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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있어서의 미술과 음악 이론ㆍ기법의 차용
- 김춘수의 「이중섭」 연작을 중심으로 -
김철교(제1저자)ㆍ이승하(교신저자)
1. 들어가는 말
고대부터 시와 그림은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공간 확보가 필요한 그림과, 공간 없이 말로 표현이 가능한 시라 할지라도 어떤 이미지를 표상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지어 시가 ‘글로 그리는 그림’이라는 인식에까지 이르면, 시와 그림의 관계는 더욱 분명해진다. 최근에는 시와 그림과 음악의 관계를 다룬 예술의 융ㆍ복합이 점진적으로 대세를 형성해 가고 있다. ‘현대미술’의 전시장에 가면 음악ㆍ영상ㆍ그림ㆍ사진ㆍ조각 등이 어우러져 예술현장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화가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베토벤을 위대한 예술가의 표본으로 보았으며,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에서 영감을 얻어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를 그렸다. 베토벤은 실러(Friedrich von Schiller, 1759~1805)의 시 「환희의 송가(An die Freude, 1786)」에서 영감을 얻어 <합창 교향곡>을 작곡하였다. 오스트리아 미술관의 대형 벽화 <베토벤 프리즈>는 시와 음악, 조형을 통합한 총체적인 예술을 창조하고자 했던 클림트의 열망을 구현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법에는 법대로(Measure for Measure)」를 읽고 테니슨은 「마리아나(Mariana, 1830)」라는 시를 썼다. 이 시를 바탕으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의 밀레이(J.E. Millais, 1829~96)는 <마리아나(Marian, 1851, 59.7x49.5cm, Oil on Mahogany, Tate Gallery, London)>라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라파엘전파 화가들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많은 그림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백석의 시를 읽고 이중섭이 적지 않은 그림을 그렸으며 또한 이중섭의 그림을 바탕으로 김춘수는 「이중섭」 연작을 썼다.
그림을 보고 시를 쓴다는 것은, 화가가 공간 속에 표현해놓은 선과 색채 이미지를 시간성에 의존하는 시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시인들은 대상이 되는 그림과 작가에 대한 선입견에 얽매어 시를 쓰는 것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 또한 작품과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수용자(독자 및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다. 이처럼 그림을 대상으로 시를 쓰거나, 시 혹은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릴 경우 상대 작품의 이미지에 고착될 수도 있으나 예술가의 상상력과 변주 능력에 따라 원작을 능가하는 작품 생산이 가능하다. 시의 대상(재료)은 일상사든 예술작품(미술, 음악 등)이든 차별성이 없다. 언어로 옮길 수만 있다면, 시인의 상상 력은 비가시적 현상에까지 도달한다.
김춘수는 그의 시론집 의미와 무의미에서 화가(세잔ㆍ폴록ㆍ피카소)들과 음악(모차르트)이 자신의 무의미시론의 형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고 있다. 김춘수의 시론에 대해 오세영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김춘수의 모든 시는 시각적 서술 이미지만으로 되어 있으나, 초현실주의 시는 추상어나 관념어의 활용도 적지 않다. 그러한 의미에서 김춘수의 시들은 일반적인 초현실주의 시에 비해서 확연히 회화적이다. 그 회화성은 그의 단절된 서술 이미지들의 비논리적 제시에서 기인하듯 대체로 추상화적이거나 초현실주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김춘수의 모든 시는 음악적이다. 그의 시에서 특히 반복 원리를 재치있게 살리고 있다. (…) 단어, 시행의 반복과 리드미컬한 음수율의 적절한 활용에 의해 음악적 단순성과 완결성을 주조해 놓으면서도 하나의 선명한 그림을 제시한 작품이다.”
