니아라는 말을 써요. 아주 나쁜 뉘앙스의 말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에서는 “마니아라면서요?”라고 말하며 꼴값을 떨고 있지요…. 텔레비전에 나오는 영어의 80% 이상이 이런 식이에요.
제일 웃기는 말은 ‘파이팅(fighting)’입니다. 파이팅에는 말 그대로 치고받는다는 의미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는 응원할 때 열심히 ‘파이팅’을 외치지 않습니까? 서양사람들은 이럴 때 ‘go, go, go’라고 해요. 우리 개그맨들이(개그맨이라는 말도 대표적인 꼴값영어예요) 외국에 나가서까지 태연하게 이런 꼴값들을 떨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국제 배드민턴 경기단체에서 경기중인 선수가 점수를 딴 다음에 팔뚝을 치켜드는 몸짓을 못 하게 하는 규정을 만들었답니다. 이게 한국선수들 때문에 만든 규정이라고 해요. 이런 몸짓에다 ‘파이팅’까지 외치면 ‘너, 나랑 한판 붙을래’ 하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런 규정이 왜 생겼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시죠.
“방법이란 게 따로 없어요. 결국 매일 하고, 많이 하는 사람이 잘해요. 내 경우는 대학시절 이래로 영어를 늘 사용해왔습니다. 그러니까 영어실력이 늘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영어공부 하는 걸 보면, 학원에 나가서 회화 몇 달 배우다가 그만둬요. 그러다가 몇 년 지나서 다시 맨 처음 배웠던 데서 다시 시작하고…. 평생 그 자리만 맴도는 거예요.”
―앞으로 갈수록 영어에 대한 관심은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만….
“관심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넓어지고 있어요. 더 많은 사람이 영어에 관심을 가질 뿐 수준은 거기서 맴돈다는 얘기죠.
나는 정책적으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 만큼 앞으로 영어를 사용할 사람이 많아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어가 정말로 필요한 사람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냅니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는 초등학교부터 모든 사람에게 영어를 가르치겠다는 발상에 있습니다. 이건 언어의 노예가 되겠다는 것밖에 안 돼요.”
연세대 문정인 교수
일단 부딪쳐라, 그러면 열리니
통칭 ‘미국박사’는 영어를 잘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미국에서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넘게 공부하며 석사·박사과정을 마치고, 개중에는 미국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귀국한 이도 많으니 일반인들이 ‘영어는 기본’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하다.
과연 그럴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아니올시다’ 쪽에 더 가깝다. 물론 많은 미국박사들이 기초회화를 하거나 전문서적을 읽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말 하듯 자유자재로 미국학자들과 토론하고, 때로는 치열하게 논쟁까지 벌이며, 우리말로 쓰듯 ‘고뇌 없이’ 영어논문을 쓸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남부끄러워 내놓고 말은 못 하지만, 우리나라 학자들 중에는 국제회의에 참석해서 ‘그놈의 영어 때문에’ 꿀먹은 벙어리처럼 앉아만 있다가, 혹은 아주 ‘불만족스러운’ 코멘트 한 마디로 만족하고 돌아온 경험이 있는 이가 적지 않고, 개중에는 “영어 한번 속시원히 잘해보는 게 소원”이라고 토로하는 이도 많다.
연세대 문정인(文正仁·48·정치학) 교수는 그런 점에서 특이한 존재다. 우선, 그가 구사하는 영어는 엄청 빠르다. 종종 미국인보다 더 빠른, 이른바 ‘따발총 영어’ 스타일. 그는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 학술회의에서 손쉽게 좌중을 휘어잡고 회의를 자유자재로 이끌어간다. 그가 참석하거나 사회를 본 학술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그는 또 국내 학자로는 보기 드물게 활동적이다. 매년 10여차례씩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 학술세미나에 주제 발표자나 토론자로 나서다보니 발표하는 영어 논문도 상당수. 덕분에 한국 학자로는 국제 학술무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 중 한 사람이 됐다. 그런 점에서 문교수를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영어로 하면) ‘에너제틱(energetic)’ 그 자체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영어를 잘하십니까?
“사실 내 영어가 문법으로 보나 발음으로 보나 완벽한 영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학계에도 예를 들어 고려대 한승주(韓昇洲) 교수나 대우학술재단 김경원(金瓊元) 이사장처럼 품위있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분들이 계신데, 하필이면 왜 나를 인터뷰 대상으로 지목했는지…. 하긴, 그 분들이 한 마디 한 마디 심사숙고해서 말하는 스타일이라면, 나는 확실히 다른 분들보다 말하는 속도가 빠르긴 한 것 같네요”
―어떻게 그렇게 영어로 빠르게 말할 수 있지요?
