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과학]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
곰이 춤추듯 반복 행동하면 스트레스 받은 거래요
입력 : 2023.05.02 03:30 조선일보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
▲ /그래픽=진봉기
최근 얼룩말 한 마리가 서울 도심을 뛰어다니는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어린이대공원 울타리를 뚫고 탈출한 얼룩말 '세로'였습니다. 두 시간 동안 세로가 도로를 가로지르고 주택가를 활보하는 동안 세로와 사람이 다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어요. 다행히 세로는 구조대 도움을 받아 동물원으로 무사히 돌아갔습니다.
세로가 동물원을 탈출한 이유에 대해 '부모 얼룩말을 잃고 나서 우울감이 커졌고, 옆 동물사(動物舍)에 사는 캥거루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어요.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해 동물원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죠.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맞춤형 공간과 놀잇감이 필요해요
혹시 동물원에서 제자리를 빙빙 맴도는 동물을 본 적 있나요? 몸의 일부를 계속 긁어대거나 머리를 흔드는 동물은 없었나요? 동물이 의미 없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을 '정형 행동'이라고 해요. 언뜻 보기엔 춤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나타나는 행동이지요. 동물원에서 평생 살아가야 하는 동물은 생활공간이 너무 좁거나 관람객 소음이 너무 클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심한 경우 털을 뽑는 등 스스로 몸을 아프게 하기도 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동물원에서는 '행동 풍부화'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행동 풍부화는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야생에서의 습성을 유지하고 종(種) 고유의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동물원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으며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거지요.
청주동물원의 반달가슴곰 우리는 행동 풍부화의 대표적인 사례예요. 2019년 9월 반달가슴곰 반이와 달이, 들이가 터 잡은 새집이지요. 이곳은 일단 공간이 넓습니다. 흙과 잔디가 깔렸고, 한가운데는 놀이터처럼 나무를 쌓아 만든 놀이 기구가 있어요. 마음껏 올라탈 수 있고, 나무껍질을 벗기는 놀이도 할 수 있죠.
반이와 달이, 들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해먹이에요. 버려진 소방 호스를 엮어 만들었어요. 소방 호스는 재질이 질기고 단단해서 곰의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에도 잘 찢기지 않아요. 곰들은 해먹에 누워 나무껍질을 뜯고 간식을 먹거나 낮잠을 즐겨요. 고구마와 당근, 배추, 땅콩 같은 다양한 채식 식단도 마련했어요. 편의상 육식 사료를 줬던 과거에 비해 자연에서 먹는 것과 비슷한 먹이로 바뀐 거죠.
서울대공원도 동물의 특성에 맞는 행동 풍부화를 하고 있어요. 호랑이에게 먹이로 고기를 줄 때는 양털을 상자에 함께 담아주는 방식이에요. 호랑이가 상자를 탐색하고 뜯고 털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야생 맹수의 습성을 키울 수 있어요. 또 먹이를 나무에 매달아 놓거나 공에 담아 물에 던져주는 등 호랑이가 다양한 방법으로 먹이를 찾도록 해줘요. 이 외에 기니피그와 원숭이, 기린, 개미핥기 등 동물 특성에 맞게 공간을 꾸미고 맞춤형 먹잇감과 놀잇감을 마련해 심심할 틈이 없게 하고 있답니다.
동물원 운영, 허가받아야 해요
하지만 여전히 시설이 열악해서 동물들이 고통받는 동물원도 많아요. 야생동물 체험 시설 상당수가 그렇지요. 환경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야생동물 체험 시설이 우후죽순 늘기 시작했어요. 특히 동물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줄 수 있는 '동물 카페'는 동물원으로 등록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동물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워요.
올해 12월 14일부터 동물원 운영이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뀝니다. 허가제가 되면 동물 종류별로 생태적 습성을 고려해 서식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해요. 예를 들어, 미어캣과 사막여우는 낮에 몸을 숨길 수 있는 상자 모양의 은신처가 있어야 해요. 금강앵무는 발로 움켜잡을 수 있는 나뭇가지 모양의 횃대가 필요하죠. 관람객과 빛을 피해 동물들이 조용히 혼자 쉴 수 있는 별도의 공간도 있어야 해요. 실내에서 지낼 경우 일정 시간은 빛을 볼 수 있도록 인공 조명을 설치해야 하고요.
또 동물의 안전과 질병 관리가 잘되고 있는지 정기적으로 검사받아야 해요. 특히 제한 없이 먹이를 주거나 동물을 직접 만지는 체험 활동은 할 수 없어요.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동물원으로
동물원 환경이 좋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아요. 일부에선 "동물원에 가지 말자"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해요. 앞으로 동물원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까요?
청주동물원은 기존 동물원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생크추어리(sanctuary)'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생크추어리는 다치거나 무리에서 도태돼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동물이 살아갈 수 있게 한 공간이에요.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선 동물들이 도시에서 함께 살 수 있는 생크추어리를 운영하고 있어요.
청주동물원의 반달가슴곰 반이, 달이, 들이는 좁고 지저분한 환경에서 지내다 구조됐어요. 웅담(곰의 쓸개)을 채취하기 위해 기르던 사육곰이었거든요. 사람이 놓은 덫에 걸려 다리를 다친 삵, 유리창에 부딪혀 시력을 잃은 말똥가리도 청주동물원에 살고 있어요. 다쳐서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대신 청주동물원에서 지내며 치료를 받는 거죠.
야생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된 동물은 자연으로 돌아가기도 해요. 청주동물원 물새장에는 백로가 있었어요. 거대한 물새장에서 스스로 먹이를 잡아먹는 백로를 보며 청주동물원은 이 정도면 자연에서도 충분히 적응할 수 있다고 판단했어요. 이 백로는 2020년 충남 서산에 방사됐답니다.
청주동물원은 2021년 천연기념물 동물치료소로 지정됐어요. 이후에도 다양한 의료 장비를 설치해 동물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동물원으로 탈바꿈하고 있어요. 아픈 동물들이 잠시 쉬어가며 치료받는 곳,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곳이 동물원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윤선 과학칼럼니스트 기획·구성=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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