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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의미
남진원
사는 게 쉬운 같아도
사는 게 재미난 것 같아도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게야
세상살이,
무시로 억울함에 취해
울고 있거나
더러는 시름에 겨워
잠들다 깨다가
하거니
때로는 울컥 토해내고도 싶고
가다가
털썩 주저앉아 울고도 싶구나
허나
슬퍼하지 마라
인생은
한 그루
나무 옹이 같은 것
가슴에 옹이를 쓰다듬으며
세월속에 흔들리며
가는 거라네
그렇게 흐르며 가는 거라네
아름답지 않은가
고요한 평화
남진원
제주 견(犬)의 풍성한 털처럼 눈이 내린다
가까운 산을 오르는 중이다
구부러진 쇠꼬챙이 같은 마른 풀과
거끌거끌한 나뭇가지 들이
눈을 맞으며 둥글어지고 두툼해진다
절망과 고뇌도 여기에 오니 침묵할 수밖에 없나 보다
산을 오르는 길들은 눈에 덮여
편안한 와불이 되었다
천지간에 즐거움이 빠졌다
그저 할 일 없는 듯이 걷는 나처럼
눈도 할 일 벗는 듯
내곁을 내린다 풀풀 내린다
내 인생의 柱聯
남진원
돌아보니 …
어느 덧 황혼녘의 삶
눈 비 내리고 폭풍우치던 날
몇 날이었던까
살가죽은 소금처럼 아픔에 절여지고
내 아픔의 柱聯
낡은 高閣처럼 색바랜 세월이다
그대와 우리,
인생의 살가운 부분들은 어디 숨었나
돌아보니
꼬집어도 감각 없는 긴 시간 속에 살았네
간 못 맞추며 짙어지기남 했던
내 삶의 영혼을 되짚어보다가
허세의 검은 머리카락 대신
은발의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다시 바라보는
산과 하늘, 그리고 사람들
이제는 미움도 비애도 아픔도 절망도
사랑으로 변신하고 …
생명은 신비의 바다였구나
모두가 아름다워라.
한 잔의 커피
남진원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면
내 고독의 시간이 용해됩니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 하면
무채색의 고요로움과
내밀을 꿈꾸는
평화가 찾아옵니다
맛난 삶이야 없어도
무상의 기쁨이 만드는
이 따뜻함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면
쓸쓸한 향기가 좋아
수묵화 같은
사랑 하나 띄웁니다
꽃이 피는 창가에서
남진원
사는 게 때로 피곤할 때면
창가에 앉아
꽃을 본다
인생은
다들
혼자 피어난 꽃들
어둠이 풀어지는
창가에 서면
생각에 잠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사는 게 더러 힘이 들 때면
사는 게 이리도 아플 때면
창가에 기대 꽃을 보다가
빈
배가
된다
벗이여, 지나다가…
남진원
내가 사는
옥천동 옛집은
목조 단층 건물
담장은 시멘트 블록담이지요
그러나 흥부네 박처럼
주렁주렁
박이 열려요
대문은 늘상
열려 있으니
벗이여 지나다가
들려주시게나
국화꽃 몇 송이
새소리 두어 줄
선물하겠네
느낌이 배우는 날
남진원
풀이며 나무며
크고 작은 미물까지
지구는 늘 놀라운 사랑이었던 것을
이제야 두근거리며 긴장하다니
새 울고 바람 불면
왜 여태 당연히 여겼던가
오늘 하루는 죄다 구름이더니
허물 벗어던지듯 비 쏟아진다
산천이 살아꿈틀대는 구나
이걸 볼 수 있다니
지금부터 나는 무한 설렘으로 팽창한다.