진수미에 의하면, “김춘수의 폴록 인용은 정확한 미술사적 이해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그 통찰과 창조적 적용은 우리 시사에서 보기 드문 것”이다. 또한「처용단장」2부의 음악적 특징을 「처용단장」 1부의 회화성에 대립된 것으로 이해하면서 아울러 <처용단장> 2부도 회화적 원리 위에서 창작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정끝별은, 김춘수가 시창작에 있어 미술이나 음악과 같은 비문학장르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실제로 그것들을 성공적으로 형상화시킨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한다. 정효구는, “이중섭의 그림과 이중섭에 관한 시를 동시에 대하면서 그림이 색채와 선으로 만들어진 시라면 시는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윤정은, 회화를 수용한 시는 작가적 수용과 해석, 독자적 층위의 해석에서 각각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는데, 회화는 1차 텍스트이며, 작가의 시(詩) 텍스트는 2차 텍스트이고, 독자 해석 영역의 시 텍스트는 3차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회화와 시의 상호관계를 밝히고 있다. 김성리는, ‘「이중섭」연작시’에서 환상과 몽타주라는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을 발견하였으며, 모더니즘 회화기법으로서 하나의 차원을 형성한 세잔풍의 추상과 액션 페인팅 기법을 찾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들에서 구체적으로 미술과 음악의 어떤 면이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분석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본고에서는 김춘수의 시에 음악과 미술 이론이 어떻게 접목되고 있는지 그의 시집 남천에 실린 「이중섭」 연작 아홉 편의 시 및 「이중섭 4」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또한 화가(이중섭)의 이미지, 시인(김춘수)의 이미지, 수용자(독자)의 이미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본다.
2.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에 영향을 미친 미술과 음악
1) 무의미시론에서의 이미지
김춘수에게 이미지는 “사람들의 가슴에 그려내는 심적 형상으로, 비유적으로 쓰이든 직접적으로 쓰이든 간에 명확한 사물을 지시하는 단어 또는 구 또는 절”이다. 서술적 이미지(descriptive image)는 이미지 그 자체를 위한 이미지로, 관념의 도구로 쓰이지 않기 때문에 순수하다. 반면 비유적 이미지(metaphorical image)에는 직유(simile), 암유(metaphor), 상징(symbol), 풍유(allegory) 등이 있는데, 이러한 비유적 이미지에 있어서는 이미지가 관념에 봉사하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불순하다는 것이다.
김춘수의 ‘서술적 이미지’는 미술의 ‘미니멀 아트’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미술에 있어서 미니멀 아트란 기본적으로 예술적인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표현했을 때, 현실과 작품과의 괴리가 최소화되어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문학의 경우에 적용해본다면, 언어 사용에 있어서 최대한 경제적으로 절제하여 사용할 뿐만 아니라 비유적이고 추상적인 단어보다는 단순하고 직접적인 묘사를 선호한다는 점에서 김춘수가 말하는 ‘서술적 이미지’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는 대상과 의미는 물론 서술적 이미지마저 극복하고자 했다. 여기에 단서가 붙는다. 김춘수는 “이미지란 대상에 대한 통일된 전망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나에게는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환언하면, 전체 통일적인 이미지는 없어도 단어 하나하나, 구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는 이미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를 말하는 사람들이 흔히 이미지를 수사나 기교의 차원에서 보고 있는 것은 하나의 폐단이다.
나에게 이미지가 없다고 할 때, 나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한 행이나 또는 두 개나 세 개의 행이 어울려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려는 기세를 보이게 되면, 나는 그것을 사정없이 처단하고 전연 다른 활로를 제시한다. 이미지가 되어 가려는 과정에서 하나는 또 하나의 과정에서 처단되지만 또한 제3의 그것에 의해 처단된다. (…) 그러한 그 행위 자체는 액션페인팅에서도 볼 수 있다. 한 행이나 두 행이 어울려 이미지로 응고되려는 순간, 소리(리듬)로 그것을 처단하는 수도 있다. 소리가 또 이미지로 응고하려는 순간, 하나의 장면으로 처단하기도 한다. 연작에 있어서는 한 편의 시가 다른 한 편의 시에 대하여 그런 관계에 있다. 이것이 내가 보니 허무의 빛깔이요 내가 만드는 무의미의 시다.”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는 그리는 대상이나 통일적인 주제는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관객마다 수용하는 이미지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잭슨 폴록의 흩뿌리기 그림에서도 관객은 나름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만약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서 그런 미적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 그림은 낙서나 다를 바 없다. 예술가가 작품을 제작함에 있어서 통일적인 의미의 이미지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수용자에게 무한의 상상력을 통한 다양한 이미지를 생산할 수 있도록 자유를 준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김춘수는 세잔의 기법을 그의 시에 차용하려 했다. 주어진 대상을 간추리고 강조함으로써 응축된 이미지로 대상을 새로 해석하고자 한 것이다. 세잔은 “자연의 모든 형태는 원기둥과 구, 원뿔에서 비롯된다.”는 견해를 밝힐 만큼 자연을 단순화된 기본적인 형체로 집약하였다. 물체의 형태는 의도적으로 단순화되어 있으며 그 윤곽선은 짙은 색으로 처리되어 있다. <비베뮈 채석장에서 바라본 생트빅투아르 산>(1897~1990, 캔버스에 유채, 81.3x63.8cm, 볼티모어 미술관)에 이러한 효과가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가 굳이 자연의 형태를 왜곡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바라는 효과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소한 세부의 왜곡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 그는 자신의 작업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면 전통적인 원근법을 과감히 무시해버렸다.”
