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비빔밥도다 더 유명하다는 전주 교동 한벽집(한벽당 옆이라서 지은상호 같음) 오모가리메운탕을 먹으로 갔다가...
메뉴는 뚝배기에 담은 시래기 매운탕인데, 시래기 또는 우거지 작용인지 아침에 속시원한(?)경험을 하게됨 _ 강추!!!
--- 이하 퍼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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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들은 전주향교 은행나무가 보여준 화려한 가을풍경에 잔뜩 취해 잠시 놓았던 정신줄을 가다듬고 한벽당을 간다.
전주천을 따라 걷는 길가 끝에는 오모가리 집들이 오글오글 몰려 있다. 보도에 간이천막을 치고 평상을 쭉하니 펼쳐 놓았다.
오모가리집 간판에는 우리 집이 원조다, 우리 집은 몇 대 째하고 있다는 흔한 상술의 문구가 덕지덕지 씌어져 있다.
가만히 보니 서울에서 가끔 보는 그렇고 그런 찌개 집들은 아닌 듯 싶다. 왠지 전주의 토속음식일 것같은 생각이 강하게 든다.
한벽당을 보고 나면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가는 일정만 남아있다. 오모가리로 점심을 먹었면 좋겠다는 생각을 잔뜩하면서 그 앞을
지나친다. 그래도 궁금증은 남아 사람들이 평상에서 먹고 있는 음식을 훔쳐보니 민물매운탕이다.
민물매운탕을 크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전주만의 독특한 토속음식일 것같은 생각에 그 맛이 꽤나 궁금하다.
서울에서 가끔 오모가리집을 볼 때마다 오모가리가 무슨 뜻일까 궁금하던 차에 같이 여행을 하는 아우가 가르쳐준다.
오모가리는 뚝배기를 가리키는 전라도 사투리이다. 오모가리에 대한 뜻을 몰랐을 때는 독특한 단어 때문에 음식에 대한 신비스러움이 느껴 지는데 막상 그 뜻을 알고나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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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천의 상류이자 그 길의 끝자락에 한벽당은 가을을 머금고 있는 나무 가지에 살짝 가려져 서있다.
한벽당을 오르는 돌계단은 밑에서 바라보면 한벽당의 규모와 어울리지 않게 크다.
돌계단의 넓이가 지금 크기의 절반 정도만 되었다면 원근에 의해 위에 있는 한벽당이 더 높게 더 고고하게 보였을텐데 살짝 아쉽다.
선뜻 한벽당을 오르지 않고 전주천이 흐르는 밑으로 내려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 한벽당의 정면을 바라본다.
숭암산 절벽을 깍아 세운 한벽당은 검고 험하게 보이는 바위들을 지그시 내리 누르고 있는 자세로 자리를 잡았다.
바위를 누르고 서있는 한벽당을 턱 밑에서 바라다 보면 옆에서 보는 느낌과는 달리 위엄까지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을 뿌릴 것같은 어스름한 날씨 속에서 누각의 이마에 붙어있는 편액의 하얀 글씨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자세히 보면 한벽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옆에는 한벽당이 새끼라도 낳은 듯한 또다른 작은 누각인 요월대가 살짝 얼굴을 디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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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은 조선조 집현전 직제학을 지내다 낙향한 월당 최담이 태종 때에 지은 누각이다. 한벽당 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쳐 흰옥처럼 흩어지는 물이 시리도록 차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벽당 옆에 숨은 듯이 자리를 잡고 앉아 달을 맞이한다는 누각은 요월대이다. 밝은 낮에는 한벽루에서 그윽한 차 향기를 맡으며 발 밑에서 하얂게 부서지는 경치를 구경하고, 밤이 되면 자리를 옮겨 술상을 앞에 두고 달맞이를 한다면 이보다 더한 풍류놀음이 있을까 싶다. 누각 한쪽에서 끊어질 듯이 이어지는 애끓는 대금소리까지 합쳐진다면 이런 호사는 없지 싶다.
그런 호사를 느껴 보기라도 해보자는 심산으로 돌계단을 밟고 올라 한벽당에 발을 딛는다. 사람들의 온기를 받지 못한 마루바닥에서 서늘한 기운이 발바닥을 통해 온 몸으로 짜릿하게 퍼진다. 길가에서 한벽당을 오를때는 별로 높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막상 한벽당에 올라보면 적지않이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각의 기둥 사이로 잔잔하게 흐르고 있는 전주천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누각이 서있는 높이와 보이는 풍경을 보면 누각이 들어설 만한 자리라는 것을 누구나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전주천을 따라 흐른 오랜 세월이 지형을 바뀌어 놓아서 그런가 한벽당 밑에서 바위에 부딪쳐 부서지는 하얀 포말은 보이지 않는다.
한벽당이 주는 경치에 취해 보기도 전에 목줄기를 스쳐 지나가는 서늘함과 답답함이 찾아든다. 도로를 만드는데 있어서 세계적으로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후손들이 한벽당의 목줄기에다 널찍한 고가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전주천을 가로 지르는 고가도로가 정확하게 한벽당의 목줄기를 지나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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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선조님들의 풍류보다는 살아있는 후손들의 윤택하고 편리한 삶이 중요하기에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하필이면 이렇게 도로를 내었는지 답답하다. 깨어진 감흥을 달래려고 한벽당 마루바닥에 등짝을 갖다 대고 벌러덩 눕는다. 내 몸안에 들어 있던 작은 피곤함을 마루바닥에다가 기분좋게 내려 놓는다. 한벽당 천정에 단청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한벽당 서까래들은 그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여기서 즐겼던 일들을 꿀먹은 벙어리 마냥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궁금하다.
옛날 조상님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며 풍류를 즐겼는지 나에게만 살짝 한번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보고 한벽당을 줄테니 마음껏 즐겨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오모가리집에다가 모래무지 매운탕과 막걸리를 주문하겠다.
마루 한 가운데에 상을 펼쳐 놓고 바글바글 끊는 얼큰한 매운탕을 안주 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인다면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비록 대금소리는 없더라도 같이 한 아우들과의 즐거운 이야기 꽃이 그 공백을 충분히 메우고도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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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루바닥에 누워 그런 즐거운 상상을 하는 동안에도 한벽당 옆에 있는 요월대는 있는 듯 없는 듯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한벽당에 비하면 요월대는 작다. 한벽당의 마루바닥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그런지 깨끗하게 관리가 되어 있지만 요월대의 바닥은 지저분해 보인다. 작은 귀챦음에 굳이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요월대로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아 눈으로만 안부를 전한다.
괜시리 안쓰럽게 보인다. 안그래도 한벽당보다 덩치가 적어 서러운데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까지도 빼았겨 버리니 말이다.
내가 요월대라면 한벽당하고 합의를 해서 일 년에 한번씩 아니면 한 달에 한번씩 돌아가면서 자리를 바꾸자고 하겠다.
하나만 있어도 될 자리에 괜시리 두 개의 누각이 있는 건 아닌지, 왜 두 개의 누각을 이렇게 가까이에 지었는지 궁금하다.
어제 저녁에 마신 전주 막걸리의 여운이 남아 있어 그런지 그만 가자는 아우들의 소리에도 몸이 선뜻 일어서지 않는다.
내 온기를 받아 따뜻함을 주고 받고 있는 한벽루 마루바닥과 쉽게 헤어지고 싶지가 않다.
꾸물럭거리며 일어나 아우들의 뒤를 따라가면서도 머리 속으로는 계속 딴 생각을 해댄다.
한벽당으로 오모가리 매운탕을 배달시켜서 점심으로 먹었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말이다........
♣ 한벽당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교동1가 15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