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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태극기 옮김(2006.3.29) 출처 : ◐Cyber Flag와 무궁화 > 태극기 모음
출처 주소 : http://www.sansam.com.ne.kr/flags/flag01.htm
(참고 : 위 출처에서 몇 가지만 여기에 옮겨 놓았습니다.)
태극기 모음-2
(1) 애국가의 예절과 악보
애국가를 부를 때는 가사를 통해 조상의 빛난 얼을 되살리고, 국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몸과 마음을 다해 민족과 국가에 봉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짐해야 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정중하게 부릅니다.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또는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 애국가의 존엄성을 손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보행 중에 애국가(주악도 마찬가지임)가 들려오면 걸음을 멈추고, 애국가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향하여 바른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물건을 손에 들었을 때에는 그 자리에 놓고 바로 서서 듣습니다.
옥내외 집회 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참석자는 물론, 일반 관중도 다같이 힘차게 애국가를 제창토록 하며, 의식의 성격,여건 등으로 인하여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4절까지 제창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은 애국가가 들려 오면 뛰어다니거나 장난을 하지 않습니다.
(2) 애국가의 작곡자, 안익태
작사자 미상의 우리나라 국가인 애국가의 가사는 윤치호.안창호.민영환
등이 만들었다는 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공인되지 않았고, 곡은 1936년에
만들어져 1948년 8윌 15일 정부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국가로 불리게 되었
다.
정부에 의하여 정식으로 국가로 제정되거나 채택된 것이 아니라, 관습적으
로 국가로 불리다가 명실공히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노래가 되었다. 작곡자
가 <애국가>의 가사를 처음 접한 것은 1919년 3.1운동 때였고, 그 뒤 <애국
가>가 스코틀랜드 민요<Auld lang syne>, 즉 <이별의 노래>의 곡조에 붙여
불리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한국사람인 자기가 직접 작곡해야겠다고
결심하고 1936년에 곡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베를린올림픽에 참가
한 한국선수단을 찾아가 그들과 함께 불렀는데, 우리나라의 <애국가>가 불
린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다.
곡은 가장조(또는 사장조), 4분의 4박자로 되어 있으며, 속도는 느리고 장중
한 분위기의 악상을 가지고 있다. 모두 16마디로 되어 있으며, 4절의 가사로
된 유절형식과 a-b-c-d의 구조로 된 가요 두도막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간결
하면서도 장중한 것이 특징인 <애국가>는 사용 용도에 따라 세가지로 구분
된다. 피아노 반주로 된 것이 원곡이고, 아무런 반주 없이 부르는 것과 악기
만으로 연주되는 것이 있다. 반주가 있는경우에는 4마디의 전주가 있고, 악
기만으로 연주되는 경우에는 전주가 없다. 작곡자는 이 <애국가>를 주제로
하여 1936년 자신의 대표작인 교향곡 <한국환상곡>을 작곡하였다.
안익태 (安益泰)<1906.12.5∼1965.9.16>
작곡가·지휘자. 평양(平壤) 출생.
평양 숭실학교(崇實學校)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
나자 이에 가담,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가 중학
을 마치고 구니타치[國立]음악학교에 들어가 첼
로를 배웠다.
1932년 미국 필라델피아 커티스음악학교에 입학,
첼로와 작곡을 배우는 한편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제1첼로 주자로 활약하였다. 그 무렵 스토코프스
키와 교분을 맺었으며 필라델피아의 카네기리사
이틀홀 등에서 독주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다.
34년 헝가리로 건너가 도야니에게 작곡을 배우며 민족주의정신과 기법에
영향을 받았다. 이듬해 빈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게 주로 지휘법을 사
사하고 36년에는 몇년 전 미국에서부터 착상해 왔던 <애국가>를 작곡했다.
40년까지 슈트라우스의 보조지휘자로 있다가 그 이후부터는 독일에서 독자
적 지휘활동를 하고 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에스파냐 여인과 결혼,
에스파냐 국적을 얻고 마드리드 마욜카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영국·이탈리아·미국 등의 저명한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하기도 하였다. 57년
귀국하여 자작곡 <강천성악(降天聖樂)> <한국환상곡> 등을 지휘하고 61년
다시 귀국하여 국제 음악제를 개최토록 하였으며 63년까지 3회에 걸쳐 주
관하였다.
후기낭만파에 속하는 지휘자로서 베토벤, 브람스, 드보르자크, 리하르트 슈
트라우스 등의 작품을 즐겨 지휘했다. 65년 에스파냐에서 병사. 57년 문화
포상을 받았으며 65년 문화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애국
가> <한국 환상곡> <강천성악> <애! 강산의 의기논개> <애국선열추도곡>
등 다수가 있다.