세잔이 실제의 모습에서 벗어난 이런 자유로움을 추구한 이유는, 겉모습이라는 일시적인 현상 배후에 깔린 물체의 영원한 속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이중섭도 세잔과 루오의 기법을 활용하여 그림을 그렸다. 굵은 선으로 대상을 간결하게 요약함으로써 겉모습 뒤에 있는 실재를 탐구하려는 것이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는 잭슨 폴록을 지향했지만 「이중섭」 연작은 피카소의 큐비즘에 가깝다. 이미지들이 조각나 있지만, 이들을 모으면 전체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큐비즘에서는 예술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대상과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인식할 수 있다. 반면에 폴록의 흩뿌리기 그림에서는 수용자가 폴록의 작업의도와 유사한 이미지를 얻기가 불가능하다. 김춘수에 의하면, 무의미시의 이미지는 모아놓아도 통일성 있는 이미지, 즉 어떤 의미를 주지 않아야 하는데, 「이중섭」 연작은 이중섭의 삶과 작품에서 얻은 시인의 통일된 이미지(‘그리움과 절망’)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가 의도한 진정한 무의미시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불러다오.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사바다는 사바다,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사바다의 누이는 어디 있는가,
말더듬이 일자무식 사바다는 사바다,
멕시코는 어디 있는가,
불러다오.
멕시코 옥수수는 어디 있는가.
-「처용단장 제2부 5」 전문
김춘수가 자신의 무의미시의 예로 들고 있는 시 「처용단장 제2부 5」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목이 ‘처용단장’으로 주어져 있기에 이 시가 처용의 이미지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독자들은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이 시에서 독자는 말더듬이 일자무식인 사바다와 사바다의 누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용의 아들 처용이 바다 속에서 살 때 이름이 사바다라고 하자. 용궁은 멕시코까지 이르는 큰 나라이며, 사바다는 멕시코 옥수수 밭에서 누이와 지냈던 기억이 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사바다’는 사바다의 누이를 그리워하며 아무 뜻 없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대로 흥얼거리는 리듬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김춘수가 무의미시의 예로 든 「처용단장 2부 5」에서조차도 우리는 나름대로의 이미지로 수용한다. 특히, ‘처용단장’이라는 제목이 대상(용의 아들 처용)을 암시하여 진정한 무의미시라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오히려「무제」라고 제목을 붙였다면 보다 더 무의미시에 근접했을 것이다.
김춘수는 시를 쓰고 있는 이상, 대상도 의미도 이미지도 없는 무념무상의 상태, 즉 초현실주의에서 말하는 자동기술법에 기대어 시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의하면, 무의식에 호소하는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다. 추상화, 특히 초현실주의 그림은 바로 이런 무의식에 기대고 있다. 오세영은 김춘수가 사실상 무의식에 토대를 둔 초현실주의 시를 지향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김춘수 자신은 초현실주의와 자신의 무의미시론과 차별을 두고자 하였지만, 설득력이 없다는 것이 오세영의 입장이다.
