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부터는 한글 맞춤법 제3절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합니다. 제3절은 제19항부터 제26항까지 모두 여덟 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접미사의 종류나 파생어의 품사 등에 따라 여러 조항으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각 조항에 적용되는 원리는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쉽게 분석해 낼 수 있을 만큼 매우 생산적이고 널리 쓰이는 접미사는 그 형태가 드러나도록 표기하고, 그렇지 않은 접미사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이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럼, 한글 맞춤법 제19항부터 차례차례 알아보겠습니다.
제19항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된 것과 '-이'나 '-히'가 붙어서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는다는 예시를 나타낸 표
단어의 종류는 크게 단일어‘밥, 출렁, 먹다’ 따위와 복합어로 나뉘고, 복합어는 다시 합성어와 파생어로 나뉩니다. 합성어는 둘 이상의 실질 형태소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쌀밥←쌀+밥, 출렁출렁←출렁+출렁, 잡아+먹다←잡다+먹다’ 따위을 말하고, 파생어는 실질 형태소에 접사가 결합하여 하나의 단어가 된 것을 말합니다. 접사接辭는 말 그대로 다른 말에 붙어서 일정한 뜻을 더해 주는 요소를 가리킵니다. 때로는 품사를 바꾸어 주기도 합니다. 앞에 붙으면 접두사이고맨밥←맨-+밥, 시퍼렇다←시-+퍼렇다 따위, 뒤에 붙으면 접미사가 되는 것출렁거리다←출렁+-거리다, 울음←울다+-음, 많이←많다+-이 따위이지요.
우리말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들 중에는 ‘-이’제19항의 1와 ‘-음/-ㅁ’제19항의 2이, 부사를 만드는 접미사들 중에는 ‘-이’제19항의 3와 ‘-히’제19항의 4가 가장 널리 쓰일 뿐만 아니라 규칙적으로 적용됩니다. 이들 접미사들은 개별 어휘들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파헤치거나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형태소를 분석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분석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그 원형을 밝혀 주는 것이 쓰기에도 편하고 읽기에도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접미사 ‘-이’, ‘-음/-ㅁ’, ‘-히’ 등은 소리 변화에 관계없이 원형 그대로 적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것입니다.
다만,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서 명사로 바뀐 것이라도 그 어간의 뜻과 멀어진 것은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는 예시를 나타낸 표
‘굽도리’는 ‘굽다+돌다+-이’로 분석되는데, 이 정보만으로는 이 말이 ‘방 안 벽의 밑부분’을 뜻할 것이리라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무녀리’도 ‘문門+열다+-이’로 분석되지만, 이걸로는 ‘한 태에 낳은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라는 뜻을 유추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두 어간의 본디 뜻에서 멀어진 것이지요. 이런 경우에는 원형을 밝혀 적더라도 뜻을 파악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접미사 ‘-이’ 또는 ‘-음/-ㅁ’이 붙은 경우라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소리대로 적도록 한 것입니다.
어간에 '-이'나 '-음/-ㅁ'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품사로 바뀐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히어 적지 아니한다는 예시를 나타낸 표
‘-이, -음’은 여러 단어와 폭넓게 어울려 쓰이는 접미사인데 반해서, 일부 단어와만 제한적으로 어울려 쓰이는 접미사들도 있습니다. 사실 이런 접미사가 훨씬 많습니다. [붙임]의 용례로 나온 단어들에 쓰인 접미사만 하더라도 ‘-어리귀머거리, -아귀까마귀, -어넘어, -어귀뜨더귀, -암마감, -엄무덤, -우바투, -아미올가미’ 등등 그 수가 무척 많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이런 접미사들은 아예 실려 있지 않거나 ‘옛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만큼 현대의 언중들 사이에서는 쉽게 인식되지 않는 요소인 것이지요. 게다가 이들 접미사들은 품사, 즉 단어의 성격 자체를 바꾸어 버리기까지 하기 때문에 이런 접미사가 쓰인 단어는 어간의 본디 뜻에서도 멀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접미사들을 일일이 분석해서 원형을 밝혀 적도록 하게 되면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나 ‘-음’ 이외의 모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다른 품사로 바뀐 것은 소리 나는 대로 적도록 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죽음’은 ‘윗첨자주금’으로 적지 않고 ‘주검’은 ‘윗첨자죽엄’으로 적지 않는 것이지요.
글_이대성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