첫 눈
남진원
첫눈 내리는 날은
마음이 나풀나풀 달 뜨는 날
저 은백의 눈발 속에
송두리째 나를 던져놓고
아름다운 고향으로 걸어가는 길
첫눈 내리는 날은
설레임 방울방울 눈뜨는 날
저 은백의 눈발 속에
푸짐하게 나를 던져놓고
눈 하나에 친구 얼굴 세며 가는 길
느슨한 걸음
남진원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며
방터길을 달린다
한참 달리는 버스 안에 있는 나도
어디론가 마구 달려가는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니
순간
털썩
어느 혹성에 내동댕이쳐진 것 같다
그때 하늘을 보았다
오, 너희들이 있었구나
별을 벗삼아 발걸음을 옮겼다
주위로 몰려드는 어둠은
익숙하고 친근하다
인천집 집을 지나 방터골 다리를 건너면
의연히 눈에 다가온다
혼을 밝히듯 등을 겨고 앉은 우리 집
어둠 속에 선 커다란 감나무는
내 문학의 삶을 지키는 수문장
그래, 이 집에는
시간과 역사를 간직한 책속의 언어들이
사건처럼 뒹굴다가
언어의 뼈를 벼린 채 기다릴 것이다
고갯길 65년의
발걸음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긴다
정겨운 풀벌레 소리들이 길을 열고
침묵이 낯설지 않게
길 아래 도란거리는 물소리들
나도
하나 둘 셋 넷 다섯 …
느슨한 걸음에 재미를 더하고 있다.
말 없는 말
남진원
말이 많아져서
혼탁해졌다
가슴을 안은
사람끼리
무슨 말이 필요하랴
서로
어깨를 기낸 사람끼리
무슨 말을 하랴
꽃은 말이 없어서
백년의 미모를 더하고
나무는 말이 없어서
천년의 기상이 빛남이다
그래,
자연은 침묵으로
억겁의 향기를 전하니
가장 아름다운 말입니다
말 없는 말
달력을 넘기며
남진원
한 장을 넘기니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린 12월
한 해가 또 가는구나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달력 한 장을 뜯어내지 않는다고
시간이
그대로 붙어 있는 것도 아닌데도
넘기고 싶지 않다
달력을 보고 있으니
그리움으로 다가서는 얼굴들 …
그렇구나, 뜯어지는
달력처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거지.
다시 설날 전날에
남진원
예쉰 다섯 번 째 맞이하는 설이다
전에는 아내가 만두를 빚고 제사상 차림을 하느라
꼬박 하루가 저물었지
이젠 텅 빈 방에서
이리저리 눈을 돌려 찾아봐도
아이들도 애들 엄마도 없다
여보? 하고 부르면
금방이라도 주방에서 들릴법한 목소리인데 …
사진 속에서만 아이들과 웃고 있다
눈내리듯
조용한 날
속절없이 그대와 함께 한 36년이
이리 흘러갔구나
風景
남진원
雨水 지나고
차창 밖으로
풍경이 스치듯 지나간다
봄 채비를 하는 나무들이
조용하다
뿌리들은 얼마나 바쁠까
휘어지는 능선마냥 가벼운 듯해도
산은 莊重하고
조선 검의 洗法같이 허공을 빗겨 날아오르는
고요의 무리들
삶이란 저런 것이어야 하는구나
온화한 活力
풍경이
참
아름답다
들길
남진원
들길은 참 평화롭다
아늑한
들길에 서니
하루 동안 법석대던 것들이
가라앉아
조용히 삭아내리고
살며시 피어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내일의 기다림
한 발
두 발
발을 옮기니
이웃집 같은 저녁 햇살이
들길에
같이 따라 나선다.
(『 물레문학』창간호. 1989.)
( 2024. 1. 14. 개작)
노년의 행복
남진원
나이 들어 행복은 딴 게 아니다
그저 소소한 것들
그게 다 행복이지
저녁 간단히 먹고
편히 잠들 수 있으면
그건 큰 축복
반백년, 시간의 흐름
시인으로 살면서
그나마 내가 진짜 좋아하는
몇 편의 시들이 있어서
그게 내 인생의 기쁨이란 걸 알았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 시경이지
때로는 아프고
더러는 막막하고
자주 자주 힘들었지만
사랑이 있고 그리움이 있는
시편 하나 둘 셋 …
이제 알 것 같다
몇 편의 시들이 곁에 있어서
노년의 삶을 이렇게 물들여가는 구나
몇 편의 시들이 함께 하면서
노년의 행복을 이렇게 이끌어가는 구나.