김춘수는 무의미시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수정하기에 이른다. “1991년에 발간된 시의 위상이란 저서에서 (…) 무의미시가 ‘내용없는 아름다움’을 특징으로 한다고 강조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무의미라는 의미’와 ‘내용’이 있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논점의 선회를 통해 의미와 내용을 부정하던 태도와는 다른 인식을 보여준다. (…) ‘말이란 반드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시선 속에서 무의미 시론의 변화의 궤적을 감지할 수 있다.” 결국 1990년대 초 처용단장(제3,4부)의 완결을 계기로 그는 지금까지의 무의미 시론을 스스로 해체, 부정하고 의미를 고려하는 일반적인 시의 세계로 귀환하고 만다. 그가 그렇게 불순하게 여겨 회피하고자 했던 이미지, 즉 관념이 담겨진 이미지마저 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2) 이중섭의 그림과 「이중섭」 연작
이중섭은 시를 사랑한 낙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이중섭의 그림에서 시를 읽을 수 있다. 시 쓰듯 그림을 그렸던 그는 언제나 쓸 수 있는 시인을 부러워했고 시인 친구들이 많았다. 이중섭은 백석 등 당시의 시인들의 작품을 적지 않게 섭렵했다. “이중섭의 그림과 이중섭에 관한 시를 동시에 대하면서 그림이 색채와 선으로 만들어진 시라면 시는 언어로 만들어진 그림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둘째, 이중섭의 그림은 세잔과 피카소의 영향을 받았으며, 김춘수의 시도 역시 세잔과 피카소의 그림에서 그의 무의미시를 이끌어 냈다. 특히 세잔과 피카소가 응축된 간결성을 통해 현상 너머를 응시한 것은, 이중섭의 그림의 특징이자 김춘수의 시의 특징이다.
김춘수는 “세잔느가 사생을 거쳐 추상에 이르게 된 그 과정을 나도 그대로 체험하게 되고, 사생은 사생에 머무를 수만은 없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다. (…) 경우에 따라서는 대상의 어느 부분은 버리고, 다른 어느 부분은 과장한다. 대상과 배경과의 위치를 실지와는 전연 다르게 배치하기도 한다. 말하자면 실지의 풍경과는 전연 다른 풍경을 만들게 된다. 풍경의, 또는 대상의 재구성”이라고 밝히고 있다.
피카소는 평면성을 피하면서도 사물을 단순하게 그리고 동시에 입체감과 깊이감을 유지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물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거부하고, 세잔처럼 소재가 가진 확고하고도 변함없는 모습을 포착하려 했다. “어떤 물건, 예를 들어 바이올린을 생각할 때 신체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과 마음의 눈으로 본 바이올린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 단 한순간의 스냅 사진이나 꼼꼼하게 묘사된 종래의 그림보다 이상스럽게 뒤죽박죽된 형상들이 실재의 바이올린을 더 잘 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피카소의 바이올린을 소재로 한 정물화(<바이올린과 포도>, 1912년, 캔버스에 유채, 50.6x61cm, 뉴욕근대미술관) 같은 작품이 그려졌다.
셋째, 이중섭의 그림에는 타고난 낙관주의 성향이 짙게 배어 있다. 박래경에 따르면 “그의 지배적인 정신세계로서 그 하나는 한국인 일반이 진하게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현세주의적 세계관에 근저한 일종의 낙관주의로서 인간의 삶과 그 의미를 범자연적인 화합의 상징성 속에서 찾으려는 하나의 전통적인 정신에서 나온 입장이다. (…) 이중섭의 지상낙원적 테마의 그림들이 피난생활의 현실적 고통 속에서 그려졌다.”는 것이다. 오광수도 이렇게 말했다.
"이중섭의 현실적 생활이 곤궁과 비참으로 점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서는 이 같은 비극적 요소를 찾기는 어렵다. (…) 대부분의 작품은 밝고 건강한 편이다. 특히 인간이 포함된 작품은 한결같이 장난기가 풍부한 해학적 설정으로 저절로 웃음을 머금게 하고 있다. 아마도 그것은 이중섭의 순진무구한 심성의 극히 자연스런 발로일 테지만 삶이 각박하면 할수록 그리움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꿈과 염원을 아로새기려는 한결같은 집념의 소산일 것이다. (…) 자신의 예술이 자신의 꿈을 실현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지니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이중섭의 특성들이 많은 시인들의 호감을 불러일으켰고, 이중섭의 그림을 대상으로 많은 시가 쓰였다. 김춘수도 그 중 한 사람으로 「이중섭」 연작 9편을 쓰고 이렇게 말했다.
