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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偈頌讚歎
爾時에 尸棄大梵王이 承佛威力하사
普觀一切梵身天梵輔天梵衆天大梵天衆하고 而說頌言하사대
佛身淸淨常寂滅하사 光明照耀遍世間하사대
無相無行無影像이여 譬如空雲如是見이로다
佛身如是定境界여 一切衆生莫能測이어늘
示彼難思方便門하시니 此慧光王之所悟로다
佛刹微塵法門海를 一言演說盡無餘호대
如是劫海演不窮이여 善思慧光之解脫이로다
諸佛圓音等世間이여 衆生隨類各得解호대
而於音聲不分別하시니 普音梵天如是悟로다
三世所有諸如來의 趣入菩提方便行이여
一切皆於佛身現하시니 自在音天之解脫이로다
一切衆生業差別이라 隨其因感種種殊어든
世間如是佛皆現하시니 寂靜光天能悟入이로다
無量法門皆自在하야 調伏衆生遍十方호대
亦不於中起分別하시니 此是普光之境界로다
佛身如空不可盡이라 無相無碍遍十方하사대
所有應現皆如化하시니 變化音王悟斯道로다
如來身相無有邊하며 智慧音聲亦如是하사
處世現形無所着하시니 光耀天王入此門이로다
法王安處妙法宮하사 法身光明無不照하사대
法性無比無諸相하시니 此海音王之解脫이로다
62페이지 게송인데요. 부처님의 덕을 이제 찬탄하는 게송 佛身淸淨(불신청정) 첫 게송이 ① 佛身淸淨常寂滅(불신청정상적멸)하사 光明照耀遍世間(광명조요변세간)하사대 無相無行無影像(무상무행무영상)이여 譬如空雲如是見(비여공운여시견)이로다 그 다음 두 번째 ② 佛身如是定境界(불신여시정경계)여 一切衆生莫能測(일체중생막능측)이어늘 示彼難思方便門(시피난사방편문)하시니 此慧光王之所悟(차혜광왕지소오)로다 여기까지 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게송인데 ③ 佛刹微塵法門海(불찰미진법문해)를 一言演說盡無餘(일언연설진무여)호대 법문이라고 하는 것이 사람이 하는 법문만이 법문이 아니라 그야말로 뭐 새소리, 물소리, 차지나가는 소리, 바람소리 소리뿐만 아니라 일체현상이 그대로 자기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 사실이 법문입니다. 그게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그래서 佛刹微塵이라. 이 세상의 먼지와 같은, 작은 먼지와 같이 많고 많은 法門海 그래 바다 해(海)자를 썼어요. 많다는 뜻에서, 佛刹微塵과 같이 많고 많은 法門의 바다를 한 말로 演說해버려. 한 마디로, 한 마디로 연설해도 다 해. 다 해서 남음이 없다. 싹 다 할 수 있다 이 말이여.
손가락 하나를 세웠어. 부처님도 평생 그렇게 말씀 많이 하시다가 꽃 한 송이 딱 든 적이 있잖아요. 그걸 뭐라고? 拈華示衆(염화시중), 拈華微笑(염화미소) 이렇게 표현하잖아요. 꽃 한 송이 딱 드는 것 하고 팔만대장경하고 맞먹는거여. 오히려 꽃 한 송이 든게 더 완벽해. 우리불교는 이렇게 이해해야 돼. 이런 이치는요. 다른 종교, 다른 철학에는 도~저히 없습니다. 있을 수가 없어요. 부처님께서 꽃 한 송이 딱 들고 말았어. 어느날 그런데 그 꽃 한 송이 든 것이 팔만대장경 평생 말씀으로 설법한 것 보다 더 완벽하다니까. 더 완벽해요. 그 뿐만 아니라 구지선사가 손가락 하나 딱 세웠잖아요. 그 스님은 평생 손가락 하나 세우는걸로 끝냈어. 법문을,“스님 편안하십니까?”하면 손가락 하나야. (하하) 편안한지 뭐 아픈지 뭐 감기 걸렸는지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손가락 하나 속에 다 있어. 평생 써먹고도 남았잖아. 손가락 하나 그대로 있으니까.