첫 눈 내리는 날
남진원
첫눈 내리는 닐엔
창을 통해
내리는 눈을 맞이합니다
하얀 눈송이가 꽃잎이 되어
나풀나풀 내리는
그 모습이 좋아
사랑하는 여인을 마주하고 바라보듯이
그윽히 바라봅니다.
이런 날엔
무릎에 턱을 괴고
그냥 가만히
눈을 감고 있기만해도
행복해지는 날입니다.
어느 날인들 행복하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요?
날마다 행복은 바지주머니처럼
우리 곁에 있었지만
나도 모르게 밀어내었던
행복의 타래들 …
눈이 내리는 날에야
행복속으로 기어들어와
조용한 미소로
행복해집니다.
첫눈 내리는 날
찻잔을 앞에 놓고
김오르는 모습 한 번 보고
내리는 눈발 한 번 보며
차 향기에 기쁨 두 배, 사랑 세배
많이 행복해합니다.
(2014. 12. 20)
조용한 아침
남진원
조용한 아침은 고요한 가벼움을 데리고 와 사랑스럽다
누군가는 꽃이 되어 노래하고 누군가는 두근거리는 초록
색 바랍으로 찾아왔다
나는 이미 봄을 꿈꾸네
커피 향처럼
나를 들뜨게 하지
숲은 소리 없이 춤추고 새떼는 하늘처럼 높이 떴네.
여 름 밤
남진원
별이 온통
나를 향해 반짝이며
느릿한 코끼리 걸음으로
다가오는
즐거움을
서로 나누는 밤이네.
가을
남진원
흩날리는 낙엽 때문인가
그대가 만약 오늘
괴로움을 호소해도
나는 어깨를 내어주고, 기꺼이
슬픈 마음을 함께 할 수 있다오.
가을이기 때문이리
짙은 그리움으로 넘실거리는 바다처럼
그대의 모습은
이미 내 깊은 영혼을 흔들었으니까.
가을 달밤에
남진원
소곤고라눈 풀벌레는‘
우주가 들려주는
연주
그 멋이 좋아, 하늘에
달을 데려와
한 잔의 고요를 찻물처럼 마시네.
산막의 저녁
남진원
나무 패고 들어와 양말 벗어 놓으니
저녁도 맨살 같다.
점점 어슴프레해지는 방안 공기가’
난롯불로 차츰 화사해지고
모처럼 나는, 따뜻해지는 산소처럼
앉았다.
무언의 한 때
조금씩 녹슬어 가는 시간이지만
이 흐릿한 방안을
그저 즐기며
살 수 있다니 ….
평범한 미소
남진원
삶이 무엇인가
그저 흐르는 물의 한 부분이었구나
흐르다가 氣化하고 머물다가 風化하는
요란하려고 발버둥쳤던 내 인생의
살과 뼈들의 무게를 바라본다
미련 때문에, 집착 때문에, 애증 때문에
버리지 못했던
허망과 탐욕
이 허접한 것들,
안쓰러워서, 애처러워서
그렇기에 이들이 진짜 사랑스러워서
고마움이여!
내 하루하루는
이제 이들을 껴안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미소의 시간들이구나.
하나로 4층 창가에서
남진원
하나로 4층 창가에서
밥을 먹다가 창빡을 보면
남대천이 내려다보인다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
강물 위로 떠가는 대관령 풋풋한 바람
바람결에 떠도는
작고 시고 텁텁한 풍문들
하나로 4층 창가 4층 식당에서 보면
고층 아파트, 쉼없이 오가는 자동차 물결
다리 건너 멀뚱멀뚱 선 교회
모두 내려다보인다
70편생 살면서 쳐다보기만 하다가
아곳에 오면
세상 한 쪽을
미음 턱 놓고 내려다본다.
물 빗자루
남진원
우리 집 앞쪽으로 흐르는
작은 개울물
가만히
옆에 앉아 있으면
때묻었던 마음‘ 한 개
두 개
새 개 …
물 빗자루로 잘 잘 잘
씻어내린다
새길 나듯
마음 길 환해진다.
삶
남진원
줄거움도 고통도
모두 내것이었지만
내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러나 살고 죽음이 또한 어디 있으랴
시공이 비로자나요
처처가 불에 매달린 고드름이다.