"나의 연작시 「이중섭」은 이중섭의 그림 몇 폭을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그의 전기적인 일면과 나 자신의 사적인 경험들이 어우러져 있다. (…) 「이중섭」 연작시는 시로서는 내가 추구하고 있는 지점에서 한 발짝 물러서고 있다. 그에 대한 나의 호기심 때문에 그런 희생을 나로서는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이중섭」 연작을 쓸 때는 한창 무의미시론을 탐구하고 관련 작품을 쓸 때였지만, 그가 무의미시론에서 주장하는바, 의미와 대상과 이미지를 버린다는 주장을 「이중섭」 연작시에서는 유보하였다. 그의 「이중섭」 연작시에서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만날 수 없다는 절망’이라는 통일된 이미지도 읽을 수 있고, 대상과 의미도 버리지 못하였다. “이 작품들은 대체로 유사한 이미지와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다. 의미를 지워버리고자 애쓰는 김춘수의 다른 작품들과 다소 그 궤를 달리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작품들은 다른 시인의 작품과 비교해보면 그래도 의미를 지워버리고자 한 작품으로 특징 지워진다.”
또한, 김춘수는 그의 무의미시를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빚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결과 그가 순수한 이미지라고 했던 서술적 이미지마저도 극복하면 리듬만이 남는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김춘수는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제목도 없으면서 훌륭한 음악이 된 것처럼, 시도 제목이나 대상이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리듬만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염불을 외우는 것은 하나의 리듬을 탄다는 것이다. 이미지로부터 해방된다는 것이다. 탈(脫)이미지고 초(超)이미지다. 그것이 구원이다. 이미지는 뜻이 그리는 상이지만 리듬은 뜻을 가지고 있지 않다. 뜻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준다.”고 주장했다.
1977년 출간된 김춘수의 시집 남천에 붙인 후기에서 “「이중섭」 9편은 연작으로 이 3년 동안의 내 시작의 주축이 되고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73년부터 77년까지 제작된 시들로 구성된 남천의 시편들은 60년대 말부터 시도된 무의미 시론이 어느 정도 성숙된 단계에서 이루어진 시들이라는 점에서 무의미시의 참모습을 제대로 드러내 줄 수 있는 시편들이다.” 「이중섭」 연작시들은 이중섭의 생애 중 불행했던 말년의 삶을 배경으로 한다. 특히 서귀포를 배경으로 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서귀포는 이중섭에게 있어서, 비록 가난했지만, 온 가족이 함께한 행복했던 시절이었고, 가장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했던 곳이다.
“대체로 유사한 이미지와 구성방식을 취하고 있는 9편의 ‘이중섭’ 연작들은, 그의 다른 시들과 마찬가지로 행과 행 사이에의 과감한 생략, 설명적 서술의 배제, 이미지들의 병치로 원텍스트를 주관적으로 재형상화하고 있다.” 「이중섭」 연작의 핵심 이미지는 ‘바다’와 ‘아내’다. 이중섭에게는 가족과 가장 행복했던 추억이 있는 서귀포 바다인 동시에, 일본에 살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원망스러운 장애물이기도 하다. 김춘수의 「이중섭」 연작시에서는 서귀포가 행복했던 장소가 아닌, ‘그리움과 절망’을 잉태하고 있는 곳으로 등장하고 있다. “‘바다’라는 공간이 김춘수와 이중섭이 공유하는 중심 공간으로 설정된다. 「이중섭」 1~8 시편들에서는 아내와 아이들과의 누추한 생활, 고향인 평양ㆍ동경과의 단절, 그의 작품들, 제주도 피난 시절 등 그의 생활이 피카레스크 수법으로 조각조각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들은 산재된 각각의 풍경들이 어울려내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다. (…) ‘아내’라는 대상 역시 「이중섭」의 전편에서 중심이 되고 있다. (…) 이중섭은 ‘아내’를 통해서 대상과 세계를 보며, ‘아내’에 대한 사랑을 기초로 하여 모두 ‘아내’와 연관된 풍경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만날 수 없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롭고 절망하고 있는 이중섭의 이미지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중섭」 연작에서 이중섭의 이미지는 이중섭의 그림과 삶에 관한 정제된 조각조각의 이미지들이 피카레스크하게 만들어내는 분석적 큐비즘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김춘수는 이중섭과 달리 페시미스트였다. 김춘수는 ‘외로움 중에도 희망’을 그린 이중섭의 이미지를 그의 「이중섭」 연작을 통해 ‘절망’의 이미지로 바꾸어 놓았다.
