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경기도박물관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산 85번지 일대에 위치해 있으며, 경기도의 역사와 고고.미술.민속자료를 종합 전시한 곳으로 전시실 규모는 1,100여평이다. 자연사실, 고고미술실, 문헌자료실, 민속생활실, 서화실, 기증유물실등 6개의 상설전시실 그리고 기획전시실에는 연중 2,3회의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유물.유적을 선보이는 기획전시실이 있다. 900여평의 야외전시장에는 백제온돌 주거지를비롯하여 14개의 전시물이 전시되어 있고, 부대시설로는 원형극장, 놀이마당을 갖추었다. 특히 각 전시실별로 터치스크린을 설치, 버튼만 누르면 원하 는 역사자료를 안내 받을 수 있다. 화상정보 검색실을 통해 각종 자료를 자유롭게 볼 수도 있다. 유물은 보물 제930호인 궤장 및 사궤장 연회도첩을 포함하여 3,500여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4,000여권의 연구도서가 확보되어 있다. * 가는 길 : 남부터미널에서 신갈행 직행버스 40분 소요, 잠실 롯데월드 건너편에서 민속촌행 좌석버스 (1002, 1116), 수원에서 용인행 좌석버스(600), 분당선 미금역 민속촌행 버스 (1116, 1002)
백운산
백운산은 경부고속도로와 서울,수원간의 옛도로 사이에 약 10여km에 걸쳐 수원까지 뻗어 있는 산으로 동서로 흘러내린 계곡에는 동막천과 백운(의왕) 저수지 및 광교저수지등 유원지화 되어 가는 곳도 있으나 능선은 매우 한적하고, 완만하며 수목이 우거져 있어 오붓하게 산행을 할 수 있는 당일 산행이며, 주위에 일왕저수지,광교저수지,파장저수지,하광교 소류지,백운저수지,운중저수지등이 산재해 있어 특히 주말이면 낚시 인파로 항상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백운산은 서쪽의 고천리 버스 정류소에서 오금리 백운동을 거쳐 오르는 길과 북서쪽의 학의 2리에서 속말과 고분재를 거쳐 오르는 두길이 있다. * 등산코스 : 학의 2리 버스종점-속말-고분재-464봉-백운산-사거리 계곡-농장-학의2리-버스종점(2시간50분소요) * 가는 길 : 바라산의 교통편을 이용할수도 있으며, 서울 신세게 백화점(명동) 앞에서 고천리간을 수시운행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할수 있다. 고천초등학교 옆에서 백운사 입구(왕곡리) 행 새마을 버스가 매시 50분에 출발한다. 수원,의왕,성남,안양 등에서 버스 및 택시등을 이용
에버랜드(EVERLAND)
경기도 용인시 포곡면 전대리 310 에 위치해 있으며, 1976년 개장한 에버랜드는 각종 놀이 시설과 바자지구 그리고 다양한 축제가 펼쳐지는 '페스티발 월드', 세계 최고 수준의 물놀이 시설인 워터파크 `캐리비안 베이', 국내 최고 규모의 자동차 경주시설인 모터파크 `에버랜드 스피드웨이'로 구성, 365일 내내 즐거움이 함께하는 테마파크이다. 놀이,쇼핑,다양한축제의 공간으로 세계 최고수준의 최첨단 워터파크, 에버랜드 스피드웨이(EVERLAND SPEEDWAY) : ON-ROAD자동차 경주장이 있다. * 가는 길 : 서울 (고속버스) 강남/남부터미널 → 용인터미널600,66번 버스 → 에버랜드(시외버스) 남부터미널 맞은 편에서 500-1번 이용. 30분 간격 운행, 2시간 소요. 경인지역(시외버스) 분당에서 500-3번 이용. (시내버스) 수원역에서 66,600번 이용. 1시간 소요
바라산
바라산의 등산로는 서쪽 학의리에서 오르는 코스와, 동쪽 동원동에서 낙생 저수지를 지나 고분재마을에서 오르는 두길이 있고 능선은 매우 한적한 편이다. * 등산코스로는 안양 인덕원 사거리-학의 2리버스종점까지 버스로 이동(약 15분 소요) - 학의2리 버스종점-속말-고분재-바라산-바라산재-425봉-400봉-194봉 고개-학의2리-버스종점(3시간 소요) * 가는 길 : 안양,인덕원 사거리에서 학의리행 버스(12번 시내버스)로 종점인 호박넝쿨 식당에서 하차, 수원,의왕,성남,안양 등에서 버스 및 택시등을 이용
한국민속촌
경기도 용인시 기흥읍 보라리 107에 위치해 있으며,한국민속촌은 서울에서 남쪽으로 약 41km, 경부고속도로 수원 I.C.에서 동남쪽으로 3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민속촌은 민족문화자원을 보존하고, 자라나는 2세들의 교육을 위한 학습장 및 내외국인을 위한 전통 문화의 소개 등을 목적으로 하고있다. 민속촌의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의 한 시기를 택하여 당시의 생활상을 재현한 것이다. 특히 당대의 사농공상의 계층별 문화와 무속신앙, 세시풍속 등을 재현 전시하였다. 또 지방별로 특색을 갖춘 농가, 민가,관가,관아,서원,한약방,서당,대장간,누정, 저자거리 등을 비롯하여 99칸 양반주택 등 대토호가도 재현되어 있고 그 안에서는 전통공방을 생동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공연행사로는 농악, 줄타기, 전통혼례식 및 중요무형문화재공연 및 기타 특별한 이벤트 행사가 절기별로 행하여지고 있다. 그리고 야외에서 재현 전시하기 어려운 부분은 옥내 민속전시관을 통해 민속생활 전반을 재현 전시해 놓았다. 놀이시설로는 눈썰매장을 비롯하여 국내 유일의 화산폭발을 재현하고 있는 대규모 가족공원이 있다. 장터에 이르면 증편, 인절미, 북어구이, 빈대떡, 파전같은 우리 고유의 떡과 안주류에 순재래식으로 담근 동동주를 판다. * 가는 길 : 수원역에서 민속촌까지 무료순회버스 1시간마다 운행(30분 소요), 수원역 앞에서 37번 시내버스 수시 운행 서울 남부터미널↔민속촌간 20분마다 운행(40분 소요) * 문의 : (031)286-2114
심곡서원(深谷書院)
유형문화재 제7호로, 용인시 수지읍 상헌리 203-2 에 위치하고 있다. 심곡서원(深谷書院)은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조광조의 묘소가 이곳에 있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제향하는 충렬서원에 입향하였다가, 조선 선조 38년(1605) 무렵 위패를 옮겨오게 되었다. 설립과 동시에「심곡(深谷)」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양팽손(梁彭孫)을 추가 배향 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심곡서원은 경사지에 외삼문·내삼문·사당을 잇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서원 건축의 구조를 보이고 있다. 광교산·형제산에서 이어지는 구릉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 외삼문을 들어서면, 담장으로 둘려진 넓은 공간에 정면으로 강당이 나타난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일昭당(日照堂)·장서각(藏書閣)·내삼문(內三門)·외삼문 (外三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광조와 양팽손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최근에 조광조의 초상을 봉안하였다. 사우는 지붕의 좌우에 방풍판을 달고 겹처마로 되어 있다. 일조당은 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각(合閣) 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목판벽(木板壁)으로 각 칸마다 판자문비(板子門 扉)를 달아 사면을 개방할 수있도록 하였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행사 및 유림의 회합과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강당 안쪽 벽에는 숙종어제어필의 현판을 비롯하여 서원의 규약(規約)·중수기(重修記)·제영(題詠)등이 걸려 있다. 심곡서원에는 재실(齋室)이 없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교육공간으로서 보다는 제향위주의 서원으로 주목되면서 재실의 의미가 적어진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당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되었고, 대신 주변에 장서각등을 필요에 따라 마련된 것이다.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된 장서각에는67종 486책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1985년에 도난당하여 현재는 『정암집』외에 몇 권만 남아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 4두이다. 원내에는 수령 5백년의 느티나무가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 되어있다.
