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가정(家庭)의 비극(悲劇) 창 16:1-14절, 455.456.500장.3927 Bible 말씀연구소 박봉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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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래의 꾀로 시작되긴 했지만 하갈이 임신을 하고. 이스마엘을 낳은 것은 장차 이삭을 낳을 때까지 사래를 안심하고 위로하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갈과 이스마엘이 택한 백성 아브라함과 사래에게서는 멸시를 받았으나 하나님은 말할 수 없는 관심과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사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를 계시의 수용자로 삼으신 것도 따지고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서 그렇다기 보다 이방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도구로 삼으셨다는 큰 틀속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와서 오늘의 주제와 연결시켜 생각해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도 위기가 왔습니다. 부부간의 문제 아브라함과 사래문제, 사래와 하갈의 문제, 이삭과 이스마엘 이복형제의 문제, 이것은 오늘날까지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전쟁을 계속되게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가정의 죄와 실수는 오늘까지도 전쟁의 불씨가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마침 우리의 관심과 아주 적절하게 맞아 떨어지는 메시지입니다. 가정을 활기차게 사랑과 기쁨이 넘치도록 합시다. 그것은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가정의 주인은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아닙니다. 가정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명령에 모두가 순종하면서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룩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복된 가정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박봉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