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한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맨 먼저 사도세자의 죽음과 연관된 구선복을 참형하고
문숙원, 문성국, 정후겸, 홍인한, 김상로 등에겐 사약을 내렸다.
정조가 복수의 칼날을 휘두를 때 어머니 홍대비가 병풍 위에서 애원했다.
" 폐하! 친정 아버지의 제사를 모실 한 사람만 남겨주세요."
홍대비의 애원으로 정조는 외삼촌 홍낙임만 살려주고, 홍홍한은 외할아버지였기 때문에
사약을 내리지 않았다. 홍술해의 아들 홍승범은 배다른 아우 은전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자객을 시켜 정조를 시해하기로 했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잡혀 죽거나 귀양을 갔다.
이들을 진압한 정조는 학문에 힘을 쏟아 규장각을 세우고 신분과 관계없이 학자들을 뽑아
학문연구에 정진하게 했다.
이 무렵 조선은 상공업이 제법 발달하였고 실학자들은 청나라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한편 정조는 효성이 지극했는데, 아버지 사도세자를 사모해 베개가 항상 눈물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해 왕릉보다 화려하게 꾸민 다음 매달 성묘를 갔다.
그 후 현륭원으로 이름을 개칭하고 경모궁을 세워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으로 사용했다.
어느 해였다. 정조가 현륭원에 성묘를 갔다가 소나무에 송충이가 번식해 솔잎들이 빨갛게 죽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정조는 신하들에게 송충이를 잡아오게 했다. 잡아온 송충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꾸짖었다.
" 네 놈들이 감히 내 아버님 산소의 솔잎을 갉아먹을 수 있느냐? 그럴 바에야 차라리 내 오장육부를 갉아먹어라!"
시원하게 꾸짖은 후 정조가 송충이를 삼켜버리자 괴이한 일이 벌어졌다. 솔개와 까마귀 뗴가 갑자기 날아와
현륭원 소나무에 있던 송충이들을 모조리 잡아먹은 것이다.
1800년 6월 정조가 49세로 죽자 나이가 어린 세자가 조선 23대 순조임금으로 즉위한다.
1804년부터 순조가 친정했으나 외척 안동 김씨들의 권력으로 인해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
첫댓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애절함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이야기네요. 잘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이야기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