용인한화리조트 눈썰매장
용인시 남사면 봉무리 산 57 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울에서 50분거리에 위치한 용인 프라자눈썰매장은 슬로프와 부대시 설인 스넥코너까지 합쳐 5,000여평 규모로, 썰매장외에는 골프장등이 있어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밖에도 숙박시설인 리조트(콘도 250실)를 비롯, 레스토랑, 커피숍, 슈퍼, 연회 및 세미나실, 노래 방, 스낵코너, 대형주차장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마련해 놓고 있다. 이용료는 일반 7,000원, 어린이 7,000원, 투숙(한화콘도)객은 소인 5,000원(40명 이상 단체시 4,000원)이다. * 가는 길 : 도로 이용시 이동면사무소에서 오산쪽으로 7km지점이며,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오산행 직행버스를 이용하여, 오산역에서 하차후 용인한화리조트눈썰매장행 셔틀버스 이용 할 수 있다. * 문의처 : (031)332-1122(121번), 팩스(031)332-1122, 서울사무소 (02)729-3894/8, 팩스(02)729-3869
<파주시>
보광사대웅보전(普光寺大雄寶殿)
경기도유형문화재 제83호이며,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에 위치하고 있다. 벽제역에서 약 6㎞ 떨어진 고령산 기슭에 있는 고찰로, 신라 진성여왕8년(894) 왕명으로 도선국사가 창건한 후, 고려 고종2년(1215) 원진국사가 중창하였고 우왕14년(1388) 무학대사가 삼창하였다 한다. 임진란으로 소실되었다가 현종8년 사창되었고, 영조16년 중수하여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가 묻힌 소령원의 기복사로 삼았다. * 문의처 : (031)942-7700(절) (031)943-5516(주차장). 가는 길 : (버스) 불광동터미널(보광사행33번버스)∼보광사앞 하차(30분), (승용차) 통일로(국도1호선)∼고양동∼보광사
용미리 석불입상
보물 제 93호이며,벽제역에서 광탄쪽으로 6㎞ 떨어진 장지산 기슭에 있는 용암사는 쌍석불사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이는 절안에 있는 천연암벽에 새긴 2구의 불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 마애불상들은 머리위에 돌갓을 얹어놓은 토속적인 분위기를 느끼게하는 고려시대 석불입상으로 불성(佛性)보다는 토속적인 특징을 얼굴에 나타내고 있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불교조각으로는 별로 우수한 편은 아니나, 고려 선종과 원신궁주의 왕자인 한산후의 탄생과 관련된 설화가 있고, 옆에 명문까지 새겨져 있어 고려시대의 지방화된 불상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가는 길 : (버스) 불광동터미널(용미리행버스)∼고양동∼용미리(용암사앞).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 8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통일공원
파주시 파주읍 봉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종군순직기자를 추모하는 추념비,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육탄십용사충용탑, 이유중대령, 김만술소위 기념상등이 있다. 통일공원은 육군제1사단 근무중 혁혁한 공로를 세운 장병들의 호국 정신을 기리고 고혼들의 영령을 추모하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장소에서 중요한 업적을 이룩한 사단 장병들의 높은 감투정신을 후세에 널리 전하며 이를 귀감으로 삼기 위해 통일공원을 건립하였다. * 문의처 : 공원내 휴게소 953-0847
공능유원지(하니랜드)
파주시 조리면 장곡리에 위치하고 있다. 36ha의 저수지 주변에 10종의 유희시설과 수영장,눈썰매장이 있으며 주변에 다양한 음식점과 호변산책로가 있는 종합레져 타운으로 조성된 관광지이다. 놀이시설로는 바이킹, 범퍼카, 우주비행선, 미니기차, 나는 코끼리, 회전목마등이 있다. * 가는 길 : (도로) 서울구파발에서 1번국도(통일로)를 이용. 장곡리검문소에서 우회전하여 2km지점 위치. (시내버스) (158-2) 서울=파주장곡리(공능입구) 06:00 ~ 22:50 0:20, 좌석(909) 서울=파주 장곡리(공능입구) 06:00 ~ 22:50 0:20, 좌석(912) 서울=파주 장곡리(공능입구) 06:00 ~ 22:50 0:20, 버스 장곡리=관광지(장곡리) 06:00 ~ 22:50 0:30, 문의처 : (031)945-2250∼3
임진강 폭포어장
파주시 파평면 덕천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난이도가 적절하게 배치된 3,000여평의 퍼팅전용 골프장과 각종놀이시설 및 체육시설이 갖추어져 있으며, 10m 높이의 쌍립인공폭포와 초대형 분수가 있는 공기 맑고, 풍경이 수려한 자연휴식처이다. 송어, 향어 양식장이 있어 싱싱한 회를 맛볼수 있다. 놀이시설로는 바이킹, 범퍼카, 미니기차, 스윙거, 삐에로등이 있다. * 가는 길 : (승용차) 통일로 또는 자유로∼문산∼파평(임진강폭포어장), 의정부∼양주군 남면∼감악산∼적성면∼파평. * 문의 : (031)959-2222∼5(정원수산)
파주금강산랜드
가는 길 : 자가용(자유로-금촌-1번국도(통일로), 자유로-문산-1번국도, 불광동-구파발-1번국도), 시외버스(미도파 922번 좌석(문산행)-월롱역, 불광동 909 좌석(문산행)-월롱역, 의정부 32번 일반(금촌행)-월롱역), 철도(서울역(경의선, 문산행) - 신촌역 - 월롱역 하차(월롱역에서 셔틀버스 대기). 연락처 : (031)945-2500
판문점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에 위치하고 있다. 판문점은 서울에서 통일로를 따라 북으로 50㎞ 떨어진 지점에 있으며,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이 이루어진 곳으로, 현재는 남북대화의 장소로 이용되며, 군사정전회담이 열리는 곳으로 세계적인 명소가 된 이곳은 국토분단의 비극과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는 산교육장이기도 하다.
통일전망대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에 위치하고 있다.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오두산에 세워진 통일전망대는 지상 5층, 지하1층의 석조건물로 지어졌으며 '92년 9월 8일 개관되었다. 해발 140m의 높이에 자리잡은 원형전망실에서는 북한 주민의 농사짓는 모습과 개성의 송악산 등을 망원경으로 바라볼 수 있다. 민족분단의 실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통일의지를 새롭게 가다듬을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통일교육의 산도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이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을 맞아 조상들을 추모하는 망배단, 그리고 지름 2m, 무게 6백 ㎏의 거대한 통일기원북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조만식 선생의 동상도 세워져있다. * 가는 길 : 좌석버스 (파주시 금촌역에서 하차 금촌버스터미널에서 탄현면 성동리행 버스(20분)), 승용차(행주대교 - 자유로 - 통일동산(30분)). 입장료-어른 1,500, 학생·군경·경로 1,200(단체일 경우 : 어른 1,200원, 학생, 군경, 경로 900원), * 문의처 : (031)945-2390
임진각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사목리 일대에 위치하고 있으면, 현재 6·25전쟁 유물 및 각종 반공자료가 전시되어 있고, 자유의 다리, 철마는 달리고싶다(경의선철도 중단점), 북한 실향민을 위한 망배단 등 분단의 아픔을 되새기며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안보관광지로 매년 200만명의 내·외국인이 방문하고 있다. * 가는 길 : (버스) 909(불광동), 922번(미도파앞)-문산터미널 하차-임진각행 버스 갈아탐, (승용차) 구파발∼벽제∼문산∼임진각관광지(1번국도 종착점) - 60분 소요, 김포공항∼행주대교∼자유로∼문산∼임진각관광지 - 40분 소요. * 문의처 : (031)952-2565
<화성군>
제부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송교리 제부리에 위치하고 있다. 제부도는 1.98㎢의 작은 음섬으로서 하루에 두번씩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섬을 드나들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곳으로 모세의 기적을 볼수 있는 환상의 섬이다. 철따라 이섬을 이용하는 낚시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피서철등 성수기에는 인근지역의 송산포도와 함께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주변명소로는 제암리, 남양호, 발안저수지, 용주사, 융건릉 등이 있다. * 가는 길 : 수원에서 버스를 이용, 서신에서 하차(약1시간 소요), 금정역에서 서신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서신면에서 제부도까지는 마을버스 이용(하루 2회 운행, 썰물시간에 따라 변동이 있음) 할 수 있다.자동차편-구원에서 버스를 이용, 서신에서 하차(약 1시간 소요), 서울 사당동에서 서신으로가는 직행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 문의처 : (031)57-2154
용주범종(龍珠梵鐘)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성황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용주사경내의 범종은 국보 제120호로 보존되고 있는데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A.D 854)에 갈양사로 창건되어 고려 광종때 에는 혜거국사(惠居國師)가 불도를 닦던 곳으로 조선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永祐園)을 지금의 화산(火山)으로 이장한 이후 사찰을 중건하여 융능 (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이용 하였고 사찰내의 범종은 고려시대 범종으로서는 한국종의 양식을 가장 충실히 갖추고 있는 종으로써,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용주사의 "불설부모은중경"과 함께 우리고장의 자랑거리이며 금동 청동향로와 전적수사본, 후불탱화, 병풍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한 용주사는 일년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문의처 : 용주사 사무소 031) 234-0040,2818 . * 가는 길 : 수원역 (시내버스 24,46번) →용주사 * 운행시간 : 06:00 - 22:00 배차간격 : 20분간격 * 소요시간 : 40분. 도로이용시 서울과 오산을 잇는 1번 국도의 태안읍 병점에서 서쪽으로 약3km정도가면 용주사에 도착한다.