그래 盡無餘야. 다하고도 남았다. 남음이 없다. 다 그 속에 포함됐다 이 말이여. 一言演說 한 마디로 연설 그래서“할”한다는 소리 알죠?“할”그 그 선법문할 때 고함을 한 번 치는거라든지 혹은 또 옛날 조사스님들은 방(棒)이라고 해서 그 주장자를 가지고 한 번 후려치기도 하고 그 다음에 또 법상을 쾅 내려치기도 하고 그런 것이 이런 연설입니다. 한 마디로 연설하는거죠. 어떤 이는 무언(無言) 말이 없어. 묵묵히 그 이제『유마경』에 보면 유마거사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뭐 서른 세 명의 보살들이 자기 아는데로 둘이 아닌 이치를 설법을 했는데“이 마지막으로 유마거사 당신도 한 번 이야기가 있어야 될 거 아니냐?”라고 하니까 유마거사가 입을 딱 다물고 가만히 있었어. 無言이야. 無言 그 속이 그것이 불이법문을 제일 설법을 잘했다네. 제일 완벽한 법문이다. 이렇게 표현하는거 아닙니까! 그 혹 어떤 데는 미소 또 어떤 이는 주먹으로 허리를 쥐어박기도 하고 몽둥이로 후려치기도 하고 뭐 등등 그런 것입니다.
佛刹微塵法門海 많고 많은 그 법문이 한 마디 속에, 한 가지 행동 속에 그것이 다 들어있다. 완벽하게 들어있다.
如是劫海演不窮(여시겁해연불궁)이여 그렇게 완벽하게 들어있는 한 마디 연설을, 이와 같은 법문을 劫海가 다하도록, 劫海 아주 오랜 세월입니다. 劫海가 다하도록 演不窮이라. 연설하고 연설해도 다하지 못함이여. 善思慧光天王(선사혜광천왕)이 解脫(해탈)한 것이다. 善思慧光天王(선사혜광천왕)이 解脫(해탈)한 것이다.
그 다음에 이제 네 번째 ④ 諸佛圓音等世間(제불원음등세간)이여 모든 부처님의 圓音 원만한 음성 그 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면은 여기 있는 분만 알아들어요. 또 뭐『화엄경』법회가 최고급 최상품 법회라고 하니까 그냥 환희심나서 따라왔는데 이게 뭐 뭔소리인지를 모르겠다. 우리말 가지고 했는데도 못알아 들을 수가 있어. 그런데 다른 어떤 동물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알아듣겠어요? 못알아들어. 우리는, 그런데 부처님 말씀은 圓音이야. 원만한 소리 그래서 等世間이야. 세간의 소리하고 전부 동등해.
인도에는 공식 문자, 공식 언어가 뭐 열두 개라든가 그렇데요. 비공식 언어는 수십 가지가 되고 지금도. 방언이 너무 많은거야. 지방말이 너무 많아. 사투리가, 그런데 부처님이 말씀하시면 부처님도 뭐 자기 고향에서 자기 말씀 배웠겠지. 그러나 도를 이루고나서 부처님의 능력은 어느 지방에가 가서 말씀하셔도 다 그 지방말로 다 알아들었다 하는 그런 표현이 있어요. 그런 말이 있어요. 그걸 이제 圓音이다. 이렇게도 이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世間과 동등하다 等世間 그랬어요.
그래 衆生隨類各得解(중생수류각득해)라 중생들이 종류를 따라서 어떤 지방의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지방의 종류를 따라서 각각 得解 이해를 얻는다 이 말이여. 부처님이 인도말로 하셔도 미국사람은 미국말로 알아듣고 러시아사람은 러시아말로 알아듣고 저기 아프리카사람은 아프리카말로 알아듣고 스페인어를 쓰는 사람들은 스페인어로 알아듣고, 이렇게도 이제 설명을 합니다. 그 부처님의 圓音이라는게 그렇다는거요. 중생들이 종류를 따라서 각각 이해를 얻는다. 얻대
而於音聲不分別(이어음성불분별)하시니 음성에 있어서, 음성에 있어서 분별하지 아니하시니. 이 음성이다 저 음성이다 뭐 미국말이다 무슨 뭐 무슨 아프리카말이다 인도말이다 그런 분별이 없어. 그대로 다 이해한다 이거죠. 普音梵天(보음범천)이 이와 같이 깨달았더라. 如是悟(여시오)로다 이와 같이 깨달았더라. 참 부럽죠. 좋은 내용이죠. 이게 ④번이,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 그리고 앞으로 이렇게 된답니다.
