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스민 의원 새누리당, 비례대표 |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우리 자녀들에게 엄마·아빠가 스스로 좋은 본보기가 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 EBS한국어교육방송 강사,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등을 병행하면서도 나의 행동이 이주민에 대한 평가기준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처음 본회의장에 들어선 순간, ‘헌정사상 최초의 귀화인 국회의원’이라는 상징성이 무거운 돌이 되어 어깨를 누르는 듯했다. 이렇게 시간의 소중함과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의정활동이 시작되었다.
이주민 관점에서 본 정책 논의 성과
첫 본회의가 있던 다음날, 제일 처음 행한 공식행사는 ‘결혼이주여성 활동가 초청 간담회’였다. 수도권 지역에 거주하는 공무원, 강사, NGO활동가 등 33분의 이주여성들과 함께 의정활동의 방향과 다문화 정책철학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정책건의를 듣는 자리였다. 처음으로 귀화인이 국회에 자신들의 대리인을 가지고,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자리였기에 본 의원도 참석하신 분들도 마음 한구석이 뿌듯했다. 나를 통해 ‘이제 우리도 진짜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느낀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가슴에 불같이 남아있다.
또, 7월 11일 개최된 다문화정책의 주요쟁점과 입법과제 세미나는 이주민이 바라본 정부 다문화정책 평가라는 부제를 가졌던 만큼 ‘이주민의 관점’이 정책의사결정 과정에 포함된 최초의 사례로 평가될 것이다. 각계 전문가와 이주민 등 200여 명의 열띤 토론과 논의는 정책방향을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이후 11월 말 현재까지 세미나와 전문가간담회는 총 아홉 번 개최했다. 부처별로 흩어져서 시행되고 있는 현행 다문화 정책을 전반적으로 훑어보고 문제점을 찾는데 주력하는 반년이었다.
소외 계층과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것
의정활동의 꽃은 입법이라고 말한다. 6개월간 선배 동료의원들의 도움을 받아 대표 발의한 법안은 9건이다. 공무원대상 다문화교육 의무화, 다문화 가정의 자녀세대 긍정적 특성 지원, 가정폭력예방교육 확대, 가정폭력가해자 감호위탁시설 근거조항 마련, 응급 상황 시 환자의 권한 보장, 청소년 수련시설 점검의무화, 가출청소년뿐 아니라 여러 사정으로 집이 없는 청소년도 청소년쉼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 등 다문화사회를 준비하고 우리의 삶이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지게 하는 미래통합형·생활밀착형 법안 개정에 중점을 두었다. 특히,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법률지원을 담은 개정안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말뚝테러사건을 참담한 마음으로 접하고, 어떻게 하면 할머님들을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에 일본과 한국에서 계속 소송을 하고 있지만 지원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대표발의를 하게 되었다. 현재, 국회여성가족위원회를 통과하고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다. 꼭 본회의를 통과하여 할머님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도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를 겸임하고 있기 때문에 부처의 여러 사업현황을 파악하고 문제점과 대안을 찾는 과정은 녹록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재무장관을 3차례나 역임한 영국의 유명 정치인 벤저민 디즈레일리가 “사람이 지혜가 부족해서 일에 실패하는 경우는 적다. 사람에게 늘 부족한 것은 성실이다”라고 말했듯이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며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가지 뿌듯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외통위 국감에서 북한이탈 무연고 청소년 대상 정착지원금관리통장을 좀 더 높은 금리가 가능한 정기예금으로 바꾸었고, 탈북주민들이 맨 바닥에서 자야했던 태국 임시수용소의 열악한 시설을 개선토록 요구하여, 즉시 매트리스가 제공되기도 했다. 또, 여가위에서는 국감과 예산심의를 통해 다문화가족지원센터 10개의 추가설립예산확보, 이주여성긴급지원센터 운영내실화, ODA사업을 통한 이주여성 일자리창출, 통·번역지원사(이중언어강사) 임금체계를 개선(현행 11개월분만 지급→12개월 정상지급으로 개선) 등 노력한 보람만큼 앞으로 해야 할 일들도 많이 찾았던 시간이었다.
나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누군가에겐 자랑이지만 그만큼 스스로에겐 부담스러운 일이다. 최초의 길이 최후가 되지 않고, 나의 발자취가 다문화사회의 초석이 되도록 신중하고 성실한 의정활동을 하고자 한다. 지금 글을 쓰는 의원회관 363호에 앉아있다 보면 가끔 임기가 끝난 2016년 5월 30일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최초가 최고가 되어 최후로 끝나지 않았다. 이자스민이 새로운 길을 열었고, 모두가 상생하는 발전적인 다문화사회의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지”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