(3) 애국가의 역사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한 노래. 국가(國歌)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인데 비하여, 애국가는 공식.비공식 여부를 떠나 나라를 사랑하는 내용을 담은 노래라는 점에서 이 둘은 구분된다. 애국가(愛國歌)는 말 그대로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를 뜻한다. 1 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愛國歌) 애국가라는 이름으로 노래말과 곡조가 붙여져 나타난 것은 조선 말 개화기 이후부터이다. 1896년 '독립신문' 창간을 계기로 여러 가지의 애국가 가사가 신문에 게재되기 시작했는데, 이 노래들을 어떤 곡조로 불렀는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서구식 군악대를 조직해 1902년 '대한제국 애국가'라는 이름의 국가를 만들어 나라의 주요 행사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오늘날 불리고 있는 애국가의 노래말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던 1907년을 전후하여 조국애와 충성심 그리고 자주 의식을 북돋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여러 선각자의 손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내용을 담게 되었는데, 이 노래말에 붙여진 곡조는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이었다.
해외에서 활동중이던 안익태(安益泰)는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1935년에 오늘날 우리가 부르고 있는 애국가를 작곡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곡을 애국가로 채택해 사용했으나 이는 해외에서만 퍼져 나갔을 뿐, 국내에서는 광복 이후 정부 수립 무렵까지 여전히 스코틀랜드 민요에 맞춰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현재의 노래말과 함께 안익태가 작곡한 곡조의 애국가가 정부의 공식 행사에 사용되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리면서 전국적으로 애창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해외에서도 이 애국가가 널리 전파되어 실질적인 국가(國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 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 겨레와 운명을 같이해 온 애국가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선조들의 나라 사랑 정신을 새롭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애국가 제창 및 연주 애국가를 부를 때에는 경건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애국가의 곡조에 다른 가사를 붙여 부르거나 곡조를 변경하여 불러서는 안된다. 주요 행사 등에서 애국가를 제창하는 경우에는 애국심과 국민적 단결심을 고취하는 의미에서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4절까지 제창하여야 한다. 애국가는 모두 함께 부르는 경우에는 전주곡을 연주하지만, 약식 절차로 국민의례를 행할 때 국기에 대한 경례시 연주되는 애국가와 같이 애국가를 부르지 않고 연주만 하는 의전행사(외국에서 하는 경우 포함)나 시상식·공연 등에서는 전주곡을 연주해서는 안된다.
애국가가 연주될 때에는 일어서서 경청하는 것이 예의이다. 태극기의 유래 흰 바탕의 깃 위에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싸고 있다. 박영효가 처음 사용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박영효 이전에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도 쓰였으며, 이미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로서 “태극팔괘도”가 규장각에 있었다.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조선책략》에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된다. 고종이 임금을 뜻하는 붉은 바탕에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백성을 뜻하는 흰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게 하여 군민일체를 나타내려 하였으나 [1] 일본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이후, 1883년 3월 6일 (고종 20년) ‘조선국기’가 국기로 제정되었다. 1948년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져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2007년 1월 대한민국국기법이 제정되어 국기의 게양·관리법이 나왔고 태극기의 설명 태극기는 《주역》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네 괘가 지닌 뜻
이름 (卦名) 자연 (卦象) 계절 (季節) 방위 (方位) 사덕 (四德) 가정 (家庭) 오행 (五行) 천 (天, 하늘) 하 (夏, 여름) 추 (秋, 가을) 동 (冬, 겨울)
애국가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그 중 국가로 제정된 애국가는 나라를 상징하는 의식 음악으로서 구실을 하게 된다. 우리 나라의 애국가는 여러 종류가 있다. 즉,갑오경장 이후 각종 애국가가 성창되기 시작하여 1896년 무렵에 각 지방에서 불린 애국가만해도 10여 종류에 이른다.
1876년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한 이후 1882년에는 미국, 1884년에는 영국.독일.이탈리아, 1889년에는 러시아와 프랑스, 1892년 에는 오스트레일리아.덴마크, 1901년에는 벨기에 등과 조약을 맺게 되었다. 이와같이 세계 열강국과 문호를 개방하고 새로운 문물을 접하게 됨에 따라 개화에 눈을 뜨게 되었고, 애국애족의 사상과 더불어 내용이 각각 다른 애국가가 도처에서 나오게 되었다.
이 시대에 나온 애국가를 살펴 보면, 1896년 나필균 작 <애국가>, 제물포 전경택의 <애국가>, 한명원의 <애국가>, 유태성의 <애국가>, 달성 예수교인들의 <애국가>, 새문안교회의 <애국가>, 최병희의 <애국가>, 평양 김종섭의 <애국가>, 배재학당 문경호의 <애국가>, 이용우의 <애국가>, 배재학당의 <애국가> 등이 있다.
이 중에서 배재학당 학도들이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1]과 같다. 그러나 1898년 독립협회가 독립문에서 가진 개국 기원 506돌 경축식에서 무관학도들이 부르고, 초10일 태황제 탄신일에 곳곳에서 부른 애국가는 [악보2]에서 보는 바와 같이 또 다른 내용으로 되어있다.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런데 <<증보문헌비고>> 권 103 악고(樂考)에 1900년 시의 <대한애국가>가 소개되어 있다.