지금도 상당히 이 분야에, 예를 들어서 동시통역되잖아요. 귀에다 뭐 하나 꽂으면은 5개국어가 국제회의같은데는 한국말로 말하는데 전부 영어로 알아듣고 러시아말로 알아듣고 중국말로 알아듣고 일본어로 알아듣는거야. 야~ 신기한 세상이잖아. 그걸 여기 3000년전에 이렇게 해놨어. 벌써, 얼마나 신기한 이야기입니까? 이제는 이제 앞으로 그게 더 발달하면 과학이 더 발달하면요 뭐 경상도사투리, 전라도사투리, 서울사투리 다 다 그 구미에 맞도록 알아들을 수 있을거요. 지금은 뭐 기껏해야 5개국어내지 7개국어 동시통역이 되잖아요. 그게 이제 지금도 그 정도까지 발달했는데 앞으로 그 발달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거든요. 더 빨라져.
지금 뭐 그 저기 여행할 때 아주 간단한 통역기 돼있어요. 간단한 통역기 그 우리말로 하면은 엉터리로 조금 번역이 되도, 영어로 번역이 되고 일어로 되고 중국어로 번역이 되고 되더라구요. 그런 기계는 이미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도록까지 돼있어. 앞으론 그게 아주 정확하게 아무 그 지장없이 그 통역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기계하나 조그만한거 뭐 휴대폰같은거 하나 들고 가서 우리말로 뭐 하면은 그쪽에서는 이제 자기들 말로 알아듣는거야. 러시아에선 러시아말로 알아듣고 러시아말로 뭐라고 말하면 나는 또 한국사람 한국말로 그냥 바로 알아들어버려. 야 참 편리하죠. 여기는 이제 부처님이 3000년전에 이미 그랬어. 허허 참~
⑤ 三世所有諸如來(삼세소유제여래)의 趣入菩提方便行(취입보리방편행)이여 三世所有諸如來 과거 현재 미래에 모두 부처님이 계셔. 如來가 계시는데 그 如來의 趣入菩提方便行이여 菩提에 趣入하는 깨달음의 경지, 자비와 지혜에 들어가는 方便의 行이여.
一切皆於佛身現(일체개어불신현)하시니 일체가 다 부처님 몸에서부터 나타난다. 佛身에서 나타난다. 부처님이 과거, 현재, 미래에 깨달음의 행위, 자비와 지혜의 행위 그 행위는 모두가 부처님의 몸에서 나타나시니 自在音天王(자재음천왕)이 解脫(해탈)한 것이더라.
그 다음에 여섯 번째 ⑥ 一切衆生業差別(일체중생업차별)이라 隨其因感種種殊(수기인감종종수)어든 一切衆生의 業이 差別해. 그렇죠? 모든 사람의 업은 다 차별합니다. 차별하지 않는 사람 없어요. 쌍둥이로 태어나도 각자 미세한 업은 차별이 있어요. 그 나중에는 상당히 팔자가 다르잖아요. 어릴 때는 똑같이 자라다가 차츰 차츰 나이가 들고 성장해서 뭐 가정을 각자 꾸리고 새로운 다른 사람들을 각자 만나고 그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고 직업이 다르고 이러면 그만 각각 차별돼버려. 전혀 딴 사람이 돼버려. 一切衆生 가장 가깝다고 하는, 가장 유사하다고 하는 쌍둥이도 그렇게 나중에 가서는 엄청난 차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一切衆生의 業이 差別함이라.