살다 보니
남진원
살다 보니
지나침 많은 한 생도
의미 있고
괴로움 더한 날도
보배롭구나
지난 날
탄식해 본들
무엇하리
저간의 자랑거리보다
허물이 더
많은 법
내 모든 허물이
이젠
나의 스승이니
고마울 뿐이네
하여,
오늘 바보처럼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어서
내일 또 어리석더라도’‘ 행복하네.
가을 바람 불 때
남진원
가을바람 부는
들길에 서면
나는 다 안다
코스모스가 울면
하나도 모습이 안 보이지만 ’
나는 다 안다
네가 얼마나 아름답게 울었는지를
나는 다 안다
나는 다 안다
아름답게 우는 법
내게도 가르쳐주렴
가르쳐주렴
가을바람 부는
풀밭에 가면
나는 다 안다
풀잎이 울 때는
하나도 소리가 안 들리지만
네가 얼마나 맑게 맑게 울었는지를
나는 다 안다
나는 다 안다
맑게 맑게 우는 범
내게도 가르쳐주렴
가르쳐주렴
아름다운 이름, 바다
남진원
골짜기에 내려와 발을 물에 담그어 본다
대단하구나
이 물은 산의 이름을 바꾸어놓았으니 …
물이 있어야 불려지는
명산
물은 흙의 이름도 바꾸어놓았다‘
물이 있을 때 불려지는 ’옥토‘
물은 집의 터도 이름지었다
배산임수
물이 있었을 때에야 그 빛을 발하는
명당
비, 구름, 안개는 다 떠도는
물 방랑자들의 다른 이름
물이 가장 낮은 곳을 찾았을 때
물은
가장 큰 이름을 얻었다
’받아들인다‘, ’받다‘ 라는
바다
바다!
이런 개념 정립이 된 후에 다시 바다에 가 보았다.
바다의 아름다움 속으로 들어가는 나를 본다
가장 낮은 곳에서
혼탁한 것들을 모두 받아들여
정화하는
수용의 정점
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인 바다
들쭉날쭉 수없이 치솟아있는
거대한 산들의 위용을
내세울 수 있었던 것도
한없이 가볍고 작은 물방울들의
힘,
바다에 기댄 덕택이었구나
낮은 곳에 모여든
물방울,
물방울들의 바다
이곳에 의지해서야
에베레스트 산도 해발 8848m 라는
세계 최고의 봉우리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
산들은 그제서야
제 각각 자신들의 높이도 알아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돌아다본다
우주에 떠돌던 맑은 물방울처럼
내 몸속에 들어와
붉은 생명을 이어가게 하고 있다니 …
바다에 담그었던 발도 빼고
물에서 나와
살며시 손바닥에 물을 담았다.
맑음
끝없는 삶의 여정에서
내 안에 잠시 머물러 있는
순례자 같은
물
나는 이때에야
끝없이 낮아져야 할
색 바래고 볼품 없는
나의 높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아름다운 이름,
바다에서 ….
개구리 우는 밤
남진원
파종을 끝내고나니
어둑해졌다
시골에 살면서도
한 번도 실하게 듣지 못했던
개구리 울음소리
수목이 짙어지는
밤
문 다 열어놓고
허공처럼 앉았다
무슨
부귀를
더 구하랴
코스모스
남진원
은은한 그리움으로
티없이 맑게 피었다
가을 바람에
호젓이 지고 있다
네가 운다면
는믈은 얼마나 맑으랴
네가 사랑한다면
그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우랴.
별
남진원
풀꽃이
웃는
그런 모습이라서
닿으면
가슴이
터질 것 같아
머얼리서
이름만
불러 본다
별 --
풀꽃처럼 살다가
남진원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친구야
외로울 때 바람이 되는 것
바람이 되어
바람이 되어
어느 산기슭
풀꽃처럼 살다가
먼
기억들을
되살려서
달 뜨는 밤이면
달맞이꽃처럼 일어서서
숲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그렇게 만나는 거다
풀물든 얼굴로 만나는 거다
헤어지는 법도 잊었다가
만나는 법도 잊었다가 ….
