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고승들은 무얼 잡수셨기에, 또 전래 사찰음식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스님들은 그렇게 오래 살고 피부도 뽀얄까. 이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자 스님들의 전유물이었던 사찰음식이 이젠 조용한 산사를 떠나 저잣거리로 내려왔다.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 속에 사찰음식이 각광을 받으며 사찰음식연구소는 물론 전문식당들도 늘어나고 있다. 또 월드컵을 맞아 외국인들이 절에 머무는 템플스테이가 호응을 얻으면서 사찰음식은 한국을 소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사찰음식의 뜻과 맛을 알아본다.
원래 사찰음식은 수행정진에 열중하는 스님들을 위해 만들어진 만큼 자극성이 없고 부드럽고 담백한 것이 특징. 스님들이 쓰는 발우란 그릇에 최소한의 양을 담아 완전히 비우고 늘 들고다니는 헝겊으로 설거지까지 한다. 음식찌꺼기, 물낭비도 없다. 정적인 음식이라 내면이 충실해지고 맛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데 필요한 수행과정.
조리의 3원칙은 청정(淸靜)·유연(柔軟)·여법(如法). 청정이란 방부제가 들어있지 않은 깨끗한 채소로 맛을 내는 것. 물론 젓갈, 파, 마늘 등 냄새가 나는 오신채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유연은 짜고 맵지 않을 것. 자극성이 많으면 수행정신에 열중하는 스님들의 위장에 부담이 가기 때문이다. 여법은 양념을 하더라도 단것, 짠것, 식초, 장류의 순으로 적당히 넣어 채소의 독특한 맛을 살리는 것이다. 한꺼번에 많은 양을 만들지 않고 끼니때마다 준비하며 반찬 가짓수는 적되 영양은 고루 포함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다. 이 조리법 3원칙만 충실히 따르면 성인병 걱정은 없다. 섬유질 많은 야채가 대부분이니 변비의 고통도 없고, 짜고 맵지 않으니 고혈압도 예방되며 칼로리가 낮아 살찔 염려도 없다.
최근에 선보이는 사찰음식들은 모양과 빛깔이 화려해졌다. 백년초가루, 치자, 송화가루, 시금치즙 등으로 오색물을 들이기도 하고 꽃꽂이하듯 팽이버섯이나 연근알 등을 장식하기도 한다. 사찰음식연구가 선재스님은 “단청이 화려한 것도 참공양의 뜻을 나타내기 위함이듯 공양은 소박한 것보다 화려한 것이 더 신심을 담아낸다”고 설명한다.
또 최근에는 사찰음식 역시 국제화 바람을 타고 있다. 일본의 정진요리, 중국의 소식과 교류하고 있다. 일본은 젠스타일로 화려해지고 소림사에서 무술수련도 하던 중국의 사찰음식은 단순한 야채만이 아니라 콩고기, 밀고기, 다양한 두부를 개발해 빛깔과 모양새가 매우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이들을 수용한 사찰요리가 절음식 전문점이나 전시회에서 선보이고 있다.
▲사찰음식 전문점들
사찰음식을 전문으로 하거나 메뉴에 사찰요리를 곁들인 식당들이 전국에 늘고 있다.
스님이었다가 환속한 사찰음식연구가 김연식씨가 운영하는 ‘산촌’은 가장 오래되고 제일 유명한 곳.
들깨죽, 산채모듬나물, 애호박전, 졸임감자 등과 제철에 나오는 재료로 신선한 채소요리와 튀김요리도 선보인다. 일반인들을 위해 마늘 등 오신채도 넣는다. 또 직접 담근 장류나 스님들의 밥그릇인 발우도 판매해 외국인 손님도 즐겨 찾는다.
‘사람을 살리는 먹을거리’의 저자이기도 한 강승남 원장이 운영하는 ‘향토생활관 산채’는 옛날식으로 자연발효시킨 된장, 고추장 등으로 맛을 낸다. 현미밥에 냉이, 원추리, 피마자 잎사귀 등 19가지 나물이 들어간 산채정식이 제일 인기.
아주머니들의 계모임 장소로 인기가 높은 ‘풀향기’는 서울 곳곳에 지점을 낼 만큼 호응을 얻고 있다.
산나물 비빔밥 등 단품요리에서 세트메뉴까지 메뉴가 다양하다. 들깨가루를 뿌린 샐러드가 신선하다. 서울 삼청동에는 유사한 메뉴의 ‘들향기’란 식당도 있다.
채식뷔페 ‘시골생활’은 양상추 등 20여가지의 야채, 호박죽, 통밀 빵, 현미떡을 비롯해 젓갈이 안든 김치 등 반찬도 풍성하다. 점심때만 문을 열고 저녁엔 단체예약손님만 받는다.
▲전통 절음식 맛보려면
스님들이 자신들의 밥그릇(발우)을 공개한다. 사찰음식을 연구하는 스님들이 직접 연구소를 운영하거나 각 대학에서 특강을 하기도 하고 호텔에 초청받아 행사도 갖는다.
불교방송에서 사찰요리를 강의해 유명한 선재스님은 외국의 호텔에서도 요리시범과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해 선재사찰연구소(02-928-2074, 923-4097)를 개설, 요리책도 펴내고 강의도 벌인다. 한국 전통사찰음식문화연구소(02-355-5961)의 적문스님은 가장 활발한 음식포교 활동을 펼친다. 서울 갈현동의 연구소에서 매달 정기강좌를 열고 문하생들을 배출했다. 특히 연구소에서 사찰요리를 배운 회원들의 60%가 개신교 신자이며 15%가 가톨릭 신도라는 것이 특이하다. 종교를 떠나 건강음식을 익히고 유망사업으로 떠오른 사찰음식 전문점 창업을 원하기 때문이다.
연구가들은 건강식으로서의 사찰음식의 효능과 유서깊은 전통사찰의 독특한 요리를 소개한다. 통도사는 참죽나물로 만든 김치, 해인사는 상추불뚝 김치와 전, 송이국과 송이밥 등이 전해진다. 송광사에서는 갓김치와 죽순장아찌가 유명하며 설악산 신흥사와 오대산 상원사에서는 참나물김치, 들깨즙, 취나물쌈, 김천 직지사는 우엉을 이용한 김치구이 찜, 법주사는 머위김치 무침이 대표적 음식. 부산 범어사에서는 씀바귀로 갖가지 요리를 하고 옥잠화 꽃잎튀김, 배추꽃밥 같은 음식도 전해진다. 사찰음식이란 특별한 음식이 아니라 제철에 절에서 가장 가까이 구할 수 있는 나무와 풀과 열매로 쌈, 국, 나물 등으로 다채롭게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절마다 심어진 벚나무, 소나무, 은행나무는 풍광이 아니라 식재료용이다.
서울의 절에서도 공양 인심을 즐길 수 있다. 우이동의 도선사나 삼성동의 봉원사는 절을 찾는 이들에게 무료 공양으로 부처님의 자비를 실천한다. 도선사의 경우 등산객이 많은 일요일에는 쌀 7가마의 밥을 짓는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