입파홍암(立波紅岩)
화성군 우정면 국화리에 속해있는 입파도는 0.44㎢의 섬으로 직선거리는 서울로부터 70km, 인천에서는 해상 40km, 수원에서는 50km거리에 있으며 대부분의 표고가 50m이하의 구릉으로 연결된 아기자기한 선형의 섬으로써 중심부 동서로 완만한 능선과 해안의 모래 및 조약돌 밭을 제외한 섬전체가 30%이상의 급사면을 이루고 있으며 남북측의 해안은 절벽을 이루고 있다. 광활한 서해 바다에 태고의 신비를 묻고 우뚝 솟아있는 붉은 기암괴석과 파도와 갈매기가 어루러진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로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하고 사면에서 불어오는 바다 바람은 우리 가슴을 시원하게 하여 주는 곳이며 아직도 뭇사람들에 때가 묻지않는 청정지역으로 인근에 있는 국화도와 함께 낚시객과 피서객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현지위치 및 교통 위 치 화성군 우정면 국화리 교 통 수원터미널→조암터미널하차 (경진여객20분간격,45분소요) 조암터미널→매향리 하차 (1시간 간격, 15분소요) 매향리→입파도간 어선이용 (약 1시간소요) 정보제공자 우정면사무소 (031) 358-7902
발안저수지
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덕우리에 위치해 있으며, 수초가 적당히 분포되어 낚시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굵고 붕어가 잘 나와 단골꾼이 많은 곳이다. * 가는 길 : 수원역에서 조암행 버스를 이용하여 조수지 앞에서 하차하면 된다.
남양호
남양호는 지난 1973년 12월에 경기도 화성군과 평택군 사이에 있는 분향마을 25km의 방조제를 쌓아올려 준공한 인공 호수이다. 위치상 상류의 해창리권, 중류의 장안리 양수장권, 하류의 방조제권으로 나눌 수 있다. 주변볼거리로는 입파도, 제암리3.1운동순국유적지등이 있다. 1) 해창리권 : 4, 5월에는 남양호의 붕어들이 해창리 물풀속으로 모여든다. 2) 고잔권 : 봄낚시가 특히 좋으며, 논둑으로 이어져 있으므로 앉을 자리의 (중상류권)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3) 중류권 일대 : 이곳에서 말조개를 기르므로 물 밑 바닥에 양분이 많아 (양수장 일대) 붕어, 잉어가 이곳 중류권을 중심으로 모여 살고 있다. 4) 하류권 : 주위에 휴게소가 많아 식사하기가 쉽고, 밤낚시도 할 수 있다. (제방권) 붕어가 많이 있으나 굵기가 잔 것이 흠이다. * 가는 길 : 상류권(수원에서 조암리행(약 15분 간격) 버스로 해창리에서 내린다.), 중류권(조암에서 장안리 선창방면 차를 이용한다.), 제방권(조암에서 이화리행을 이용한다. (0720 - 2010, 10회), 고잔권(평택에서 안중 경유, 발안방면 버스 또는 수원에서 발안, 안중행을 타고는 고잔저수지, 에서 내린다.)
융건릉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안녕리 산1-1에 위치한 융건릉은 장헌(사도)세자와 동비 혜경궁 홍씨의 합장능인 융릉과 정도대왕과 효의황후의 합장능인 건릉이 있는 곳으로 사적 제206호로 지정된 사적지이며 사적지안에 소나무 숲이 있어 1년에 근교에서 20여만명이 다녀가는 곳이다. 능의 특징으로는 융릉은 문석이 금관을 쓰고 있고, 건릉은 동릉이 실로 되어있다. * 가는 길 : 수원역에서 24번, 46번 시내버스를 타고 융.건릉에서하차(소요시간 30분). 1번 국도(서울 - 수원46Km 40분), 1번 국도 (수원 - 병점 10Km 15분) , 288번 국도 (병점 - 융건릉 5Km 10분)
궁평낙조(宮坪落照)
화성군 서신면 궁평리에 위치한 해안 유원지는 해송과 모래사장이 어울어진 천혜의 관광지로서 길이 2km, 폭 50m의 백사장과 수령이 100년된 해송 5천여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며 서해안 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경치를 자랑하고 있다. 만조시에는 하루 2시간 이상 해수욕과 함께 20ha의 조개 채취장에서는 직접 조개잡이와 바다낚시를 겸할 수 있어 1석 2조의 관광을 즐길 수 있고 또한 인근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들은 싱싱한 횟감으로 각광을 받고 있으며 특히 작열하던 태양이 서해바다로 질때는 바다와 해송이 함께 어울어진 장관은 보는이의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빼어난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 가는 길 : 수원역 →서신 매화리 하차 (999,350,345번:15분간격) →매화~궁평간 마을버스 (오전9,11,오후2,4,6시 5회), (도로) 군포 →반월행47번국도 → 반월 →39번국도(8.5km) → 비봉 →306번지방도(16km) →사강 →309번지방도로 →서신 →궁평리
남양성지(南陽聖地)
제암리 3.1운동 순국유적지는 수원에서 남서쪽으로 약 20km지점에 위치한 조용한 농촌 마을로서 일명 두렁바위라고도 불려지는 이곳은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시 국권회복을 위한 만세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한 곳으로 특히 4월5일 이곳 주민들이 발안장터에서 격렬한 만세운동을 벌이자 만세운동에 대한 주모인사명단을 입수한 일본 헌병 30여명이 4월 15일 오후 2시경 제암교회에 주민을 모이게 한 뒤 모든 문을 폐쇄하여 감금시키고 교회에 불을 지른후 교회를 향하여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23명을 학살하고 30여채의 가옥을 불태워 버린 선조의 한과 넋이 서린곳이다. 제암리 학살사건이 있은지 63년이 지나서야 마을에서 4km떨어진 도이리 공동묘지에 평토장으로 안장되었던 유해를 발굴하여 제암교회 뒷동산 양지바른곳에 유택을 마련 하였으며 후세에 이 사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와 전시관, 교육관 조형물등을 설치하여 나라사랑 정신을 일깨우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 가는 길 : 동서울터미널→발안에서 하차 (조암행 20분간격,70분소요) →제암리 교회 (0339 353-0031), (도로) 안산 →발안간30번국도 → 수원-발안간 43번국도의 교차부근에서 남양호로가는 302번지방도로(약1.5km)
용주사
화성군 태안읍 송산리 188 에 위치해 있으며, 성황산 남쪽기슭에 있으며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이다.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AD 854)에 갈양사로 창건되어 고려 광종때에는 혜거국사가 불도를 닦던 곳으로 조선 정조대왕이 양주군 배봉산에 있던 사도세자의 영우원을 지금의 화산으로 이장하고 사찰을 중건하여 융릉(사도세자의 묘)의 원찰로 삼았다. 용주사에는 국보 제120호인 범종을 비롯하여 정조의 애절한 효심이 깃든 "불설부모은경"등 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사찰 명칭은 낙성식날 정조가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어 용주사라고 개칭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 문의처 : 관리사무소 (031) 234-0040
<광명시>
충현서원지
광명시 소하동 1084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시대 금천현 서면 오리동, 현광명시 소하동 영당 마을에 있는 서원터로서 오리 이원익을 배향한 서원이다. 이원익의 시호는 문충으로 인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이 서원은 삼현사라 했으나 조선후기부터 충현서원, 충현사 등으로 불러왔다. 현재 서원의 건물은 없어지고 주춧돌 일부만 남아 있으며 이원익의 후손들이 문화재 복원사업을 펼쳐 충현 서원터 위에 삼상대와 풍욕대등을 복원하였다. * 가는 길 : 107-2번, 124번, 3번, 12번, 23번, 오리 주유소 앞에서 하차
철산동지석묘
광명시 철산동 222번지(시민회관앞), 거석숭배 신앙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는 청동기시대의 묘제 또는 제천단으로서 외형상으로 남·북 2개의 지석이 개석을 떠받치고 있는 탁자식 지석묘이다. 1985년 한양대학교 박물관에 발굴 이전 복원작업을 의뢰하여 광명고등학교 교정 입구에 이전 복원하였다가 1990년 8월에 현재의 시민 회관 영내로 이전 관리하고 있다. * 가는 길 : 121번26-3번, 23번, 11-1번, 21번, 22번 버스
관감당
광명시 소하동 1084에 위치해 있으며 조선중기 인조대의 명신이자 청백리로 이름이 높은 오리 이원익(1547~1634)이 50여년간의 관직에서 물러나 만년을 보낸 누정이다. 관감정은 병자호란 때 크게 훼손되었으나 후대에 중건했고 선조의 영정을 모시고 관감당이란 편액을 달았다고 한다. 이 건물은 목조 기와집으로 팔작지붕에 회벽했으며 관감당 의 뜰에는 수령 400년의 측백나무와 수령 100년 전후의 향나무, 오동나무 등이 심어져 있다. * 가는 길 : 107-2번, 124번, 3번, 12번 오리 주유소 앞에서 하차
<김포시>
우저서원
김포시 감정동 492 번지에 위치한다. 김포시 감정동에 소재한 우저서원(牛渚書院)은 지방유형문화재 제10호로서 조헌(趙憲)선생을 봉사(奉祀)하기 위하여 인조 26년(1648)에 창건되어 숙종 원년(1675)에 사액되었다. 선생의 구저지(舊邸地)에 세워진 것으로 목조 단층 와즙건물로 본당, 외삼문, 비각, 내삼문 등이 있다. 선생은 명종22년(1567)에 급제하여 많은 관직을 역임하였다. 선생은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임진사 충신으로 일컬어 진다.