3. <달과 까마귀>와 「이중섭 4」에 나타난 이미지
1) 이중섭의 그림 <달과 까마귀>(1954, 종이에 유채, 29x41.5cm, 개인소장)
이중섭의 그림에서, 이중섭을 나타내는 오른쪽 까마귀의 눈은 샛노랗게 웃는 모습이다. 왼쪽 네 마리의 까마귀는 아내, 죽은 아이, 살아있는 두 아이를 나타낸다.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은 저승에 가서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다는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중섭은 죽은 아이에 대한 사랑이 각별했다고 한다.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저승에 가야 한다. 까마귀는 불길한 새의 이미지가 아니라 가족이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희망의 이미지다.
이중섭이 1954년 통영 시절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그림 <달과 까마귀>에는 청회색의 하늘에 오른편 위쪽으로 큰 둥근달이 노랗게 떠있다. 그리고 세 개의 전선줄이 화폭 중간을 가로지르며 지나간다. 그 위로 다섯 마리의 까마귀가 그려진다. 아이들을 상징하는 세 마리는 전선 줄 위에 앉아 있고, 이중섭 부부를 상징하는 두 마리는 하늘을 날아 무리들이 앉아 있는 전선에 다가오는 모습이다. 달빛에 비친 까마귀의 노란 눈동자는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다. “불길한 흉조의 이미지로 검게 각인되었던 까마귀를 노란 눈빛이 빛나는 예지의 새로 다시 탄생시킨 것은 이중섭”이다. 노란색 눈의 웃음을 띠고 있는 까마귀는 희망의 이미지다. 저승에서나마 가족과 함께 만나는 희망을 간직한 이중섭의 낙관주의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는 그림이다.
2) 구상과 김춘수의 시에 나타난 <달과 까마귀>
이중섭의 그림 <달과 까마귀>는 낙관적인 데 비해, 이를 대상으로 한 김춘수의 시 「이중섭 4」는 비관적이다. 이중섭의 친구였던 구상은, 세상살이를 비판적 자세로 고발하고 있는 까마귀로 해석하고 있다. 같은 그림을 대상으로 시를 썼지만 예술가에 따라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무의식’에 기대어 대상을 해석하여 예술작품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까옥 까옥
까옥 까옥
영원처럼 펼쳐진 하늘에 해바라기 얼굴을 한 달이 나지막이 떠 있고
통금시간도 지난 거리 한복판 빗줄같이 가로지른 고압선 위에
남산과 북한산에서 내려온 이중섭(李重燮)의 까마귀들이 마주앉아 세상살이를 지저귀고 있었다.
-구상, 「까마귀 10」 부분
동일한 대상(까마귀)이라 하더라도, 민족과 민속에 따라 길조로 보기도 하고 흉조로 보기도 한다. 또한 아주 영리한 새로도 알려져 있다. 이중섭은 가족을 만날 수 있는 희망의 표상으로 그리고 있으며, 김춘수는 「이중섭」 연작에서 시종일관 불편한 눈으로 까마귀를 보고 있다. 그러나 구상의 경우, 까마귀에게 현실을 고발하는 영리한 메신저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권영민의 다음 글에서, 구상 시인의 시 속에서, 이중섭의 까마귀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처럼 이중섭의 그림 <달과 까마귀>을 해석하는 이미지가 김춘수와 구상의 경우 다르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구상 시인은 이중섭이 그렸던 <달과 까마귀>를 시적 텍스트로 바꾸면서 주둥이를 벌리고 날갯짓을 하면서 지저귀는 까마귀 울음소리를 ‘까옥 까옥’ 살려낸다. 그 울음소리는 인간 세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바뀌면서 시인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된다.