“내 경우엔 영어를 천천히 말하면, 논리를 전개하기가 어려워요. 말이 빨라야 논리에 일관성이 유지됩니다. 왜 그런지는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천천히 하면 말이 잘 안 돼요. 굳이 설명하자면 생각하면서 말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 들어 있던 것이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고 할까….”
―흔히 영어를 잘하려면 생각 자체를 미국식으로 하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말을 머릿속에서 영어로 옮겨서 말하지 말라는 뜻이지요. 영어가 빠르다는 걸 그런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래요. 나도 영어로 말하고 쓸 때에는 영어식으로 생각합니다. 한국어를 영어로 옮기는 식이 아니에요. 영어는 영어식으로, 한국말은 한국식으로 해야지”
―그게 저절로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요는 영어로 글을 많이 쓰고, 많이 말하는 거지요. 또, 학자라면 자기 논문에 대해서 주위에서 논평을 많이 받는 것이 필요해요. 중요한 것은 언어 이전에 분석적 사고, 훈련이라고 봅니다. 언어란 게 결국은 자기 표현 수단입니다. 그러니까 영어가 아니라 영어로 말하는 내용이 중요한 거고, 따라서 내 전공분야에서 어떤 분석적 훈련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 중요해요.”
제주도에서 고교를 졸업한 그는 그 시절에 이미 영어를 잘할 수 있는 제1의 요소, 즉 두둑한 배포를 갖고 있었다. 평화봉사단원으로 와 있는 미국인들을 집에 데려와 ‘밥도 주고, 라면도 끓여주고, 안내도 자청해가면서’ 사귀었다. 한마디로 ‘외국인에 대해 겁이 없었고’ ‘새로운 것에 대해 호기심이 컸다’는 것. 그랬기에 서울에 올라와 대학에 다닐 때에는 이미 ‘영어를 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못 느낄’ 정도가 됐다.
“대학(연세대) 졸업 후 한동안 기업에 들어가 중동지역 등 이곳저곳 출장을 많이 다녔습니다. 3년 정도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솔직히 그 뒤로는 겁나는 게 없어지더라구요. 그런 점에서 내 영어는 실전영어라고 할 수 있어요. 영어를 잘하려면 외국인을 겁내거나 그들에게 위축되면 안 돼요. 영어는 그저 수단일 뿐이에요. 외국인과 자꾸 부딪치다 보면 경험도 쌓이고, 자연히 표현력도 늘어나게 돼요.”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사람 중에는 완벽주의자가 많은 것 같아요. 영어를 할 때 머릿속에서 완벽한 영어문장을 써본 다음에 말하는 습성이 있다는 겁니다. 정관사·부정관사 다 맞춰야 하고, 문법도 맞아야 하고… 이러니까 영어가 안 되는 겁니다. 중요한 건 자기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점에서 발음이나 문법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정 필요하면 보디 랭귀지(body language)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즉 자기 영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전제로 해놓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상 회화는 그렇다고 해도, 학술세미나 같은 곳에서 쓰는 영어는 조금 다를 듯한데요….
“그것도 결국 훈련과 경험이라고 봐요. 국제 세미나에서도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비판받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그걸 받아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해요. 비판을 받아야 논문의 질도 높아지고, 국제 세미나에서 좌중을 주도해나가는 기술도 쌓입니다.
국제 세미나에 나갈 때는 발표할 주제에 대한 철저한 사전준비와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또, 자기가 준비한 것을 제한된 시간에 집약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일단 나가면 절대 기죽지 말아야 해요.
나는 일본 학자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고 봅니다. 일본 학자들 중에는 몇 년 전부터 해외 학술무대에 진출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습니다. 일본 정치학자들의 80% 이상이 일본 내에서 석사·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밖에 나가 영어로 논문을 발표하고,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합니다. 일본인도 체면 중시하고 완벽주의자라는 점에선 우리와 마찬가집니다. 요즘 젊은 학자들은 좀 달라졌다지만, 우리는 아직도 국제 학술회의에 나가는 데 부담을 느끼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아요.”
―영어와 관련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시지요.