문수산성
사적 제 138호로 지정된 문수산성은 한말의 쇄국의 양론이 분분하던 고종 임금때 미국과 영국의 군함이 내습하여 조야가 들끓었을 무렵에 국토수호에 크게 공헌한 바 있으며, 문수산성은 바다로 들어오는 외적을 막고 한편으로는 나루건너 서울의 변방인 강화도를 옹호하고 지켜주는 역할을 한 곳이다. 산성내에는 성곽 6km와 동문,서문,북문의 3문이 세웠졌다. 특히 산세가 수려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루어 김포의 금강이라 불리우며 정상에는 북한땅을 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 우리들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 가는 길 : 서울방면 - 신촌, 공항, 영등포에서 강화방면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하차), 인천방면 - 인천터미널, 주안, 송림동, 가정동, 부천, 부평, 계산동 등지에서 강화방면 버스(김포시 월곶면 성동리 하차)
김포향교
김포시 북변동 425에 소재한 김포향교(金浦鄕校)는 문화재 자료 제 29호로서 고려인종 5년(1127) 3월에 창건하였으며 공자 및 맹자, 순자, 증자, 자사의 5성과 정자, 주자의 송조2현 및 우리나라의 맹현 18위의 위패를 모셨다. 이 향교는 원래 장능 동북방현 김포고등학교 산기슭에 진좌하였던 것을 원종대왕을 장능으로 모시게 되자 김포시 걸포동으로 이전하였다가 현 위치에 이축하였으며 1988년 대성전 및 담장을 보수하였고 1989년에는 명륜당을 해체보수 하였다.
덕포진
사적 제292호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105번지 덕포진은 서해로부터 강화만을 거쳐 서울로 진입되는 인후인 손돌항에 천연의 요새를 이 용한 군사의 요충지로 창설시기는 임진왜란의 쓰라린 체험을 겪은 조선왕조의 선조조로 추정된다. * 가는 길 : 올림픽대로 끝부분인 개화로타리에서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쪽으로 가다가 17.6㎞ 지점인 누산리 삼거리(양촌주유소)에서 좌회전, 양곡에서 352번 지방도로를 타고 8㎞쯤 달리면 대명포구 못믿쳐 오른쪽으로 덕포진 안내판
애기봉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리 208 에 위치한 애기봉은 병자호란때 평양감사와 기생인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있는 곳으로 지금은 북녘땅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기쁨과 아픔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북에 서 마주 건너다 보이는 산으로 크리스마스가 되면 대형트 리를 세워 성탄을 축하하고, 4월 초파일에는 법회를 여는 등 각종 종교행사도 열린다. 서울에서 교통도 편리하고 단체로 견학할 수 있는 곳이며, 실향민의 망배를 위하여 '93년에 망배단을 세웠다. * 가는 길 : 신촌이나 인천에서 직행버스를 이용, 영등포에서 강화운수 1번버스를 타고 월곶면 군하리에서 하차 택시를 타고 10분 소요 * 문의 : 애기봉관리사무소(031)988-6128
조각공원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고막리 산82-1외 1필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난해 개장하여 이제는 월곶면의 자랑이된 조각공원은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이 산책로 코스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산책을 하면서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새로운 산책의묘미를 느낄수 있다.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그리고 친구와 함께 숲과 잘 어우러진 조각품을 보면서 걷는 느낌 정말 추천하고 싶다. 힘들지도 않으면서 누구나 편안히 산책할 수 있도록 길도 잘 닦아 놓았다. 그외 매점, 농구장, 잔디밭, 테니스장, 레포츠공원 등 부대 시설을 갖추고 있다.
봉수대지(烽遂臺址)
김포시 월곶면 군하리 323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김포시청에서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방면으로 가다가 오리정 교차로에서 직진하여 100m 정도를 직진하면 좌측으로 봉골이라는 지명의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이 마을의 위쪽은 군 훈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데, 훈련장에서부터 산길을 따라 표고 180m의 산꼭대기가지 500m 정도를 올라 가면 곳곳에 다듬은 석재가 널려있고, 산의 정상부에는 5평의 평탄한 대지가 마련되어 있다. 당시 이곳에는 봉수군 103명, 장수 1명 그리고 監官(감관), 監耉(감구) 약간 명이 주둔할 정도로 그 규모와 역활이 컸던곳이지만, 현재는 석축이 모두 무너져 내리고 臺址(대지)만 남아 있다. 더우기 군사시설의 설치를 위해 콘크리트 작업을 해서 봉수가 있었던 정상부분은 완전히 유실되었고 주변에는 참호를 파 원지형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장릉
경기도 김포시 풍무동 산141-1에 위치한 장릉은 사적 제 202호로서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황후 구씨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중기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고 있는 듯 하고 능아래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으며,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건물이며, 능주위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고, 서울에서의 교통도 편리해서 휴일이면 이곳으로 야유회를 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 가는 길 : 신촌시외버스터미널이나 인천터미널에서 강화행 버스 이용 김포직행터미널 하차하여 길훈아파트행 마을버스 이용, 장릉입구 하차 * 문의 : 문화재관리국 장릉 관리사무소(031)984-2897
<성남시>
남한산성
이 산성은 온조때 하남위례성에 말갈족의 침입이 있으므로 청량산을 중심으로 고지대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요세지인 이곳으로 온조 14(BC5)년 천도하였으며 신라 영역이 된 후로 문무왕 12년 토성으로 축성하고 주장산 또는 일장산이라 하였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성곽의 주변부가 높고 험악한 데 비해 성의 중심부가 낮고 평평한 평지를 이루어 수비가 용이하고 성내의 주거가 평안하여 산성으로는 좋은조건이라고 할수 있다. 성은 본성과 외성으로 구성되었으며, 둘레는 9.05Km이고 높이는 3m ~ 7.5m이고 4장대 (서장대만 존재), 4문, 5옹성, 16암문, 2봉화대가 있고 성내에는 군포 125, 지당 45 정호 80, 수대 8개소가 있었다. 유사시에는 임금이 이어할수 행궁을 비롯하여 종묘, 사직, 관아 재옥, 객사, 종각등이 있었으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없다. 사찰은 축성전부터 망월사, 옥정사가 있었으나 천주사, 한흥사, 장경사, 동림사를 지어 모두 9개 사찰이 있었으며, 현재는 장경사, 망월사, 개원사, 국청사를 복원하여 4개의 사찰이 있다. 성내의 저정된 문화재로는 성곽이 국가사적 57호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지방 유형문화재로 수어장대, 청량당, 숭열전,현절사, 침괘정, 연무관, 문화자료 지수당, 장경사 기념물로는 망월 사지, 개원사지 등이 있다. 이 성은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45일간 항전하던 곳이며 비록 스스로 항복하였으나 외침에 의하여 정복당한적이 없는 성이다.