사람아
남진원
거리에 나서도 사람
산에 올라도 사람
바다에 가도 사람
직장에 출근을 해도 사람
가는 곳곳마다 사람이지만
어디
푸근히 마음 놓아두고 싶은
사람 하나
만나기가
그리 흔하던가
어쩌면
천당에도 지옥에도 발 붙일 곳이 없어
한 세상 더부살이로 살고 있을
목숨일지도 모를 우리네가
또 입은 왜 그리 많은지
사람이 만나서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사람을 만나서 반가와 해야 할 일이지만
코가 비슷해 말을 건네보면
귀가 비슷해 악수를 하고 보면
이것도 아니구나
허전해지는 세상
너
사람아
그리운 이여
남진원
그리운 이여
사는 동안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
사는 동안
그리워도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젊음이 가고 기억마저 바래지지만
추억의 항아리에 머무른 그대
삶이 힘들 때나 편안할 때
천연의 향기가 되어
따뜻이 다가오는 사람
고요히 나를 깨우는 사람아
한 생이
고달픈 삶이라지만
너로 하여 환희로운 음악이 되는 건
왜인가
너로 하여 행복의 일상이 되는 건
왜인가
오늘은 그리운 사람이기 때문이리라
내일은 더 그리운 사람
더 그리울 사랑이기 때문이리라
그리운 이여
그리운 이여
사다리
남진원
겨울 하늘에
별이 떴다
추울수록
빛을 내고
어두울수록
더 부시다
힘들 때
하늘을 보면
어둠 속에
빛나는
별이 있어서
나는 네게로 가는
사다리를 놓는다
청량동 古家
남진원
외져서 아련한
산 아래 고갯길
한 구비 돌고나서
또 한 구비 내려가면
벚꽃 핀 꽃 대궐에서
환히 맞던 부모님
봄 4월 그늘진 뒷길
삶도 그리 뒷길 같다
어머니 아버지는
한낮에도 허기졌지
오늘은 청량동 古家
꽃보다도 어질다
고향집 박꽃
남진원
이맘 때면
고향
여름 집
풀벌레 짙은
모깃불 피고
멍석 위에
풍성하게
솓아지는 별빛
아늑하게
흐르는
바람
모두가
참으로
평화로워
이맘 때면
내 고향
여름 집
나는
지붕 위
하얀 박꽃이 된다
커피 한 잔
남진원
커피를 마신다
내 인생에
달콤한
쉼표
한
잔
작약꽃
남진원
고향을 떠나 있으면
내 마음 속엔
고향인냥 그리웁게
피는 꽃이 있다
초여름 뒤 울안
수줍은 새색시처럼
솔곳이 피어나는 작약꽃
막걸리 한 사발에
고향을 풀어넣고
손가락으로 휘저으면
거기
뻐꾸기 울음과 함께
풀물처럼 묻어나오는
꽃 한송이
오늘은
뉘 집 뒤란에서
흙냄새로 물씬 피고 있을까.
늙음에 대하여
남진원
(암, 건강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하게 지내는 게 최상입니다.
그러나 점차 몸이 아프고 약해지는 걸, 살면서 느끼는 걸 어찌하나요. 그래서
말인데요 …)
친구들이여, 사랑하는 벗님네 들이여
늙음의 정상은 건강함?
아 〰 니오
늙음의 정상은
청년 같은 젊음?
아 〜 니오
늙어가며 생기는 주름살
늙어가며 몸에 생기는 병
어쩌면,
늙어가기에 받을 수 있는
권리 같은 것일지도 모를 일
병이 들면 병과 벗하며 살아보세나
아프면 아픈 것과도 친구해 보세나
그러다 죽음이 찾아들면
몸과 혼백이
온전히 여행을 떠나는 날일지도 몰라
그건, 또 다른 시작의 날일지도 몰라
그러니, 늙어서
죽음이 찾아온다는 일
기쁜 일 아닌가, 좋은 일 아닌가.
그래, 우리에겐
늙을 수 있고 별난 친구인 죽음이 찾아온다는
이유가 있어
날마다 행복하게 살고,
그렇지 못한다 해도 행복해 하며
잘 살려고 하지 않는가.
친구들이여, 사랑하는 벗님네 들이여.
(2024. 2.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