“글쎄, 그런 건 별로 없는데…. 미국에서 학위 받고 몇 년간 교수생활 할 때 한번은 내 강의를 듣는 학생 중 한 명이 ‘교수님 발음이 이상해서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내가 그랬어요. ‘You, get out of here(이 방에서 나가!)’ ‘중요한 건 발음이 아니라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아이디어와 지식이다. 네가 발음 때문에 수업을 못 듣겠다면 듣지 마라’고 했어요.”
―국내 학계에는 문교수의 왕성한 활동에 대해서 불가사의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는데요….(웃음)
“간단해요. 나는 골프 안 치고, 잠자는 시간 줄이고, 이렇다 할 취미생활도 하지 않아요. 만나는 사람들도 주로 내 연구와 관계되는 사람들이고…. 기적이란 건 없어요. 사회과학은 자기가 한 만큼, 시간을 투자한 만큼 결과가 나타납니다.
영어도 투자한 만큼 얻는다는 점에선 마찬가집니다. 물론 어학의 경우 선천적으로 머릿속에 프로그래밍돼 있는 언어감각이랄까, 그런 게 있다고 봅니다. 왜,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가 잘 안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물론 미국에서 40, 50년씩 살고 있는 한국계 학자들 중에도 의사소통에 완벽하고 글도 잘 쓰지만, 뭐랄까 좀 답답하게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 중동 사람들을 보면 영어로 말은 참 잘하는데, 글로 쓰는 것은 초등학교 수준밖에 안 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런 게 다 선천적인 부분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내 경우엔 그런 게 한 40%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나머지 60%는 노력이지요.
―영어 논문 한 편 쓰는 데 며칠 정도 걸립니까?
“빨리 쓰는 편입니다. 자료가 다 준비된 상태에서 20∼30쪽짜리 한 편 쓰는 데 이틀 정도면 초고가 나와요. 한국사람들은 말하는 것뿐 아니라 글을 쓰는 데에도 애를 참 많이 먹는 것 같은데, 그건 내용을 한국어로 생각해놓고서 그걸 영어로 옮기려는 습성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방법으론 잘 안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문교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논문을 쓰십니까?
“일단 논문 개요만 정해놓고, 필요한 데이터들을 넣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쓰기 시작하지요. 초고가 만들어지면 이걸 갖고 하루, 이틀에 걸쳐 고치는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나흘이면 웬만한 논문 한 편은 쓸 수 있어요. 다음으로 그 논문을 내 분야의 여러 사람들에게 보내서 검토를 부탁하고, 그걸 토대로 다시 손질을 하지요. 요즘은 컴퓨터를 쓰니까 논문 쓰기가 훨씬 수월해졌어요.”
―마지막으로, 한국인이 영어를 배우는 데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를 지적하신다면….
“어학은 ‘오픈 마인드(open mind)’가 없으면 배우기가 참 어려워요. 글쓰는 것은 혼자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말하는 데에는 열린 마음가짐이 필수입니다. 보편적 세계주의, 타인에 대한 상냥함, 자기 실수를 용납할 수 있는 포용력,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우리 사회 자체가 열린 사회가 돼야 합니다. 외국인과 일상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때 우리 사회의 영어 콤플렉스가 해소될 수 있어요. 어학은 결국 실전을 통해서 습득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무엇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코리아 헤럴드’이경희 주필
“좋은 영어 읽어야 좋은 영작 나온다”
문화라는 척도로 봐도 한국은 ‘우물안 개구리’다. 우리끼리는 반만년 문화전통 운운하며 폼을 잡지만, 정작 대다수 외국인들은 우리를 중국문화나 일본문화의 아류 정도로밖에 알아주지 않는 게 현실. 이게 다 ‘영어 못하는 나라’가 겪는 설움이다.
‘우리 전통문화의 세계화 수준’은, 대형 서점에 가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영문책자가 몇 권이나 진열돼 있는지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하기야, 유적지에 서 있는 영어 안내판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해 걸핏하면 지적을 받곤 하는 나라에서, 그동안 정색하고서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에 소개하겠다고 나선 이가 얼마나 될까?
그런 점에서 영자신문 ‘코리아 헤럴드’의 이경희(李慶姬·52) 주필은, 한 언론계 후배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 문화계의 보배 같은 존재’다. 그가 20여 년 동안 영자신문 기자로 일하며 우리 전통문화를 해외에 알리는 일에 매달려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여기서 그의 영어실력이 무기가 됐음은 물론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주필의 경우 해외유학은커녕 그 흔한 단기연수 한 번 다녀온 적이 없다는 사실.