희망대공원
성남시 수정구 신흥동 2344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남시의 도심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활기 차고 의욕 넘치는 시 발전상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가 있을 정도로 전망이 좋으며, 주변에는 성남시의 도약전진을 상징하는 시 마크로 장식된 상록수정원과 우뚝 세워진 시민헌장비는 겸허한 시민상을 되새기게 한다. 이곳의 시설에는 운동시설인 게이트볼장, 배드민턴장 테니스장을 비롯하여 편의시설인 전망대, 주차장이 있으며 야외무대 및 벽천분수를 설치하였고 교양시설인 청소년회관 및 특히 도서관이 자리잡고 있어 내일의 이 지역사회를 이끌어갈 초중고 학생들이 불철주야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도서관 아래쪽으로 유희시설인 스카이 싸이클외 8종이 설치되어 있어 인근 어린이들의 놀이시설로 애용되고 있으며, 도시의 삭막하고 획일적인 환경속에서 도시 시민들의 정서함양 및 쾌적한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아침에는 시민들의 운동 및 산책로로 많이 이용하고 있다.
봉국사 대광명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성남시 수정구 태평2동 216-2 에 위치한다. 이절은 1674(현종15)년 요절한 현종의 두딸 명선, 명혜 공주의 명복을 빌기위해 왕비의 주선으로 금강산의 승려 축존에게 명하여 공주의 무덤이 있는 바깥동리인 이곳 성부산 아래에 절을 짓게하여 봉국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 봉국사 대광명전은 그 후 6·25동란으로 퇴락하여 1958년 비구니 법운이 중수하 였고, 1974년 현재의 모습으로 해체복원 하였다. 이 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지닌 주심포 양식의 아담한 건물이다. 전각내부의 불단위에는 화려한 닷집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불단에 안치된 불상은 대광명전의 주존이어야 할 비로자나불이 아니고 아미타불인데 이 불상은 창건시인 조선후기의 불상양식을 보이고 있다.
토지박물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217에 위치하고 있다. 땅의 변천사 뿐만 아니라 미래의 토지이용까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내용은「토지와 인간」이라는 주제하에 토지의 생성, 자원 현황, 토지와 역사, 토지의 개발, 랜도피아(Landopia)건설 등의 내용으로 꾸며져 있으며 특히 선사시대의 타제석기, 토기류 등 출토유물 뿌만 아니라 옛 토지문서, 매매기록, 명당에 관한 문서 등 2천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 토지이용의 과거와 현재·미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모형물로 재구성했으며 「조선초기 한양의 모습」,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인 「화성(지금의 수원)」등 당시의 웅장한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 문의 : (031)738-8995
황송공원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 산9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요시설물로 각종 운동을 즐길 수 있으며, 특히 교통교육장은 어린 아동들에게 교통법규의 중요성을 이론교육이 아닌 현장교육을 병행하여 실시,교통법규 습득에 많은 도움이 되도록 하였다. 또한, 공원내 등산로 진입부 및 피크닉장,휴게시설 주변에 여러종류의 아름다운 수목 느티나무의 26종 50,000여주,초화류 다년생 식물등을 식재하는등 공원을 이용하는 시미들의 정서함양은 물론 체력증진에 도움을 주고자 하였으며, 공원 이용자의 편의를 위해 138대를 주차 할 수 있는 주차장도 설치하여 시민들이 공원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휴식공간을 갖추었다.
망경암 마애여래좌상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02호로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55-8 에 위치한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빼어난 조망의 망경암의 자연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그안에 불상을 새긴것이다. 불상 주위에는 군데 군데 암석면을 고르게 다듬고 그 안에 명문을 새긴 곳이 14군데나 된다. 이 불상은 결가부좌한 좌상인데 왼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륭마촉지인(陸魔觸地印) 같이 무릎위에 놓은 모습이며, 양 어깨를 덮은 통견의 불의를 입고 있다. 그 외 양식이나 조각술등에 뚜렷한 특징이 없는 불상 자체도 그다지 우수한 것이 아닌 조선말기의 불상이다. 그런데 이 불상의 머리는 소발(素髮)이며 형식도 불상의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명문에 있듯이 1897년에 조성된 관음상이라면 절대연대를 가진 작품으로 특히 칠성신앙도장과 관련하여 주목된다고 하겠다.
중앙공원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산 1-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장산(해발88M) 자락으로 기존 지형 및 수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도 새로이 식재되는 수목은 기존의 벌목될 야생수목을 이식하여 향토적인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시민이 쉽게 접근하여 이용 할 수 있도록 계단이 없는 유교 4개소와 투수콘포장 산책로를 설치하였다. 만남, 피크닉장, 휴게등의 활동을 할 수 있는 잔디광장 4개소, 역말꽃마당, 상록수광장, 야외무대, 야외공연장등을 설치하고, 지석묘인 고인돌 10기등을 모은 고인돌 정원, 한산이씨 종가댁등 지방문화재도 이곳에 복원하였다. 특히 공원을 가로지르는 분당천을 유입하여 경주 안압지와 같은 전통미를 살린 3,800평규모의 연못을 조성하고, 연못 중앙 및 주변에 섬을 만들어 3개의 전통적양식인 아치형 돌다리를 연결하여 물가를 산책할수 있도록 하였으며, 이곳의 옛이름을 따서 지은 돌마각 및 수내정을 지어 도심속에서 옛것을 감상하고 조망하며 즐길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율동공원
성남시 분당구 율동, 분당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 가는 길 : 좌석버스(119, 200-1, 2000), 마을버스(3, 222-1), 도시형버스(17-1, 200) * 문의 : (031)704-6266
<안성시>
청룡사대웅전(靑龍寺 大雄殿)
보물 제824호로 서운면 청룡리 28 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원종 6(1265)년 창건되고 공민왕 때 중건되었으며, 다시 조선후기에 중건된 건물이다. 다포계(多包系)의 팔작집인데, 공포는 안팎이 다 삼출목으로 되어있고, 앞면은 겹처마인데 뒷면은 홑처마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내부가구가 모두 드러나 있고, 측면의 기둥에서 대들보 위에 걸쳐지는 충량(衝樑)이 3개씩 있어 매우 특이한 구조를 보여준다. 공포의 쇠서에 봉오리를 새겨 조선후기의 기법을 보여 주는데, 살미 끝이 곧개 잘려진 첨자형의 공포를 가진 건물이다.
칠장사
벽초 홍명희의 임꺽정 역사 소설의 일곱도적과 병해스님 얘기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하다. 매년 신도 및 관광객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으며, 연간 관광객수는 약10,000명 이상이 다녀가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위에는 울창한 숲이 우거져 경관이 화려할 뿐만 아니라 칠장사주변에 있는 마을에서는 옛날부터 대나무로 만드는 조례미 수공예품도 구입할 수 있어 관광객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관광명소이다. * 가는 길 : 안성 시내에서 완행버스를 이용, 죽산 하차(25분 정도 소요), 죽산에서 칠장리까지는 하루 3회 운행하는 마을버스나 택시 이용(소요시간 약 25분) * 위치 :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리 764
태평무전수관
사곡동 31 에 위치한 곳으로 태평무 원형보존과 후학양성의 목적으로 개관 연습장, 공연장, 강의실, 전시실로 구성 연 2회의 정기공연, 태평무 전수, 일반인 대상 교육 태 평 무 중요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는 나라의 평안과 태평성대를 기리는 마음을 춤으로 표현한 궁중무용으로으로 경기도도당굿에서 행해진 무속음악과 무속춤을 1900년대 명무가였던 한성준이 재구성한 것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의상과 함께 신명이 넘치는 춤사위에 발디딤이 돋보이는 것이 큰 특징이다.