隨其因感種種殊어든 그 원인 因이, 인연맺은 것을 따라서 이 말입니다. 因感이라고 하는 것은 인연이 감득한 바, 인연이 느낀 바를 따라서 각각 인연맺은 것을 따라서 과보가 가지가지 다르다. 種種殊라고 하는 말은 그 과보가 각각 다르다 그 말입니다. 인연 따라서, 그렇죠? 똑같은 쌍둥이인데 한 사람은 김씨 집으로 시집가고 한 사람은 박씨 집으로 시집가. 그런데 어쩌다보니까 직업도 다르고 사는 도시도 달라. 그래가지고 나중에는 또 이런 저런 인연으로 또 어떤 사람은 미국으로 간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중국으로 간 사람도 있고 이렇게 되잖아요. 그건 뭐 우리가 환히 보고 아는 경우 아닙니까?
요즘은 또 뭐 다문화 사회가 돼가지고 우리나라에 가끔 뭐 그 저기 저 우리나라에 그 결혼한, 우리나라에 와서 결혼한 외국여성들 그 생활을 찍어가지고 또 고향에 가가지고 부모 만나고 하는 그런 것들을 이제 TV에서 방영을 이제 해주는데, 거길 가면 형제가 또 있어. 그 사는 모습이 천양지차(天壤之差)여. 그 인연을 감득하면, 인연을 따라서 업이 가지가지로 다르다. 隨其因感種種殊 참~ 우리의 삶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잘 표현해놨습니다.
世間如是佛皆現(세간여시불개현)하시니 世間이 이와 같은 것을 부처님이 다~ 나타내보여. 다 설명해줬어. 부처님은, 다 이미 아시고 世間如是를 世間이 이와 같은 것을 부처님이 다 나타내시니 寂靜光天王(적정광천왕)이 깨달아 들어가는 바더라.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寂靜光天이 능히 깨달아 들어갔더라.
그 참『화엄경』은 뭐 구절구절이 뭐 심오한 이치가 우리가 제대로만 이해하면 참 탄복을 할 그런 내용들입니다.
일곱 번째 ⑦ 無量法門皆自在(무량법문개자재)하야 한량없는 법문이 다~ 자유자재해서 調伏衆生遍十方(조복중생변시방)이라 중생들을 調伏시켜. 調伏시킨단 말은 이해시키고 납득시키고 설득시키고 하는 그런 뜻입니다. 중생들을 이해시켜서 시방에 두루해. 어디에 가든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중생들이 다~ 거기에 감동하고 調伏을 받고 이해를 하게 된다. 온 세상이
亦不於中起分別(역불어중기분별)하시니 또한 그 가운데서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 여기 分別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어떤 그 소견이라든지 자기 어떤 그 잘못된 어떤 그 주의주장을 거기서 내세우지 않는다 이런 말입니다. 왜 그런고 하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모든 존재의 존재이치를 깨달아서 그 이치에 딱맞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제대로만 이해하면은 이유 달 수가 없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이 덮어놓고 부처님은 위대한 분이니까“아유 부처님 말씀이라고”뭐 다른 종교에서처럼, 이치에 안맞는데도 부처님 말씀이라고 아니면 뭐 누구의 말이라고 교주의 말이라고 해가지고 무턱대고 이치에 맞지 않는데도 무턱대고 따라가는 그런 종교가 아니에요. 부처님은 진리를 깨달았어. 참 이치를 깨달아서 그 이치대로 우리에게 가르쳤기 때문에 우리가 이유 달 수가 없어. 철이 들고 이해가 깊어지고 거기에 깨달음이 생길수록 부처님 가르침에 이해를 저 이유를 달 수가 없어.