이 주필은 우리나라 최초로 편집국장(1998.2~1999.2)이 된 여성으로도 유명하다. 더욱이 이 편집국장 경력은, 그가 정치부·경제부·사회부 등 언론사의 ‘핵심부서’ 출신이 아니라 문화부 기자로 오랫 동안 활동한 끝에 오른 자리라는 점에서 더욱 돋보인다. 앞의 언론계 후배는 “영자신문은 다른 신문보다 지면경쟁이 덜한 편이고, 따라서 기자가 좋은 기사를 발굴해서 마음껏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국문화를 소재로 영어기사 쓰는 일을 20여 년 하다보니 이주필이 쓴 기사는 좋은 자료가 됐고, 당사자는 한국 전통문화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부 출신 편집국장이라는 경력은 그런 노력의 작은 결과일지 모른다.
―평생 영어를 쓰는 직업에 종사하셨으니 영어만큼은 누구보다….
“아이구, 그렇지 않아요. 제가 영자신문사에 있으니까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실 저 자신은 영어를 특별히 잘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외국어란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완벽해질 수가 없어요. 그런 사람을 왜 찾아오셨는지….”
―언론계에 입문하신 게 언제입니까?
“69년 말이에요. 70년부터 ‘코리아 타임스’에서 5년 반쯤 일하다가 75년 여름에 ‘코리아 헤럴드’로 왔습니다. 그 사이 아스팍 사회문화센터라는 국제기구에서 출판홍보 담당으로 잠시 일하기도 했고, 몇 년간은 프리랜서로 뛰었어요.”
―그러니까, 사회생활을 하면서 손에서 영어를 놓아본 적이 한번도 없으신 거죠?
“그래요. 영어는 늘 썼어요.”
―영어 문장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잘못된 정보를 들었나본데…(웃음). 나는 항상 자신이 없어요. 지금도 제가 쓴 글은 반드시 미국인이 검토하게 한 다음에야 내보냅니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틀린 부분이 나올 가능성은 항상 있으니까요.”
―영어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입니까?
“우리 때에는 중학교부터 영어를 가르쳤는데, 그때부터 영어를 좋아했어요. 그렇다고 남다르거나 유별난 방식으로 영어공부를 한 것은 아니고, 노는 시간에 팝송 듣고 영화 보는 게 일이었지요. 팝송가사나 영화대본을 읽으면서 시간을 많이 보낸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다 영어공부였겠죠, 뭐. 그런 식으로 남보다는 영어를 조금 더 많이 접했다고 할까….”
―바람직한 영어공부 방법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흔히들 영어회화 배우겠다고 미국인과 얘기하는 것을 좋은 방법으로 생각하는데, 한두 마디 해봤자 거기서 그치기가 쉽다고 봐요. 내 생각에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사고체계이므로 그들의 생각이나 글을 제대로 배우려면 좋은 글을 끊임없이, 많이 읽는 게 최선이라고 봅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영어 배우는 게 끊임없는 고행인 것 같아요. 아이구, 이거 도움이 별로 안되는 것 같아서 어쩌나.”(웃음)
―이주필께서는 어떤 분야의 글을 많이 읽습니까?
“요즘은 바빠서 많이 못 읽어요. 언론계에 있으니까 신문·잡지는 항상 읽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제가 쓰는 글이 시사영어인데도, 신문 잡지만 읽어서는 글이 잘 써진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문학작품을 읽고 있을 때 글이 더 잘 써지고, 흐름도 좋아진다는 느낌을 갖게 돼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언어란 사고의 흐름이고, 따라서 결국은 다 통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 영어로 글을 처음 쓰는 사람이 우리말로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들을 영어로는 할 수도 있다고 오해하고 마구 쓰는 걸 봅니다. 그런 문장은 한국말로 옮겨보면 말이 안돼요. 영어로도 말이 안되는 것은 물론이죠. 우리말로는 절대로 하지 못할 말을 영어로 늘어놓고서, 이건 문화의 차이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는 겁니다. 제 생각엔 언어란 건 능숙해질수록 (글을 쓸 때 한국어와 영어의) 길이가 비슷해집니다.
그런데 제가 전공한 한국의 전통문화는 경우가 좀 다르지요.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의사전달이 명확하게 안 되는 경우가 있고, 그 문화에서 가장 가까운 표현을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자신문사에 들어가려면 영어를 얼마나 잘해야 합니까?