안성향교 (安城鄕校)
문화재자료 제27호로 목조 기와지붕 창건된 역사는 임진왜란 전으로 상당히 오래인 것 같으나, 현재 곳곳에 근대식 보수의 흔적이 눈에 뜨인다. 조선 제11대 중종 27년(1532)에 창건한 것이라고 한다. 대성전(大成殿)과 명륜당(明倫堂), 풍화루(風化樓), 동·서제(東西齊), 삼문(三門)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間, 측면 2間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정면 5間, 측면2間의 굴도리집 양식의 홑처마 맞배 지붕이다. 풍화루는 정면 11間, 측면 11間이다. 1969년 11월 3일∼12월 3일 까지 보수공사를 하였다. 관리인이 바로 부근에 거주하며, 관내 유림들의 내왕과 관심으로 보존은 양호한 편이다.
안성객사 (安城客舍)
보개면 양복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시대 건축인 주심포 양식의 객사(客舍) 건물을 주건물 좌우에 붙어 뻗어나온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주되는 건물이 중앙에 있고 양 옆으로 부속사가 있는 날개집(翼舍)으로 주건물인 중앙에 3間, 양족에 익실이 각2間, 측면이 3間으로 이루어진 주심포양식의 배흘림이 약간 있는 건물로서, 수덕사 대웅전(1308년 국보 49호)과 강릉 객사문(고려말 국보51호)과 같은 주심포양식을 띄고 있다고 밝혔다. 객사란 고려 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 하는데, 외국사신이 내왕할 때 묵던 숙소였다. 전형적인 객사의 외형을 하고 있는 이 건물의 지붕에서 「와장승인묘안 숭정후육 십팔년 을해 (瓦匠僧人妙案 崇禎後六十八年乙亥)」라는 명문 암막새가 발견돼 1635년, 즉 17세기초에 중수되었음이 밝혀져 이 건물의 축조연대는 14세기로 추정된다고 한다.
죽주산성 (竹州山城)
기념물 제69호로 토석 안성시내에서 동북방 약17킬로미터 떨어진 매산리 뒷산 비봉산정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현재 높이 2.5m 가량의 석축만이 남아있다. 산성내에는 낙엽송 및 잔솔이 숲을 이루고 골짜기 남쪽으로는 논들이 흩어져 있다. 당시 동문이었을 듯 한 자리에 장대석과 석재가 흩어져 있고 정남쪽에는 남문으로 보이는 문이 남아 있으며 장대지(將臺址)로 보이는 곳에 4개의 주춧돌과 깨어진 기왓장이 흩어져 있다. 이 죽주산성내에는 사당이 있는데, 이 사당은 죽주방호별감으로서 몽골군의 침입 때 발군의 공훈을 남긴 송문주 장군의 전공송각이다. 송문주장군은 고종 23년에 죽주방호별감이 되어 죽주산성을 방어할 때 몽골병이 죽주산성에 이르러 강복을 권유하자 성에서 출격하여 몽골병을 물리쳤고 몽골병이 다시 포로 공격하여 사문이 무너졌으나 성중에서도 포로써 반격하였으며 무려 15일간 다방면으로 성을 공격한 몽골병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공성구를 불에 태운 후 물러갔다. 장군은 이 공으로 좌우위장에 승진하였다.
3.1만세운동
안성에서 3·1 운동이 전개된 것은 3월 11일에 읍내에서 였다. 당시 상인들은 철시하여 이에 동조하였으나 일제 경찰이 출동하자 해산하는 비교적 평화적인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후의 산발적인 만세운동과 서울에서 귀향한 학생들에 의해 점차 식민통치에 대한 불만은 고조되어 갔다. 그리하여 3월 29일에서 4월 2일까지의 안성읍과 4월 2일 일죽, 죽산 시장에서 잇달은 만세운동이 있었고, 심지어 군청으로 몰려가 수 천명이 연좌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안성지역의 곳곳에서 뒷산이나 앞산에 올라가 횃불을 신호로 일제히 결집하여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이러한 산발적인 시위를 극복하고 실력투쟁으로 진전시킨 것이 4월 1일의 원곡, 양성지역 독립운동이다. 원곡, 양성 역시 3월 10일 이후 산발적인 만세운동이었다. 그러나 원곡면은 사전 연락으로 3월 28일 내가천리 이시련(李時連) 집에 모여 대대적인 독립운동을 계획했다. 이어 마을 단위로 봉화시위를 시행하여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 4월 1일 1,000여명이 면사무소에 집결하였다. 이들은 면장인 남길우(南吉祐)와 서기 정종두(鄭鍾斗)에게 태극기를 주어 만세를 부르게 한 후 선두에 세워 양성으로 향해 나갔다. 접경지역인 성은고개에 이르러 시위군중은 각각 각목과 농기구 등을 지참하여 양성면으로 진행하던 중 그날 시위운동을 전개했던 양성면민 1,000여명과 합류하여 시위대는 2,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시위대가 주재소로 향해 돌진하자 순사와 순사보는 그 기세에 압도되어 피신하기에 급급했다. 분노한 군중은 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 등을 차례로 파괴 방화하고, 일본인 잡화상과 고리대금업자의 가옥도 전수·파괴했다. 그리고 일제 주구들의 탄압에 대비하여 이곳으로 통하는 교량을 차례로 제거한 후 산속으로 피신하였다. 일제는 현지의 경찰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조선 주차군 제40여단 79연대 소속장교와 사병 30여명을 지원받아 주동자의 검거에 나섰다.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가족들을 협박하였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둘 수 없었다. 이에 회유책으로 4월 19일 현 원곡초등학교 뒷산에 모아놓고 모든 사실을 불문에 붙이고 용서한다고 했다. 일제의 공포에 짓눌렸던 가족들은 주동자들을 설득하여 이곳에 나가도록 했다. 그러자 일제는 총검으로 사방을 포위하여 도주하는 자는 사살(현장 순국3명)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질렀다. 또 6월 1일에도 하사 이하 36명을 투입하여 나머지 색출에 나섰다. 이들은 가족들의 협박은 물론이고 민가에 난입하여 방화 약탈 등을 자행 했다. 그러나 일제의 빈틈없는 색출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주동자들은 피신하여 후일을 도모하였다. 이처럼 원곡, 양성의 3·1운동은 일제의 탄압에 맞선 무력투쟁이었다. 물론 일제의 야만적인 토벌로 소기의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여주군>
파사성지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천서리 산8-10에 위치해 있으며, 해발 230m(파사산성지) 정상(頂上)을 중심으로 하여 5각형 둘레로 경사가 가파른 곳을 이용하여 석재(石材)로 축성하였다. 주위는 약 943m 동문(東門)은 송촌리(松村里)를 향(向)하고 남문(南門)은 당남리(塘南里)와 남한강변(南漢江邊)의 흥천면(興川面) 계신리를 향(向)하였다.
백로 및 왜가리 서식지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신접리 285에 위치하고 있으며, 여주읍에서 동북 방면으로 약 8km에 북내면 소재지가 위치하는데 이 곳 당우리 삼거리에서 1km 떨어진 곳에 신접리 마을이 있다. 마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약 2,000평 미만의 번식지에는 중앙에 약 400년생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여기에서 집중적으로 번식해 왔다. 이들은 하루종일 햇볕이 들고 물이 가까우며 들이 넓은 주위에 번식지를 정하고 봄이면 왔다가 가을이면 떠나는 철새다. 최초 1950년도에 교목(橋木)인 은행나무에 번식이 시작되면서 은행나무가 고사(枯死)하자 주위 숲으로 퍼져 번식하는데 이들의 배설물에 의해 대개의 나무가 고사하였다. 현재는 왜가리와 백로 일부만 남아 둥지를 틀고 500m 떨어진 남쪽 리기다 소나무림에 많은 무리가 집단을 이루고 있다. 매년 3월 하순에 찾아와 9월말 경 월동을 위해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로 이동해 간다.