"구상의 연작시 「까마귀」는 모두 14편의 작품으로 완결되는데 각 작품마다 1970년대 한국사회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 대한 시적 경고의 목소리를 까마귀의 ‘까옥 까옥 까옥 까옥’이라는 울음소리 시늉말로 표현하고 있다. (…) 인간의 불행을 전달하는 의미에서 ‘까마귀’는 전통적인 흉조의 상징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의 삶과 그 역사와 현실의 비리를 비판하고 물질 만능과 인간의 타락을 경고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선지자적 예지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술가는 동일한 대상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으로 형성된 예술혼과, 몸담고 있는 현실사회를 참조하여, 미래의 구원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3) 「이중섭 4」에 나타난, 김춘수와 수용자들의 이미지
(1) 이중섭의 ‘희망’에서 김춘수의 ‘절망’으로
예술가는 어떤 대상을 보고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이미지를 작품에 담고 있으나, 수용자는 그러한 예술가의 이미지와 무관하게 자신이 해석하는 이미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김춘수는 이런 낙관적인 이중섭의 이미지를 읽고 있었으나 그것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 자기 시에서 비관적인 상황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중섭의 경우는 가족에의 애정이 늘 세계와 인생을 어둠으로부터 방어해 주고 있었다. (…) 오랜 생활의 어려움에 시달려왔는데도 조금도 화폭은 구겨진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 생의 원초적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 말했지만, 그의 시에서는 외롭고 절망적인 이중섭을 그려놓고 있다.
저무는 하늘
동짓달 서리 묻은 하늘을
아내의 신발 신고
저승으로 가는 까마귀,
까마귀는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 하고 한 번만 울어버린다.
오륙도를 바라고 아이들은
돌팔매질을 한다.
저무는 바다,
돌 하나 멀리멀리
아내의 머리 위 떨어지거라.
-김춘수, 「이중섭 4」 부분
이중섭의 그림에서 ‘하늘’은 노랑색과 파랑색이 어울리는 밝은 하늘로 그려져 있으며, 노랗고 둥근 큰 보름달은 희망을 품은 이미지다. 그런데 김춘수의 시에서는 ‘저무는 하늘’, ‘서리 묻은 하늘’로 등장하고 ‘보름달’도 시에서는 사라지고 없어 김춘수의 시에서 ‘하늘’은 외로움과 절망의 이미지로 읽힌다. ‘까마귀’는 비록 흉조로 저승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으나, 이중섭의 그림에서는 샛노란 눈들이 모두 웃음을 띠고 있다. 행복한 까마귀 가족들이다. 특히 가족들을 향해 날아오고 있는 큰 까마귀는 비록 홀로 그려졌지만 웃음을 가득담은 눈망울에서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즉, 저승에 가서 모든 가족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나타낸 그림이다. 그러나 김춘수의 시에서는 저승으로 가려던 까마귀가 가지 못하고, 남포동 어디선가 그만 까욱하고 한 번만 울어버리는 절망의 이미지다.
김춘수의 시 「이중섭 4」에 등장하는 ‘바다’는, 이중섭의 그림 <달과 까마귀>에는 없으나, ‘저무는 바다’라고 하여 절망의 바다로 그려지고 있다. 김춘수가 밝힌 바 있듯이 바다는 이중섭의 삶에서 차용한 이미지다. 이중섭은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바다를 그림으로 그렸으며 아이들과 게를 비롯한 물고기들과 어울리는 행복한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김춘수는 이 바다를 이중섭과 아내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인 장애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행복했던 추억의 바다를 그리워하는 이중섭의 희망적인 이미지가, 김춘수에게는 ‘저물어가는 바다’, 즉 절망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이윤경은 “「이중섭 4」는 <달과 까마귀>를 작가적 해석을 적용하여 읽어낸 작품이며 이렇듯 회화와 시의 주제가 전혀 상반될 때, 시 텍스트는 새로운 해석으로 기존 텍스트의 의미망을 변용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2) 김춘수의 「이중섭 4」에서 읽는 ‘통일된 이미지’
김춘수의 「이중섭 4」에 대한 논문들에서 필자들은 ‘그리워하지만 만날 수 없는 절망’의 이미지를 건져내고 있다. 이는 김춘수가 의미도, 대상도, 통일된 이미지도 버리겠다는 무의미시 이론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하늘, 까마귀, 바다, 아내 등의 이미지들이 「이중섭 4」의 ‘그리움과 절망’이라는 주제에 충실히 공헌하면서 통일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김춘수의 「처용단장」에서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처용이라는 대상의 어떤 이미지도, 처용이 주는 어떤 의미도, 「처용단장」 시 본문에서 찾을 수가 없지만, 「이중섭 4」에는 이중섭 그림에 있는 하늘, 까마귀 등이 등장하여 절망적인 이미지로 제시되고 있다. 이 제목과 연관된, 이중섭의 삶과 그림을 유추하게 하는 이미지들이 등장하여 ‘그리움과 절망’이라는 주제에 잘 이바지하고 있다.