“요즘엔 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학교에 다닌 사람들도 많이 들어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마치 미국사람처럼 말하는데, 우리 같은 옛날 사람은 그들 앞에서 영어를 쓰기가 좀 뭐할 때가 있어요.(웃음)
그런데 영어로 말을 잘하는 사람이 모두 영어로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영어회화는 잘하는데 문법이 약한 경우도 있고, 논리력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이런 게 결국은 독서와 관련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인터뷰 말미에 이주필은 기자에게 자신의 영문저서 두 권을 선사했다. 제목은 ‘Korean Culture : Legacies and Lore(한국의 문화 : 유산과 전승)’와 ‘World Heritage in Korea(한국의 세계유산)’. 앞의 책을 뒤적거리다 우리 전통춤의 한 가지인 승무(僧舞)를 소개하는 장의 첫 문단에 눈길이 오래 멈췄다.
“The Dancer is seated on the stage, with her face and torso bent deep, almost touching the floor. She begins to move from the shoulders, slowly and mysteriously. In a dramatic and solemn gesture, she faces upward, turning her torso to the left and then to the right. Her movements are delicately restrained, but unusually powerful. (…)”
(무용가는 얼굴과 몸이 바닥에 닿을 듯 깊숙이 구부린 채 무대 위에 앉아 있다. 그녀가 양 어깨부터 천천히, 신비롭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극적이고 장중한 몸짓에 이르자 그녀는 얼굴을 위로 향하고, 몸을 왼쪽, 그리고 오른쪽으로 돌린다. 그녀의 움직임은 섬세하게 절제돼 있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강력하다.…”
승무가 표출하는 동(動)과 정(靜)의 미묘한 교차와 흐름을 우리말도 아닌 영어로 이만큼 정밀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그는 단어 하나하나를 얼마나 고르고 다듬었을까? 언론계 후배의 말처럼 그는 분명 ‘보배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오성식영어연구원장 오성식씨
“나의 보물1호는 중3때 쓴 영어참고서”
도서·오디오·비디오 등 해마다 수많은 영어교재가 시중에 쏟아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 중 하나라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공부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굳게 마음먹고 시작했다가는 며칠 못가서 주저앉고, 큰맘 먹고 사들인 영어 교재는 책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기가 십상이다.
영어 학습교재 시장의 ‘대형 스타’ 중 한 사람인 오성식씨(吳成植·39·오성식영어연구원장)는 이런 악순환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조금 쉬워 보이는 교재를 선택하라”고 권유한다.
“영어를 잘하려면 일단 영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학입시나 진급시험을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다면 당연히 재미가 없겠지요? 의무적으로 공부하니까 실력도 별로 늘지 않고…. 따라서 어떻게든 영어가 재미있어지도록 하는 게 급선무입니다.
만약 학원을 다니겠다면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클래스를 선택해서 공부하는 게 유리합니다. 테이프나 교재를 공부하려고 해도 좀 만만해 보이는 것을 고르는 게 좋아요. 어려운 교재를 선택했다가 도중에서 포기하면, 경제적 손해도 손해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됩니다. 자신감이 뚝 떨어진다는 것이죠. 차라리 조금 쉽다 싶은 것으로 끝까지 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게 중요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게 한두 달 열심히 공부해서 영어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깁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모두 그렇게 우리말을 배웠어요. 그런데 하루에 단 한 시간이라도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하루에 30분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이 결국은 영어를 잘하게 됩니다.”
“자기가 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할 것 같아요. 영어를 하다보면 그런 목표의식이 생기는 수도 있구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영어를 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더라는 겁求?것 외에 영어를 잘하기 위해 필요한 요인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요?
“자기가 왜 영어를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할 것 같아요. 영어를 하다보면 그런 목표의식이 생기는 수도 있구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인데,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영어를 하니까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주더라는 겁니다. 중·고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 앞에서 상받을 일이란 게 영어 경시대회에서 상 받아오는 것뿐이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그러니까 영어를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평균적으로 볼 때 한국인들이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한 가지 비결이 있기는 해요. 실제로 도입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지만…(웃음). 만약 대학입시에서 말로 하는 영어시험을 치르게 한다면, 우리나라 전체 영어수준이 부쩍 올라갈 겁니다. 아마 모두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영어를 잘하려고 할 걸요? 사실 대학입시에서 듣기시험이 도입되면서 전반적으로 듣기 능력이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소위 ‘본토발음’이란 게 후천적으로 훈련에 의해서 가능하다고 보세요?