고달사지
여주 혜목산 고달사지는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번지 일대에 위치하며 수리적 위치는 북위 37˚23´95˝, 동경 127˚39´65˝이다. 군의 북부지역에 있는 북내면은 1914년 군내의 북면(北面)과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地內面)을 합하고 강천면 가정리를 편입하여 이루어진 면이다. 자연적 입지는 해발 400~500m의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盆地)의 서북쪽 고달산(혜목산, 현지명은 우두산) 동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유적은 여주읍에서 여주교을 건너 우측으로 원주방면 42번 국도를 따라 약 2km 진행하면 좌측으로 용문방면 331번 지방도가 나온다. 지방도를 따라 약 8km 정도 진행하여 고달사지 표지판을 보고 좌측길로 접어들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고달사지가 위치한다. 고달사는 곧 고달원(高達院)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이래의 유명한 삼원(三院) 즉 도봉원(道峰院), 희양원(曦陽院), 고달원(高達院) 중의 하나로 고려시대에는 국가가 관장하는 대찰이었으므로 왕실의 비호를 받았던 곳이다. 현재 이곳에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부도와, 보물 제 6·7·8호로 각각 지정되어 있는 원종대사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원종대사혜진탑, 고달사지석불대좌 등이 남아있는데, 이들 석조유물들은 하나같이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분출하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여주향교(驪州鄕校)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로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원래 여주향교는 여주읍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에 타버린 후 1685년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에 다시 건립하였다. 그런데 그후부터 부락 주민이 자주 괴질에 희생되고 풍수학상 불길하다 하여 교리(校里)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東齎), 내삼문(內三門), 각 8칸의 동무와 서무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대성전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익공계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여주 향교는 강학(講學)공간이 명륜당으로만 축소되어 규모가 크지 않으나 건물들은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성황후탄강구리비(明成皇后誕降舊里碑)
조선 제26대 왕 고종의 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생가옆에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다는 방이 있었던 자리에 그녀의 탄강을 기념해 세운 비이다. 명성황후는 1851년(철종 2) 여주에서 태어나 1866년(고종 3년) 왕비로 책봉된 뒤 조선 말의 격동기를 보내다가 1895년 일본자객에 의해 시해되었다. 1897년 명성황후로 추봉되고 1904년 여주의 생가에 이 비가 세워졌다. 비 앞면에는 「명성황후탄강구리(明成皇后誕降舊里,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광무팔년갑진오월일배수음체루경서(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淚敬書, 광무 8년 갑진 오월 어느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라고 새겨져 있다. 비의 높이는 250cm, 폭 64cm이며 비각정은 측면 각1칸(1.4평)에 익공양식이며, 팔작지붕이다.
고달사지 부도(高達寺址 浮屠)
국보 제4호로 높이 3.4m인 부도의 전체 구조는 원종대사 부도와 비슷한 팔각원당형이나, 지대석에서 완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원종대사 부도보다 앞선 연대의 것으로 추측된다. 원종대사 부도는 4개의 돌을 정교하게 짜맞춘 데 비해이 부도는 팔각의 지대석을 놓았다. 기단부·탑신부·지붕돌을 모두 갖춘 전형적인 팔각원당형으로, 신라의 양식을 비교적 정직하게 이어받은 고려시대 초기 부도의 빼어난 작품이다. 지대석은 중심에 놓인 팔각 대석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매의 판석으로 짜여 있다. 지대석 위로는 두툼한 돌로 굄대를 놓아 다소 높다는 느낌을 준다. 아래 부분은 안상을 음각으로 새겼는데, 그 중심에 귀꽃모양의 안상을 한 면에 한 구씩 꾸민 것이 이채롭다. 상단에는 연꽃을 복련으로 둘러 피개 해 시원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중대석의 둥근 몸돌에는 거북을 중심에 두고 네 마리의 용이 구름 속에서 노닐고 있다. 정면을 향하고 있는 거북머리는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는 있지만, 주변에 정교한 솜씨로 다듬은 용머리와 힘이 넘치는 그들의 몸짓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사실감을 주며 웅장하기 까지 하다. 큼직한 연꽃이 앙련으로 돌려진 받침 위에 팔각 상대석을 놓고 몸돌을 안치하였다. 팔각 몸돌에는 정면과 후면에 자물통이 달린 문짝과 창살문, 사천왕이 번갈아 조각되어 있는데,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몸매의 균형이 잘 잡힌 사천왕상이 돋보인다. 두툼한 지붕돌이 자칫 투박해 보일 수도 있겠으나, 여덟 귀의 전각을 날렵하게 들어올린 큼직한 귀꽃이 이를 상쇄시키고 있다. 지붕돌 처마 밑에는 아름다운 비천상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부도의 주인이 지금 천상세계에 머물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붕돌 정상면에 이르러 복련을 두르고 상륜부를 받치도록 하였으나, 현재 상륜부는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보개만 남아 있다. 그 위에 찰주를 꽂기 위한 원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상륜부는 매우 화려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 위치 :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 411-1
명성황후생가(明成皇后生家)
유형문화재 제46호로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황후로 개화기 국정에 참여하였으나 을미사변으로 일인에 의해 시해되어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던 명성황후 민씨가 출생하여 16세까지 살던 집이다. 1687년(숙종 13)에 왕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墓幕)으로 건립되었는데 당시 건물로서 남아 있는 것은 안채 뿐이다. 최근에는 1975년과 1976년에 안채가 중수되었고 1996년에는 안채가 수리되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솟을대문을 가진 一자형 행랑채가 서고 그 뒤에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ㄱ자형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서 튼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으로 一자형 별당채가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안채는 14칸 규모의 민도리집인데 8칸 규모의 팔작지붕 본채 한쪽에 6칸 규모의 맞배지붕 날개채가 붙어 ㄱ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본채는 전면에 퇴칸(退間)이 있는 오량구조인데 2칸 안방과 4칸 대청, 1칸 반 건넌방, 2칸 부엌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날개채는 3량 구조로 안방 앞쪽에서 꺽이어 1칸 반 온돌방과 3칸 부엌, 1칸 반 광이 위치하고 있다. 이 집은 재목도 그리 크지 않고 간살도 넓지 않으나 부재의 형태와 결구법 등에서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 위치 :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능현리 250-2
<의왕시>
청계산
해발 618m의 청계산은 고목이 우거져 산세가 수려하고 500m에 달하는 계곡에는 항상 맑은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시민들이 즐겨찾는 의왕시의 자랑이다. 푸른 용이 산허리를 뚫고나와 흰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예전에는 청룡산이라고도 했으며 관악산과 함께 서울을 지켜주는 '좌청룡 우백호' 로 알려진 명산이기도 하다.
청계사
의왕시 청계동 11번지에 있는 청계사는 경기도지정문화재자료 제6호로 해발 618m 청계산 중턱에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고려 충렬왕 10년(1284) 시중 조인규에 의해 중건된 청계사는 중형사원으로 사원규모와 가람(사찰)의 배치는 조선시대 전형으로 보인다. 조선 연산군이 도성내에 있는 사찰을 없애고 그곳에 사찰을 세우자 불교측에서는 이 곳을 선종의 본산으로 정하였다고 한다. 안양에서 동쪽으로 10km 정도 떨어져 있는 청계사의 현재 사찰 모습은 1955년 이후 역대 주지스님들의 정성스러운 증수로 이루어 졌다. 사찰내에는 조선 숙종 15년(1689)에 세운 청계사 사적기비(174cm×92cm×26cm)가 있고 조선후기의 건물로 보이는 극락보전이 있다. 극락보전 중앙에는 주존불인 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고 좌우에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이 협대하고 있다. 그리고 산신각, 봉향각, 요사, 삼성당, 감로지 등이 자리잡고 있다.
백운산
백운산은 산봉우리가 항상 구름에 싸여 있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의왕시의 동쪽에 위치한 산으로 산세가 깊고 험하여 관악산에 버금가는 등산 코스로 알려져 있다.
백운사
의왕시 왕곡동 산3번지 백운산 능선에 있는 백운사는 경기도지정 제 36호의 전통사찰로서 고종32년(1895) 청풍김씨종중에서 건평20평 규모의 암자를 세운 것이다. 백운사는 원래 19세기말에 창건되었다고 하며 현재의 백운사에서 3km정도 올라간 지점에 있었으나 고종 31년(1894) 산불로 소실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 새로 지었다. 그 후 1916년, 1955년, 1971년, 1999년, 네 차례에 걸쳐 증수, 개축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현재 그 곳 빈 절터에는 주춧돌과 기석, 그리고 기와조각이 산재하여 있을 뿐이다.