이 <대한애국가>는 에케르트 (Eckert, F.)가 작곡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에케르트는 광무 5년, 즉 1901년 2월 19일에 서울에 도착하여 그 해 3월 19일에 고종황제를 폐현(陛見)하였고, 1902년 4월 5일에 우리 정부와 용빙계약서(傭聘契約書)를 작성하였으므로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이 아님이 분명하다. (오른쪽 사진은 대한 제국 애국가가 실린 에케르트의 보고서 표지 : 미국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다시 말하면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Auld lane syne>의 곡조를 따서 부른 것이고, 1898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는 영국 국가인 <신이여 황제를 보호하소서 God save the king>의 가사내용과 곡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며, <<증보문헌비고>>의 <대한애국가>도 무관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와 같은 것이다. 에케르트는 독일인으로 그의 한국에 관한 조사보고서 가운데에 이 <대한제국 애국가>의 악보가 첨부되어 있다.
<대한제국 애국가>는 1902년에 에케르트가 작곡한 것이지만, 그 가사는 [악보2]의 <애국가> 가사와 같이 영국 국가 <God save the king>의 내용과 비슷하다. 또한, 1904년 5월 13일자 <<황성신문>>에 "학부(學部)에서 각 학교 애국가를 정리하기 위하여 각 학교에 신칙(申飭)하되 군악대(軍樂隊)에서 조음(調音)한 국가를 효방(效倣)하여 학도를 교수하라 하난대 그 국가는 여좌(如左)하니, 상제(上帝)난 우리/황제(皇帝)를 도으소서/성수무강(聖壽無疆)하샤/해옥주(海屋籌)를 산(山)갓치 사으소서/위권(威權)이 환영(환瀛)에 ㅅ덜치샤/오천만세에/복록(福綠)이 무궁케 하쇼셔/상제난 우리/황제를 도으소셔.' 라는 기사가 있다."
이와같이 1902년 에케르트 작곡한 <애국가>는 군악대에서 주로 연주되다가 1904년부터는 각급 학교에서 의문적으로 교수하도록 하였다. 그 뒤 에케르트가 작곡한 곡에 가사 내용을 달리한 <애국가>가 나왔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다. "상뎨여 우리나라를 도으쇼셔/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영원히 번영하야/해달이 무궁하도록/셩디동방의 원류가 곤곤히/상뎨여 우리 나라를 도으쇼셔." 이 노래는 국치(國恥)의 을사조약(1905)과 정미칠조약(1907) 이후에 1902년에 에케르트에 의해 작곡된 <애국가>의 가사만 바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이 무렵에도 4,5종의 <애국가>가 전파되었는데,그 중에서 현행 <애국가>의 가사와 같은 것은 배종섭 소장 <<창가책>>과 강릉 이기재 소장 <<창가책>> 사본에서 볼 수 있고,"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후렴구는 이미 1896년 11월 21일 독립문 정초식 때 배재학당 학도들이 부른 <애국가>에서부터 등장한다. (오른쪽 사진은 윤치호 작사 육필본 애국가 : 미국 뉴욕시립도서관 소장) 현행 <애국가>의 가사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윤치호가 지었다는 설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전까지는 스코틀랜드 민요인 <Auld lang syne>에 이 가사를 붙여 불렀으나, 정부수립 이후부터는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국가로 준용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애국가 가사는 다음과 같다.
1절 :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
후렴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절 :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3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
4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우리나라는 애국가에 달리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를 국가(國歌)로 사용하고 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2 절 : 남산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3 절 :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없이, 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단심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4 절 :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
............................록하느님이 보우
..................하사 우리나라 만세 무
...........궁화삼천리화려강산대한
.........사람대한으로 길이보전
....하세남산위에저소나무철
......갑을두른듯바람서리불
..........변함은 우리기상
.........일세 무궁화삼
........천리화려강산대
...한사람 대한으로길이
......보전하세 가을하늘공활
...........한데높고구름없이밝은
...............달은 우리가슴 일편
.................심일세 무궁화 삼천 ** ^
................리 화려강산 대한 사
................람대한으로 길*이보전
................하세이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
.............나즐거우나 나라*사랑하세
.............무궁화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대한으로* 길이
.............로 길이 보전 하*세
............*****
.............**
의미
건(乾)
춘(春, 봄)
동(東)
인(仁)
부(父)
금(金)
정의
곤(坤)
지(地, 땅)
서(西)
의(義)
모(母)
토(土)
풍요
리(離)
일(日, 해)
남(南)
예(禮)
중남[子]
화(火)
지혜
감(坎)
월(月, 달)
북(北)
지(智)
중녀[女]
수(水)
생명력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그는 동이족이라고 사마천의 《사기》에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
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게양하는 날
국경일과 그밖의 지정하는 날에 게양한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의 청사, 학교, 공항·호텔 등의
국제적인 교류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국기의 게양하고 내리는 시간
국기는 24 시간 게양할 수 있으며,
야간 게양시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국기를 낮에만 게양하는 경우, 다음 시간에 따른다.
07:00 18:00 07:00 17:00
기 간
게양 시각
강하 시각
3월 - 10월
11월 - 다음해 2월
태극기의 제작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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