“일정한 연령대가 지나면 좋은 발음을 갖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영어이론 가운데 ‘critical period(주요 시기) 이론’이라는 게 있는데, 사춘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는 신체 안의 LAD(Language Acquisition Device:언어습득장치)라는 게 활발하게 작동하는 데 반해 사춘기 이후로는 이 기능이 거의 소멸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 증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귀순한 김만철씨 가족 중 어른들은 세월이 한참 지나도 북한 사투리 그대로인데 비해 아이들을 금세 남쪽 어투로 바꿨습니다. 우리말을 그렇게 잘한다는 독일출신 이한우씨의 말도 아직 우리 귀엔 낯선 부분이 남아 있지요.”
―오성식씨 자신의 영어 실력을 자평한다면….
“글쎄요, 저는 제가 영어를 잘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를 들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의 언어능력과, 5세·10세·고등학교 때 각각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영어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 직원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6∼7년 살다왔는데, 그 시기가 언어의 발달기간인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이었어요. 이 친구 말이 자기는 영시를 읽으면 느낌이 오는데, 우리말로 된 시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해요. 제 경우에는 거꾸롭니다. 우리 시를 읽으면 행간에 숨은 감각과 정서를 읽을 수 있지만 영시에서는 아직 그런 느낌을 갖지 못합니다. 언어란 게 참 오묘합니다. 글이든 말이든, 결정적인 나이에 어느 문화권에 살았느냐에 따라서 꼭 그만큼 드러납니다. 그러니까 한국말과 영어를 동시에 완벽하게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 경우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영어입니다. 그래서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좋은 선생이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우리나라 학습자가 저와 같은 처지기 때문에 저는 그분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영어에 관한 한 할 말이 많은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중학생 때부터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붙잡고 영어를 배웠어요. (손으로 쓴 두꺼운 책을 가져와 보여주며) 이 책이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만든 책입니다. 물론 출판되지는 않았어요. 여기 보면 머리말·저자 약력도 있고, 온갖 폼은 다 잡았지요? 이게 방학 때 영문법을 정리해보자고 마음먹고 심심풀이로 한번 만들어본 겁니다. 그때 시중에 나와 있던 영어책을 모아다가 정리를 했어요. 베낀 거지요, 뭐. 그런데 지나서 생각해보니까 이게 오늘날 저를 만든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이런 모방을 통해서 책 쓰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시절에 제가 또 한 번 변하게 된 중요한 계기가 영어 웅변대회였어요, 고2 때. 제가 우리말 웅변을 좀 했거든요. 다른 아이들이 영어 웅변을 하는 걸 봤더니 그보다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나갔는데, 예선에서 탈락했죠. 영어 웅변은 우리말 웅변과 달라서 중요한 대목마다 책상을 두들겨가면서 하는 식이 아니었거든요.
그땐 웅변 원고를 봐줄 사람도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제 나름대로 원고를 써서 종로거리에 나가 지나가는 외국사람 붙잡고서 원고를 고쳐나갔어요. 그렇게 한 닷새 정도 열댓 명에게서 교정을 받으니까 거의 완벽한 원고가 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독립심을 기른 것 같아요. 원고도 제가 쓰고, 경복궁 같은 데 가서 외국인 발음도 녹취하고, 제스처도 혼자서 연습하고, 청량리에 있는 타자학원에서 나오는 누나를 붙잡고 박카스 사줘가며 원고를 타자로 쳐달라고 부탁하고….
결국 제가 대학교(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1학년 때 전국의 웅변대회를 평정했어요. 당시는 ‘코리아 헤럴드’와 중앙대학교가 개최하는 웅변대회 두 개가 권위있는 대회였는데, 이걸 포함해서 전국 영어 웅변대회를 휩쓸었어요. 참 집요했지요. 그걸 평정해서 뭘 하겠다고….”
―대학시절 때에도 활동이 대단했다고 들었는데….
“굉장히 바빴지요. 외대에는 ‘샬라(Shalla)’라는 전국 영어동아리와 외대 통역협회가 있는데, 이걸 다 제가 만들었어요. ‘샬라(Shalla)’는 1학년 때, 통역협회는 2학년 때 만든 겁니다. 영어교재도 많이 썼는데, 세보니까 대학 졸업 때까지 28권을 썼더라고요. 그땐 정말 겁나는 게 없었죠.
