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득훈 목사] 누가 성공한 사람인가 [20011107]
박득훈 목사(기윤실 건강교회운동 운영위원장)의 글.
이제 김교신 선생을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일제시대 <성서조선>지의 주필, 한국 무교회주의 그룹의 걸출한 지도자, 손기정씨의 양정고보 시절 담임선생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성서를 한편으로는 조선을 진실로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44년이라는 짧은 인생을 살면서 "성서를 배워 성서를 조선에 주고자"하는 열정으로 자신을 불살랐다.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눈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난다. 이미 읽었던 글이고 익히 아는 내용인데도 새삼 깊은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힘들고 둔해져 있을 때면 그의 글을 다시 손에 쥐곤 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살아있을 당시에는 실패한 자라고 볼 수 있다. 어느 일기에서 자신의 신세를 이렇게 털어놓고 있다. 그 날은 몸이 아픈데도 할 수 없이 교직원 정구대회에 선수로 뛴 날이었다. "응원단이 주는 과실과 샌드위치를 감식(甘食)하면서 생각하니, 10년 써도 샌드위치 한 조각 주는 사람 없는 성서조선 원고 쓰는 일보다 매우 유리한 듯 하다." 그런가 하면 모 잡지사에서 온 "여성의 행복"이라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면서 이렇게 이유를 적고 있다. "10여 년 이래로 팔리지 않는 글만 써 오던 사람이 갑자기 팔릴 만한 문장을 쓸 수 없으니 우리 의견대로 인쇄한다면 잡지의 인기가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단념."
나는 이런 일기를 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깊은 고독이 가슴 저리도록 다가 왔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새벽에 산에 올라 하나님께 부르짖고는 "성령의 큰 파도에 흔들려 나 아닌 다른 사람으로 하산"하여 묵묵히 그 고독의 길을 다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 뿐 아니라 그는 동지의 위대함을 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1934년 동기성서연구회에서 있던 일이다. 함석헌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강의하였다. 김교신은 그 강의를 들으면서 "빛이 이 반도를 비춘 지 반세기에 비로소 반도의 진상을 드러냈도다"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그러면서 반만년의 사관이 제시되었건만 2000만 중에 그것을 들은 자가 20명 미만이고 <성서조선>지를 통해 읽을 자 200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며 한탄하였다. 함석헌은 후에 자신을 "바보새"라고 칭했다고 한다. 새끼에게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물어다 주지 못하는 실패자임을 한하면서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이들이 실패자인가? 결코 아니다.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성공한 위대한 사람들인 것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 중요한 역사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민족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약한 이들을 위해 살았다. 김교신은 소록도의 나환자에게서 너무나 감동적인 서신을 받고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손양원 목사님이 계신 부산의 한 병원 교회에서 그의 글을 통해 예수님의 깊은 사랑과 진리를 깨닫고 생명을 맛본 나환자 문신활은 동료 4명과 함께 김교신 선생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나환자의 모습으로 참아 용기를 내지 못하고 서울에서 배회하다가 눈물을 머금고 소록도로 향한 것이다. 그리고 돈이 없으니 무료로 <성서조선>지 1, 2 부를 좀 보내달라고 간청하는 편지를 쓴 것이다. 이에 김교신은 "소록도의 나인들만이 우리의 문둥이요 우리는 저들의 문둥이다. 오 문둥아!"라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우리 문둥아! 안심하고 요구하며 대담하게 명령하라. 주 예수로 인하여 나는 그대들의 종이다."
우리 민족에게 깊은 슬픔을 안겨주었던 5월을 넘기면서 과연 누가 성공자인가를 묻게 된다. 힘없는 자의 아픔을 가슴에 안고 그들의 종으로 사는 사람! 아, 그렇게 성공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