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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예철26-2(수업진행) <어톤먼트> 1조: 김예진 김정엽 논제 및 발표자료
영예철26-2,김정엽 추천 0 조회 131 26.10.13 01:3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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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10.13 16:31

    첫댓글 논제1: 예술가가 타인의 아픔을 영화나 소설로 각색했다면, 이는 아픔에 대한 기만인가, 아니면 예술적인 승화인가?
    논제2: 객관적인 사실과 자신이 만들어낸 기억의 왜곡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나가야 하는 것인가?

  • 26.10.13 21:16

    논제1. 속죄는 자기만족인가?
    영화 <밀양>에서 납치범이 아이 엄마의 용서를 받지도 않고 스스로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해 속죄를 마친 후 마음의 평화를 얻은 장면이 등장한다. 이와 유사하게 <어톤먼트>에서 노년 브라이오니는 자전적 소설을 통해 속죄하여 마음의 짐을 덜어내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다면 속죄는 죄와 그 죄에 대한 실질적 책임과는 큰 관계가 없고, 오로지 죄책감이라는 감정과 그 해소, 즉 자기만족에 불과한가?

    논제2. 용서받지 못한 상황에서 용서를 구할 대상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떻게 속죄할 수 있을까?
    브라이오니가 자신이 저지를 죄의 무게를 깨달았을 때, 그녀에겐 용서를 구할 대상인 세실리아와 로비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그렇기에 노년이 될 때까지 긴 시간 동안 죄책감으로 인해 고통받았을 것이고, 이를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녀와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죄를 마주하고 속죄할 수 있을까?

  • 26.10.13 23:02

    논제1. 사랑이라는 마음이 속죄의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논제2. 누군가에 대한 속죄라는 행위는 누구의 기준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 만약 자신의 기준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논제 1: 브라이오니의 소설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들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녀 자신의 죄책감을 위한 것인가?
    논제 2: 그들을 위한 것이면, 로비와 세실리아는 자신들의 '행복한 결말'에 동의할 수 있었는가? 동의 없는 선물도 선물인가?

  • 26.10.14 00:04

    논제1. 각자의 기준에서, 결코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그 죄는 어떤 죄인가?
    논제2. 각자가 피해자가 된 상황에서, 가해자의 사과가 속죄로 느껴지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한가?

  • 26.10.13 23:57

    논제1: 타인의 삶을 해석하고 이야기로 구성하는 행위는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논제2: 예술은 현실에서 바로잡을 수 없는 잘못을 속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가?

  • 26.10.13 23:57

    논제1. 되돌릴 수 없는 비극 앞에서 예술은 무엇을 회복할 수 있는가?
    브라이오니의 글쓰기는 두 사람의 삶을 되돌릴 수 없지만 그들의 사랑과 명예, 누렸어야 할 행복의 가능성을 되살린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연인에게 브라이오니의 예술은 무엇을 회복시켜 주었으며 반대로 브라이오니에게는 어떤 위안과 마음을 되돌려주었을까?

    논제2. 《속죄》라는 제목은 브라이오니가 이룬 것을 가리키는가,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을 가리키는가?
    브라이오니는 노년의 출간을 통해 그들에게 행복한 결말을 부여하고 이를 자신의 마지막 친절이라 칭한다. 그렇다면 속죄는 이러한 브라이오니의 평생의 노력에 대한 인정으로 봐야하는가? 아니면 그럼에도 현실을 되돌릴 수 없고, 'atonment'라는 단어의 '화해와 관계 회복'이라는 의미에 결국 도달할 수 없는 한계에 대한 속죄인가?

  • 26.10.13 23:59

    논제 1. 속죄는 누구의 구원을 위한 행위인가?
    -속죄는 피해자의 고통을 회복하기 위한 행위인가, 아니면 가해자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구원의 과정인가? 피해자의 용서 없이도 가해자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논제 2. 타인의 삶에 대한 서술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글쓰기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수단인 동시에, 타인의 경험을 자신의 관점으로 전유하는 행위일 수도 있다면, 타인의 삶을 대신 서술하는 행위는 구원이 될 수 있는가, 아니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는가?

  • 26.10.14 01:00

    논제 1. 속죄는 결국 생전에 이룰 수 없는 업인가? 가능하다고 하면, 그걸 규정하는 것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논제 2. 진실의 왜곡은 무엇 앞에서 정당화되는가?

  • 26.10.14 13:27

    논제1. 타인의 용서 없이도 속죄는 완성될 수 있는가?
    논제2.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평생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는 뜻인가?

  • 26.10.14 13:34

    논제 1: 책임에 대한 논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평생 후회하면 해당 죄의 책임을 다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나아가서 무언가를 더 해야 하는가?
    논제 2: 브라우니는 세실리아와 로비의 인생을 문학적으로 왜곡시킨 것인데 이게 속죄에 해당이 되나? 오히려 그들의 비극을 기만하는 것이 아닌가.

  • 26.10.14 14:20

    논제 1: 피해자가 부재하거나 속죄를 받아줄 수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 혼자만의 반성과 속죄는 윤리적으로 유효한가?
    논제 2: 타인의 감정과 관계를 이해한다는 오만은 어떻게 도덕적 범죄가 되는가?

  • 26.10.14 15:02

    논제1: 속죄는 이기적인 행위인가?
    논제2: 누군가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을 때,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무엇인가?

  • 26.10.14 15:02

    논제 1. 피해자의 용서 없이도 가해자의 진심 어린 후회만으로 속죄는 성립할 수 있는가?
    논제 2. 타인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비극적 진실을 행복한 허구로 바꾸는 일은 정당한가?

  • 26.10.14 15:11

    논제1. 소설을 쓰는 행위는 진정한 속죄인가 단순 자기위안인가
    논제2. 예술은 잔혹한 현실의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26.10.14 15:16

    논제1. 우리가 믿는 진실은 얼마나 온전한 것일까?
    논제2. 상상이나 허구를 통한 속죄를 통해 용서가 가능할까?

  • 26.10.14 18:18

    1.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더 나은 순간도 있는가?
    브라이오니는 실제로 일어난 비극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로비와 세실리아가 다시 만나는 결말을 만들어 낸다. 그 이야기는 독자에게 위안을 줄 수 있지만, 현실의 진실을 감추기도 한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그대로 전하는 것과 희망을 주기 위해 현실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윤리적인가?

    2. 자신의 해석을 진실이라고 믿는 것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브라이오니는 자신이 목격한 불완전한 장면들을 자신의 상상력과 편견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결국 자신의 판단을 객관적인 진실처럼 받아들인 결과 타인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준다. 자신이 믿는 것이 실제로 사실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신의 판단을 진실이라고 믿고, 타인에게 전달해도 되는것인가?

  • 26.10.14 19:16

    1. 타인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타인의 삶을 왜곡하는 행위가 될 수 있는가?
    2. 현실에서 회복할 수 없는 상실을 예술적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는 나름의 구원이 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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