여기 그 말입니다. 分別을 일으키지 않는다 말이요. 또한 亦不於中起分別 또한 그 가운데서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유를 달지 않아. 달 수가 없게 돼있어. 하~ 그저 탄복하고 무릎을 치고 고개 끄덕거리고 그저 탄복, 탄복하고 감동, 감동할 뿐이여.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우리가 이해를 못할 때는 뭐 불교가 미신이다. 전혀 불교공부도 안해보고는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이름이 무진거사인가? 중국에 있었던 일인데, 이 사람이 아주 유명한 선비이고 또 벼슬도 상당히 높았어. 어느날 방에다 불을 켜놓고 밤새도록 뭐 뭐를 쓰고 있는거야. 그래 부인이 나중에 가만히 보니까 불을 환하게 밝혀놓고는 그러니까. 그 다음날도 또 그러고 그 다음날도, 분명히 자야 할 시간인데 그렇게 불을 밝혀놓고 끙끙대는거야. 그래 하루는 이제 들어가가지고“당신 뭐 때문에 그렇게 한밤중에 불을 밝혀놓고 종이를 펴놓고 먹을 갈아놓고는 붓을 들고는 있는거야? 그 뭐하느라고 그러냐?”하니까“아 무불론(無佛論)을 쓴다.”는거야. 없을 무(無)자, 부처 불(佛)자.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가지고 하 중국에 유교가 있고 도교가 있고 하는데 불교가 중국에 들어와가지고는 뭐 막 그냥 떠들어싸니까‘부처는 없다’라는 논문을 내가 쓸라고 하는데 뭐가 머리에 안떠오른다 이거야. 그래 그러냐고. 그래가지고 내가 며칠동안 끙끙대고 있다. 무불론을 써가지고 세상에다 퍼뜨려가지고 부처는 없다라고 하는 것을 알려야 되겠다고 이렇게“그래 그럼 내가 좋은 방법 하나 가르쳐 줄 테니까 그럼 들을라니까?”그래 듣겠다는거야. 좋은 방법 가르쳐준다는데 뭐 부인이.“그래요. 그러면은 불교에는 서적이 많은데 불교서적을 몇 권 보면은 아마 거기에 힌트가 있을 겁니다.”그렇게 가르쳐줬어. 이 부인은 이미 절에 많이 다녔어. 보살로서, 그래 가만히 보니 자기 남편이 같잖거든. 세상에 상당한 이름있는 선비야. 벼슬도 높고, 그런데 부처님이 없다라고 하는 그런 그 논문을 써가지고 세상에다가 펼칠려고 끙끙대는데, 저 양반이 불교책 하나도 경전 하나도 보지도 않고 소문만 듣고 남의 말만 듣고 무불론을 쓸라고 저렇게 끙끙대거든
그러니까 거기다 대고 막 윽박지르면서“당신이 뭘 안다고 무불론 쓰냐?”고 이렇게 하는게 아니고, 참~ 지혜롭잖아요. 내가 책을 몇 권 갖다줄 테니까 책 읽어보면 거기에 힌트가 있다. 그래가지고 그 다음날 아침에 경전 몇 권을 갖다줬어. 그 아주 뭐 글솜씨 좋은 선비가 그냥 뭐 하루에 그냥 뭐 몇 권씩 막 읽어제끼는거야. 그래 가만히 보니까 이게 기가막힌 이치가 있거든, 그래가지고 무불론을 쓰다가 유불론(有佛論)을 썼어. (하하하) 있을 유(有)자 유불론을, 아주 유명한 거사가 돼서 나중에 도통까지 했어요. 그래가지고 역사에 남는 그런 거사가 됐는데
그래 이치에 맞으니까. 아무리 뭐 당신이 유교에 깊이 빠져있다손 치더라도 이치에 맞으면 그거 돌아오게 돼있거든, 수긍하게 돼있다구요. 그래 이제 불교는 그중에 그 가운데서 우리가 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하는 것은 우리가 모르니까 의혹을 갖고 의문을 가지고 이유를 달고 하유 불교가 미신이다 뭐다 해쌌지 제대로만 이해하면 그게 이유를 달 수도 없고 의혹을 가질 수도 없고 미신이라고 할 하는 마음이 날 수가 없는거여. 무불론이라는게 이게 있을 수가 없는거지. 그러니까 그 사람이 유불론 썼다니까. 하도 무불론 쓸라고 끙끙대다가 나중에는 불교를 환히 알고 나서는 그런 그 사건도 있습니다. 실지로 역사에 있는 사건이에요.
此是普光之境界(차시보광지경계)로다 이거는 普光天王(보광천왕)의 경계다. 참~ 無量法門皆自在 한량없는 법문이 다 자유자재하다. 그래서 중생들을 조복하는데 시방세계에 두루하다. 시방세계에 두루하도록 중생들을 가르친다. 조복한다. 亦不於中起分別하시니 그 가운데서도 또한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하시니 이것은 보광천왕의 경계더라.