그러다가 대학 2학년 때, 80년 7월30일, 지금도 또렷하게 날짜를 기억해요. 대통령 긴급조치로 과외금지조치가 내려졌어요. 당시에 저는 꽤 이름난 과외선생이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이 조치로 갑자기 앞길이 막막해진 거예요. 이때 졸지에 실직한 과외교사들이 학습지 시장으로 처음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저도 영어 테이프 교재를 녹음하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군대는 카투사로 갔다온 걸로 알고 있는데….
“카투사를 가니까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었어요. 군 복무기간에 그동안 궁금했던 것들, 이런 말은 영어로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 하는 것들을 죽 정리했습니다. 영어로 쉽게 표현되지 않는 말들, 예를 들면 ‘나는 음치다’ ‘걔 조퇴했어요’ ‘속이 미식거려요’ 등등을 영어로 정리해봤어요. 그게 제대한 뒤 ‘오성식 생활영어 5400’이라는 책으로 나왔는데, 반응이 굉장히 좋았어요.”
―유학도 다녀왔지요?
“제대 후 책을 내고 사회의 주목을 받으니까 사실 좀 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86년 8월에 미시간 주립대학에 가서 1년만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수법’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어요. 그 뒤에 정말 평생 남을 만한 영어교재를 써보자고 해서 만든 게 ‘오성식 생활영어 SOS 7200’인데, 이게 또 엄청나게 히트했어요. 그후 방송에도 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이 길로 접어들게 된 거지요.”
―결국 오늘의 영어 스타가 저절로 된 것은 아니로군요. 마지막으로, 요즘도 영어공부를 하십니까?
“제 직업이 영어 선생이니까 당연히 해야지요.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제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항상 영어를 벗삼아서 살아왔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제 영어실력이 100이라면 그중 고등학교 때까지 쌓은 실력이 70은 되는 것 같다는 겁니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 좌충우돌식으로 영어를 배운 게 제가 가진 최대의 자산이 아닌가 생각해요. 영어를 배우려면 무모할 정도로 열정적인 것이 세련되고 냉철한 것보다는 낫다는 거지요.”
동래여고 1년 김수인
“조기교육이 별 거 있나요?”
우리 사회에 영어 조기교육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우리말도 온전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하지만, 아무튼 영어 조기교육은 이제 이 땅의 대다수 학부모들에게 일종의 ‘의무’처럼 됐다. 학원가에서 시작된 영어 조기교육 바람은 급기야 공교육 현장에도 들이닥쳐 이제는 영어가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정규 교과목으로 버젓이 자리잡았다.
부산 동래여고 1학년 김수인양(金修仁·16)을 영어 조기교육의 대표적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양은 지난 2월28일 치러진 토익(TOEIC) 시험에서 990점 만점을 받아 화제를 모았다. 성인들도 700∼800점 이상 받기가 쉽지 않다는 토익시험에서 어린 여고생이 만점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당사자와 얘기하기 전에 우선 김양 어머니와 통화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김양의 부친인 동아대 김성언교수(金性彦·48)가 한문학자라는 사실. 한문학자 아버지와 영어 도사인 딸? 집안 내에서 이뤄진 동서양의 절묘한 화합인가?
알고보니 김양의 모친인 김상희씨(金祥姬·부산대 강사)가 불어학을 전공한 학자였다. ‘그러면 그렇지. 어머니로부터 체계적인 어학 교육을 받았겠거니’ 짐작하고 모친과 대화를 시작했다.
―불어학을 하셨다니 딸교육에 남다른 노하우가 있을 듯합니다만….
“그렇지 않아요. 초등학교 5학년 올라가기 직전에 수인이에게 초등학생용 영어발음 교재를 구해준 것이 전부입니다. 그 때 이미 주변에선 아이들에게 영어공부를 시키고 있었어요. 2학년 때부터 시킨 집도 있고. 우리집은 늦은 편이었어요.”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까?
“영어 선생님이 매일 전화를 걸어 영어로 대화하고, 집에서는 발음 위주로 만들어진 테이프를 듣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수인이는 매일 30분에서 1시간 정도 꾸준히 테이프를 들었는데, 이때 귀가 트이지 않았나 싶어요. 6학년까지 2년간 참 열심히 했거든요. 그 사이에 제가 따로 가르친 것은 없고, 오히려 수인이가 제 영어 발음을 따라할까봐 많이 걱정했어요.(웃음)”(수인양 부모는 유학 경험이 없고,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다.)
―수인양이 어학에 재능이 있지요?