철도박물관
철도박물관은 의왕시 월암동에 있는 관광명소로 1988년 1월 26일 문을 열었다. 철도박물관은 민족의 애환과 낭만을 같이 한 철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산 교육장으로서, 과학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박물관의 본관은 철도역사실, 차량실, 모형철도파노라마실, 전기·신호·통신실, 시설·보선실, 운수·운전실, 세계철도실로 구성되어 있고 옥외차량 전시장에는 증기기관차·디젤동차·귀빈객차 등 실물차량을 전시, 총 2,677점이 선보이고 있다. 모형철도 파노라마실은 도심의 빌딩숲을 비롯한 전국을 누비는 철도의 운행상황을 보여주고 있는데 총연장 289m의 선로가 거미줄처럼 깔려있고 그 위에 실물의 1/87 로 축소 제작한 새마을호 등 13개 열차가 중앙 집중제어장치에 의해 운행되고 있다. 특히 열차들이 야간운행을 할 때는 여의도의 63빌딩, 남산타워 등이 휘황 찬란한 빛을 발하고, 하늘에는 별이 반짝이는 등 환상적인 서울의 야경을 만들어 낸다. 철도박물관은 우리나라 철도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일 뿐 아니라 과학관 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어 교육장으로서의 기능을 다할 것으로 기대된다. * 관람료 : 일반 (19~64세) : 500원, 일반단체 (30인 이상) : 400원, 할인 (7~18세) : 300원, 할인 단체 (30인 이상) : 200원, 6세 이하 어린이, 노인, 장애인은 무료
백운호수
의왕시 학의동에 있는 백운호수는 1953년 9월에 준공을 한 인공호수다. 백운산과 청계산이 둘러싸고 이들 산 계곡의 물이 호수로 흘러들기 때문에 물이 맑고 주변풍치가 매우 좋다. 호수가 생긴 뒤 아름다운 주위 풍치 때문에 저수지 주변 일부가 유원지화 했고 그 후로는 낚시보다는 행락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유원지에는 방갈로와 여관 등 숙박시설과 음식점, 카페 등이 고르게 갖추어져 있고 호수에는 유선을 띄우고 있다. 이 곳의 별미로는 민물매운탕이 있고 대형주차장과 차집관로, 호수순환도로 를 개설해서 주민의 이용편의를 도모하였으며, 백운호수를 중심으로 도시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자연학습장
푸른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의왕시는 시민들이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곳곳에 자연학습장을 조성해 놓고 있다. 현재 규모가 가장 큰 모락산 자연학습장은 정상을 중심으로 내손동과 오전동 지역 에 조성되어 있으며 모락산은 11㎞읜 산림욕장이 있어 산림욕을 즐기며 자연생태계에 대한 학습을 함께 할 수 있는 장소다.
<평택시>
충의각
충의각은 조선 중종 때 인물인 정암 조광조(1482~1519)선생과 인조 때 인물인 추담 오달제(1609~1637)선생의 넋이 담겨 있는 유허지비를 보존하는 비각이다. 유허지비는 당시 진위유림에서 어릴 때 조광조 선생이 학문을 배우며 지냈던 곳이자 삼학사의 한분인 오달제선생의 옛집이 있던 곳에 비를 세울 수 있도록 나라에 소를 올려 허가를 득하여 1800년 세우게 된 연유를 지닌다. 정암 조광조 선생은 중종 때 사림파의 거두로서 왕도정치를 주장하고, 사회개혁을 하는등 혁신적 정치를 꾀하다 실각한 분이며, 당시 진위 유림과의 교우가 두터워 경포산인 최수성, 오좌동의 개척자 최자반 선생들과 시론했다고 진위 현.읍지에 나올만큼 송탄에 그의 유지가 남아 있다. 추담 오달제 선생은 병자호란 때 척화론의 거두로 순절한 삼학사의 한 분이며 현 동령마을에 옛 집터가 있었다고 한다. 이 두 분으로 인하여 이충동이란 마을명이 있게 되었다. * 가는 길 : 대중교통(평택에서 2-2번 버스 승차, 송탄부영아파트 2단지에서 하차, 도보 10분), 자가용(1번 국도 송탄 이충주유소 앞에서 동령마을로 진입 5분 소요). * 문의 : 중앙동사무소(610-8604)
평택향교
문화재자료 제 4호로 팽성읍 객사리 185 에 위치한 이 향교는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조선 초기라 전하여 지고 있다. 향교의 배치는 완만한 경사지에 터를 잡은 관계로 강학처소인 명륜당이 앞에 오고, 제사공간인 대성전이 뒤에 오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홍살문을 지나 최근에 쌓은 사괴석 담장 중앙으로 들어서면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 집으로 민도리집양식이다. 명륜당 뒷편으로는 솟을 삼문이 있고, 이 문을 들어서면 대성전에 이른다. 배향공간인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익공을 짜올린 익공식 건축이다.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유림에서 춘추제향을 지내고 있다. * 찾아오시는 길 : (대중교통) 평택시내에서 안정리행 버스 승차, 부용초교 앞에서 하차 , 도보 5분 소요 (자가용) 평택에서 온양방면(45번 국도)으로 진행, 안정리방향. * 문의처 : 팽성읍사무소(691-3003)
진위천유원지
진위면 봉남리(진위천내) 432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659-4142, 659-5067(사무실) 610-8385, 664-3000(유원지). 입장료 : 개인(대인 1,000원, 소인 500원), 단체(대인 800원, 소인 400원). * 찾아오시는 길 : (국도) 서울▶수원▶오산▶하북삼거리에서 진위면사무소방향, (국도) 안성(천안)▶평택▶송탄▶하북삼거리에서 진위면사무소방향, (버스) 평택에서 오산방면 2번, 2-2번 버스 5분마다 운행, 수원,천안에서 직행버스 5분마다 운행
평택호관광지
현덕면 권관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호수주변에 위치한 잔디밭과 솔밭, 오솔길 등 휴식장소, 주변횟집에서 싱싱한 회와 장어구이, 꽃게요리 등 먹거리, 방조제사이의 도로에서 보이는 시원한 바다, 평택호 호수 위의 요트 및 유람선, 평택호친수공간으로 조성된 수변데크, 배수관문 앞 평택호 기념비와 평택정, 호숫가의 석축등을 볼수 있다. * 찾아오시는 길 : 버스(아산시, 삽교행 직행버스 08:30분부터 수시, 안중행 시내버스 15분간격), 자가용(평택에서 안중을 거쳐 39번 국도를 따라 서산방면으로 20여분 소요, 서울에서 90km(80분 소요) , 수원에서 45km(45분 소요), 온양에서 18km(25분 소요)
민세 안재홍생가
기념물 제 135호로 고덕면 두릉리 646 에 위치한 이 건물은 해방을 전후한 시기에 시대의 선구자이며 대표적인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던 민세 안재홍(1891~1965)이 태어나 살던 집이다. 그는 일본 유학시절 학우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에 가담하였고 귀국후 중앙학교 학감, 조선일보 주필 및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언론·교육활동을 통한 민족계몽과 독립사상고취에 헌신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해방 직후 미군정의 한인 최고책임자인 민정장관을 역임하고 1950년 평택에서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6·25동란 중 납북되었다. 가옥은 원래 대문간채까지 있었던 것이나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다. 건물 상량문에 의하면 안채는 1914년, 사랑채는 1932년에 건립되었다. 안채는 "ㄱ"자형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도 지역의 건축형태를 따르면서 20세기 초 생활 상의 변화를 반영하여 부엌과 대청 사이에 연결 통로를 설치하였다. 사랑채 역시 전통가옥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유리창을 설치하는 등 시대적인 변화를 적절히 가미하고 있다. * 가는 길 : (대중교통) 서정리에서 청북행(90분 간격) 승차, 고덕주유소 앞에서 하차, 30분 소요 (자가용) 송탄에서 청북방향, 고덕주유소에서 하차, 20분 소요. * 문의처 : 고덕면사무소(663-2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