여덟 번째 ⑧ 佛身如空不可盡(불신여공불가진)이라 부처님의 몸은 허공과 같아서 가히 다하지 못함이라. 이건 이제 진리의 몸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 그 자체 佛身하면은, 허공과 같애. 어디에 진리가 없는데 야 유형(有形), 무형(無形) 눈에 보이나 눈에 보이지 아니하나 어디에 있든지간에
허공이 사실은 이 저기 아주 그 땅땅한 돌 안에도 허공이 있거든요. 물 속에도 공간이 있고, 물 속에도 허공이 있는거야. 그러니까 그 뭐야 물고기들이 다 숨을 쉬고 살잖아요. 또 우리 몸이 이렇게 꽉 찼다고 하지만 예를 들어서 뭐 60kg다 70kg다 하는 몸무게를 가지고 있으면 꽉 차가지고 아무 없는거 같지? 천만에. 물은 물대로 꽉 차있고 공기는 공기대로 우리 몸 안에 꽉 차있어. 공기없으면 그 맥박도 뛸 수가 없고 피도 움직일 수가 없고 호흡도 할 수가 없고, 기도에만 그 호흡, 공기가 있는게 아니에요. 피 속에도 공기가 있고 세포 속에도 공기가 있고 일체 뼈 속에도 공기가 있고, 공기가 꽉 차있어. 그만, 그런 것입니다.
그래 이제 부처님 몸이라고 하는 것은 그와 같이 진리의 당체(當體)로서 如空不可盡이라 空과 같아서, 허공과 같아서 가히 다하지 못한다.
無相無碍遍十方(무상무애변시방)하사대 그러면 형상도 없어. 공기처럼, 형상도 없고 형상이 없으니 걸림이 없지. 형상이 있는 것은 걸리지마는 형상이 없는 것은 걸리지 않는거라. 그래서 無相無碍遍十方이라 시방에 두루해. 허공이 그러잖아요. 허공이 어디든지 공간은 다 있다. 물 속에도 있고 불 속에도 있고, 遍十方호대 所有應現皆如化(소유응현개여화)하시니 所有 있는 바에 응해서 나타나는 것이 다 환화와 같애. 如化라고 하는 化자는 환화(幻化) 그리고 환영과 같이 나타난다.
본래 없는 형상이 없는 것이니까 佛身은, 마치 비유하자면은 허공과 같으니까. 있는 바에 응해서 나타나거나. 예를 들어서 뭐 꽃에 응하면 꽃이 되고 물에 응하면 물이 되고 연필에 응하고 연필이 되고 종이에 응하면 종이가 되고 책상에 응하면 책상이 되고 우리가 말에 응하면 말소리가 되고, 전부 모든 존재와 모든 존재의 작용 속에 다 있다. 그러면서 환화와 같다. 어떤 그 특별한 형상으로써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죠.
變化音天王(변화음천왕)이 悟斯道(오사도)로다 이 도를 깨달았더라. 變化音天王이 이 도를 깨달았더라.
⑨ 如來身相無有邊(여래신상무유변)이여 如來의 身相은, 몸의 모습은 가가 없다. 변제가 없다. 가하심이 없음이여. 없단 말입니다. 智慧音聲亦如是(지혜음성역여시)하사 智慧의 音聲이 또한 이와 같으사. 如來의 身相이 끝이 없고 智慧의 音聲도 또한 끝이 없다. 그 말이죠.
處世現形無所着(처세현형무소착)하시니 處世 세상에 처하는데 형을 나타내도 집착하는 바가 없어. 끝이 없으니까. 음성도 끝이 없고 몸도 끝이 없어. 모든 존재 그 자체야. 그만, 그렇게 알면 되요. 여래는 모든 존재 그 자체다. 그럼 내 몸에도 여래가 있겠네? 당연하지. 그렇게 이해해야되요. 여래는,
그래 저기 그 전에 열반하신 춘성스님이라고 아주 걸출한 스님이 계셨어요. 제가 모시고 살아본 당대의 선지식들이 참 많았는데, 저는 뭐 좀 이제 뭐라고 할까? 하여튼 궁금증이 많아가지고 그 선방을 운영하고 계시는 선지식이 있으면은 내가 걸망지고 다닐 때 20대, 30대 다 돌아다니면서 한 철씩, 두 철씩 다 살았어. 그래 저기 서울 도봉산 망월사에 춘성스님이 계셨어. 아~주 아주 그 그릇이 크고 선이 굵고 아주 그 사내장부고 체격도 좋고 아주 머리도 좋아가지고 옛날에 강사하시다가 선사가 됐어요. 그 분 책이 또 세상에 나와가지고 많이 읽혔어요.