“그때는 재능이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만 영어교재 테이프를 열심히 듣는구나 하는 정도였지…. 6학년 때에는 미국인이 강사로 나오는 영어학원에 보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레벨이 빨리 올라가기는 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가족이 하와이에서 1년간 살다 왔다고 들었습니다만.
“남편이 하와이대학 한국학센터에서 연구하게 되면서 96년 2월부터 97년 2월까지 1년간 하와이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수인이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미국사람들 말을 다 알아듣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님께선 영어를 잘하세요?
“아이구, 잘하지 못해요(웃음). 애들 아빠는 하와이에 있을 때에도 한국학센터로 나갔기 때문에 우리말만 했어요. 그래서 발음을 알아듣기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에는 통역삼아 수인이를 데리고 다녔어요.”(웃음)
―하와이에서는 영어교육을 어떻게 시켰습니까?
“거기서도 특별히 뭘 시키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미국 아이들과 어울려 놀면서 수인이가 산 영어를 배운 것 같아요. 그런데 미국 학교에선 수업시간에 애들에게 책을 읽어오라는 과제를 내주더라고요. 책 한 권 읽어오면 점수를 주는 식이죠. 그래서 수인이가 점수를 따려고 책을 열심히 읽었는데, 그 과정에 자연스럽게 문법도 습득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얘는 책을 보면서 영한사전을 찾지 않았어요. 본인 말로는 그냥 ‘게스(guess, 추측)’한대요. 책 읽다가 정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저에게 물어봐요. 그때는 게으르다고 막 야단을 쳤는데,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영어를 모국어처럼 받아들이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처음엔 저도 믿기지 않았어요. 본시험을 치르기 전에 집에서 몇 차례 모의시험을 해봤는데, 실제 시험이 훨씬 어려웠거든요.”
―시험에서 모르는 단어는 없었나요?
“물론 있었지요. 그래도 문맥을 보면 단어 뜻을 대충 짐작할 수는 있었어요.”
―요즘 어떻게 영어공부를 합니까?
“요즘엔 인터넷을 많이 봅니다. 인권운동가나 대통령 연설문같이 좋은 영문을 매일 찾아서 읽고, 독해집도 사서 보고, 유익한 미국 책을 골라서 읽기도 하고요. 최근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설명한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나면 CNN 방송도 봅니다.”
―아이구, 다른 공부할 것도 많을 텐데 하루에 그 많은 일들을 해요?
“영어 공부시간이 매일매일 달라요. 보통 하루에 30분 정도, 바쁠 때에는 10분밖에 못할 때도 있고, 어떤 때에는 하루종일 영어만 하기도 하고…. 방송도 시간 정해놓고서 보는 건 아니에요.”
―CNN은 고1 학생이 보기엔 좀 어렵지 않던가요?
“하와이에 있을 때 보니까 미국 아이들도 CNN은 보기가 어렵대요. 시사용어가 많이 나오니까 그런가봐요. 그런데 한국에 와서는 논술준비 때문에 신문을 매일 읽으니까 CNN 방송이 훨씬 잘 들리는 것 같아요. 요즘엔 국제뉴스나 다큐멘터리 보는 걸 좋아해요.”
―수인양이 영어를 잘하게 된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일상생활에서 모든 일을 항상 영어로 생각하려고 한 게 가장 크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처음 영어를 배울 때부터 그렇게 했던 것 같아요. 저처럼 영어공부를 하다보면 문법이 좀 달리는 걸 느끼게 되는데, 길게 보면 제 방식이 낫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영어를 잘하니 학교 영어수업이 따분하겠네?
“사실 하와이에서 막 돌아왔을 때에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막상 와보니까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좋은 자료를 교재로 많이 쓰고, 수업을 딱딱하게 이끌지 않아서 재미있어요.”
―수인양은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어요?
“외교관이요. 그런데 엄마는 자꾸 법대에 가래요.”(웃음)
1년간 외국생활을 했다고 해서 ‘당연히’ 영어를 잘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10년 이상 미국서 산 동포들 중에도 영어를 넘지 못할 장벽으로 느끼는 사람은 부지기수다. 그런 점에서 영어를 잘하고 싶은 사람은 김수인양의 사례를 ‘돌연변이’로만 치부하지 말고 철저하게 ‘벤치마킹(benchmarking)’해볼 필요가 있겠다
첫댓글 유익한 정보 고맙습니다.
부럽네요. 전 고등학교떄부터 영어 접했다능 ㄷㄷ 하지만 하다보면 언젠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