한편 김춘수의 시를 해석하는 논문들에서도 일관되게 ‘그리움과 절망’이라는 이미지를 시에서 읽을 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서리 묻은 하늘’에서 고독감과 고통을 발견하고(조윤경), ‘저무는 하늘’에서 절망과 고독(이윤정)을 읽고 있다. ‘까마귀’에서는 절망하는 이중섭(조정현), 절망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이중섭(장윤익), 보금자리도 없는 고독한 이중섭(조윤경), 그리움과 절망에 몸부림치는 이중섭(정끝별)의 이미지를 「이중섭 4」에서 찾아내고 있다. ‘저무는 바다’는 불행한 예술가(조윤경), 현실을 가로막는 장애공간(정끝별) 등으로 파악한다. 이상의 논문들이 모두 ‘그리움과 절망’이라는 통일된 이미지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통일된 이미지는 김춘수가 무의미시론에서 배격하려했던 핵심과제였다. 무의미시론이 무르익었던 시기에 쓴 시「이중섭 4」에서 ‘통일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무의미시이론이 실제 시(詩)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4. 결론
음악ㆍ미술ㆍ문학은 서로의 이론이나 방법론을 교환하면서 발전해왔다. 특히 김춘수는 미술과 음악에 기대어 그의 무의미시론을 전개했다. 실제 김춘수의 작품에서 이러한 타 장르의 예술들이, 어떻게 그의 무의미시론 형성과 시 쓰기에 공헌하고 있는지를 김춘수의 「이중섭」 연작을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김춘수가 의존하는 ‘서술적 이미지’는 미술의 ‘미니멀 아트’에서 그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김춘수는 세잔, 폴록, 피카소 등의 그림에 그의 무의미시를 빚지고 있는 것을 시사하고 있는데, 「처용단장」은 폴록의 액션 페인팅에, 「이중섭」 연작은 피카소의 분석적 큐비즘 그림과 닮아 있고, 모든 시편들의 간결하고 응축된 이미지는 세잔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셋째, 김춘수는 시가 내용도 의미도 이미지도 버리면 리듬만 남는다고 했다. 작곡가들은 특정 제목을 붙이지 아니하고 작품 번호로 발표하고 있는데, 이처럼 제목이나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절대음악들이 우리에게 훌륭한 호소력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시 작품에서도 제목이나 대상이나 의미, 더 나아가 시인이 통일된 이미지까지 제거해 버려도 훌륭한 작품으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 김춘수의 생각이다. 잭슨 폴록이 물감을 아무 명시적인 의도 없이 흩뿌려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시도 대상이나 의미가 없다고 해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섭」 연작에서도 김춘수의 대부분의 작품들처럼 리듬이 훌륭하게 살아있다.
넷째, 무의식과 자동기술법에 기대고 있는 초현실주의 기법이 무의미시론과 유사하다고 볼 수도 있으나, 의식적으로 대상과 의미와 이미지를 극복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중섭」 연작은 피카소의 화풍과 닮아 있다. 「이중섭」 연작시들은 김춘수의 무의미시에 대한 의도와는 달리, 제목은 물론 이중섭의 삶과 그림에 관련된 단어들이 제공하는 의미와 이미지들로 인해, 그가 시도했던 진정한 의미의 무의미시(대상도 의미도 통일적 이미지도 없는)와 다소간 거리가 있다.
김춘수의 무의미시론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미술과 음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고, 인접 예술을 활용하여 한국시단을 풍성하게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시문학도 이웃 예술로부터 이론과 기법을 차용하여 그 영역을 풍성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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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7.2.28 심사(수정)일: 2017.3.07 ~ 2017.3.29 게재확정일: 2017.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