내가 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이 세상에서 스님, 중 한 사람을 딱 꼽으라면 춘성스님을 꼽겠다. 내가 만난 수많은 스님들 중에서 한 사람, 만약 한 사람만 뽑으라면 춘성스님을 꼽겠다. 내 그런 표현을 가끔 하는 그런 스님인데, 그런 스님은 뭐 일화도 많죠. 일화도 많지마는 그 스님은 참 그야말로 집착없이 사신 스님, 정말 집착없이 사신 스님으로서 아주 그 그 스님이 늘 떠올라요.
處世現形無所着이라 세상에 처하는데 형상을 나타내도, 세상에 처하면서 형상을 나타내도 집착이 없으시다.
그 망월사역이라고 있어요. 옛날에 교통이 불편해서, 지금도 뭐 거기는 올라갈라면은 걸어올라가지마는 망월사역이라고 기차가 어쩌다 한 번씩 지나가는데 그 역에서 내려서 이제 한 2시간쯤 산으로 걸어 올라가야되는데 거지가 역에 발발 떨고 있거든, 지금도 노숙자들이 많잖아요. 역전에 가면, 그 떨고 있는게 그 입고 있던 누더기 겨울에 다 벗어서 그 사람들 다 덮어주고 내복바람으로 올라오고 하는 그런 그. 그냥 무심해요. 아무그냥. 그런거 했다고 해서‘와 내가 그런일 했느니’그런 생각도 전혀 없어. 모시고 살아보면
또 뭐 어떤 신도가 도인스님이라고 49재 지내달라고 재비를 맡겼는데 그 재비를 뭐 어려운 사람들 다 나눠주고“아이고 오늘 49재 제일 잘지냈다.”하고 그리고는 마지 달랑 올려놓고 불공하고“49재 내가 어제 잘 지냈으니까 걱정말라.”고 그 이해못하는 사람은 절에 못오는거야. 그 신도가 별로 없었어요. (하하하) 그걸 이해할 턱이 있나? 그 신도들은‘아무리 그래도 그렇지’하고 이렇게 나가는거야. 그래도 그렇지 하고‘어떻게 재비를 가지고 거지를 줄 수가 있느냐?’이렇게 나가는거야.
근데 그 스님은 무심해. 그래도 뭐 아무 그 뭐 티도 없어요. 그냥 으레히 일상사처럼 그렇게 행동하시더라구. 참 정말 훌륭한 스님이었어요. 춘성스님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죠? (네) 저는 그런 스님들 모실 복이 많아가지고 뭐 정말 당대 그런 그 선지식 스님들 다 모시고 살았어요.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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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諸佛圓音等世間이여 衆生隨類各得解호대 而於音聲不分別하시니...모든 부처님의 원만한 음성이 세간의 소리하고 동등해서 중생들이 종류를 따라서 각각 이해를 얻되 음성에 있어서 분별하지 아니하시니(그대로 다 이해한다)]
[無量法門皆自在 亦不於中起分別하시니...한량없는 법문이 다 자유자재하여 중생들을 조복하는데 시방세계에 두루하다. 그 가운데서도 또한 분별을 일으키지 아니하시니...][處世現形無所着하시니.. 세상에 처하는데 형상을 나타내도 집착하는 바가 없으니(여래는 모든 존재 그 자체)]...화풍정 님! 수고 하셨습니다. _()()()_
處世現形無所着이라...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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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刹微塵法門海
;일체 현상,만물이 다 그대로 법문이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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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딘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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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화풍정님! 고맙습니다_()()()_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南無大方廣佛華嚴經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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